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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 금융지주사(5) 

핀테크의 꽁무니에서 머뭇대다 

김영문 기자
중국 핀테크 금융시장은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과 후발주자였던 일본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에 한국 금융회사 수장들도 ‘디지털 혁신’을 외치지만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전통 금융 대국 영국마저 핀테크의 성지로 변하고 있다. 한국 금융사는 어디로 가고 있나.

▎세계적으로 아마존, 알리바바 등 거대 IT기업이 새로운 핀테크 기술로 금융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2025년까지 북미지역 은행들은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뺏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세상은 은행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1998년 -

“은행 산업은 ‘우버 모멘트(차량 공유 업체인 우버가 기존 택시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일)’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 혁신으로 무장한 핀테크(금융기술) 기업들이 지급, 결제, 대출, 자산관리까지 뛰어들면서 전통적인 은행의 성장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 시티그룹 ‘디지털 파괴(Digital Disruption)’, 2016년 -

“전통적인 금융산업은 성장한계에 부딪혔고, 빠르게 변하는 핀테크 산업을 따라잡지 못하는 은행은 현재 지위가 강등되거나 자금중개 기능조차 상실할 수 있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2018년 -

이젠 은행이 맞닥뜨릴 상대는 은행이 아닌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경쟁자들과 싸울지 아니면 손을 잡을 것인지를 택하는 일만 남았다. 실제 핀테크 기업의 성장세가 매섭다.

“앤트(파이낸셜) 가치는 1500억 달러 수준으로 골드만삭스 몸값을 50% 이상 앞섰다!”

지난 4월 11일(현지시각)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내건 기사 제목이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홀딩스가 투자 유치를 맡은 앤트파이낸셜(중국명 마이진푸)은 글로벌 금융계 ‘거물’이 됐다. 이어 블룸버그는 “현재 앤트파이낸셜이 조달하려는 금액은 90억 달러(약 9조 7000억원)로 이를 지분 가치로 환산하면 기업 전체 가치는 1500억 달러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했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멀찍이 따돌렸다. 1869년 출범한 골드만삭스의 가치는 990억 달러에 그쳤다. 발행한 주식 수에 4월 10일 기준으로 당일 종가를 곱한 시가총액이다. 앤트파이낸셜의 경이적인 성장의 바탕엔 모바일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가 자리하고 있다. 2016년 이후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제 백화점은 물론 노점상도 모바일 결제를 이용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중국에서는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이 QR코드나 바코드를 내밀면 손님이 휴대전화로 찍어서 결제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금융 대국인 영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아톰뱅크(Atom Bank)’다. 지난해 기준으로 아톰뱅크 예금 보유액은 10억 파운드(약 1조4600억원)를 넘어섰다. 2016년 7월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아톰뱅크는 2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1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돈을 끌어모았다.

아톰뱅크 역시 성장의 핵심엔 ‘모바일’이 있다. 다른 은행과 달리 지점이 없는 아톰뱅크는 오로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은행이 만든 앱보다 훨씬 가볍고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 카카오뱅크도 아톰뱅크를 벤치마킹했다 할 정도로 관련 업계의 선두주자다.

앤트파이낸셜, 아톰뱅크 모두 주요 핀테크 기술을 아우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무선통신 기술 및 사물인터넷(IoT) ▶바이오 인증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클라우드 컴퓨팅 등이다. 최근엔 ‘블록체인 및 분산원장’ 기술까지 도입해 금융 거래 정보를 빠르고 손쉽게 전달, 관리하겠다는 복안도 세웠다.


시티그룹의 전망대로다. 기존 은행업이 직면한 ‘우버모멘텀’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실제 지표도 은행 편이 아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전 세계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14년 9.6%에서 2016년 8.6%로 1%포인트 낮아졌다. 모바일 결제가 휩쓸고 있는 중국, 아시아 신흥국의 경우 같은 기간 각각 3.9%, 5.1%포인트 떨어져 전 세계 평균치를 몇 배나 웃돈다.

이 때문일까. 지난해부터 한국 금융사 수장들도 공식석상에서 이구동성으로 ‘디지털금융’ 강화를 외쳤다.

“4차 산업혁명의 전환기에서 금융 서비스 분야는 어느새 IT 신기술의 전쟁터가 되고 있다. 은행의 경쟁자는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와 같은 글로벌 ICT기업들이 될 것이다.”
-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디지털 기술 분야와 금융을 결합해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 많다. 디지털 기술로 국내 금융산업을 더 발전시켜나가겠다.”
-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디지털을 넘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대형 금융회사는 핀테크 업체들과 경쟁으로 인해 각각의 금융 서비스로 쪼개지는 ‘언번들링(Unbundling)’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 김정태 KEB하나금융그룹 회장-

