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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미 페레스 피탄고 벤처스 캐피털 대표 

스타트업 투자에 나선 대통령의 아들 

김영문 기자
이스라엘은 뜨거운 교육열 덕분인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뿜어냈다. 이스라엘은 혁신을 스타트업 생태계에 고스란히 담아냈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기업을 쏟아냈다. 이스라엘 개국 공신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전 대통령의 아들도 스타트업 혁신에 앞장서고 있다. 그에게 듣는 ‘혁신’의 방점은 이랬다.

▎헤미 페레스 대표는 “나는 창의성과 산업을 어떻게 결합해야 국가는 물론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No room for small dreams.)’

“아버지의 자서전 제목입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께 듣던 말이기도 하죠. 아버지께선 이스라엘이 척박하고 갈등 많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면 과학,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미국 다음으로 많은 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보유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생각이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5월 15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만난 헤미 페레스(60) 피탄고 벤처스 캐피털 대표(이하 페레스 대표)가 한 말이다. 그는 5월 16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페레스 대표는 ‘성장하는 혁신, 확장하는 꿈’ 세션에서 발표를 맡아 ‘창업’을 논했다. 그가 유명한 건 단순히 이스라엘이 스타트업 강국이어서만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인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전 대통령은 거물급 스타다. 지금은 고인이지만, 1993년 이스라엘 외무장관이던 시절부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와 손잡고 ‘오슬로 협정’을 끌어낸 인물이다. 이 협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점령지역 내 팔레스타인인의 자치권을 인정하며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중동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스라엘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아라파트’ PLO 의장과 함께 1994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에 이른다.

그가 주도한 건 평화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위세를 떨치는 이스라엘 국방력도 페레스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유학하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29세에 국방부 부장 자리에 오른다. 신생국이나 다름없던 이스라엘 국방력을 키우려면 기초과학 연구와 기술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현재 이스라엘이 각종 핵무기, 항공우주, 정밀유도 미사일, 레이더 등 첨단 군사기술을 보유한 건 페레스 전 대통령의 공이 크다.

‘기술과 혁신의 꿈’, 부자(父子)를 잇는 고리는 같다. 다만 아들, 페레스 대표는 ‘국방력 강화’가 아니라 ‘스타트업 육성’과 ‘기술 혁신’에 무게를 뒀을 뿐이다. 실제 페레스 대표는 스타트업과 혁신 기술에 투자하며, 이스라엘의 창업 정신을 지탱하는 ‘큰손’으로 알려져 있다. 변신을 모색 중인 한국 산업계도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실제 한국에 머무는 동안 삼성·현대차·네이버·카카오·미래에셋 등 한국 주요 기업 관계자들을 만났다. 페레스 대표가 들려주고자 한 메시지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이스라엘 피탄고 벤처스 캐피탈(이하 피탄고)은 어떤 회사인가.

피탄고는 1993년부터 기술 벤처투자를 표방해왔다. 현재 운용 중인 펀드 금액만 20억 달러(약 2조1500억원)가 넘는다. 주로 이스라엘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최근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사이버 보안, 헬스케어, 사물인터넷(IoT)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잠재력이 있는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현재 250개 회사에 투자하고 있으며, 몇몇 기업은 벌써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적인 기업에 매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피탄고가 투자한 기업은 어떤 곳인가.

대표적인 사례로 스카이큐어가 있다. 이 회사의 사이버 보안 기술을 보고 투자했다. 2017년 매출 5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보안기업 시만텍이 스카이큐어를 인수했다. 이젠 애플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조사의 모바일 기기에서 스카이큐어의 기술이 쓰이게 됐다. 스카이큐어는 각종 모바일 기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 전자상거래 물류 사이트 보더프리, 전자상거래 사기를 막는 리스키파이드, 모바일 미디어 솔루션 기업 라이브유, 3D프린팅 회사 폼랩스, 유전 정보를 분석해 미리 질병을 알려주는 얼리센스 등 IT와 헬스케어, 크게 두 축으로 나눠 포트폴리오를 꾸리고 있다.

특별한 운영 원칙이나 투자 철학이 있나.

‘브레인 파워(Brain Power)’를 가장 중요시한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핵심 기술을 갖고 있다면 딱히 분야를 가리진 않는 이유다.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펀딩하는 순간부터 확장·숙성단계 등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을 때까지 함께한다. 단순히 돈 때문에 엑시트(Exit·투자회수)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가장 유망한 분야는 인공지능(AI)”


암호화폐공개(ICO)로 창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굉장히 흥미로운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투자를 결정한 분야나 회사는 없다. 일각에선 ICO를 통해서 모집한 자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비롯한 관련 시장엔 분명 기회가 있다고 확신한다. ICO 시장을 지속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어떤 기술 분야가 가장 유망하다고 보나.

