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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모젤 와인 

 

글·사진 정수지 와인21닷컴 기자
모젤 리슬링은 한번 반하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섬세하고 청량한 향에 음식과 즐기기 좋은 산미를 지녔고, 단맛이 없는 와인부터 아주 달콤한 와인까지 만들어져 식사 전반에 걸쳐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포도원이 강을 끼고 있으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온화한 기후와 강물에 반사된 빛으로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다.
모젤 강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룩셈부르크를 지나 코블렌쯔까지 545km를 흐른다.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트리어(Trier)를 중심으로 모젤(Mosel)-자르(Saar)- 루버(Ruwer)강 유역에 포도원이 자리하며, 2007년부터 이를 줄여 모젤이라고 부른다. 모젤은 화산 활동이 활발했던 데본기에 형성된 점판암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고 리슬링 품종을 주로 재배한다. 독일은 전세계 리슬링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독보적인 리슬링 강국이며, 수출되는 독일 와인의 20%가 모젤에서 생산된다. 총 80개국에 수출되는 모젤 와인의 22.7%는 유럽, 나머지 중 절반은 미국으로 수출되며, 노르웨이, 캐나다, 중국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포도원이 강을 끼고 있으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온화한 기후와 강물에 반사된 빛으로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다. 모젤의 풍경은 강을 낀 포도원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히며, 수확기인 9월에서 11월에 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모젤의 중심 도시인 트리어는 기원전 17년에 세워진 로마 제국 수도 중 하나로 6만 명이 살았다. 당시 관료들은 와인이 물보다 위생적이며, 영양분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대중과 군인에게 와인을 배급했다. 로마제국 멸망 후 중세엔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건너온 수도회를 통해 와인 양조 기술이 전해졌고 모젤 와인 품질은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도 와이너리나 포도원 이름에서 수도회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8세기에는 리슬링 품종의 재발견과 품질 향상을 위한 연구 및 포도원 구분이 이뤄졌다. 또한 대주교였던 클레멘스 벤세스라우스가 리슬링 재배를 적극 권장하면서 모젤이 세계 최고 리슬링 생산지가 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1900년경 절정기를 맞은 모젤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유럽 포도원을 파괴한 필록세라 대재앙, 1960~70년대 대량생산에 따른 품질 저하로 위상이 떨어졌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젊은 세대가 이끄는 리슬링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이전의 자리를 되찾았다. 와인 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영국의 와인 정보 사이트 와인서처(www.wine-searcher.com)가 2016년 8월 1일 발표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 50가지’엔 모젤 와인 5종이 올라있다. 특히 모젤 에곤 뮬러 샤츠호프베르거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는 750ml 한 병당 평균 7923달러를 기록하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화이트 와인에 올랐다.

‘가장 비싼 와인 50’중 5종이 모젤와인


▎중부 모젤의 JJ프륌와인. 프륌의 와인은 모젤 와인이 지니는 ‘순수성’의 교과서로 불리며, 와인 최고 전문가 자격인 마스터 오브 와인 과정의 필수 시음 와인으로 쓰인다.
리슬링은 미네랄, 복숭아, 사과, 허브, 스파이스 등 섬세한 향과 상큼한 산미를 지니고 맛과 품질이 탁월하다. 이에 농부는 최고 경사 70도에 달하는 가파른 포도원을 밧줄로 몸을 묶은 채 수백 번 오르내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리슬링의 백미인 미네랄 풍미는 배수력이 좋은 점판암 토양에서 포도나무가 물을 얻기 위해 깊이 뿌리를 내리며 얻게 된다. 이 점판암은 미네랄 풍미 외에 낮에 쪼인 햇빛을 저장했다 밤에 포도나무 뿌리에 열을 주어 포도가 당분과 풍미 농축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모젤 리슬링은 대부분 알코올 도수가 10% 내외로 낮은 편이라 와인만으로 즐기기에 부담이 없어 좋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 특히 매콤한 아시아 음식과도 잘 맞는 다재다능한 와인이다.

