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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人폴리텍’ 육성하는 이우영 폴리텍대학 이사장 

국제시장 ‘덕수’에서 글로벌시장 프론티어까지 

김기찬 선임기자
48년 역사의 한국폴리텍대학을 통해 그동안 수많은 국제시장의 ‘덕수’가 배출돼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이름으로 산업현장을 일궜다. 신기술, 신개념으로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 폴리텍대학 개조에 앞장서고 있는 이우영 폴리텍대학 이사장을 만났다.

▎‘세계에 통하는 인성을 갖춘 기술인재를 육성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폴리텍대학 개조에 앞장서고 있는 이우영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한국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을 이끈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를 복구하는 데 족히 100년은 걸릴 것이다.” 40년 가까운 일제의 수탈에 피폐해진 한반도에 3년에 걸친 전쟁은 국토를 아예 초토화했다. 자원도 자본도 없는 한국은 회생 불가능해 보였다.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연명하는 국가 정도의 대열에 속했다.

근대화의 세포가 된 ‘산업영웅’들의 산실

한데 한국은 그저 먹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판에 외국의 차관으로 직업훈련원을 지었다. 48년 전인 1968년이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69달러에 불과했다. 전국 각지에 지어진 이 직업훈련원이 한국폴리텍대학의 전신이다. 그동안 수많은 국제시장의 ‘덕수’가 배출돼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이름으로 산업현장을 일궜다. 이들은 현대중공업, 포항제철(현 포스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삼성·LG, 현대자동차, 대학으로 근대화의 세포처럼 퍼져나갔다. 68년에 비해 170배 불어난 2만7600 달러(2015년 기준)의 대한민국을 만든 초석은 이들에 의해 다져졌다. 지금도 당시 ‘덕수’는 학교와 기업에서 신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우영 폴리텍대학 이사장은 제1기 직업훈련원 수료생을 초청해 ‘산업영웅’이라 칭했다. 전쟁영웅이 위기의 국가를 지켰다면, 산업영웅은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했다. 행사 이름 자체를 ‘폴리텍 산업영웅 토크 콘서트’라 붙인 이유다. 이기권 고용 노동부장관도 참석해 “산업 영웅 분들은 주경야독으로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며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룰 미래 영웅을 배출하기 위한 희망의 사다리를 놓겠다”고 다짐했다.

이우영 이사장은 콘서트 때의 감동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치열하게 살며 이 나라를 일군 분들인데도 지금까지 우리가 제대로 대접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대접받으려 하지 않았다. 행사장에서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를 회고하면서 재학생에게 꿈을 심어주려 애썼다. 그들의 인생에서 ‘희생’은 ‘희망’과 동일한 단어였다. 우리나라 교육 기관이 나아갈 방향이 그 정신에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폴리텍대학을 ‘참人폴리텍(Charming Polytechnic)’이라 부른다.

‘참人폴리텍’의 뜻이 뭔가.

지식과 기술·인성을 겸비한 참다운 스승이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참다운 기술 인재를 길러낸다는 뜻이다. 참다운 기술인재 육성을 위해 혁고정신(革故鼎新, 옛 것을 뜯어고치고 솥을 새 것으로 바꾼다)의 신념으로 폴리텍 고유의 미래지향적 조직문화를 창달하자는 문화 밸류 업(Value Up) 운동이다.

오늘의 폴리텍 대학을 있게 한 직업훈련원의 정신을 바꾸겠다는 건가.

아니다. 직업훈련원에서 시작한 폴리텍대학은 여전히 직업훈련원의 ‘기수’ 정신을 잇고 있고, 이어가야 한다. 요즘에서야 주목받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는 직업 훈련원이 생기면서 이미 태동하고, 훈련원을 통해 정착된 개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술보다는 책상머리에서 케케묵은 이론과 학벌, 스펙에 몰두하면서 잊혀져 갔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도 직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회사는 회사대로 업무에 투입하기 위해 재교육을 하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훈련원이 인재를 배출하던 시절엔 안 그랬다. 수료생은 곧바로 생산현장의 핵심 인력으로 활약했다. 지금의 대기업이 대부분 직업훈련원생 덕택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신을 변화된 글로벌 환경에 맞춰 발전시키겠다는 거다. 적자생존(適者生存)에 더해 속자생존(速者生存)의 개념을 얹는 셈이다. 환경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 못지 않게 신기술, 신개념으로 미래를 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이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대학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사양산업과 관련된 학과는 과감히 없애나간다. 이를 위해 학과심의위원회를 꾸리고 2년마다 심의한다. 독일과 같은 선진국 대학에선 학과 통폐합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한국에선 교수의 자리다툼과 동문의 성화 등으로 학과 통폐합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걸 폴리텍대학이 시스템화했다. 또 성과가 낮은 교수는 승진을 제한하고 재교육을 실시한다. 퇴출 프로그램도 고려 중이다. 외부의 기술 전문인력을 교수로 발탁한다. 학과 정원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선제적 구조조정과 미래형 먹거리 창출을 위해 고심하는 일반 기업의 경영·인사전략과 다를 게 없다.

미래형 먹거리창출에 고심


▎지난해 10월 열린 ‘폴리텍 산업 영웅 토크 콘서트’에서 제1기 직업훈련원 수료생인 ‘ 산 업영웅’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를 회고하면서 재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려 애썼다.
폴리텍대학의 개혁 프로그램은 상당히 획기적이다. 반발도 만만찮을 텐데.

