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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가 되지 못한 이유 ‘본질 결핍’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얼마 전 길거리에서 오래된 CD를 2000원에 샀다. 1990년대 초반에 나온 뉴에이지 음악이 담긴 CD였다.

얼마 전 길거리에서 오래된 CD를 2000원에 샀다. 1990년대 초반에 나온 뉴에이지 음악이 담긴 CD였다. 25년여 만에 집에서 들어보았다. 첫 번째 느낌은 ‘어? 이게 아닌데…’였다. CD는 윌리엄 오라(William Aura)의 ‘하프 문베이’였다. 생각보다 별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유튜브에서 안드레아스 볼렌바이더(Andreas Vollenweider)의 음악도 찾아봤다. 역시 생각만큼 감동을 주지 못했다.

25년 전의 짜릿한 감동은 가짜였을까. 아니다. 그 시절은 20대나 50대나 나이와 상관없이 뉴에이지 음악에 열광했다. 미래의 음악은 뉴에이지 음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음악’이었고 그만큼 ‘신선’했다. 2019년을 사는 지금도 뉴에이지 음악은 존재한다. 다만 협소해졌다. 현재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하면 ‘힐링용 피아노 독주곡’이 주류다. 2000년대 한때 유행했던 유키 구라모토나 앙드레 가뇽의 음악은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당시 뉴에이지 음악의 주류였던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전자음악과 전통악기의 접목은 지금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다시 듣게 된 방겔리스(Vangelis)의 ‘불의 전차’ 정도가 살아남았을 정도다.

1986년 그래미상에 새로운 분야로 진입한 뒤 이후 2000년대 초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자음악이 포함된 뉴에이지 음악은 왜 신기루처럼 인기를 잃었을까. 따져보면 당시의 뉴에이지 음악은 ‘음악의 본류’에서 벗어나 태어난 이질적인 존재였다. 1990년대 초반은 미디(MIDI)의 표준화와 디지털 산업의 발달로 작곡에 막 컴퓨터가 사용되던 때였다. 그런데 당시 신디사이저나 컴퓨터는 집 한 채 값이었다. 부자 나라의 혜택받은 소수가 아니라면 접근조차 불가능했던 영역이 바로 컴퓨터 음악이었다.

당시 대중은 뉴에이지 음악의 ‘신기한 소리와 효과’에 반한 것일 뿐 음악 자체에 반한 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자음악의 무예술성을 알게 됐다. 사람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매번 다르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고 심지어 활을 바꿔도 소리가 다르다. 결국 전자음악은 보조일 뿐인데 그 시절에는 ‘신기함’을 앞세워 주인공으로 쓴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K드라마의 강점은 ‘가족, 질투, 눈물샘 자극’이라는 드라마의 본질에 충실해 살아남았고 지금도 번성하고 있다. 대중은 늘 새로운 것에 갈증을 느낀다. 결국 유행으로 끝나느냐, 주류가 되느냐는 ‘본질’에 얼마나 충실하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201902호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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