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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스템 시장의 리더 엔비디아 

병렬 방식 GPU ‘신의 한 수’가 되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컴퓨터 그래픽 칩을 만들었던 엔비디아가 이제는 인공지능 시스템 시장을 이끌고 있다. 기업들은 엔비디아의 GPU를 이용하지 않고는 인공지능 분야 도전이 어려워졌다.

▎CES 개막을 하루 앞둔 1월 9일(현지시간) 열린 젠슨 황 CEO의 미디어 콘퍼런스에는 1000여 명이 참석해 그에 대한 높은 관심을 알 수 있었다. / 사진:엔비디아코리아
거침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AI 분야의 대표 선수라고 자임한다. ICT 분야의 글로벌 리더인 애플이나 구글을 넘을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경쟁자들도 그의 말에 수긍하는 눈치다. AI 시대를 준비하는 대다수의 기업이 그의 손을 잡으려고 한다. 메르세데스-벤츠·폭스바겐 같은 글로벌 자동차 완성업체부터 우버·바이두·SKT 같은 ICT 기업들과 협업한다는 소식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마치 그와 손을 잡지 않으면 AI 시대에 대응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 주인공은 “우리 기업 역사에서 이렇게 거대한 시장의 중심에 서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다. 요즘 이 창업가와 기업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엔비디아(NVIDIA)와 창업가 젠슨 황(Jen-Hsun Huang·54) CEO다.

3D 그래픽 시대 대비 병렬 처리 방식 선택


#. ‘CES 2017, 승자는 Amazon, 실세는 Nvidia GPU’

2017년 2월 한국정보화진흥원이 펴낸 리포트의 제목이다.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를 분석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엔비디아가 GPU(Graphics Processing Unit)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시장에서 다양한 파트너십을 발표하면서 CES 2017의 실세로 주목받았다고 평가했다.

CES 2018에서도 젠슨 황 대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CES 개막을 하루 앞둔 1월 9일(현지시간) 젠슨 황 대표의 미디어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엔비디아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젠슨 황 CEO는 자율주행차 시장을 이끌어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자율주행차 시장 공략을 위해 4년 간 20억 달러(약 2조1300억원)를 투자하고, 2000여 명의 엔비디아 엔지니어가 투입된 자율주행 머신 프로세서 ‘엔비디아 자비에(Xavier)’를 소개했다. 그는 “출시 1년이 지났고, 1분기에 몇몇 고객에게 샘플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 안전 솔루션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표명했다.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 소식도 계속 전해졌다. 자동차 완성업체 폭스바겐, 중국의 바이두와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 ZF,라이드 쉐어링 기업 우버, 자율주행 선도 스타트업 오로라와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젠슨 황 CEO는 이날 “엔비디아와 바이두는 지난 수년간 딥 러닝 및 인공지능 부문에서 중대한 발전을 함께 이뤄왔다”며 “이제 엔비디아는 ZF와 함께 중국 최초의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컴퓨팅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 부문에서 엔비디아는 320여 개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흔히 자율주행 하면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구글·애플과 같은 ICT 기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현대차·폭스바겐 같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도 이들과 손잡고 자율주행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자율주행 분야를 주도한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이유는 뭘까. 자율주행 분야뿐만이 아니다. 헬스케어·제조업·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 분야 개발을 위한 협업에 나서고 있다. 비밀은 ‘그래픽 처리장치’로 불리는 GPU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젠슨 황 CEO가 병렬 방식의 GPU 개발에 매진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하고 있다.

최신 GPU 볼타 1초에 20조 번 연산 처리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 전경.
1993년 젠슨 황 CEO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CPU 생산기업 AMD에 근무했다. 30살이 되던 1993년, 당시 PC에 사용되던 그래픽 칩을 개선하면 엄청난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창업 초기에 엔비디아는 주목을 받았다. 당시 최고의 벤처캐피털로 꼽히는 세콰이어캐피털 등으로부터 2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던 것. 1995년 출시된 첫 제품은 1000만 달러를 투입해 만든 NV1 칩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탓일까. 고객 확보는 어려웠고, 직원 절반을 정리해고 해야 하는 실패를 맛봤다. 다행히 1997년 세번째로 출시한 RIVA 128이 히트를 치면서 기사회생했다.

엔비디아 창업 초기에 경험한 실패와 재기의 스토리도 눈길을 끌지만, 엔비디아의 성공 신화는 지금 돌이켜보면 창업 때부터 시작됐다. 바로 중앙처리장치(CPU)와는 다른 설계에 매달린 것이다.

인텔로 대표되는 컴퓨터 CPU는 직렬 처리 방식으로 설계됐다. 인터넷 이용이나 문서 작성 등의 작업을 더욱 빠르게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에 반해 엔비디아는 속도보다 큰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병렬 처리 방식으로 그래픽 처리장치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CPU가 빠른 오토바이 1대에 피자 20판을 싣고 배달하는 방식이라면, 엔비디아는 20대의 오토바이에 각각 피자 한 판을 싣고 배달하는 식이다. 엔비디아코리아 이용덕 지사장은 “당시 젠슨 황 CEO는 미래 그래픽은 3D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렇게 되면 데이터 양이 급격하게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면서 “대용량의 그래픽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는 병렬 방식이 적합하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9년 엔비디아는 세계 최초로 GPU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프로그램이 가능한 그래픽 처리장치다. CPU처럼 독립적으로 연산 처리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2006년에는 GPU 전용 소프트웨어 쿠다가 출시됐다. 쿠다를 이용하면 GPU의 컴퓨팅 능력이 가속화된다. 이용덕 지사장은 “쿠다는 코딩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쿠다를 활용해 프로그래밍하면 GPU의 연산 능력이 훨씬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를 제조하던 하드웨어 기업에서 점점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했다. 젠슨 황 CEO는 임직원들에게 “2년마다 한 번씩 신제품을 출시할 것”이라는 발표까지 했다. 이를 위해 매출의 30%를 R&D에 쏟아부었다. 어떤 글로벌 기업도 시도하지 못하는 막대한 투자다. 현재 엔비디아의 임직원은 9500여 명, 이 중 70%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그래픽 카드를 만들었던 엔비디아는 더는 하드웨어 기업이 아닌 셈이다.

