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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 (1)]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인간은 졌지만, 이세돌은 이겼다 

파워셀러브리티에 선정됐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인류의 대표’로 주목을 끌면서 두뇌 스포츠 분야에서는 이례적으로 포브스코리아 선정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
지난해 3월 ‘인간 대 컴퓨터’의 대결이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다.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국이었다. 앞서 알파고는 유럽 바둑 챔피언이었던 중국계 프로기사 판후이에게 5전 전승을 거뒀다. 전세계는 ‘인류 대표’인 이세돌 9단에 기대를 걸었다. 딥러닝을 통해 ‘실제 대국에서 사람을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알파고를 상대로 이 9단은 다섯 번의 대국을 치렀다. 결과는 1승 4패. 알파고의 ‘승리’였다.

이 9단은 패자가 됐지만 오히려 알파고와의 승부 이후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 중 한명으로 부상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세돌 신드롬’도 나타났다. 주요 서점에서는 그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이 9단의 인기를 입증하듯 그를 연상시키는 인터넷 신조어와 애칭도 생겨났다. 그의 이름에 영어로 ‘신’을 뜻하는 ‘갓(God)’을 붙인 ‘갓세돌’이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류를 로봇과 맞서 싸우는 인간 혁명군 리더 ‘존 코너’의 이름에 이 9단의 이름을 합성시킨 ‘돌코너’라는 별명이 탄생했다. 알파고와의 대국 후 이 9단은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 이세돌의 패배”라고 했지만, 사실상 인간은 지고 이세돌은 이긴 셈이다.

당시 이 9단의 인기는 인터넷 포털 검색어 순위에서도 확인됐다. 그가 알파고에 맞서 첫 승을 올린 3월 13일에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바둑계 인물로는 이례적으로 그의 이름 석 자가 올랐다. 실시간 검색어뿐만 아니라 여성 그룹의 검색어 순위에도 이 9단의 이름이 올라갔다. 바둑에 관심이 적은 젊은 여성층을 포함해 전 계층 사이에서 인지도를 쌓은 셈이다. 이후에도 꾸준한 관심을 받아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2016년 IT 주요 검색에서 ‘이세돌 알파고’가 1위를 차지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연말 이슈 검색어 순위에서도 5위를 기록했다.

알파고 대국 후 몸값 급등

인지도를 바탕으로 이 9단의 광고 모델로서 브랜드 가치도 치솟았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보여준 끈기와 극적인 1승,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은 덕이다. 김상훈 인하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이세돌이 광고 모델로 나오는 상품이 크게 주목받을 수 있다”며 “향후 몇 년간 적어도 광고시장에서 가치는 수십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 9단은 보험사·제약사·은행·건설사 등 10곳이 넘는 광고주로부터 모델 계약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농심 ‘신라면’과 ‘백산수’, 유한양행의 비타민제 ‘메가트루 포커스’ 광고 모델로 출연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이하 코바코)의 공익 광고에는 무료로 출연했다. 이 9단의 광고 계약을 관리하고 있는 손수호 변호사는 출연한 TV쇼에서 “광고주들은 ‘무조건 이세돌을 잡아라’는 입장이고, 이 9단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보니 이세돌 9단이 원하는 대로 계약서가 수정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출연한 광고의 효과도 나쁘지 않다. 유한양행에 따르면 메가트루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62억4800만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29억4500만원)보다 112.2% 증가했다. 지난해 5월부터 이 9단을 광고모델로 발탁한 효과인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AI를 상대로 치열한 두뇌싸움을 펼친 이 9단의 명석한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학생·주부 수요를 중심으로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광고는 지난 연말 한국광고홍보학회로부터 ‘2016 올해의 광고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서 알파고와의 대국 당시 ‘슬쩍’ 들어간 광고가 큰 효과를 보기도 했다. 이 9단은 대국 기간에 LG전자의 스마트폰 G5 로고가 새겨진 의상을 입고 출전했다. 스마트워치 ‘LG G 워치 어베인 세컨드 에디션’도 손목에 착용하고 대국에 나섰다. 이후 대국 장면이 TV를 통해 반복되면서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노출됐는데, 알듯 모를 듯 보이는 로고 탓에 시청자의 관심을 더 끈 것이다. 당시 광고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이로 인해 수백억원의 홍보 효과를 얻었다고 추산했다.

지난해 수입 약 20억원 추정

그렇다면 이 9단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이 9단은 2016년 바둑계 연간 상금왕에 올랐다. 한 해 알파고전 대국료로만 2억여원을 챙겼고, 국내 3관왕에 오르는 등 대국료와 승리수당, 상금으로 총 8억원을 받았다. 이 밖에 이 9단은 유한양행의 ‘메가트루 포커스’ 광고 모델료 3억원을 포함, 농심 ‘신라면’과 ‘백산수’ 광고 모델료 1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상금과 모델료 등을 합치면 이 9단의 지난해 수입은 20억원에 가까울 것으로 추산된다.

이 9단은 단일 연도 대국료 수입 국내 최고기록(14억1000만원) 보유자이기도 하다. 2014년 수립한 기록이다. 당시 구리(古力)와 10번기서만 8억9000만원을 벌었다. 95년 프로에 데뷔한 이세돌은 총 49회(국제 대회 18회 포함) 우승하면서 통산 1223승(514패 3무)을 기록 중이다. 누적 상금 순위로도 1위인 이창호 9단을 바짝 추격 중이다. 이세돌 9단의 누적 수입은 92억1200만원으로 이창호 9단과의 차이는 8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향후 성적에 따라 수년 내 역전도 가능한 범위다.

이 9단은 여섯 살 때 처음 바둑을 접했다. 아마 5단의 실력자였던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프로기사의 길로 이끌었다. 아홉 살 때 권갑용 사범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바둑을 배웠고, 열세 살 때 프로기사로 입단했다. 2002년 제15회 후지쓰배에서 우승하며 세계 타이틀 소유자가 됐다. 2003년 LG배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을 이기고 우승한 후 10여 년간 국내외 대회를 휩쓸며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바둑 국가대표로 발탁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5월까지 27개월 연속 한국 바둑 랭킹 1위를 달리던 그는 그해 6월 박정환 9단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현재 3위에 올라 있다.

- 파워셀러브리티에 선정됐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201703호 (20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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