인공지능 기업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각종 칩셋, 헬스케어, 3D프린팅 분야 기업에 관심이 많다. 최근 관심을 둔 곳은 인터넷, 특히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서비스 분야다. 앞으로 10년 후면 이들이 크게 성장할 거라 전망한다.

아랍인들을 위한 펀드 ‘알바와더’를 조성했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900만 명 정도이고, 이중 소수층은 180만 명 정도다. 이들 대부분이 기독교도, 모슬렘 등이다. 인구는 20%에 달하는데 GDP 기여도는 낮았다. 모슬렘을 위한 벤처 펀드도 없었기에 이들이 하이테크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소수층을 위한 벤처펀드를 조성하고 아랍어를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기반 마켓에 투자했다. 실제 가장 빨리 진화하는 인터넷 시장이 아랍권이다. 벤처펀드 알바와더(Al-Bawader, 아랍어로 ‘싹이 나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스라엘은 정부 주도로 벤처펀드를 시작해 민영화에 성공했다. 비결이 뭔가.

필연이었다. 먼저 정부가 주도해 벤처펀드를 만들었다. 이는 초기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정부도 짊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면 다른 기업에 판 자금으로 또 다른 투자가 이뤄졌다. 결국 비결은 성공적인 엑시트다. 성공사례가 나오면 벤처펀드를 조성할 때 주도권은 자연스레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스라엘도 재벌의 힘이 센 나라로 알고 있다.

지향하는 분야가 다르다. 이스라엘에선 이런 집단이 영위하는 산업은 부동산, 은행, 유통, 중공업 등 전통 제조·서비스업에 집중돼 있다. 반면 신기술 분야는 주로 대학이나 방산기업이 투자한다. 스타트업을 차리는 데는 큰돈도 필요 없다. ‘스타트업 창업→스케일업 육성→기업 성장’으로 벤처 생태계가 잘돼 있다. 스타트업 지원도 민간의 다양한 아이디어 제안을 받아들이는 상향식(Bottom-up)으로 추진한다. 그 덕분에 이스라엘 IT 스타트업의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아 외국 기업이 인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에만 70억 달러 규모의 인수합병(M&A)이 있었다.

투자 활동을 하면서 아버지의 후광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특히 우리 집안은 정치와 경영을 완전히 분리하고 있다. 굳이 유착 관계를 거론하자면 초기 정부가 소유했던 기업들이 그랬다. 이마저도 민영화되면서 주도권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거의 넘어갔다. 지난 25년간 7000여 개에 달하는 스타트업이 생겼다. 안정적인 스타트업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

재벌의 압력과 비영어권인 점 탓에 한국 스타트업 업계가 힘들다는 이도 많다.

오히려 한국 상황이 좋다고 본다. 연간 20억 달러 이상이 스타트업 투자에 쓰인다. 벌써 꽤 규모 있는 한국 내 벤처 투자업계 사람도 만났다. 벤처캐피털사인 카카오벤처스(구 케이큐브벤처스), 엑셀러레이터인 스파크랩스 등이다. 7년 전 세미나 참석차 한국을 찾았을 때보다 한국 스타트업 업계는 더 발전했다. 한국은 모범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한 나라라고 본다.

창업을 원하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이스라엘과 여러 가지 조건이 다르겠지만, 창업 방향은 글로벌에 맞춰야 한다. 처음부터 진출할 시장을 글로벌로 잡으면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이번에 만났던 삼성, 현대차, SK텔레콤, 카카오벤처스, 한화, 미래에셋 등 관계자들도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관심이 많았다. 글로벌 시장도 매우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혹시 관심 있는 한국 기업이나 분야가 있나.

한국 자동차 산업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가장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서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분야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피탄고가 보여줄 전략은 뭔가.

‘협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한국 기업과 다른 시장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자 한다. 전 세계 주요 벤처투자사와 연결된 피탄고가 해외 진출에 필요한 과정 전반(기술협력, 인수합병, 인력교류, 투자 등)에 걸쳐 도와줄 수 있다.

미팅했던 한국 기업들은 어떤 점을 주로 물었나.

이스라엘과 협력에 관심이 많았다. 10월에 문을 여는 이스라엘 혁신센터(IIC)도 소개해줬다. 우리가 보유한 기술 스타트업 리스트도 공유했다. 이스라엘 시장 진출은 물론 스타트업 인수합병, 기술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실현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또 각종 글로벌 기술 이슈, 산학 협동 시스템 등을 묻는 경우도 많았다.

올해 계획이 있다면.

몇 가지 있다. 먼저 펀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스라엘 혁신센터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중동 전역의 젊은 세대가 혁신을 함께 일궈나갈 발판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더불어 아버지가 늘 말하던 혁신의 가치를 자서전을 통해 널리 알리고 싶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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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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