시장은 저숙련에서 고숙련, 신기술 쪽으로 움직이는데 예전 방식의 인력 공급 시스템을 유지해선 곤란하다. 고숙련 기술 인력을 제때 산업현장에 공급하기 위해 대학 교육이 산업과 유기적인 생물체처럼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개혁 과정에 산통(産痛)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소통하고 설득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 다원화·정보화·개방화된 시대에 적합한 창의·융합 인재 양성에 동의하지 않는 교직원은 없다. 원칙과 방향이 맞으면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어렵지 않게 찾아지는 법이다.

폴리텍대학도 베이비부머 세대 교직원의 대거 퇴직과 같은 인사상 공백이 우려되는 것으로 안다.

올해 30명을 시작으로 2018년부터는 약 10년 동안 매년 60명 이상의 교원이 퇴직한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10년 동안 정원의 56.8%인 706명이 나간다. 학과 개편과 맞물려 교원 수급이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최근 3년간 100명 가량의 교수가 새로 들어왔다. 특성화, 전문화, 고급화에 중점을 두고 현장 중심형 전문가를 채용하려 한다. 필요하면 산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인재를 학장으로 초빙할 수도 있다. 특히 폴리텍대학은 지역별 산업과 맞물려 있는 점을 감안해 지역 산업체와의 연계와 산·학 인적교류를 위한 지역의 우수인재를 많이 채용할 방침이다.

이우영 이사장이 정조준하고 있는 곳은 글로벌 시장이다. 소위 말하는 ‘통할 수 있는 인재’를 공급하는 대학이다. 그래서 국내 기업에만 졸업생을 보내려 하지 않는다. 외국 기업, 대학과의 협력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을 ‘폴리텍 포스트’로 전세계 곳곳의 기술 오피니언 리더로 삼아 깃발을 꽂겠다는 것이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삼성광통신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외쳤던 ‘장보고 프로젝트’다. 한 명이 길목을 틀어쥐고 전체를 호령하는 일인 세계, 만인 대한민국의 세상이다. 한 명이 먹여 살리는 세상에 영점 조준을 하는 것이다.

선진국식 도제학교 P-TECH 도입

그는 이런 구상의 롤 모델로 호주의 TAFE(Technical And Further Education)를 꼽았다. TAFE는 호주로 이민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문을 두드리는 곳이다. 영주권을 얻으려면 이곳을 거쳐야 한다는 게 호주로 이민하려는 한국인에게도 공식화돼 있을 정도로 알려진 교육기관이다. 폴리텍대학처럼 시드니, 브리즈번, 퍼스 등 호주 곳곳에 설립돼 있다. 이곳에서 기술을 배우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을 느낄 일이 없다고 한다. 기업이 원하는 걸 속속들이 파헤쳐 그 속살을 교육하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이든 TAFE 출신을 믿고 쓰는 데는 이런 노력이 있어서다. 이 학교의 명성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을 졸업했다고 하면, 이 이사장의 구상처럼 ‘대체로 통한다’는 얘기다. 속된 말로 글로벌 시장에 먹히는 대학이다.

TAFE를 따라 가려면 시스템을 확 바꿔야 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산학일체형이 필요하다. 그게 장인시스템이고, 도제학교다. 학교와 기업을 오가고, 기업과 시장을 드나드는 과정을 활성화해야 한다. ‘P-TECH(Pathway in Technology Early College High School)’ 5년 과정을 도입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내년부터는 전면 운영하려 한다. 고교 3년을 거치고 취업한 사람을 대상으로 2년간의 심화기술 과정을 제공한다. 이론 중심의 대학 과정을 실습 중심의 대학 풀 패키지로 변형한 형태다. 현대판 장인교실이고, 선진국식 도제학교다.

현실적으로 회사에 다니면서, 그것도 신입사원이 시간을 내서 그런 교육을 쉽게 받을 수 있을까.

3A 전략을 구사할 생각이다. 누구나(Anyone), 회사 안이 됐든 학교가 됐든 어디에서든(Anywhere), 야간이든 주말이든 주중이든 언제든지(Anywhen)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정비 중이다.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기업이 참여해서 짜도록 할 계획이다. 바로 써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우영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불현듯 코이(Koi)가 떠올랐다. 물고기다. 어항에 넣어두면 기껏해야 엄지 손가락 크기 정도 밖에 안 자란다. 연못에 넣으면 마법처럼 세 배 정도 커진다. 강에 방류하면 1m 넘게 자란다.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를 조절하는 물고기다. 틀의 크기에 따라 그 세계를 장악할 정도의 크기로 자신을 변화시킨다. 세계를 무대로 하면 그만큼 틀을 넓혀야 한다. 인재는 그 틀의 넓이에 따라 도전정신의 강도가 달라진다. 휘어잡을 무대가 광활해지면 활보하는 재미도 남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인간을 환경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 김기찬 선임기자

이우영 이사장은… 흔히 말하는 공돌이다.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코리아텍(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로 임용된 뒤 산학협력 사업을 도맡았다. 이때 기업과 소통하면서 “공돌이의 인성은 순수하다”고 느꼈단다. 그게 ‘세계에 통하는 인성을 갖춘 기술인재를 육성한다’는 목표를 정한 그의 폴리텍대학 개조론에 맞는지도 모른다. 2014년 10월 폴리텍대학 이사장으로 취임해 전국 34개 캠퍼스와 3개 부속기관을 이끌고 있다.

201607호 (20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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