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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영 프레인글로벌 대표 

업계 1위 기업 대표가 만년 과장으로 사는 이유 

글 김성숙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대한민국 1등 홍보대행사 프레인으로 시작하여 계열사 14개를 거느린 PCG그룹의 대표 여준영. 그의 경영 방식은 독특하다. 다른 업종 간의 협업을 의미하는 콜라보레이션, 즉 협업을 통한 경영이다. 그는 공식적인 직위를 버리고 독립군처럼 일한다.

▎여 대표는 직원들을 위해 카페를 열고 신발과 양복을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
코오롱 그룹의 홍보맨이던 여준영 대표는 IT업체 홍보 업무를 하다가 홍보대행사를 창업하게 된다. 벤처 붐이 일면서 여 대표에게 홍보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2000년에 회사를 차렸는데 5년 만에 직원 200명을 둔 국내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홈즈리포트 ‘2015 올해의 글로벌 PR’ 순위에서 세계 59위, 국내 1위에 올랐다(매출 기준). 현재 PCG그룹은 직원 300여 명, 매출 370억여 원 규모다. 굳이 숫자를 내세우지 않아도 ‘여준영’이라는 브랜드는 홍보대행사의 격을 높인 인물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유명세는 회사를 업계 1위로 끌어올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의미 있는 시도와 독특한 방식으로 사업을 이끌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대박 나는 사업은 없었지만, 가치를 발견하고 사람 남기는 성공을 만들어냈다. 이익도 많이 남겼지만 그는 배당 한 번 받지 않고, 월급 받는 직원처럼 일했다. 그렇게 번 돈은 투자를 하거나 저축했다. 알뜰한 경영 덕분에 지난해에는 땅값 비싼 삼성동에 새 사옥을 짓기 위해 땅을 사들였다. 여 대표는 직원들을 위해 카페를 열고 신발과 양복을 직접 만들었다. 최근에는 명품 기저귀 가방을 직원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직접 해봐야 확신 서는 지식 근로자


여 대표는 어느 해는 ‘퓨어아레나’ 카페의 주방에서 요리사로, 다른 해에는 배우 김무열의 매니저로, 또 어느 날은 영화 ‘50/50’의 수입 배급자로 일했다. 그뿐인가? 아티스트집단 스티키몬스터랩과 가구회사 매터앤드매터의 투자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계열사가 하나씩 더해졌다. 그의 예술적인 감각은 성공을 이끄는 요인 중 하나였다. 그가 일을 벌이는 방식은 꼼꼼하다. 모든 것을 공부하고 현장에서 일해 본 후에야 비로소 회사를 만드는 식이다.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지식근로자처럼 말이다.

2005년도부터 공식적인 직책을 내려놓고 독립군처럼 일하고 있는 여준영 대표를 프레인컨설팅그룹, PCG 본사가 있는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사무실은 자유로운 듯 섬세함이 더해져 전시회장 같기도 하고 선물가게 같기도 하다. 그의 블로그 ‘헌트’의 메인 화면에서 본 듯한 피규어와 지인들이 선물해준 운동화를 멋스럽게 쌓아놓기도 했다.

계열사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공식 직함 없이 좋아하는 일만 한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이 있을까? 그것도 직원 마주칠 일 없는 독립적인 사무실에서 실컷 영화를 보면서 말이다. “영화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영화 그만 보고 쉬고 싶을 정도다. 일이 되면 재미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영화 ‘4등’ 제작을 마치고 포스터 작업과 배급을 앞둔 여준영 대표의 첫마디다. 마감을 앞두고 극도로 예민해지는 보통 직장인처럼 그도 긴장된 표정이었다. 제작한 영화를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 시점이라서 그럴까? 홍보대행사는 매출이 느는 만큼 사람도 늘어야 하는 구조라 사업을 다각화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책임져야 할 직원이 많아질수록 책임감도 무거워, 지금도 이곳 사무실에서 날을 새며 일한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여준영 대표는 과장처럼 일한다.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대기업과 달리 작은 기업은 한 명의 직원이라도 허투루 가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지론이다. 유독 디테일을 강조하는 그는 모든 것을 직접 해본다. 돌다리를 두드리듯,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일은 추진한 적이 없다.

프레임 없는 실험, 프레인글로벌

“직원이 20명 정도였을 때는 저도 훌륭한 경영자였다. 약속도 잘 지키고, 교육도 자주 진행했다. 그런데 직원이 70명이 넘어서자 능력에 부치더라. 그래서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나는 앞으로 5년, 10년 동안 직원을 먹여 살릴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미래의 신사업 구상이라는 프로젝트를 스스로 부여한 여준영 대표. 여 대표는 10여 년을 부단히 실험했다. 모든 프로젝트는 지시하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카운터를 보거나, 요리하거나, 매니저로 촬영 현장을 지키며 밀고 나갔다. 지금도 그는 새 사옥 설계도를 그리는 중이다. 주문을 받아서 일하는 업에 익숙한 그인지라 ‘주문’을 잘 주는 일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쉽사리 주문을 내지 못하고 1년째 구상 중이다. 심지어는 땅을 살 때도 부동산을 일일이 돌아다녔고 사고 나니 지치더라고 털어놨다. 여 대표를 잘 아는 직원들은 그래서 “사옥 부지를 팔고 지어진 사옥으로 들어가자”고 말할 정도다. 실무 파악이 끝나고 확신이 섰을 때, 비로소 첫발을 뗀다.

