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들(6) 

칼릴 지브란 『예언자』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26개의 산문시(prose poetry, 산문 형식으로 된 시)다. 세계 50개 언어로 번역돼 수천만 부가 팔렸다. 지금도 신간 베스트셀러 못지않게 많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영어 단어 prophet과 profit은 둘 다 ‘프라핏’으로 발음된다. prophet은 예언자·선지자·선도자, profit은 이익·수익·이윤·이득이다. 두 단어가 동음이의어인 이유에는 뭔가 깊은 뜻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prophet을 따르는 이유는 어떤 profit 때문일까.

영한사전에서 prophet을 찾아보면 예언자, 선지자, 선도자라고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는 이렇다. ‘예언자(豫言者):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짐작하여 말하는 사람.’ ‘선지자(先知者): 남보다 먼저 깨달아 아는 사람.’ ‘예수 이전에 나타나 예수의 강림과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던 사람. 대선지자와 소선지자가 있었다.’ ‘선도자(先導者): 앞에 서서 인도하는 사람.’ prophet이 꼭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아니다. prophet은 이끄는 사람이며, 깨달은 사람이며, 사람들의 신뢰를 얻은 사람이다.

‘바넘 효과’로 베스트셀러 된 이유 설명 가능

레바논계 미국 사람인 칼릴 지브란(1883~1931)이 쓴 『The Prophet』(1923)의 우리말 제목은 『예언자』다. 선지자나 선도자가 더 나은 제목일 수도 있다. 책의 주인공은 메시지를 전할 뿐 예언하지 않는다.

『예언자』는 26개의 산문시(prose poetry, 산문 형식으로 된 시)다. 세계 50개 언어로 번역돼 수천만 부가 팔렸다. 지금도 신간 베스트셀러 못지않게 많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비평가들의 외면이나 조소의 대상이 된 책이지만, 독자들 입소문 덕에 ‘대박’을 쳤다. 출판사는 제대로 광고도 하지 않았다.

『예언자』는 미국 결혼식·장례식에 단골로 등장한다. 비틀스, 존 F 케네디 대통령(1917~1963)을 비롯해 노래 가사, 정치인들 연설에 영향을 줬다. 『예언자』에 매료된 엘비스 프레슬리는 이 책을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이 책의 성공 비결은 어쩌면 ‘바넘 효과(Barnum Effect)’ 덕분이다. ‘바넘 효과’는 ‘일반적이고 모호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성격묘사를 특정 개인, 즉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성향’이다. 『예언자』에는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다.

『예언자』의 주인공은 알무스타파라는 예언자다. 그는 12년간 오르팰리스(Orphalese)라는 가상의 섬에서 살았다. 고향으로 그를 데려갈 배가 항구에 들어온다. 가지 말라고 울며 그를 가로막는 사람들이 회자정리(會者定離)가 불가피함을 깨닫고 그에게 26개 삶의 영역에 관한 질문을 한다. 사랑, 결혼, 아이들, 주는 것, 먹고 마시는 것, 일, 기쁨과 슬픔, 집, 옷, 사고파는 것, 죄와 벌, 법, 자유, 이성과 감정, 고통, 자기를 아는 것, 가르침, 우정, 대화, 시간, 선과 악, 기도, 쾌락, 아름다움, 종교, 죽음에 대해서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예언자』는 3대 일신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진수를 뽑아낸 책이다. 그렇지만 종교적 도그마는 없다. 저자 칼릴 지브란은 그리스도교인, 모슬렘, 드루즈인이 갈등하는 환경에서 태어났다. 지브란은 수피(Sufi), 불교, 바하이교의 영향도 받았다. 영국의 시인·화가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니체(1844~1900)의 영향도 받았다. 한 시리아 신문은 지브란에 관해 “그의 영혼의 반에는 예수가, 다른 반에는 무함마드가 들어 있다”고 표현했다.

어쩌면 베스트셀러의 조건 중 하나는 쉽게 직관적(intuitive)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과 알쏭달쏭한 반직관적(counterintuitive)인 내용을 적절히 잘 섞는 것이다. 다음 두 문장은 이해하기 쉽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은 많은 경우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Much of your pain is self-chosen.) ” “사랑이 여러분을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When love beckons to you, follow him though his ways are hard and steep.) ”

두 번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책


다음 두 문장은 상당히 난해하다. “신은 그 자신이 여러분의 입술로 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여러분의 말을 듣지 않는다.(God listens not to your words save when He Himself utters them through your lips.)” “여러분의 집은 더 큰 여러분의 몸이다.(Your house is your larger body.)”

지브란이 설파하는 인생의 지혜는 유교와 멀지 않다. 공자는 오륜(五倫) 중 하나로 부자유친(父子有親,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리는 친애에 있음을 이른다)을 꼽았다. 친애(親愛)는 ‘친밀히 사랑함’이다. 친밀(親密)은 ‘지내는 사이가 매우 친하고 가까움’이다.