“‘차별화된 금융 플랫폼 구축을 통한 디지털 시대 선도’를 5대 경영 전략의 하나로 제시하겠다.”
- 손태승 우리은행장-

“디지털은 파급력이 매우 빠르다는 특수성 때문에 선점하지 않으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핀테크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중심의 사업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디지털 혁신’은 수년간 주요 금융회사의 경영 목표 중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현실은 초라하다.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산업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수준은 미국, 일본 등 선도국보다 매우 뒤처진 상황”이라며 “금융산업의 연구개발(R&D) 투자도 매출액의 0.2%에 불과해 타 산업 및 타 국가와 비교하면 매우 미흡하다. 심지어 연구개발비만 보면 미국은 한국의 800배, 영국은 100배 이상 많다”고 했다.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중 한국 기업은 간편송금 앱 ‘토스’를 출시한 비바리퍼블리카가 유일하다.
심윤보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도 “글로벌 은행들은 향후 경쟁 심화에 대비해 대(對)핀테크 투자, 인수, 협업 등을 확대하고 있다”며 “국내 은행권도 향후 국내 규제환경 개선 등으로 인한 경쟁 심화에 대비해 적절한 대응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중 한국 기업은 딱 한 곳뿐이다. 글로벌 종합 회계·컨설팅 자문사인 KPMG 인터내셔널과 핀테크 벤처투자 업체인 H2벤처스는 매년 전 세계 핀테크 기업들의 순위를 매겨서 100위까지 발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7년 순위에 한국 기업으로는 간편송금 앱인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35위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중국 기업의 활약은 돋보였다. 세계 10대 핀테크 기업 중 절반이 중국 기업이다. 1위부터 보면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손을 잡고 세운 종안(衆安)보험(2위) ▶학생 소액 대출 사업을 펼치는 취뎬(趣店)(3위) ▶중국 최대 P2P대출 플랫폼 루진숴(陸金所)(6위)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인 징둥닷컴의 금융 사업부였던 JD파이낸스(9위) 순이었다.

핀테크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핀테크 업체가 글로벌하게 성장하려면 금융회사와 협력해야 한다”며 “하지만 한국 금융업계가 워낙 폐쇄적이라 협력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껏 한국 금융업계는 타 업계와 ‘협력’으로 신사업을 꾀하기보단 ‘적폐’ 청산에 매달려왔다.

공인인증서 논란이 대표적이다. 1999년 전자서명법이 제정되면서 은행을 이용하려면 엑티브엑스를 설치하고 공인인증서로 본인 확인절차를 거쳐야 했다. 정부는 불편을 호소하는 여론에 밀려 2015년 3월 전자서명법에서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조항을 삭제했다. 그런데도 국내 시중은행들의 공인인증서 사용은 여전했다. 다시금 정부가 나서서 공인인증서 완전 폐지 카드를 들고 나왔다. 지난 3월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인인증서 폐지 내용이 포함된 ‘전자서명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이다.

비로소 한국 금융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전국은행연합회(이하 은행연합회)가 블록체인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새로운 결제 인증 수단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은행연합회는 금융결제원, 금융보안원, 시중은행들과 함께 은행권 블록체인 사업자 선정에 나섰고, 80억원대 규모의 사업자로 삼성SDS가 선정됐다.

시범서비스도 곧 시작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KEB하나, IBK기업, 부산, 전북은행 등이 4월부터 시범테스트에 돌입했다. 은행연합회 측은 “7월부터 전국 18개 은행이 모두 참여하는 정식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은행이 서로 이용자의 ‘공개키’를 검증·검인하게 돼 인증서 발급과 등록절차를 딱 한 번만 해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남았다. 블록체인 기반 인증 서비스가 운영되기 위해선 법을 개정해야 한다. 법조문을 살펴보면 이렇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20조의 2에 따르면 개인신용정보는 상거래 종료 후 최장 5년간 보유할 수 있다. 다시 말해 5년 이상 저장한 개인정보는 삭제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하는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를 분산해 기록하기 때문에 데이터의 위·변조는 차단할 수 있지만, 수정하는 건 어렵다.


개인정보보호법도 문제다. 이 법 15조와 17조를 보면 은행들은 제3자 이용 동의를 받아야 개인정보의 수집, 이용, 제공이 가능하다. 공동인증 서비스를 운영해도 결국 은행마다 고객에게 제3자 이용 동의를 받아야 ‘공동 인증’이 가능해진다.

금융권은 정부를, 정부는 금융권을 탓하고 있다. 먼저 금융권 얘기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를 국정과제로 삼았지만, 여전히 규제는 철옹성 같다는 것이다. 실제 핀테크 지원, 금융규제 테스트베드 도입, 인터넷전문은행의 안착 등을 추진해왔지만,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디지털금융연구센터장은 “국내 금융권에 규제 샌드박스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생각은 또 다르다. 제도적 장벽보다 금융사들의 관행이 더디게 변한다고 본다. 익명을 원한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실제 공인인증서 의무사용은 폐지된 지 3년이 흘렀음에도 금융사들 스스로 공인인증서를 사용해 책임을 회피하고 고객들의 불편을 묵과했다”며 “금융 결제원이 5월 ‘공인인증서 이용 절차 간소화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인증서 신규 발급 절차를 대폭 줄여줬다. ‘의무사용폐지’가 공허할 정도로 상당수 금융사 스스로가 관행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증’ 문제가 한국 금융권의 발목을 잡는 동안 일본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일본 미즈호FG와 미쓰비시 UFJFG, 미쓰이스미토포FG 등 일본 3대 은행과 핀테크 업체들은 최근 IBM·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유수 기업들과 손을 잡았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AI), 뇌과학 금융서비스, 로보어드바이저, 로봇자동음성 인식 등을 도입해 투자와 대출 서비스 분야 등으로 진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여의도 금융업계 한 연구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일본 당국과 금융권에선 핀테크가 은행 등 금융산업은 물론 중앙은행 시스템까지 흔드는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반면 한국 금융계는 말로만 ‘디지털 혁신’을 외치는 금융권, 신기술 발상 자체를 막는 정부가 버티고 있죠. 이러다간 중국에 이어 일본 금융권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밀리는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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