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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CEO의 CES 참관기(2) 

ICT 융합이 낳은 무한한 기능·서비스 

글·사진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
로보티즈는 로봇의 뼈대가 되는 액추에이터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다. 휴머노이드 로봇 플랫폼 ‘똘망(THOR-MANG)’은 차세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됐다. 김병수 대표는 “주변국 경쟁업체들의 방향과 전략을 독자들과 공유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의구심에 마침표를 찍고 싶다”며 생생한 현장 참관기를 보내왔다. [편집자 주]

▎가상현실(VR)과 결합되어 해저탐험을 하며 운동하는 장치는 CES 참관객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최근 들어 ‘Chinese Electronics Show(CES)’라는 웃픈(웃기지만 슬픈) 닉네임이 생겼다. 올해도 CES 참가 기업 중 55%가 중국 기업으로, 이를 풍자하는 말이다. 그러나 올해 중국 기업들은 양적인 면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을 보였다. 사실 2년 전까지도 중국 업체 부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화려한 인테리어와 전략 없는 ‘묻지마 카피’ 제품들이었다. 그러나 이젠 결코 값싼 3류 복제품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품·서비스 진화 돋보이는 경연장


▎로보티즈는 인간 크기의 휴머노이드 로봇 똘망을 앞세워 CES에 참가했다. 로보티즈는 차세대 로봇 플랫폼으로 세계시장에서 판로를 개척 중이다 / 사진:로보티즈 제공
이번 CES의 또 다른 특징은 각국 정부의 육성정책에 힘입어 탄탄한 스타트업들이 유레카 존을 빛냈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이스라엘, 대만의 국가관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한국과 경제 규모나 여건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들 나라의 스타트업이 한국에 비해 돋보이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됐다.

그러나 전시 전반에 걸쳐 앞선 이 두 가지 특징보다 훨씬 더 두드러진 점이 보였다. 바로 정보통신과 과학 기술의 만남이 이루어 낸 진화다.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우버와 에어비앤비로 대변되는 공유경제, 인공지능과 로봇, 빅데이터, 가상화폐,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언뜻 보면 그 일관된 방향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 구현 요소들을 분석해보면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의 만남이라는 커다란 공통점이 보인다.

이는 특정한 사업군이나 특별한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제품들의 진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뿐 아니라 애완동물 관련 제품이나 운동기구, 교육, 충전 방식까지도 ICT와 융합해 새로운 기능을 탄생시킨다. 모이고 연결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동향을 잘 반영한 대기업으로는 도요타와 LG전자가 돋보였다. 도요타의 E-Palate는 필요로 하는 곳까지 자율주행으로 이동해 편의점서비스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LG는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엔진 ThinQ를 기반으로 다양한 로봇시스템과 지능형 가정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소니의 부스에서는 10년 만에 부활한 로봇 강아지 ‘아이보’를 볼 수 있었다. 아이보는 전작에 비해 시선을 맞추는 기능과 이동성이 좋아졌다. 두드러진 장점은 온라인에 연동해 스스로 필요한 기능과 성향을 바꿔간다는 점이다. 그러나 소니의 부스에서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어떤 새로운 기술을 준비할 것인가보다는 새로운 시대에서 기존의 제품들의 가치가 어떻게 변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하지만 정작 거기서 감동을 더하는 요소는 고전적인 기능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 들어 부쩍 고급 헤드폰을 끼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소니의 TV는 계속 교향악 공연을 내보내고, LP판까지 동원하는 등 음향장치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음향의 퀄리티를 강조하는 것은 소니뿐이 아니다. 자동차업체들도 음향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스피커업체들의 규모도 예사롭지가 않다.

기본에 충실한 일본, ‘인해전술’ 중국


▎혼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서비스 로봇을 선보였다. 이족보행 로봇 대신 실용성을 높인 바퀴 타입 로봇을 선보였다. / 사진:로보티즈 제공
혼다의 서비스 로봇에서도 기본기에 충실한 혁신을 볼 수 있다. 이족보행 로봇 ‘아시모’ 대신 4가지 형상의 바퀴 타입 로봇을 선보였는데 모두 기술적 완성도가 높고 바로 출시해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만큼 실용적이다.

로봇업체로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방법은 로봇과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것이다. 기존 산업용 로봇이 정밀한 자동제어장치였다면 미래를 주도할 로봇은 인공지능과 결합된 개인서비스 로봇이다. CES가 소비재 중심의 전시인 만큼 개인서비스 로봇의 미래 기술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로보티즈는 인식과 메니뮬레이션(조작 기술)에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해 관객들에게 브로슈어와 음료수를 나누어 주는 인간형로봇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이번 전시 부스의 규모나 업체의 숫자 면에서 한국의 로봇업체들은 중국 업체들에게 상대가 되질 않는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의 물건을 수입해 유통했던 중국 로봇업체들이 그 제품을 그대로 카피하고, 중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받아 엄청난 규모의 부스에서 다양한 응용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제는 누가 원조이고 누가 카피제품인지 알기가 어렵다. 이번 CES에 로봇 분야로 참가한 한국 업체는 4곳, 중국 업체는 그 숫자를 파악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투자펀드 등 중점 육성 방안 절실

로봇 분야를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지원해 온 것은 한국도 중국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난해 국가과학기술심의회 보고서를 보면 산업부 기준으로 로봇 분야 지원 예산 중 기업에게 돌아간 것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산업부가 이 수준이면 다른 부처는 더 얘기할 필요가 없다. 한국 중소기업으로서 대학과 연구소에 일을 맡기거나 협력하는 것은 오로지 정부과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연구소나 대학이 국가로부터 받는 예산 규모가 이미 중소기업의 예산규모를 훨씬 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연구과제는 효율성보다는 공평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잘게 쪼개어 분배된다. 이런 방식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대신 딱히 효과도 없다. 반면 다른 나라들의 스타트업 지원의 주요 방법은 투자펀드의 조성이다. 올해 들어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 코스닥 투자를 제대로 할지 검토하는 뉴스들이 눈에 띄나 그 움직임은 아직도 소극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대기업에서 찾고 질책 대상으로 삼지만 그나마 한국 중소기업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은 대기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CES에 참가한 한국 기업들의 작은 부스에서 보이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적극성은 ‘아직 IT 강국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 불씨는 힘겹게 싸우는 중소기업들만의 불씨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불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근로자의 88%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귀국길의 어깨가 가볍지만은 않았다.

※ 김병수 대표는… 고려대 공대를 졸업한 김 대표는 세계로봇축구연맹이 주최한 로봇월드컵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주목받았다. 1999년 로보티즈를 창업해 현재 하드웨어인 다이나믹셀을 해외 200여 개 로봇 제조사에 수출하고 있다.

201802호 (201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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