모젤은 쉥겐에서 트리어에 이르는 상부 모젤, 트리어에서 브리델에 이르는 중부 모젤, 코블렌쯔에서 젤에 이르는 테라쎈모젤로 나뉘며, 여기에 자르와 루버를 포함해 총 5개 지역으로 나뉜다. 상부 모젤은 상대적으로 넓고 경사가 완만한 포도원을 이루고 있으며, 석회암과 백운석 토양이 주를 이뤄 프랑스 상파뉴 지역에 비교된다. 이 지역은 매우 오래된 품종인 엘플링을 주로 재배하며, 높은 산미를 지니는 이 품종으로 독일의 스파클링 와인 젝트(Sekt)를 만든다. 1983년 당시 모젤 와인협회 아돌프 슈미트 회장이 잊혀졌던 독일 고급 젝트를 되살리기 위해 32명의 와인생산자들과 함께 설립한 자르-모젤 빈쩌젝트(SMW)가 유명하다. 리슬링 혹은 엘플링으로 전통 방식을 통해 만드는 빈쩌 젝트는 기본급도 최소 3년 이상 숙성(독일 법적 기준은 최소 9개월 이상)되며 복합성과 고운 기포를 지니게 된다. 10년 이상 숙성하는 리저브 젝트의 경우엔 병입한 날짜를 표기해 소비자들이 더 맛있는 시점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가격도 12~50 유로로 접근성이 높다.

최대 규모 포도원은 중부 모젤 마르쿠스 몰리터


▎아돌프 슈미트 모젤 와인협회 회장. 독일 고급 젝트를 되살리기 위해 32명의 와인생산자들과 함께 자르-모젤 빈쩌젝트(SMW)를 설립했다.
중부 모젤은 모젤 전체 생산량의 50%를 차지하며, 점판암 토양의 폭이 좁고 가파른 언덕에 포도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 리슬링은 온화한 기후와 강물에 비친 햇빛을 충분히 받은 포도 덕분에 우아하고 섬세하여 종종 ‘어머니의 품’에 비유된다. 모젤에서 가족 소유 포도원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마르쿠스 몰리터(Markus Molitor)를 빼놓을 수 없다. 8대손인 마르쿠스는 1984년 20세 때 2헥타르로 시작한 포도원을 현재 30여 년 만에 80헥타르로 확장시킨 인물이다. 최근엔 모젤에서 최고로 치는 베른카스텔러 닥터 포도원의 소작권을 얻어 또 한번 시장을 놀라게 했다. 긴 역사만큼이나 보유한 와인리스트도 어마어마하다. 마르쿠스 몰리터 와인은 단맛이 없는 경우 병목을 흰색, 약간의 단맛이 있는 경우 녹색, 달콤한 와인의 경우 금색으로 표시하여 입맛에 맞는 와인을 쉽게 고를 수 있다. 마르쿠스 몰리터의 와인은 목넘김이 좋으며,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특징이다.

다음으로 파울린스호프도 아주 훌륭하다. 936년 처음으로 와인 생산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긴 역사를 지닌 집으로 1967년부터 현재 소유주인 윙링 가문이 전통을 있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협회인 베른카스텔러 링 소속이자, 브라우네베르거 마을 캄머 포도원을 독점하고 있다. 파울린스호프 와인들은 잘 익은 복숭아와 감귤류 향이 두드러지며, 스파이시함과 짭짤함을 주는 미네랄 풍미 및 조화로운 산미를 지녔다. 이런 와인들은 바로 마시기에도 좋고, 길게는 수십 년에 이르는 장기 숙성 잠재력을 갖는다. 가격 접근성이 탁월한 집으로 최고 포도원의 좋은 빈티지 리슬링을 고른다 해도 전혀 부담 없는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워낙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 보니 방문 자체도 어려운 집이 있는데 바로 요한 요젭 프륌이다. 1156년 벨렌에 자리잡은 프륌 가문은 모젤 강을 오가는 다리를 세울 정도로 막강한 재력을 지니고 있다. 1727년 와인 생산을 시작했는데, 장남인 요한 요젭 프륌이 현재 프륌 가문의 위상을 가장 높게 이어오고 있다. 세계적인 미식 평가지 『고&미요』의 최고 평가인 별 5개를 받고 있으며, 생산량의 80%를 수출하고 있다. 프륌의 와인은 모젤 와인이 지니는 ‘순수성’의 교과서로 불리며, 와인 최고 전문가 자격인 마스터 오브 와인 과정의 필수 시음 와인으로 쓰인다. 와인은 포도 껍질에 사는 자연 효모를 이용해 천천히 발효하기 때문에 고유한 향을 지니는 데 사람들은 이를 프륌의 향으로 부른다. 잘 익은 복숭아, 레몬 등의 풍미가 농축되어 있고 깔끔하며, 약간의 단맛과 리슬링 고유의 산미가 조화를 이뤄 와인이 입에 착착 감긴다. 단맛이 살짝 있고 질감이 부드러우며 와인을 삼킨 뒤에도 상큼함이 오래가는 정말 좋은 와인이다.

