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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ICT·게임 부자들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최영진 기자
한국의 50대 부자 리스트에 ICT·게임 부자들의 이름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10명의 ICT·게임 창업가가 이름을 올렸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ICT·게임 창업가 10명이 ‘2018 한국 50대 부자’ 리스트에 포함됐다. 2005년 처음 실시된 한국의 50대 부자 리스트에는 단 2명뿐이었다. 13년 동안 한국 경제에서 ICT와 게임 분야의 경쟁력이 커진 것이다. 특히 김정주 NXC 대표를 포함해 게임 기업 창업가 6명이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게임 업계의 돌풍이 거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처음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주목받은 창업가는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이다. 올해 새롭게 등장한 창업가는 온라인·모바일 게임 ‘검은 사막’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김대일 펄어비스 의장이다. 그는 1조1240억원의 재산 가치로 42위에 올랐다. 한국의 부자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살펴봤다. 주인공 10명은 모두 ‘자수성가형’ 부자로 꼽힌다.

10위권에 게임 기업 창업가 3명이나 이름 올려


▎지난 2월 6일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이 서울 신도림 쉐라톤서울 디큐브시티호텔에서 열린 ‘제4회 넷마블 투게더 위드 프레스’ 행사에서 신작 게임의 특징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50대 부자 리스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ICT·게임 창업가는 김정주(51) NXC 대표다. 2005년 한국의 50대 부자에서 24위를 차지했다. 올해 재산 가치는 7조6006억원으로 5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게임 기업 창업가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김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후 카이스트에서 전산학과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4년 12월 박사 과정을 밟는 도중 넥슨을 창업했다. 현재 넥슨은 NXC를 지주회사로 넥슨 일본법인, 넥슨 아메리카, 넥슨 유럽 등 57개 해외 계열사와 22개 국내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011년 12월에는 넥슨 일본법인이 도쿄증권거래에 상장했다. 2017년 12월 현재 넥슨 임직원은 5700여 명에 달한다. 넥슨이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은 약 90종, 전 세계 190여 개 국가에 진출했다. 매출 구조도 해외 비중이 높다. 2017년 넥슨이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인 매출은 1조5110억원, 전체 매출(2조2987억원)의 약 66%에 이른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평균 30%나 된다.

넥슨의 현재를 만든 대표적인 온라인게임은 1996년 4월 출시한 MMORPG 장르의 ‘바람의 나라’다. 이후 ‘메이플스토리(2003년 4월 출시)’, ‘카트라이더(2004년 6월 출시)’, ‘던전앤파이터(2005년 8월 출시)’, ‘마비노기 영웅전(2010년 1월 출시)’ 등이 넥슨의 대표작이다. 모바일게임은 ‘HIT(2015년 11월 출시)’, ‘메이플스토리M(2016년 10월 출시)’, ‘다크어벤저 3(2017년 7월 출시)’ 등이 꼽힌다.

넥슨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게임은 ‘바람의 나라’다. PC통신 천리안을 시작으로 1996년 11월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1년 국내 온라인게임 최초로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로『기네스북』에 등재됐다. 2016년 기준 누적 가입자 수가 2300여 만 명에 이른다. 국내 회원수 1800만 명을 기록한 ‘메이플스토리’는 국민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온라인게임이다. 현재 110여 개 국가에 진출해 회원 1억7000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모바일게임 ‘HIT’는 출시 하루 만에 구글 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최고 매출 순위 1위를 달성했다. 2015년 구글 플레이 ‘올해의 게임’에 선정됐다. 2017년 5월 기준으로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2100만 건을 돌파했다.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한 창업가는 온라인게임 ‘크로스파이어’로 중국 시장을 점령한 ‘은둔의 경영자’ 권혁빈(45) 스마일게이트그룹 의장이다. 올해 8위에 올랐다.

그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미국 경제지 포브스 덕분이다. 2015년 4월 포브스가 발표한 ‘한국 50대 부자’ 리스트 7위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면서부터다. 당시 그의 재산 가치는 3조8900억원, 올해 그의 재산 가치는 4조 6032억원으로 상승했다. 2018년 3월 말 현재 계열사는 스마일게이트엔터테인먼트, 선데이토즈 등 35개사다.

