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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호 모호컴퍼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리가 열광한 한국 디자이너, 대중 앞에 서다 

프랑스어라곤 ‘봉주르’도 몰랐던 한국 청년이 파리 명문 패션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저명한 콩쿠르에서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규호 모호컴퍼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야기다. 본격적으로 한국 활동에 나선 신진 디자이너. 그의 앞에는 또 다른 숙제가 놓여 있다.

▎파리 유학 시절 이규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맨몸으로 부딪친 파리 생활은 수석졸업과 콩쿠르 2관왕이라는 결과를 선물했다. / 사진:이규호
2010년 가을, 해마다 그랬듯 에스모드 파리의 개강 수업이 열렸다. 전 세계 패션피플들이 모여든다는 파리 명문 패션스쿨의 첫 수업 주제는 소재 개발 워크숍, 그중에서도 ‘발상의 전환’이었다. 작업대 앞에 온갖 종류의 의류 소재가 널브러져 있었지만 한 동양인 청년의 눈엔 모두 그렇고 그런 원단뿐이었다. 3시간여를 멍하니 흘려보낸 청년은 이윽고 발길을 교문 밖으로 옮겼고, 생뚱맞게도 정육점 문을 열어젖혔다.

“생닭 껍질을 얻어다 원단에 꿰맸어요. 그러고 나서 ‘이게 내 옷의 소재’라고 선언했죠. 다들 놀랄 수밖에요.”

수업 주제가 발상의 전환이었던 만큼, 엉뚱을 넘어 다소 엽기적이기까지 한 시도였지만 누구 하나 토 다는 이는 없었다. 수업을 맡은 교수도 “이건 쓰레기야”라는 말 대신 “하루, 이틀, 한 달 후 껍질의 변화를 사진으로 남겨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시점도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극찬과 함께. 이후로도 청년의 독특한 실험은 학창시절 3년 내내 이어졌다. 옷을 디자인한다기보다 조형물에 구조를 덧입힌다는 느낌으로 작업에 열중했다. 졸업을 코앞에 둔 2013년, 생닭 껍질을 쥐었던 신입생의 손에는 어느덧 수석졸업장이라는 영예가 들려 있었다.

프랑스어라곤 한마디도 몰랐던 이 한국 청년의 무모한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무작정 파리로 떠났던 24살 학생은 촉망받는 신진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패션브랜드 모호컴퍼니의 이규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2017년 한국으로 돌아와 독립 브랜드 모호컴퍼니를 세운 이 디렉터는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패션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3년 이상 GN(Generation Next) 경험을 쌓아야 메인 디자이너 자격이 주어지는 서울패션위크에선 GN 데뷔 이듬해에 곧장 메인 쇼 디자이너로 입성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패션 문외한, 파리에 발 딛다


▎이규호 디렉터는 형태와 소재, 기능성을 겸비한 모호컴퍼니 브랜드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 사진:신인섭 기자
이 디렉터에게 패션은 어쩌면 숙명이었는 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웬일인지 세탁소 주인의 길을 택했다. 세상 모르던 철부지 아들은 그때부터 자연스레 옷에 끌렸다. 손님 옷을 몰래 입고 만지면서 저마다의 옷이 주는 향기에 취하곤 했다. 물론 세탁소집 아들이라는 타이틀롤이 어느 날 갑자기 패션디자이너로 비약하는 마법 같은 건 없었다.

“대학 가기 전부터 항상 옷이 주는 힘에 끌리곤 했어요. 똑같은 사람이라도 라이더 재킷을 입으면 반항기가 다분해지고 힙합룩을 걸치면 괜히 으스대며 걷잖아요. 아르바이트도 옷가게에서만 했던 걸 보면 막연하게나마 패션 쪽 일을 꿈꿨던 것 같아요.”

평소 관심사와 달리 대학에선 건축학을 전공했다. 성적 맞춰 대학 가고, 역시 남들 하던 대로 군대에 갔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옷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제대 날짜가 다가올수록 커지기만 했다.

“전역 후 곧장 동대문 의류시장에 갔어요. ‘사입삼촌’ 생활을 시작했죠. 새벽 도매 야시장에서 옷을 떼다 소매점에 뿌리는 걸 사입이라 하고, 이걸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을 사입삼촌이라 불러요. ‘레이스풍 미시 옷’이 유행이라면 직접 큐레이션해 뿌리기도 해요. 시장 시스템이 엄청 복잡한지라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학교 수업이야 거의 못 들어갔다 봐야죠.”

옷에 취한 당사자야 신났을지 몰라도, 부모 입장에선 옷에 미쳐 학교도 안 가는 아들이 골칫덩이일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는 죽을 둥 살 둥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던 아들에게 1년치 학비를 내놓았다. “옷이 그렇게 좋으면 정식으로 패션을 공부해보라”는 말과 함께였다.

