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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에 빠진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2013년 이후 성장 정체에 빠진 하이트진로가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올해 들어 직원 명예퇴직에 공장 매각까지 진행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수사에 나서면서 엎친 데 덮친 꼴이 됐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
“임직원 모두가 모진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굳센 풀인 질풍경초(疾風勁草)가 되길 바랍니다. 변화와 혁신은 고되고 힘들지만, 현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희망차게 100년 기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1월 초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2017년에는 변화와 성장의 모멘텀을 창출하자”고 강조했다. 주류 시장 규모는 정체되고 경쟁자만 늘어나는 제로섬 상황에서 내실을 다지고 이익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특히 맥주부문은 수익성 중심의 체질개선을, 소주부문은 공격적인 투자와 신제품으로 시장지배력을 확장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올 한해도 하이트진로와 박문덕 회장에겐 시련의 시기였다. 실적 부진이 계속되면서 회사는 희망퇴직과 사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100명 규모의 희망퇴직엔 전체 직원의 10% 가량인 300명이 몰렸고, 맥주 공장한 곳의 매각 계획을 밝히면서 사내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해졌다. 게다가 최근엔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의혹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선 “수년 간 매출 정체, 영업이익 하락의 늪에 빠진 하이트진로가 작심하고 혁신 경영에 나서야할 시기다. 이미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이트진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맥주회사 조선맥주를 모태로 성장했다. 대선발효공업의 고(故) 박경복 창업자가 조선맥주를 인수한 후 1998년 하이트맥주로 간판을 교체했다. 본격적인 성장은 박문덕 현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1990년대 중반부터다. 지하 천연 암반수 콘셉트의 맥주 ‘하이트’가 크게 성공하면서 하이트맥주는 국내 맥주시장 1위에 올랐다. 2006년에는 시장 점유율이 60%를 넘어서며 맥주 시장을 완전히 틀어쥐었다. 경쟁사였던 두산은 결국 오비맥주 지분을 외국 자본에 매각하고 맥주사업에서 손을 뗐다.

맥주사업이 발목 잡아 5년째 제자리걸음


▎맥주부문 매출 부진으로 하이트진로의 공장 가동률은 40%까지 떨어졌다. 하이트진로 강원공장 완제품 검사기계에서 한 직원이 병을 검사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이후 보유한 현금을 바탕으로 부실한 주류 기업을 인수하고 맥주용기 제조, 양주 수입·판매, 주류 운송 등의 자회사를 설립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이어 2005년 법정관리가 진행 중이던 진로를 인수하면서 사명을 하이트진로로 바꾸었다. 소주 시장에서도 승승장구는 이어졌다. 두산이 2006년 ‘처음처럼’을 출시하며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50%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던 진로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2010년 들어 하이트진로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장경쟁 악화로 인한 맥주부문의 매출이 줄면서 전체 실적을 깎아먹고 있는 것. 맥주사업은 2012년 오비맥주에 1위 자리를 뺏긴 후 4년 째 고전 중이다. 2012년 1조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8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고, 4년 새 누적 적자규모는 1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맥주시장 점유율은 오비맥주 60%, 하이트진로 35% 정도로 오비맥주에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간 상태다.

업계에서는 하이트진로의 맥주사업 부진을 오비맥주와 수입맥주의 약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진로 인수 후 하이트진로의 역량이 소주와 맥주 시장으로 양분된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비맥주가 ‘카스’로 반격을 시도할 때 기존 히트상품 ‘하이트’에 집중하며 대응했어야 했는데 신제품으로 ‘맥스’와 ‘드라이피니시 d’를 내놓으면서 마케팅 역량이 분산됐다는 것이다. 2005년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할 당시 ‘주류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 5년간 양사의 통합영업을 제한한다’는 공정위의 조건도 합병 시너지를 약화시켰다.


