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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럭셔리 산업의 리더들(3) 박성희 롱샴코리아 대표 

브랜드 위상 끌어올린 ‘긍정과 소통’의 리더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국내 명품 시장을 이끌고 있는 여성파워를 만났다. 프랑스 국민 브랜드 롱샴의 한국 내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성희 롱샴코리아 대표다. 명품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24주년을 맞는 그에게 한국의 명품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롱샴코리아 본사에서 박성희 대표가 올가을 신상품 ‘마드모아젤 롱샴’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48년 설립된 롱샴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담배 파이프를 덮는 가죽 생산으로 시작해 명품 가방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주인 장 카세그랑에 이어 3대째 가족경영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전세계에 300개의 단독 부티크를 운영하고 있으며, 30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5억5300만 유로(약 7169억원)다.

파리지엔의 감성을 담아낸 제품으로 유명한 롱샴은 해마다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브랜드 최초의 여성용 가방 ‘LM 컬렉션’, 브랜드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르 플리아주’, 건축물에서 모티브를 따온 ‘롱샴 3D 라인’, 1970년대 히피 무드를 담아낸 ‘페넬로프 라인’, 1998년 롱샴의 첫 부티크 오픈 장소를 기념하는 ‘파리 프리미어’, 명품숍과 예술품 가게들이 즐비한 파리 마들렌 지구에서 영감을 얻은 ‘롱샴 마들렌’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고객들에게 집중하던 1940~50년대 럭셔리 브랜드들과는 달리 롱샴은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50년대 일본 진출을 시작으로 2012년 홍콩 캔톤로드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매장을 열었고, 2013년에는 영국 런던의 유명한 쇼핑 거리에 ‘라 메종 인 모션’이라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였다. 2015년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가븐 스트리트에 단독 매장을 열며 글로벌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에는 1994년 첫선을 보였으며, 2012년 본사 지분 100%의 롱샴코리아를 통해 직진출했다.

지난 7월 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롱샴코리아 본사에서 박성희(48) 대표를 만났다. 그는 “명품은 장인정신이 만들어낸 훌륭한 제품과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경영철학이 조화를 이뤘을 때 탄생하는 것”이라며 “지난 70년간 가족경영을 통해 일관된 철학을 계승해온 롱샴은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브랜드”라고 말했다.

“명품은 장인정신과 경영철학의 합작품”


▎지난 5월 롱샴 쇼룸에서 진행된 2017 F/W 프레젠테이션에서는 다양한 컬러와 소재의 가방과 의류, 신발이 공개됐다. / 사진 : 롱샴코리아 제공
“가족경영을 하고 있는 명품 브랜드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하지 않고 멀리 내다본다는 점이에요. 돈 좀 더 벌겠다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명품으로서의 희소성과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가족경영 회사들이 성공을 거둔 이후 거대 기업들에게 인수·합병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대부분 실적이나 이윤 압박으로 인해 원래 하고자 했던 장기적인 정책과 전략들을 제대로 시행해 나가지 못하게 되더군요. 아무리 훌륭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어도 냉혹한 현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돼버리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롱샴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가 3대째 가족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패밀리 기업입니다. 그래서인지 한번 세운 전략이나 정책을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관성 있게 펼쳐 나가죠. 장기적인 마인드를 갖고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회사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2년 숙명여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롱샴코리아 최초의 여성 지사장이다. 1991년 영원무역 해외수출 마케팅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 대표는 1993년 워커힐 면세점에서 머천다이저(MD)로 근무하며 명품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98년 더 유통 면세사업부 향수 부문 총괄 및 갤랑 화장품 팀장, 2007년 에스티로더 코리아 오피스 크리니크 세일즈 매니저, 2011년 에스티로더 트래블 리테일링 아시아퍼시픽 지역 디렉터, 2013년 롱샴코리아 면세사업부 디렉터를 거쳐 2014년 롱샴코리아 대표에 취임했다. 박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글로벌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 명품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된 거 같다”며 “그동안 명품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직장생활 26년 중 24년을 꼬박 명품업계에서 보냈습니다. 그동안 달라진 점이 참 많은데요. 무엇보다 명품을 대하는 소비자들의 인식과 태도에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명품이라면 무조건 추종하는 분위기였어요. 소비자들이 대등하게 영향을 주는 시장이 아니라 명품들이 일방적으로 주도해 나가는 시장이었죠. 시쳇말로 콧대가 높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한국이 명품 시장에서 중요한 나라가 되면서 소비자들이 명품에 미치는 영향력도 덩달아 커진 거죠. 더 이상 명품 브랜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존재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얘기하는 분위기가 된 거에요. 명품 브랜드들은 이제 소비자들과의 쌍방향 소통을 통해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시작한다거나 브랜드 콘텐트를 개발하고 아이템을 내놓으면서 소비자들의 니즈에 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예전에는 우리가 이렇게 좋은 거 만들었으니까 사가라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소비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제품이 나오는 상황인 거죠. 이런 현상을 보면 시장이 참 많이 변했고 점점 성숙해져 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취임 이후 박 대표에게 주어진 미션은 글로벌 시장과 한국 시장에서 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롱샴의 인지도 격차를 줄이는 것이었다. 초창기 롱샴을 들여온 국내 유통업체들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나일론과 캔버스 같은 엔트리 제품에만 집중한 탓에 소비자들로부터 저가 브랜드로 치부되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박 대표는 지난 3년간 브랜드 고급화 전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롱샴의 가치와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특히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매장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국내 5개 주요 백화점의 명품 카테고리에 롱샴을 편입시키는 성과를 거두면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박 대표는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브랜드를 새로 론칭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며 “앞으로도 계속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백화점에는 명품 구역과 잡화 구역이 나눠져 있는데요. 매장을 돌아보니 해외 수입 브랜드들은 대부분 명품 쪽에 있는데 롱샴만 유독 잡화 쪽에 있더군요. 자세히 실태를 조사해서 본사에 알렸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덕분에 한국 시장에서 브랜드 정책과 방향을 결정할 때 본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5개 주요 백화점에서 롱샴의 매장 위치를 모두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일반 잡화에서 해외 명품으로 자리가 옮겨진 거예요. 그게 저의 가장 큰 미션이자 성과에요. 업계에선 이런 사례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백화점에도 명확한 기준이 없었어요. 처음 브랜드가 들어올 때 누구를 만나고 어느 부서가 담당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구조더라고요. 우리와 반대 경우도 많았어요. 명품 쪽에 있을 브랜드가 아닌데 단지 네트워크가 좋다는 이유로 입점이 결정되는 경우도 허다하더군요. 우리 사례를 통해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낍니다.”