여준영 대표의 사업 영역은 마케팅 영역을 뛰어넘어 제조와 투자 영역까지 미쳤다. 그렇다고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라며 ‘도전’과는 선을 그었다. “마케팅 기업이 좋은 제품을 만들거나, 투자하지 말란 법이 없다. 에이전시는 선택 당해야 하는 비극이 있다. 열흘 밤을 새워서 비딩(입찰)에 들어갔다가 떨어지면 그만이다. 직원들에게 남의 제품을 홍보하는 일 말고 우리의 일, 자기 일을 홍보하는 일을 주고 싶었다.” 미다스의 손처럼 여 대표를 거치면 잘되는 일이 많았다.

프레인의 고객은 내로라하는 한국 기업이다. 삼성과 SK는 물론 청와대도 있고 지난해 교황 방문 때 홍보 업무도 맡았다. 일을 맡으면 철저하게 공부하는 것이 프레인의 철칙이다. 지적 우위만이 갑과 동등해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마케팅을 마치고 나면 제품을 제조하거나 투자해도 될 정도로 역량이 쌓였고 다른 일이 저절로 들어왔다. 카페를 만들고, 영화를 제작하고, 뮤지컬을 제작하는 일이 그렇게 시작된 일이다.

콜라보레이션 경영의 시너지와 폐해


그는 “지금 고객을 만족시키면 영업은 필요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프로젝트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높으면 그것이 곧 10년을 보장할 것이란 생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인이 가능성 있는 배우라며 김무열 씨를 부탁해와 매니저를 시작했고, 영화 <최종병기 활> 촬영 현장을 지키며 홍보에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류승룡이 자신의 매니저가 돼달라고 부탁했고 이어 오상진이 들어와 연예기획사 프레인 TPC를 만들었다. 수입 없는 배우에게 월급을 주고 운영비를 회사가 부담하는 ‘에코시스템’도 도입했다. 그래서일까? 배우 옥주현도 합류하여 이제는 뮤지컬을 홍보하고,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홍보업무와 동떨어진 것이 없었기에 선순환이 일어났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선순환은 오늘의 프레인 글로벌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여준영의 실험은 철저히 콜라보레이션, 즉 협업을 통한 방식이다. 영화 <은교>의 정지우 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 <4등>도 그렇게 탄생했다. 영화 제작을 결정하기까지는 심사숙고했지만 제작은 오롯이 정지우 감독의 몫이었다. 올 연말에 무대에 올릴 <넥스트 투 노멀> 제작도 마찬가지다. 박용호 뮤지컬해븐 대표를 뮤지컬 부문 프로듀서로 영입하고, 프레인글로벌은 투자하고 마케팅을 지원하지만, 제작 과정은 박용호 PD가 총괄한다.

협업은 종종 여준영 대표의 일상을 소멸시킨다. 공식 직책은 없지만, 회사 업무를 살피다가 직접 나설 때가 있다. 여준영은 “여전히 배고프다”고 했다. 제한 입찰이 들어오면 그 중 30~40%만 들어가는데 그 판단은 실무 팀장이 내린다. 간혹 ‘이거 하나 가져오면 다른 프로젝트로 따라올 것 같은데 왜 안 들어가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 직접 비딩을 진행하겠다고 나섰다. “내가 직접 하겠다고 했는데 떨어지면 안 되니, 얼마나 열심히 하겠나? 내 삶은 없어지고 일에 치여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창업 후 5년 동안 여 대표는 경쟁 PT 무대에서 뛰었고 한 번도 지지 않았다. 그 신기록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준영의 협업 경영은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창출했다. 여 대표의 올해 화두 역시 ‘시너지’다. 프레인이 홍보하는 제품을 영화 소품으로 배치하는 PPL(product placement) 마케팅을 진행하는 식이다. 지난달에 회사 차원에서 ‘시너지 팀’을 만든 것도 같은 이유다. 홍보대행사로 시작하여 연예기획사와 영화제작까지 경험한 그가 올해는 ‘시너지’라는 주제로 다시 홍보대행사 프레인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그리고 그는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라”고. 15년 동안 경험한 현장 감각을 토대로 30분 안에 평을 주는 역할로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영화콘텐트협동조합 출범과 중국 진출이라는 숙제를 안고 여전히 사무실 불을 밝고 있는 여 대표. 물론,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음반 기획과 콘텐트 투자 건, 이준 해외 활동 관련 일본 출장 등 과장급이 처리하는 실무는 변함없이 산적해 있다. “돈이나 직급으로 밀어붙이는 리더십은 온전치 않다. 오로지 지식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뮤지컬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마니아보다 더 집요하게. 기자는 그의 집요함을 확인 차, 광화문에 있는 ‘퓨어아레나’ 카페에서 글을 쓰며 반나절을 보냈다. 그의 일과 삶이 녹아든 카페는 그의 말이 과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 글 김성숙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오상민 기자

201509호 (201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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