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듣다보면 가을과 겨울에는 유난히 브람스를 많이 듣게 된다. 브람스 음악 특유의 차분한 이미지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람스 음악을 듣다 '브람스는 회사경영을 했어도 잘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역사에서 3B(바흐-베토벤-브람스)는 뼈대와 같은 인물이다. 바흐가 초안을 잡았다면 베토벤이 체계를 완성시켰고 브람스는 그걸 더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다시피 지금 우리가 듣는 클래식은 약 200년 전 쯤 태동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부터 200년 전인 1818년 전후는 베토벤 (1770~1831)의 음악이 완성단계로 들어서고 있을 때였다. 물론 고전주의를 확립한 베토벤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의 얘기며 학자에 따라 견해는 다를 수 있다.아무튼 베토벤이 1831년 죽고 2년 뒤인 1833년 브람스가 태어났다. 그런데 브람스는 철저하게 '베토벤 따라쟁이'였다. 베토벤의 음악이 옳다고 믿고 자신은 그걸 어떻게 더 발전시킬까에 평생을 몰두하며 살았다. 당시 독일음악은 바그너처럼 '베토벤에서 벗어나기'를 하는 흐름이 주류였다고 한다. 그러나 브람스는 끝까지 베토벤을 자신의 음악스승으로 동경하고 따라했다.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앞부분에 약 3분 20초가량의 전주가 있은 뒤 바이올린 독주가 시작된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마찬가지다.베토벤은 첼로 협주곡을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브람스도 첼로협주곡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은 모르는 '베토벤만이 아는 이유'를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심지어 브람스는 친구인 드보르작이 1895년 작곡한 첼로 협주곡을 죽기 얼마 전 들은 뒤 '첼로가 저런 매력이 있었다면 나도 협주곡을 만들어볼걸…'하며 후회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회사 경영도 잘 했을 것'이란 생각은 바로 이 같은 브람스의 특성 때문이다.브람스는 이미 검증된 베토벤이라는 완성되고 믿을 만한 이론에 충실했다. 예전 현대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이 큰돈이 필요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할 때 반도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나 진지한 검토 없이 즉석에서 결정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정주영 회장은 우려하는 임직원에게 "삼성 이병철이 실패하는 거 봤어? 우린 그냥 따라가면 돼. 연구조사 이런 시간 절약할 수 있잖아"라고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물론 따라하기만으로 훌륭한 경영자가 될 수는 없다. 브람스는 실내악 분야에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베토벤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검증된 방식만 따라한다면 그 경영자는 50점짜리다. 그러나 브람스는 결국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검증 그 이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가상화폐로 혼란스런 시대. 어쩌면 브람스적인 경영이 필요한 때다.-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