서로 사랑하는,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수 없다. 지브란은 부모-자식 관계를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의 아이들은 여러분의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갈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과 딸들이다. 여러분을 거쳐서 왔으나 여러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여러분과 함께 있지만, 여러분의 소유가 아니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여러분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Your children are not your children. They are the sons and daughters of Life's longing for itself.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And though they are with you yet they belong not to you. You may give them your love, but not your thoughts. For they have their own thoughts.) ”

공자는 부부유별(夫婦有別, 남편과 아내 사이의 도리는 서로 침범하지 않음에 있음을 이른다)을 말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부부유친(夫婦有親)이라고도 해도 말이 성립한다. 부부유별·부부유친, 지브란은 이 문제를 이렇게 정리한다.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의 바람이 여러분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을 굴레로 만들지 말라. 대신 여러분 혼과 혼의 두 기슭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Let there be spaces in your togetherness. And let the winds of the heavens dance between you. Love one another but make not a bond of love. Let it rather be a moving sea between the shores of your souls.) ”

이 책은 두 번의 전성기를 맞았다. 1930년대 대공황 시대에도 잘 팔렸다. 아랍·모슬렘 독자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뿌리가 서부 유럽인 독자들에게는 ‘동양적 낭만주의(Orientalist romanticism’를 맞보게 해줬다. 『예언자』는 아랍세계와 미국을 잇는 구실을 했다. 제2의 전성기인 1960년대에는 뉴에이지 운동이 표방하는 대안 영성의 ‘바이블’이 됐다. 영적 목마름이 있지만 종교가 부담스러운 이들이 이 책에 열광했다. 지브란은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의 예언자가 됐다.

지브란은 1883년 레바논에서 태어났다. 당시 레바논은 시리아의 일부였고, 시리아는 오스만제국의 일부였다. 출생지는 베사리(Bsharri). ‘레바논 삼나무(Lebanon cedar)’로 유명한 고장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레바논 삼나무로 배를 만들었고 오스만제국 사람들은 철도를 깔았다.

17권의 책과 700여 개의 작품 내놓은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그린 ‘예언자 이사야.’ / 사진:외르크 비트너
지브란은 키가 160㎝였다. 마론파(Maronites) 그리스도교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사제였다. 마론파는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가톨릭이다. 지브란은 소년 시절, 생각이 많고 잘 웃지 않는 아이였다.

1895년 12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호두나무 농장주였으나 일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약제상, 세무서 직원으로도 일했는데, 뇌물수수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도박과 술에 빠진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 카밀라는 아들 둘, 딸 둘을 데리고 친척들이 사는 미국 보스톤으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레이스·리넨 제품 행상으로 생계를 꾸렸다.

술은 지브란에게도 화근이었다. 금주법 시행 시대(1920~1933)에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하루 종일 술을 마셨다. 그의 폭음은 『예언자』 집필 당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아랍 전통주 아라크(arak)를 마셨다. 알코올중독이 원인이 된 간경변으로 사망했다.

지브란에게 인생 최고의 귀인은 교육개혁운동가 메리 해스켈(Mary Haskell)이었다. 교장 선생님이었던 해스켈은 자신도 풍족하지 않았지만 1908년 지브란이 파리에서 2년간 그림을 공부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지브란과 해스켈의 애정 관계는 불명확하다. 지브란은 그에게 청혼한 적도 있다. 해스켈은 10년이라는 나이 차를 이유로 거절했다. 해스켈 집안이 반대했다는 설도 있다.

『예언자』는 지브란이 20대부터 구상한 작품이다. 직접적으로는 해스켈과 나눈 대화의 결실이다. 해스켈은 지브란의 모든 영어 작품을 편집·수정했다. 12살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브란은 완전한 ‘네이티브’가 아니었기에 해스켈을 『예언자』의 사실상 공저자로 볼 수도 있다. 1926년 해스켈은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남편이 잠든 후에 지브란의 원고를 수정했다.

지브란에 대한 해스켈의 확신이 없었다면, 『예언자』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해스켈은 『예언자』에 관해 다음과 같은 예언을 남겼다. “우리가 어두움이나 연약함에 빠졌을 때 우리는 이 책을 열고 다시금 우리 자신과 우리 안에 있는 하늘과 땅을 발견할 것이다.(In our darkness and in our weakness we will open it to find ourselves again and the heaven and earth within ourselves.) ”

지브란은 『예수, 사람의 아들』(1928)을 비롯해 17권의 책을 썼다. 700개가 넘는 작품을 남긴 화가이기도 했다. 사실 그는 글쓰기보다는 그림 그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명사들의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 압둘 바하(1844~1921, 바하이 신앙의 창시자 바하올라(1817~1892)의 장남), 프랑스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62~1918), 아일랜드 작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심리학자 카를 융(1875~1961)이 그를 위해 포즈를 취했다.

많은 독자가 『예언자』 속 예언자와 지브란을 분간하지 않았다. 지브란은 컬트(cult)의 교주였다. 지브란은 아랍어와 영어라는 두 개의 언어, 작가와 화가라는 두 개의 직업 사이에 놓인 인물이었다. 또 그는 예언자이자 속인(俗人)이었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했다. 사기꾼 기질도 있었다. 힘 있고 돈 많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거짓말했다. 아마도 그를 깔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 자신을 ‘20세기의 윌리엄 블레이크’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둘이 만난 적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지브란은 사망할 때까지 원룸에서 살았다. 동생 마리아나에게 재산을, 해스켈에게 원고와 그림을, 고향 마을에 향후 로열티 수익을 남겼다. 평소 소원대로 고향 레바논 마르사키스 수도원에 안치됐는데, 묘지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여러분처럼 살아 있고 여러분 옆에 서 있다. 눈을 감고 주위를 둘러보면 여러분 앞에 있는 내가 보일 것이다.(I am alive like you, and I am standing beside you. Close your eyes and look around, you will see me in front of you.) ”

※ 김환영은… 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05호 (2018.04.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