수입맥주가 편의점과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국내 주류시장을 잠식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 관세청 수출 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맥주 수입 금액은 2억1686만 달러를 기록했다. 맥주 수입액이 2억 달러를 넘은 것은 처음으로, 2014년 1억 달러를 돌파한지 불과 3년만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수입맥주는 유통 마진을 조절해 소비자 판매 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앞선다”며 “당분간 수입맥주의 전성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계열사 서영이엔티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서영이앤티는 생맥주를 담는 통과 냉각기 등 맥주 관련 장비를 제조하는 비상장사로, 지난해 전체 매출액 744억원의 28.25%인 210억원을 내부거래로 올렸다. 이 회사는 박문덕 회장(지분율 14.6%)과 장남 박태영 부사장(58.44%), 차남 박재홍 상무(21.62%), 박 회장의 형인 박문효 하이트진로산업 회장(5.16%)이 지분의 99.9%를 가지고 있는 오너 일가 기업이다.

경영권 승계 위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 조사


▎하이트진로는 최근 동남아시아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 현지법인을 세운 후 하이트진로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식당을 선보였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가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비상장사 20%)와 매출액 200억원 이상의 내부거래를 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는다. 내부거래 비중이 전체 매출액의 12% 이상일 때도 규제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지난 2015년부터 하이트진로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최근엔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제재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심사보고서도 내놓았다. 특히 하이트진로그룹은 조사 중에도 상당한 규모의 내부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나 ‘괘씸죄’까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그룹 일감을 지원받는 비상장 회사를 앞세워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서는 ‘재계 경영권 승계 공식’을 하이트진로가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장남 지분이 과반인 가족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덩치를 키운 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힘을 보태려 한다는 것이다. 서영이엔티는 하이트진로의 지주회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지분 27.66%를 보유한 2대 주주이다.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주요주주는 박문덕 회장(지분 29.5%), 서영이앤티(27.66%), 하이트문화재단(7.54%) 등으로 특수 관계인 지분율이 65.9%에 달한다. 이를 종합하면 하이트진로의 향후 지배구조는 ‘박태영→서영이엔티→하이트진로홀딩스→하이트진로’로 정리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하이트진로 측은 “서영이앤티의 내부거래 비중을 계속 줄여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서는 하이트진로그룹이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영이앤티를 그룹 지주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와 합병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3세가 만든 ‘필라이트’ 성공 여부에 관심


하이트진로그룹의 후계자는 박태영 부사장이다.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에서 경영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컨설팅업체인 엔플렛폼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다 2012년 4월 하이트진로 경영관리실장(상무)으로 입사했다. 당시 나이 34세였다. 이후 8개월 만에 전무(경영전략본부장)로 승진했고, 지난해 초 부사장에 취임했다. 박문덕·박문효 회장이 2014년 돌연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이루어진 초고속 승진이었다.

박 부사장은 경영 전면에 선 후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 지난해 5월 청담동 건물을 390억원에, 10월엔 서초동 부동산을 910억원에 각각 매각했다. 지주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는 지난해 5월 계열사 하이트진로에탄올 주식을 735억원에 처분했다. 올 들어서는 공장 가동률이 40%까지 떨어지자 강원·전주·마산 3개 공장 중 1곳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클라우드·피츠를 생산하는 롯데칠성음료가 증설을 진행 중이고 수입맥주도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어 맥주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확실한 타개책이 없는 상황에선 긴축재정 외에 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올해 신제품으로 내놓은 발포주 ‘필라이트’의 인기다. 필라이트는 박 부사장이 승진 후 사실상 처음 기획해 내놓은 야심작으로, 40% 저렴한 가격 덕분에 4월말 출시 이후 10월까지 모두 1억 캔이 팔렸다. 회사 측은 올해 매출 6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차재헌 동부증권 연구원은 “발포주는 기존 맥주 시장의 판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 저가 맥주 출시는 공장 가동률이 50%를 밑도는 하이트진로가 선택할 수 있는 훌륭한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트진로 입장에서는 필라이트 성공 여부가 맥주사업 실적 턴어라운드와 3세 경영 본격화의 가늠자”라고 말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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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호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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