박 대표의 경영철학은 한마디로 ‘긍정과 소통’이다. 20년 넘게 다양한 기업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노’라고 말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예스’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에게도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스스로를 직원들이 다가가기 쉬운 리더라고 말한다. 직원들과 항상 공감대를 갖고 소통하면서 일하려고 노력한다. 집무실 문도 늘 열어둔다. 직원들의 의견에 언제나 귀 기울이겠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나중에 제가 회사를 떠났을 때 직원들이 친구 같은 리더였다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었던 사람, 언제나 열정과 에너지가 넘쳤던 사람으로 남기를 기대합니다.”

박 대표의 소통 마인드는 숙명여대 취업경력개발원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심각한 취업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교 후배들을 위한 일종의 재능 기부 강연이다. 강연을 통해 박 대표는 글로벌 명품 기업에 입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생생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예 직원들과 함께 10시간짜리 커리큘럼을 만들기도 했다. 이를 통해 MD가 무엇인지, VMD는 어떤 일을 하는지 등 실제 외국계 패션 기업에서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멘토링 프로그램에서는 단순히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선후배들의 정기적인 모임도 주선한다. 이를 통해 선배들의 취업 성공담을 공유하고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건강한 명품 생태계 조성에 힘쓸 터


▎숙명여대 취업경력개발원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멘토링 프로그램에서는 선후배의 만남을 통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박 대표는 “우리 청년들의 실업률이 조금이라도 낮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다”며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취업에 성공했다며 연락이 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후배들이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동시에 오픈 마인드를 가졌으면 합니다. 어떤 특정 회사나 특정 부서를 정해 놓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네요. 나는 꼭 MD를 하겠다든지 PR 아니면 안 된다는 친구들을 데려다 수업을 해보면 그 분야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환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들에게 늘 열어놓으라고 강조해요. 어떤 길로 가게 되던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기회는 오게 돼 있어요.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아서 커리어를 쌓는 것이 중요해요. PR에서 MD로 부서를 바꾸거나 매장 판매에서 VMD로 옮긴 생생한 사례들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그들이 올바르게 인식의 전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 대표에 따르면 국내 명품 시장의 앞날은 밝은 편이다. 지난 20~30년간 유래 없는 호황을 누리다가 최근 몇 년 새 한풀 꺾이는 모양새지만 조만간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격 대비 가치를 따지는 소비문화도 명품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런 추세에 적절히 대비하고 극복하는 브랜드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명품업계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아직 이쪽 분야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업계 사람들 대부분 저와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어요. 명품에 대한 열정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인재들이 많이 들어온다면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박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한국 명품 산업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는 “명품 생태계가 건강해지면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시장이 투명해져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백화점 온라인에서는 정식수입 제품과 병행수입 제품들이 같이 팔리고 있습니다. 해당 제품의 본사에선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죠. 백화점 측에 내려달라고 얘기하면 병행수입업자들이 소송을 걸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합니다. 공정하지 않다거나 자신들도 권리가 있다는 이유로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불합리성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온라인 마켓이에요. 향후 제도적으로 투명하게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브랜드 입장에서 보면 상도(商道)가 무너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거든요. 명품 브랜드들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온라인에서 브랜드의 가치와 품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가격도 투명하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 모색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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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호 (201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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