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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의 두 얼굴] ‘뜨거운 감자’ 지주회사의 어제와 오늘 

 

김영문 기자
IMF 외환위기는 대단했다. 법으로 금지했던 지주회사 체제마저 ‘백마 탄 왕자’로 탈바꿈시켰다. 거미줄처럼 얽힌 기업 지배구조를 풀 완벽한 대안으로 보였다. 도입 후 20년, 어느새 지주회사는 총수 일가 배만 불리는 원흉이 돼 있었다. 지주회사 논란의 시작부터 최근까지 상황을 정리해봤다.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

1981년 정부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이하 공정거래법)’을 시행하면서 다진 결의다. 더불어 담합 및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제해 자유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도 밝혔다. 이후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문제가 됐고,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1987년 정부는 대기업집단 지정, 상호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 등을 시행했고, 재벌이 계열사 간 금융대출을 몰아주는 현상이 나타났다. 경제기획원 산하의 공정거래실도 그 역할이 대폭 커지면서 1990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 독립해 별도 부처가 됐다. 공정위는 관련 조치를 잇따라 내놨다. 1992년 계열사 간 채무보증제한을 도입했고, 지주회사(Holding Company) 설립도 금지했다. 경제력이 한 곳에 집중되면 경제위기 때 더 큰 문제가 될 거라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후 한국의 재벌 정책은 송두리째 변했다. 지주회사만 없었지 재벌은 무분별하게 확장에 나섰고, 과잉중복투자도 서슴지 않았다. 재벌이 외환위기를 일으킨 주범 중 하나로 꼽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대중 정부는 금융, 기업, 노동, 공공 등 4대 부문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최대 현안으로 삼았다.

규제도 강화됐다. ▶공정거래법 ▶상법 ▶자본시장 관련 등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접근했다. 외환위기는 공정위가 쥔 칼날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계열사 간 채무보증을 전면 금지했고,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도 대거 적발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달라진 게 또 있었다. 공정위가 금기시했던 지주회사 체제는 어느새 장려책이 돼 있었다.

“재벌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순환출자 구조’의 고리를 끊고 기업의 투명성과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의의가 있다.”

2003년 3월 1일 LG가 지주회사 전환을 선언하면서 밝힌 배경이다. 정부가 내건 지주회사 장려책 내용과 다를 바 없었다. 당시 재계 2위 그룹인 LG가 국내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 형태는 크게 달라진다. LG는 지주회사 ‘(주)LG’를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고,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표준모델이 됐다. 이후 15년간 SK·GS·두산·LS·CJ·롯데 등 한국 지주회사는 193개(금융지주회사 10개 포함)로 늘어났다.

LG가 포문 연 ‘지주회사’ 이젠 193개로 늘어


지주회사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회사 주식을 소유해 사업 활동을 지배하는 회사다. 사업 규모가 크지 않을 땐 한 회사 내에 여러 사업을 두고 움직여도 상관없으나 사업 범위가 넓어지면 사업 간 독립성이 중요해진다. 이렇게 분리된 회사는 각자 사업에 맞는 경영활동을 벌이며 살아남는다. 이 회사들을 모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회사가 바로 지주회사다.

현행법에서 지주회사로 보는 기준은 이렇다. 자산 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고, 자회사 주식 가액의 합계가 자산 총액의 50% 이상인 회사를 지주회사로 본다. 조건이 더 붙는다. 순환형 출자를 막고 단순하고 투명한 출자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지주회사는 계열회사 중 자회사 주식만, 자회사는 손자회사 주식만 보유할 수 있다. 부채비율도 200%를 넘어선 안 된다. 지주회사가 빚을 내서 다른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책도 마련됐다. 신건식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2007년 지주회사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부채비율을 100%에서 200%로 상향하거나 상장 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초기 50%에서 30%, 다시 20%로 완화했다”며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생기는 세금도 과세이연해주는 등 각종 세금 혜택도 안겨줬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지주회사 설립·전환 요건’을 완화했어도 모든 기업들이 지배구조를 지주회사로 바꾼 건 아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직접 대기업 개혁 과제로 총수 일가의 편법 지배력 확장 억제, 지배구조 개선, 일감 몰아주기 해소 등을 강조했다.

한국 대기업 57곳 중 32곳이 지주회사


문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내건 카드였기에 재벌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먼저 롯데그룹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지난 2014년 6월까지 75만 개에 달하는 순환출자 구조로 돼 있었지만, 올해 롯데그룹은 롯데제과와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등 롯데그룹 4개 계열사의 투자부문, 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해 롯데지주가 롯데쇼핑 등 투자부문을 흡수합병 하는 식으로 총 53개 계열사를 거느린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인적분할이란 법률상 ‘합병’의 정반대 개념이다. 하나의 회사를 두 회사로 나눠 별개의 회사로 만들고 주주 구성은 그대로 둔다. 그럼 기본 회사 주식 100주를 갖고 있던 주주는 두 회사의 주식을 각각 100주씩 갖게 된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도 당장 지주회사 전환은 아니지만, 지배구조를 바꾸겠다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이 실질적인 지주회사란 논란을 뒤로한 채 지난 4월 삼성전자는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은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사들여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수직 계열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반대로 개편안은 무산됐다.

한국 대기업집단에서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한 경우는 절반 정도다. 공정위에 따르면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은 총 57곳이다. 이 중 LG·SK·GS·롯데·CJ·코오롱·부영·셀트리온 등 25곳이 지주회사 체제를 갖췄다. 나머지 32곳 가운데 외국계 주주가 지배하는 에쓰오일·한국지엠을 비롯해 민영화된 공기업인 KT·포스코·대우조선 등 7곳을 제외하면 25곳(삼성·현대차·한화·네이버·동부 등)이 아직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지 않았다.