2010년대 초반 엔비디아의 GPU는 드디어 인공지능 시장에 진입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2010년 미국 스탠퍼드대 앤드루 응 박사가 2000개의 CPU를 사용해 해결한 딥 러닝 계산을 겨우 12개의 엔비디아 GPU로 해낸 것이다. 2012년 캐나다 토론토대 알렉스 크리제브스키라는 학생은 이미지 인식 정확도를 겨루는 이미지넷 대회에서 GPU 기반 딥 러닝 기술을 활용해 우승했다. 이 대회 전까지 이미지 정확도 80%를 넘지 못했다. 그가 GPU를 이용해 이미지 인식 정확도 80%를 넘겼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데이터 소스 코드를 오픈했고, 대다수의 연구진이 GPU 기반 딥 러닝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이미지 인식 정확도는 98%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진다. 참고로 인간의 정확도가 95% 수준이다.

여전히 일반인에게 GPU나 인공지능 시대는 낯설었다. 2016년 한국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일반인에게도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를 각인시킨 계기였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세돌 9단은 엔비디아의 GPU 176개가 사용된 알파고와 겨뤘다.

엔비디아는 그래픽 처리 장치가 아닌 빅데이터 처리에 특화된 GPU를 선보였다. 테슬라라고 불리는 제품군으로 그래픽처리 장치는 없고 오로지 연산만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테슬라 제품군으로 선보인 최신의 볼타 아키텍쳐 제품 개발에는 30억 달러의 개발비가 투여됐다. CPU와 GPU의 연산 처리 능력 차이는 크다. 볼타는 1초에 200조 번의 연산을 한다. CPU에 있는 코어의 수는 현재 16개지만, 볼타는 5160개다. CPU가 1번에 16판의 피자를 배달한다면 볼타는 5160판의 피자를 동시에 배달하는 셈이다.

2016년 포퓰러 사이언스지는 GPU를 “현대 인공지능을 완성할 핵심 전력”이라고 평가했다. 조사 기관 IDC는 세계 인공지능 시스템 시장이 2020년까지 연평균 55.1%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 규모는 2020년 470억 달러(약 56조8000억원)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박스기사] 이용덕 엔비디아코리아 지사장 -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문화가 엔비디아의 힘”


▎사진:전민규 기자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장 중에서 이용덕(53) 엔비디아코리아 지사장만큼 오래 자리를 지킨 이도 드물다. 이 지사장은 2002년 엔비디아코리아가 설립된 지 4년 후 합류했고, 지금까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필립스코리아를 시작으로 ST마이크론, 레저리티 코리아 지사장 및 브로드컴 코리아 지사장을 거쳤다.

엔비디아코리아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엔비디아코리아는 영업·마케팅·기술지원 역할을 한다. 고객이 엔비디아 제품이나 솔루션을 사용하면 한국 지사는 기술을 지원해 준다. 엔비디아코리아에는 소프트웨어 연구소도 있다.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에 연구소가 있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맞다. 한국에 연구소가 생긴 이유가 있다. 2008년과 2009년 삼성전자·LG전자를 상대로 스마트폰 비즈니스를 했다. 그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필요해 채용했고, 함께 일하게 된 엔지니어들은 본사 소속 엔지니어가 됐다. 본사 입장에서도 한국의 고급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엔비디아가 해외에 연구소를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인도·중국·일본·대만 등 10개국이다.

엔비디아코리아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얼리어답터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한국 사용자들은 엔비디아가 출시한 신제품에 관한 피드백을 바로 준다. 한국 사용자의 피드백만 읽어도 제품 박사가 될 정도다.(웃음) 본사도 한국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 본사는 한국을 엔비디아 제품의 가치를 세계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직원 친화적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왜 그런가.

아주 독특한 기업문화 중 하나가 기술에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CEO와 담당 임직원이 직접 토론을 하는 것이다. 토론을 거쳐 해결책이 나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린다. 내가 CEO에게 메일을 보내면 바로 답장을 받을 수 있다. CEO와 직원이 동등한 관계라는 기업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도 엔비디아가 강조하는 문화다. 누군가의 실수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공개하고 모두가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긴다. 실수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지적인 정직함이 기업문화에 스며들어 있다. 엔비디아의 성장을 이끈 힘이라고 본다.

젠슨 황 CEO는 어떤 경영자인가.

모든 임직원에게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 그는 항상 우리가 지금 개발하고 있는 기술의 비전이 뭔지를 제시해준다. 1999년 GPU 개념을 만든 후 2년마다 새로운 제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렇게 빠른 시간에 기술발전을 이룬 것은 매출의 30%를 R&D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다른 글로벌 기업의 R&D 비율은 7~8%에 불과하다. 기술 개발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알 수 있다.

젠슨 황 CEO 하면 검은색 가죽 재킷이 떠오른다. 이 옷을 항상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직접 물어보지 못해서 잘 모른다.(웃음) 그의 공식 복장은 항상 반팔에 가죽 재킷이다. 스포츠카도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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