테라쎈모젤은 다양한 점판암, 폭이 좁은 테라스 포도원에 살짝 온도가 낮아 다소 남성적인 리슬링이 난다. 불거진 점판암 덩어리들, 가파른 경사, 겨우 발을 디딜 수 있는 테라스는 몸을 세우기도 힘들다. 물어보니 보르도 포도원에서 와인 생산에 800시간 노동이 필요하다면, 테라쎈모젤에서는 1500시간이 든다고 한다. 이곳엔 모젤의 반항아로 불리는 라인하르트 뢰벤슈타인의 하이만-뢰벤슈타인이 있다. 와인의 획일화에 반대하며 테루아의 개념 및 독일 와인의 지향점을 제시한 책을 썼으며, 자신의 와이너리에서 이를 실천해 보여주고 있다. 1980년 세워진 와이너리는 단숨에 독일 대표 와이너리로 성장했다. 모젤 강의 물줄기를 연결해 지하 셀러의 습도를 유지하고, 지하 저장고에서 숙성 중인 와인에게는 음악을 들려주며 천체의 움직임을 고려한 와이너리를 지었다. 하이만- 뢰벤슈타인의 와인은 정신이 확 들 정도로 강렬한 미네랄과 산미에 단단한 골격과 넘치는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라임, 자몽 등의 시트러스, 간간히 멜론과 청포도 자체의 향을 느낄 수 있었으며 산미가 워낙 깔끔해 작은 생선을 통째로 튀긴 요리나 숯불에 구운 생선이 저절로 떠올랐다.

자르는 포도원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남향 밭에 지역 평균 기온이 낮아 일반 모젤 와인에 비해 산미가 다소 높고, 따뜻한 해엔 풍미와 산미가 조화를 이루는 상큼한 와인이 나기에 이곳 리슬링은 ‘예쁜 딸’에 비유된다. 찔리켄은 1724년부터 와인을 생산해온 자르 대표 와이너리이자 독일 프리미엄 와이너리 협회 창단 멤버이다. 찔리켄 와인은 은은한 꽃 향과 열대 과실 향이 풍부하며 전반적으로 화사한 느낌을 주는데, 특히 라우쉬 포도원 와인은 미네랄 특성이 강하면서 우아하다. 찔리켄의 지하셀러는 지하 3층 구조로 습도가 거의 100%에 가까우며 깨끗한 공기를 지녀 이상적인 숙성 환경을 지닌다.

지역특산물로 만든 음식들과의 마리아주


▎2. 하이만-뢰벤슈타인의 와인은 모젤 강의 물줄기를 연결해 지하 셀러의 습도를 유지한다. / 3. 피퍼링은 굽거나 볶아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갈색 빛이 도는 소스로 만드는데 모젤 리슬링과 아주 잘 어울린다. 사진은 피퍼링이 들어간 전통요리.
모젤에선 지역특산물로 만든 음식들을 꼭 맛보길 추천한다. 담백하게 구운 흰살 생선 요리나 다양한 훈제 생선이 맛이 좋다. 6월에서 11월 사이 즐기는 버섯 피퍼링은 주황빛을 띠며 느타리 버섯과 닮았고 맛이 고소하며, 질감이 쫄깃하다. 피퍼링은 굽거나 볶아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갈색 빛이 도는 소스로 만드는데 이 경우 모젤 리슬링과 아주 잘 어울린다. 메뉴를 보다 보면, 아이펠(Eifel)이라는 표시를 볼 수 있는데, 인근 산악 지역 식재료로 만든 음식임을 의미한다. 아이펠이 붙으면 조금 비싸지만 그만큼 맛이 탁월하니 강력 추천한다. 아이펠 치즈의 경우, 산속 동굴에서 숙성시켜 질감이 촉촉하고 고소함이 풍부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와인을 사오는 경우, 트리어 중심에 있는 와인 가게를 이용하면 된다. 최근 빈티지로는 온화한 기후를 지녀 둥글고 농축된 2015년, 산미와 당미가 함께 높아 놀라운 장기 숙성력을 지니는 2010년을 추천한다.

- 글·사진 정수지 와인21닷컴 기자

201609호 (201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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