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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모가 들려주는 예술가의 안목과 통찰(6)] 한지에 물들인 꿈, 전광영 

“나는 지금도 하루에 1㎝씩 변한다” 

작가 전광영(75)에게 2018년은 화려한 해였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Brooklyn) 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전시를 시작했고(11월 18일~2019년 7월 28일), 영국 런던의 브리티시 뮤지엄은 그의 작품 두 점을 사들였다. 경기도 용인에 미술관과 스튜디오를 겸한 ‘뮤지엄 그라운드’도 개관했다(10월 6일). 서울에서는 7년 만에 PKM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4월 6일~6월 5일). 올해는 더 바쁘다고 했다. 내년 일정도 이미 여럿 잡혀 있다. 그렇다. 그에게 ‘가장 화려한 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

▎미술관과 스튜디오를 겸한 ‘뮤지엄 그라운드’에서 만난 전광영 작가. 이곳은 그의 ‘둥지’다.
7월 중순 찾아간 경기도 용인시 고기리에 있는 ‘뮤지엄 그라운드’는 한적했다. 특별기획전 ‘르네 마그리트’가 막을 내리고 경주 우양미술관 전시를 위해 떠나버린 공간에는 새 기획전 준비를 앞두고 정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래피티전을 할 겁니다. 젊은 작가들의 분출하는 열정을 담아보려고요. 학예사들이 뭔가 재미있는 걸 해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한번 기대해보세요.”

전광영 작가의 얼굴에 미소가 그득하다. 전 세계 미술관 및 유명 갤러리에서 부쩍 늘어난 러브콜과 해외 출장에 “늙을 시간이 없다”며 호탕하게 웃는 그다.


▎‘뮤지엄 그라운드’ 개관전의 작가이자 슈퍼컬렉터인 장 보고시안과 함께.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그것도 무려 9개월 동안 전시를 했습니다.

뉴욕 5대 미술관으로 불리는 곳이 메트로폴리탄·구겐하임·휘트니·MoMA·브루클린인데, 이 중 한 곳에서 전시한 한국인은 백남준(구겐하임), 이우환(구겐하임), 이불(MoMA) 작가 정도입니다. 2층 전시장 한 곳에 제 작품 6점(평면 5점, 설치 1점)이 걸렸죠. 마침 1층에서 프리다 칼로 전시를 크게 하는 바람에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해 덩달아 많이 알려졌어요.

전시가 7월 말로 끝나네요.

아, 브루클린 전시는 오리건대학교에 있는 조던 슈니처(Jordan Schnitzer) 미술관으로 이어집니다. 8월 24일부터 내년 6월 28일까지 하게 되죠. 미국은 워낙 땅이 넓고 제 작품에 관심 있는 곳도 많은데, 뉴욕에 왔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순회전이 돼버렸습니다. 나이키 본사가 이 도시에 있는데, 마침 나이키 후원도 얻게 됐어요. 감사한 일이죠.

브루클린 미술관 전시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런저런 수식어가 필요 없더라고요. ‘브루클린에서 전시한 작가’라고 소개하면 표정이 금세 바뀌니까. 내년 하반기에는 모스크바 현대미술관에서 전시가 확정됐는데, 이것도 러시아 큐레이터가 브루클린 전시를 보고 나서 연락해 성사됐습니다. 저명한 갤러리에서 작품을 잘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명한 미술관에서 연락을 받는다는 게 작가로서는 대단한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잘 모르는 분들은 ‘얼마를 내고 전시하는 거냐’ 묻기도 하시는데, 모든 것은 큐레이터와 미술관이 결정하고 저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전시하는지, 제겐 권한이 하나도 없어요.

갤러리 활동도 활발하시죠.

독일 뒤셀도르프 벡&에글링(Beck&Eggeling) 갤러리 전시가 곧 마무리(5월 23일~7월 27일)되고, 내년 3월에는 홍콩 펄 램(Pearl Lam) 갤러리에서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 맞춰 전시를 합니다. 이 화랑엔 전속작가가 많은데, 제가 메인 작가로 나서게 됐어요. 오는 11월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술관에서 전시 일정이 확정됐고. 내년엔 런던 사치갤러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여는 그룹전에도 초대받았습니다. 확정이 안 돼 아직 밝힐 수 없는 일정도 좀 있어요.

전시 준비에 바쁘시겠어요.

늘 고3 수험생 같은 기분입니다. 항상 새로운 걸 보여드려야 하고, 그게 통해야 하니까.

미국 보험사에서 세일즈 훈련도 받아


▎브루클린 미술관에 설치된 작품 ‘집합‛
작가 전광영이 ‘세계에서 통하는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환쟁이’가 된 2대 독자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회한, 미국 유학 시절 뼈저리게 느꼈던 ‘변화’에 대한 강박관념이다.

