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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랑 크레베 S.T.듀퐁 CEO 

명품, 브랜드 값 아닌 제품 값 해야 

글 유부혁 기자·사진 신인섭 기자
알랑 크레베는 위기에 놓였던 프랑스 명품 브랜드 S.T.듀퐁을 구했다. 그는 최근 명품 업계의 고전은 과거 S.T.듀퐁과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알랑 크레베가 서울시 청담동에 위치한 S.T.듀퐁 메종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그는 넥타이가 답답하다며 늘 스카프를 착용한다.
봄바람이 거셌던 5월 3일, 서울시 청담 명품거리에서 프랑스 명품 브랜드 S.T.듀퐁(DUPONT) 알랑 크레베(Alain Crevet)를 만났다. 그는 1년에 한 번 이상 한국을 찾는다. 지역 시장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경기침체와 전통 명품에 식상한 고객 이탈로 명품 업계가 고전하고 있지만 S.T.듀퐁은 한국에서 매년 15% 이상 성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는 전년대비 매출이 20% 늘었다. 듀퐁 국내 사업을 총괄하는 S.J.듀코 관계자는 “S.T.듀퐁에게 한국은 전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시장”이라고 말했다.

약속된 시간을 20분 넘겨 매장 안으로 여유 있는 발걸음과 표정의 사내가 기타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들어섰다. 인터뷰를 마치고 어디선가 작은 연주를 하기로 했다며 들뜬 표정이었다. S.J.듀코 관계자는 “한국의 놀거리, 먹거리 문화를 좋아해 일부러 방한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알랑 크레베 사장이 기타 연주에 관해 더 이야기하려 했지만 예정된 시간보다 늦은 탓에 곧바로 질문했다.

무분별한 카테고리 확장이 명품 위기 자초


S.T.듀퐁하면 라이터가 맨 처음 연상된다. 최근 한국뿐 아니라 담배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유해성을 알리는 캠페인도 강화되고 있다. S.T.듀퐁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이 있나?

전 세계 흡연 인구는 10억 명 이상이다. 한 해 S.T.듀퐁 라이터 판매량은 10만 개 정도로 0.01%가 고객이다.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라이터 판매는 지난해 S.T.듀퐁이 기록한 10%성장의 절반을 차지했다. 오히려 S.T.듀퐁은 세상에서 가장 얇은 라이터를 출시했다. (S.T.듀퐁은 지난해 12월, 7 두께의 라이터를 선보였다. S.T.듀퐁측은 “구매고객 60%가 여성”이라면서 “흡연자 뿐 아니라 향초, 장식용으로도 인기”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함께 명품업계도 어려운 상황이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겠지만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 외엔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 수익성이 나빠졌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

자초한 결과다. 많은 명품 브랜드가 ‘우린 명품’이라고 주장하는데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브랜드 A사는 5층 매장에 스파, 커피숍, 호텔 레스토랑으로 꾸몄더라. 명품과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나. 단지 더 많이 팔고 사업을 확장하려는 것뿐이다. 카테고리 확장도 명품이 할 일이 아니다. 프랑스 브랜드 L사는 가방 봉제를 손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기준이라면 대부분의 가방 브랜드가 명품이다. 그 브랜드는 중국 시장에서 확장 정책을 펴다 일부 매장을 철수하지 않았나.

명품이 할 일은 무엇인가?

파는 것보다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무엇이 우선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보여줄게 있다. (그가 주머니에서 펜과 라이터를 꺼냈다. 라이터불로 펜 몸통을 10여 초 달궜다. 아무 변화가 없었다. 몸통을 바로 손으로 잡았지만 동에 특수 재질을 입혀 뜨겁지 않았다.) 이 펜 하나에 동 한동이 필요하다. 명품이라고 주장하는 펜은 사출 플라스틱에 그들의 브랜드를 붙여 파는 제품이다. 우린 그들보다 기업 규모가 훨씬 작지만 이렇게 만들 수 있다. 브랜드 값하지 말고 제품값 해야 한다. 명품의 브랜드 가치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의 명품 브랜드가 하는 일은) 쌓은 걸 허물고 있다. 지금의 명품 브랜드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살펴보면 과거 S.T.듀퐁의 실수와 비슷한 면이 많다.

S.T.듀퐁도 위기를 겪은 걸로 안다.

2000년 초반 S.T.듀퐁 분위기는 좋았다. S.T.듀퐁은 (시장 대응이) 빨랐고 (브랜드 규모도) 컸다. 상품도 다양했다. ‘기업’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경영체질은 약해졌다. 2007년 CEO로 와서 보니 명품이 해선 안될 행동을 했더라. 기업 로고도 쉽게 바꾸고 의류도 만들고 심지어 시계도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성공한 제품은 없었다. 2008년 1월엔 프랑스 파베지에 위치한 주요 공장이 화재로 전소됐다. S.T.듀퐁 역사상 가장 큰 위기였다. 펜과 라이터, 레더 제품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없앴다. 지난해 2000년 초반 실적을 회복했다. (그는 자세한 기업 규모나 실적은 공개하지 않았다.)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상품에 집중


최근에는 명품들의 협업도 이어지고 있다. S.T.듀퐁도 마블과 협업 제품을 내놓았는데?(S.T.듀퐁은 최근 마블의 영웅 캐릭터 아이언맨과 협업해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한정품 컬렉션을 발표했다.)

S.T.듀퐁은 과거 마릴린 먼로, 오드리 햅번을 시작으로 유명인과 계속해서 협업을 진행해 왔다.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상품’이란 기업 슬로건을 지키기 위해서다.

결국 팔아야 하지 않나. 명품 업계는 최근 옴니채널(온-오프라인 판매)을 강화하고 있다.

그렇다. S.T.듀퐁을 어떻게 팔 지 고민하고 있다. 사실 온라인 판매에 대한 전략 수립은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당분간 마케팅 예산 절반을 온라인에 투자할 생각이다. 우선 기존의 웹사이트를 개편할 예정인데 어떤 콘텐트를 채울 지 고민 중이다.

올해는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를 맺은 지 130년이 되는 해다. S.T.듀퐁과 한국의 인연은?

1993년에 한국에 진출했다. 루이비통은 1년 늦은 1994년에 진출했다. 비교적 안정적인 사업을 해왔다. S.J.듀코(S.T.듀퐁 한국 공식 수입원) 덕분이다.

이곳(S.T.듀퐁 청담 메종)도 우리의 역량을 결집해 지은 곳으로 글로벌 매장의 기준점이다. 지난해 11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했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넨 선물이 S.T.듀퐁 만년필이다.

- 글 유부혁 기자·사진 신인섭 기자

201606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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