1999년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취업 대신 교육용 소프트웨어 개발사 ‘포씨소프트’를 창업했다. 그의 목표는 게임 개발사. 2002년 포씨소프트를 동업자에게 물려주고 스마일게이트를 창업했다. 스마일게이트는 2007년 5월 국내 오픈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1인칭 슈팅 게임 ‘크로스파이어’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슈팅 게임 시장은 넥슨과 네오위즈의 게임이 장악하고 있었다. 돌파구를 중국에서 찾았다. QQ메신저 사업을 진행하던 텐센트를 통해 2008년 중국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대박’을 쳤다. 중국 진출 성공을 발판으로 브라질, 필리핀, 베트남 등 해외시장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전 세계 동시 접속자 800만 명, 회원 6억5000만 명을 보유한 글로벌 게임으로 성장했다. 현재 중국과 유럽, 북남미 등 80여 개국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2013년 미국 포브스는 ‘단일 게임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게임’이라고 밝혔다. 스마일게이트 게임 부문 전체 매출액 중 90% 정도를 크로스파이어가 차지하고 있다.

10위권에 세 번째로 이름을 올린 게임 기업 창업가는 9위를 차지한 방준혁(51) 넷마블게임즈 의장이다. 자본금 1억원으로 창업한 스타트업을 14조원 가치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진품 흙수저’. 지난해 포브스가 발표한 ‘2017년 한국 50대 부자’에서 재산 1조5923억원으로 24위에 처음 진입했던 방준혁 의장이 스스로를 부르는 별명이다. 방 의장의 올해 재산은 3조1045억원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까지 제친 기록이다. 지난해 5월 유가증권시장(KOSPI) 상장에 성공한 결과다. 상장 첫날 시가총액 14조원을 기록하면서 코스피 21위 기업에 올랐다. 방 의장은 넷마블게임즈 지분 24.47%를 보유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창업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그를 만든 원동력은 ‘게임 기업을 창업하고 싶다’는 꿈이었다. 2000년 자본금 1억원, 직원 8명으로 넷마블을 시작했다. 게임 유통의 퍼블리싱 사업, 문화상품권 결제, 부분 유료화 등으로 넷마블은 승승장구했다. 2004년 CJ그룹이 인수했고, 2006년 방 의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진에서 물러났다. 방 의장의 부재는 넷마블의 위기였다. 이후 신작 게임들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2011년 6월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던 넷마블에 복귀했다. 그의 전략은 모바일게임 중심이었다. ‘다함께 차차차 포 카카오(2012년 12월 출시)’, ‘모두의 마블(2013년 6월 출시)’, ‘세븐나이츠(2014년 3월 출시)’ 등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다함께 차차차’는 보름 만에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세븐나이츠’는 2016년 넷마블 게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넷마블의 최고 히트작은 모바일게임 ‘리니지2 레볼루션(2016년 12월 출시)’이다. 게임 하나가 연 매출 1조원을 올릴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 2017년 매출은 2조4000억원, 이중 해외 매출 비중이 54%를 차지한다. 2016년 대비 매출액이 61.6% 성장했다.

이해진 전 의장과 한배 탔던 이들, 이젠 경쟁자로 나서


▎지난 5월 15일 서울 강남구 라움아트센터에서 열린 리니지M 서비스 1주년 기념 행사 ‘YEAR ONE’에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범수(53) 카카오 의장은 올해 재산 가치 2조7833억원으로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한국의 ICT 역사를 대변하는 창업가로 꼽힌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98년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하면서다. 2000년 한게임과 네이버컴의 합병으로 NHN(현 네이버)이 탄생했다. 김 의장은 NHN 사장과 NHN USA 대표를 지내다 독립, 2006년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을 창업했다.