지주회사 전환 이슈가 다시금 불거지자 이들은 한층 더 바빠졌다. 올해 초 재계 25위 효성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엔 현대산업개발·현대중공업·SK케미칼 등이 줄줄이 지주회사 도입에 나섰고, 현대중공업·오리온·매일유업·경동도시가스 등 10곳이 넘는 기업이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마쳤다. 이런 추세는 해가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일반 지주회사는 2014년 108개에서 2017년 9월 30일 기준 183개로 3년간 80여 개나 급증했다.

왜 이렇게 속도가 빨라졌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문 대통령이 강조한 대기업 개혁에 부응하는 차원이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8할이 순환출자에서 비롯된다. 최대주주나 대주주가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기업을 중심으로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회사끼리 순차적으로 사들여 ‘순환고리형’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식이다.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하면 이 복잡한 고리는 ‘지주회사’, ‘지주회사의 계열사’란 구조로 단순하게 풀린다. 현행법상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의 주식은 40% 이상 확보하면 된다. 일감 몰아주기 문제도 사라진다. 지주자 체제하에선 지주회사의 계열사끼리 거래는 금지되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전환 혜택, 지배력 강화에 이용


전환에 따른 혜택도 여전하다. 하나는 ‘지배력 키우기’다.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최대주주나 대주주의 지배력이 훨씬 커진다. 이른바 ‘자사주(자기 회사의 주식)의 마법’으로 불린다. 원래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회사가 인적분할에 나서면 법인이 달라지면서 의결권이 부활한다. 자연스레 인적분할만 해도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배력은 더 커지고, 대주주 외 주주의 기업 내 발언권을 약해진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인적분할을 활용할 경우 기존 주주의 분할 자회사에 대한 의결권이 적게는 2.6%, 많게는 30% 넘게 희석될 수 있다.

다음은 세제 혜택이다. 인적분할이 이뤄지면 최대주주는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회사에 출자하고, 다시금 지주회사가 신주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세금 혜택이 주어진다. 이종광 김앤장 법률사무소 회계사는 “지주회사는 신주를 발행해 최대주주에 부여하면서 양도 차익이 발생한다”며 “하지만 조세특례법상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취득한 주식(사업회사) 중 현물출자로 인해 생긴 양도차익엔 양도소득세나 법인세 과세이연(주식 처분 시 과세) 해준다”고 설명했다. 최대주주가 지주회사의 지분을 매각할 이유가 없기에 사실상 면세 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 혜택도 2019년 말에 끝난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이 신년사에서 “2018년은 지주회사 전환의 최적기”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물론 지주회사로 전환한다고 총수 일가의 편법 승계 가능성까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지주회사가 20% 또는 40%의 지분을 확보하지 않은 기업에 일감을 몰아주면 막을 방법이 없다.

실제로 그랬다.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출범한 지주회사들이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 일가의 주머니를 채워온 것으로 드러났다. 7월 3일 공정위는 ‘지주회사 수익 구조 및 출자 현황’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내부거래 비율이 50% 이상이었다. 계열사들로부터 간판값(브랜드 수수료)과 부동산 임대료 등도 과도하게 챙겼다. 지주회사가 직접 출자해야 하는 자회사보다 손자·증손회사를 늘리는 수법으로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더 키우기도 했다.

분석 대상은 기업집단 전체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된 SK, LG, GS, 한진칼, CJ, 부영, LS, 하림지주, 코오롱,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동원엔터프라이즈, 한라홀딩스, 세아홀딩스, 아모레퍼시픽그룹, 셀트리온홀딩스, 한진중공업홀딩스, 하이트진로홀딩스, 한솔홀딩스 등 18개 그룹의 지주회사다. 이 지주회사들의 지난해 매출을 보면 배당 수익이 평균 40.8%에 그쳤다. 부영과 셀트리온은 한 푼도 없었고, 한라(4%), 한국타이어(15%), 코오롱(19%) 등도 20% 미만이었다. 계열사 주식을 갖고 여기서 나오는 배당금이 주요 수입원이어야 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배당 외 수익 비중이 43.4%로 배당 수익보다 많았다. 자회사에서 받는 브랜드 수수료와 부동산 임대료, 경영컨설팅 수수료 등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내부거래 비중이다. 55.4%에 달해 사익 편취 규제 대상 회사의 평균(14.1%)의 4배에 육박했다. 이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해도 일감 몰아주기 행태는 여전하다는 증거였다.

지주회사 전환 후에도 일감 몰아주기 여전

손자·증손회사를 늘리는 방식으로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키우기도 했다. 지주회사 평균 소속 회사 수는 2006년 15.8개에서 2015년 29.5개로 크게 늘었다. 자회사 수는 9.8개에서 10.5개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손자 회사는 6.0개에서 16.5개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익명을 원한 재계 한 관계자는 “자회사의 지분을 늘리려면 지주회사의 자본금을 늘려야 하는데 총수 일가의 자금이 직접적으로 더 들어갈 수 있다”며 “흔히들 재계에선 자회사보다 손자·증손회사를 늘려 지배력을 키우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엄수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도 “지주회사 외부 계열사가 지주회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는 맹점 등을 활용해 부의 편법 이전이 여전히 가능하다”며 “지주회사나 특정 자회사의 지배주주를 위해 다른 자회사의 소액주주들 권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던 지주회사 체제는 20년 만에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게 생겼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제도 개선안을 공정거래법에 담아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국회는 공정위의 요란한 ‘지주사’ 바통을 넘겨받을 예정이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808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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