“에스모드는 서울에도 분교가 있어요. 파리행은 사실 막연한 선택이었죠. 프랑스는 이민자 지원 제도가 잘돼 있어 생활비가 가장 적게 들기도 했고요. 대부분 유럽 대학이 그렇듯 입학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대신 졸업은 쉽지 않죠. 프랑스말이라곤 한마디도 못했지만 패션에 대한 열정을 어필했고 입학 허가가 떨어졌어요.”

수석졸업, 디나르 콩쿠르 2관왕 영예

파리 생활은 두려움이나 막막함보다 열정과 재미가 지배한 시간이었다. 생존을 위해 무작정 언어를 익혔고, 말이 입에 익으니 모든 수업이 재미로 가득 찼다. 끝까지 동양인을 무시했던 한 교수도 졸업 무렵 결국 다른 교수진의 최우수 점수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3학년 졸업반이 되자 교수님들이 졸업 작품 대신 디나르 콩쿠르 출전을 권했어요. 신진 디자이너들의 등용문으로 권위 있는 콩쿠르죠. 남성복과 소재, 여성복과 란제리 4부문으로 나눠 대상을 주는데, 남성복과 소재 부문에서 우승했어요.”

파리 명문 패션스쿨 수석졸업, 유명 디자인 콩쿠르 2관왕.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신진 디자이너의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 같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올 줄 알았지만 별것 없더군요. 동양인, 게다가 이성애자라는 성정체성 등은 오히려 주류 패션계로 진입하는 데 장벽이 되었어요. 게다가 콩쿠르 수상자는 대개 독립 브랜드를 세우곤 해요.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기성복을 제작하는 회사의 철학이 맞지 않기 때문이죠. 저 역시 졸업 후 독립했지만 예술과 상업은 분명 다르더군요.”

생계를 위해 유명 브랜드 앙드레아 크루즈(Andrea Crews)에 들어갔고 수석디자이너 자리까지 올랐지만 제 색깔을 낼 수 없다는 공허함은 여전했다. 2016년 마침 한국에서 날아온 할머니의 부음은 스스로 한계에 몰아붙였던 인고의 시간을 멈추게 만들었다. 이 디렉터는 2017년 첫 개인전 ‘패션에 예술을 엮다’를 열며 본격적인 한국 활동에 나섰다.

“2017년 처음으로 ‘2018 SS 컬렉션을 열었는데 반응이 너무 안 좋았어요. 쇼도 없었으니 그냥 학예회가 돼버린 거죠. 그해 서울패션위크 GN 무대에서 처음으로 FW 컬렉션 쇼를 열었고 비로소 엄청난 호응을 받았어요. 다음 시즌인 2018년부터 메인 무대에 섰고 외신의 극찬까지 받으면서 런던패션위크 제안도 받게 됐죠.”

또다시 탄탄대로가 열릴 것 같았지만 역시나 오산이었다. 평단의 호평과 사업적 성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디어에서 아무리 승승장구해도 재무적 성과 없이 회사를 이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한 옷으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예요. 그동안 한국 시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덤빈 거죠. 온라인에서 2만원에 파는 티셔츠를 모호에서 5만원에 팔려면 그에 맞는 가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게 브랜드이건 소재건 신박한 콘셉트이건 간에요.”

온전한 작가주의적 경향에서 한 발짝 물러난 이 디렉터는 트랜스퍼웨어(Trasferwear)를 선보여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 가방으로 변신하는 코트 주머니, 티셔츠에서 재킷으로 변신하는 옷, 가방이 달린 바지주머니 등 기능성과 디자인을 겸비한 콘셉트다. 여기에 열을 받으면 색상이 변하는 등 독특한 소재를 개발해 활용하는 시도에도 힘을 쏟고 있다. 상상 속 동물인 해태를 디자인에 가미하는 등 동양적 오브제 활용에도 적극적이다. 현재 모호컴퍼니 의상은 온라인숍을 비롯해 유명 백화점 팝업숍을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다.

“모호의 슬로건은 체험해야 하는 옷입니다. 여행을 떠나야 여행지를 알 수 있듯이, 입었을 때 옷이 내 몸에 주는 공간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단순히 옷을 넘어 옷의 모든 요소를 체험해본다는 뜻이죠. 제 시도와 디자인에 호불호가 갈릴지 모르더라도, 현재로선 최대한 모호의 옷을 대중에게 많이 노출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이 디렉터는 디자이너로서 마지막 목표를 “다시 파리”라고 말했다. 파리에서 출발했지만 한국에서 성공해 파리패션위크에 역진출하겠다는 야심이다.

“성공적인 대중의 평가를 발판으로 파리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무대에 다시 설 거예요. 결국 대중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 없이 패션이라는 산업 자체가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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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호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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