NHN을 떠나 절치부심하던 김 의장을 ICT 업계 전면에 나서게 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2010년 3월 출시한 ‘카카오톡’이다.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활형 플랫폼으로 발전한 카카오톡은 뉴스와 웹툰, 음악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미디어 콘텐트 플랫폼이다. 소셜 기반의 ‘게임 플랫폼’이기도 하다. 모바일로 소액 송금과 결제를 할 수 있는 ‘핀테크 플랫폼’ 역할도 한다.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검색할 수 있는 ‘검색 플랫폼’ 역할도 하고 있다. 메신저를 플랫폼화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게임이었다. 2012년 7월 ‘카카오게임하기’가 출시됐다. 애니팡, 드래곤 플라이트 등의 국민 게임을 배출하며 카카오톡은 막강한 게임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카카오톡은 ‘만능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각종 수치는 카카오톡의 위세를 대변한다. 1월 기준 카카오톡 모바일 버전 가입자는 2억7000만 명, 하루 평균 송수신되는 메시지만 80억 건에 이른다.

‘리니지’ 하면 떠오르는 게임 기업이 엔씨소프트다. 김택진(52) 엔씨소프트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석사 출신으로 1997년 3월 창업했다. 20년 후 엔씨소프트는 2017년 매출 1조7587억원, 영업이익 5850억원을 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엔씨소프트의 평균 해외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30~40%를 차지한다.

엔씨소프트가 처음 개발한 게임이 ‘리니지(1998년 11월 출시)’다. 엔씨소프트의 현재를 만든 게임이다. 리니지 덕분에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리니지의 성과는 한국 게임의 신기록이기도 하다. 서비스 시작 15개월 만에 최초로 100만 회원 온라인게임 시대를 열었다. 단일 게임 최초 누적 매출 1조원(2007년)을 기록했고, 2013년 누적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리니지 출시 20년을 맞아 다양한 형태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게임 ‘리니지M’의 사전예약 계정은 550만 개. 국내 모바일게임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출시 첫날 매출은 107억원, 하루 최고 매출은 13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대만에 출시된 리니지M은 구글 플레이에서 6개월 동안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지난 5월 15일 리니지M 서비스 1주년 미디어 간담회에 키노트 발표자로 나선 김택진 대표는 “리니지를 벗어나 리니지M만의 오리지널리티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2013년 NHN이 네이버와 기업 분할을 할 때 네이버를 떠나 NHN엔터테인먼트를 맡은 이준호(55) 회장이 35위를 차지했다. 그는 한국 ICT 업계에서 ‘정보 검색의 아버지’로 통한다. 네이버가 구글의 공격을 이겨내고 있는 것은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의 검색 기술을 접목한 덕분이다.

이 회장이 숭실대학교 컴퓨터학부에서 부교수로 일하던 시절 당시 네이버컴의 이해진 대표가 찾아와 자연어 처리 검색 기술을 공동 개발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 회장은 2000년 ‘서치솔루션’을 설립했고, 검색엔진 ‘넥서치’ 개발에 성공했다. 2001년 네이버컴이 주식교환 방식으로 서치솔루션을 인수하고 NHN으로 사명을 바꿔 이 회장이 NHN의 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 2005년 이 회장은 NHN의 CTO로 입사하면서 이해진 당시 NHN 의장과 한배를 탔지만, 2013년 8월 기업 분할 당시 보유하고 있던 NHN 주식 3.74% 중 일부를 팔아 NHN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사들였다.

NHN엔터테인먼트는 모바일게임 플랫폼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의 NHN엔터테인먼트를 만든 것은 2015년 8월 서비스를 시작한 ‘프렌즈팝’이 대표적이다. 월 매출 90억원 정도를 벌어들이면서 모바일게임 기업으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일본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라인디즈니쯔무쯔무’도 NHN엔터테인먼트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지난해 7월 이 게임으로 누적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이 의장이 신경을 쓰고 있는 신사업은 간편결제 사업 ‘페이코’다. 2015년 8월 출시한 서비스로, 2018년 상반기 기준 가입자 수는 800만 명이 넘는다. 1분기 거래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뉴 페이스 김대일 의장 스토리 눈길 끌어


