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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메르스·엘리엇 위기 넘고 ‘JY 시대’ 개막 

시험대에 올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진심어린 사과와 대대적인 여론전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이건희 회장 부재의 삼성을 이끌 ‘JY식 신경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환자 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습니다.” (6월 23일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사과하면서)

“주주님들의 주식 단 한 주라도 저희에게 위임해 주시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기업 가치와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7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주총을 앞두고 진행한 전국 일간지와 방송, 인터넷 광고에서)

‘첫 무대’에서 위기돌파 능력 보여


지난 6월과 7월 사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두 차례 대국민(주주) 메시지를 발표했다. 한번은 직접 육성으로 발표한 사과였고, 한번은 광고를 통한 읍소였다. 국민과 주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가 기자회견을 연 것은 1991년 삼성전자 입사 이래 처음이다. 공식 ‘데뷔’ 무대가 사죄의 자리가 된 셈이다. “의료진에 격려와 성원 부탁드립니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잠시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그는 발표 도중 두 번이나 연단에서 내려와 머리를 숙였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두고 사실상 그룹 대표 자격으로 공식 행보를 시작한 것으로 평가한다. 재계 단체의 한 관계자는 “계열사 문제를 오너가 직접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일각의 ‘반(反)삼성 정서’를 정면 돌파하면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은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본인이 직접 사과 발표문을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근래에 본 것 중 가장 간결하게 잘 된 사과문”이라며 “이 부회장이 이번 일을 통해 깔끔하게 문제를 수습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 나름 성공적인 데뷔”라고 평했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현재 이재용 부회장의 위치를 확인한 자리였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성사는 미래의 권한에 대해 신임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 7월 17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각각 합병계약 승인 안건을 통과시켰다. 삼성물산 주총에선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반대표를 던졌지만 찬성률 69.5%로 합병안이 통과됐다. 두 회사는 9월 1일 합병을 완료한다.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대 주주로서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바야흐로 ‘이재용의 삼성’이 닻을 올린 것이다. 재계에서는 2013년부터 제일모직 통폐합, 삼성SDI와 삼성석유화학 사업재편, 삼성SDS ·제일모직 상장,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등 방산·화학 4사 한화 빅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까지 2년 가까이 숨가쁘게 달려온 삼성그룹의 승계 작업이 합병안 최종 가결로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안정적인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 주총을 앞두고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전을 펼쳤다. ‘합병비율이 제일모직 주주, 특히 이재용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에 유리하다’는 주주들의 반발에 직면하자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삼성의 부장급은 물론이고 이사급들도 소액주주를 찾아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전자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100여개 매체에 주주 권한을 위임 해달라는 호소문을 연일 게재했다. “외국계 헤지펀드회사에게 경영권 간섭을 내줄 수는 없다”며 주주들의 애국심을 자극했고, 이는 결국 여론이 되어 망설이던 기관 투자자들을 움직였다. 주총에서 “엘리엇이 아니라 국내 기관이 합병 반대를 이끌었다면 동조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삼성물산의 지분가치가 저평가 되어 있다는 엘리엇의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주들은 결국 통합 삼성물산의 미래에 표를 던졌다. 재계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진정성 어린 사과와 이번 주총 승리로 이 부회장은 경영권 강화와 함께 위기 극복 능력을 대내외에 보여주었다”며 “헤지펀드의 저돌적인 공세 속에 득표전을 진두지휘하면서 보여준 리더십은 그룹 경영의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신경영’ 버금가는 그룹 개혁 전망

재계에서는 향후 ‘이재용식 변화’가 삼성그룹 안팎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선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릴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 수뇌부는 삼성물산 주총 이후 “삼성이 국민에게 큰 빚을 졌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머지않아 구체적인 ‘빚 갚기 플랜’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먼저 메르스의 진원지였던 삼성의료원의 체질 개선이 예상된다. 응급실을 진료공간과 분리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손보고, 음압병실을 확충하는 등 진료환경을 개선한다. 각종 감염질환에 대한 백신·치료제 연구와 개발도 지원한다. 삼성물산 키우기도 예상된다. 건설과 상사 부문의 기업간거래(B2B) 사업을 지속하고, 바이오 등 신성장동력을 확보해 합병 삼성물산을 그룹 내 중심축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배당 상향, 거버넌스위원회 신설, 사회공헌위원회 신설 등 주주친화 프로그램도 추진할 예정이다.

반면 이 부회장이 이제야말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사실상의 지주회사’를 출범시켰지만, 향후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등 지배구조 개편을 추가로 진행해야 한다. 이번 주총 과정에서 주주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경험한 만큼 삼성이 시장에서 인정받는 지배구조, 의사결정 구조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강조한 ‘신경영’ 수준의 그룹 개혁을 전망하기도 한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508호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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