강원도 최초의 연탄공장을 설립하고 사슴농장 및 건축자재 분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던 아버지는 서울로 유학 보낸 똘똘한 아들이 판검사나 경영인이 되어 가업을 잇길 바랐지만, 아들이 가져온 것은 홍익대 미대 합격증. 13년간 미국에서 유학할 때도 지원은커녕 전화 2통이 전부였다. “2003년 1월에 돌아가셨는데, 마지막까지도 제 손을 잡아주지 않으셨어요. 결국 임종도 못 했죠. 나가 있으라 하셔서. 아버지 마음이 이해는 돼요. 사업을 이어받았다면 돈도 많이 벌었겠지. 다시 아버지를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까, 그 마음을 한 번도 잊지 않고 살아왔죠.”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시 돌아가면, 자신 없어. (이 길은) 아주 힘든 거야.”


▎다양한 스타일의 ‘집합’ 작품들
‘남아입지출향관 학약불성사불환(男兒立志出鄕關學若不成死不還)’의 심정으로 뉴욕 필라델피아 미대에 들어가고 미국 화단을 기웃거렸지만, 그의 자리는 없었다. “달걀을 들고 갔는데, 사방이 바위였다”고 그는 말한다. “극단적인 시도도 2번이나 했죠. 그런데, 여기서 내가 죽어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겠구나 싶더라고.”

살아야 했다. 프루덴셜보험사에서 정식으로 세일즈 교육을 받았다. 안 사겠다는 것을 팔아야 진정한 세일즈맨이라고 배웠다. 찾아온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만큼 치욕은 없다고 배웠다. 보험도 팔고 정수기도 팔러 다녔다. 그러면서 가난하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작품이 좋아도 정체돼 있으면 곧 묻힌다는 것도.

“외국 사람들, 무섭게 냉정합니다. 별 게 없다, 변한 게 없다 싶으면 가차 없이 문을 닫아버려요. 전시회 오프닝 때 ‘다음 전시는 언제 할까’라는 질문을 받아야 돼요. ‘담에 연락할게’ 하면 벌써 아닌 거야. 그런 평가에 면역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거죠. 2년에 한 번은 메뚜기처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줘야 돼. 지금도 하루에 1cm씩 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귀국해서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동기와 선후배들이 메이저 화랑에서 잘나갈 때, “난 100m 선수가 아니라 마라토너다. 나중에 이기는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 TBC 아나운서 황인용씨였다. [장수만세] MC로 명성을 날리던 스타였지만 월급은 신통치 않았다. “그냥 사표 내라고 했죠. 그리고 내가 기술투자, 황 선배가 자본투자 하는 식으로 강남에 미술학원을 차렸어요. 내가 강원도 홍천 출신이고 황 선배는 경기도 파주 출신이라 ‘홍파미술학원’이라고 이름 붙였죠. 미국서 공부했다는 원장에 연예인들도 들락날락하니 금세 소문이 났어요. 그때 형수와 같이 전단지 돌리러 다니던 생각이 나네요. 결과적으로 황 선배는 프리랜서가 되어 월급도 확 오르고, 원하는 클래식 감상실도 파주에 만들고, 잘 풀렸죠.”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온양 민속박물관을 30번 넘게 드나들며 아이디어를 찾고, 결국 어릴 적 보았던 한약방 문풍지에 걸려 있던 약봉지에서 힌트를 얻어 지금의 한지 작업이 시작됐다는 얘기는 이미 알려진 대로다.

더 중요한 것은 작업이 계속 변해왔다는 것이다. 평면에서 설치로, 달 표면 같은 형상에서 개나리색과 진달래색 가득한 전통 염색으로, 잔잔한 화면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 느낌으로 변화무쌍하다. 지난 5월 말 아트부산에서 선보인 신작은 가느다란 끈까지 달려 있어, 무를 뿌리째 뽑아놓은 듯 풍성했다. 그는 “지금까지 화풍이 13~14번 정도 바뀌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제 집에서는 와이프에게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봉사가 별거 있나, 아침에 일어나서 아직 자고 있으면 이불 잘 덮어주는 거지. 그리고 ‘오늘은 칼국수나 먹으러 갈까’ 하고 같이 나가는 것, 그냥 같이 걸어가는 것.”


※ 정형모는… 정형모 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은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중앙SUNDAY에서 문화에디터로서 고품격 문화스타일잡지 S매거진을 10년간 만들었다. 새로운 것, 멋있는 것, 맛있는 것에 두루 관심이 많다. 고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고, 한국과 러시아의 민관학 교류 채널인 ‘한러대화’에서 언론사회분과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만든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이 있다.

201908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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