▎지난해 9월 14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펄어비스의 코스닥 신규 상장 기념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최규준 한국IR협의회 부회장, 김재준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장, 정경인 펄어비스 대표이사, 김대일 펄어비스 이사회 의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정진교 코스닥협회 상무. / 사진:연합뉴스
40위를 차지한 이상혁(48) 옐로모바일 대표는 ‘벤처 얼라이언스’ 모델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는 2012년 말 ‘벤처 얼라이언스(연합)’를 표방한 옐로모바일을 창업했다. 지난해 40위를 차지했고, 올해도 1조1561억원의 재산 가치로 40위에 올랐다. 옐로모바일의 계열사는 140여 개다.

다만, 벤처 연합군 모델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시너지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 ‘계열사 관리와 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옐로모바 일을 둘러싼 논란을 이 대표가 어떻게 해결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올해 리스트에서 가장 주목받는 창업가는 김대일(39) 펄어비스 의장이다. 게임 하나로 글로벌 시장을 휩쓴 개발자 출신 창업가다. 김 의장은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 빠졌던 게임광이었다. 한양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했지만, 게임을 만들기 위해 중퇴를 결정했다. 가마소프트에서 3D MMORPG ‘릴 온라인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NHN엔터테인먼트에서 MMORPG 프로젝트 ‘R2(Region of Revolution)’, 액션 MORPG 장르의 ‘C9’ 게임 등을 개발해 큰 인기를 끌었던 개발자였다. 잘나가던 게임 개발자는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 2010년 9월 펄어비스를 창업했다.

지금까지 펄어비스가 론칭한 게임은 단 하나. MMORPG 장르의 ‘검은사막’뿐. 2014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2015년 5월 일본, 같은 해 10월 러시아, 2016년 3월에는 북미와 유럽에 순차적으로 출시했다. 5만원 정도인 게임 패키지는 150여 개 국가에서 820만 장 넘게 팔렸다. 해외 매출 비중이 80%를 넘는다. 2016년 이 게임 하나로 61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117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9월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펄어비스의 시가총액은 5월 현재 2조7440억원에 이른다.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대학까지 중퇴하고 펄어비스를 창업해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김 의장은 올해 ‘한국의 50대 부자’에 42위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김 의장은 펄어비스 지분 36.33%를 보유해 그의 재산 가치는 1조1240억원이다.

‘2017 한국 50대 부자’ 리스트에서 47위를 차지했던 김범석(41) 쿠팡 대표가 올해도 47위에 올랐다. 그의 재산 가치는 1조170억원.

미국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2010년 8월 한국에 돌아와 자본금 30억원으로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며 소셜커머스 쿠팡을 창업했다. 2015년 6월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원의 투자를 유치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17년 쿠팡의 매출은 2조6846억원으로 한국의 이커머스 기업 옥션, 11번가, 위메프, 티몬 등보다 월등히 높다. 문제는 영업손실이다. 2016년 565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2017년에는 전년 대비 700억원 이상이 늘어났다. 11번가, 위메프, 티몬 등은 영업손실이 줄어들었지만 쿠팡만 적자 폭이 늘었다. 김 대표에게는 한국 유통업계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와, 쿠팡의 적자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이해진(52)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는 한국의 50대 부자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창업가로 꼽힌다. 한국의 ICT 역사를 이끌어온 창업가로 올해 1조63억원의 재산 가치로 48위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전산학 석사를 마친 후 삼성SDS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99년 6월 네이버컴(현 네이버)을 창업했다. 당시 한국의 인터넷 검색 시장의 강자는 야후와 다음.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를 제치게 된 것은 2002년 10월 론칭한 대화형 검색 서비스 ‘지식iN’이다. 네티즌의 지식을 검색에 이용하면서 야후와 다음이 선점했던 검색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후 검색광고, 카페, 블로그, 이메일 등의 서비스를 연달아 론칭하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2017년 3월 네이버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글로벌 투자책임자 역할을 맡아 해외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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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호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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