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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주목하는 ‘코리안 파워’] 음재훈 트랜스링크캐피탈 공동 창업자 

“한국 시장 석권하면 전 세계에서 찾아온다” 

독일계 배달 앱 기업 딜리버리히어로가 국내 1위인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소식은 업계를 놀라게 했다. 4조7500억원에 체결된 이 딜은 국내 인터넷 기업의 인수합병(M&A) 중 최대 규모다. 이번 딜로 배달의민족에 초기 자금 3억원을 투자했던 벤처캐피털(VC) 업체는 8년 만에 1000배 가까운 수익을 거두는 ‘잭팟’을 터트렸다. 이를 계기로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하고 성공으로 이끄는 VC의 역할이 재조명받고 있다.

▎음재훈 트랜스링크캐피탈 공동 창업자는 20여 년 이상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의 흥망성쇠를 목도해온 베테랑 벤처캐피털리스트다. / 사진:음재훈
음재훈(51) 트랜스링크캐피탈 공동 창업자는 20여 년 이상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의 흥망성쇠를 목도해온 베테랑 벤처캐피털리스트다. 벤처(Venture)는 ‘위험을 무릅쓴다(a risky or daring journey or undertaking)’는 뜻이다. 고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위험을 감수하고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해 지분 투자나 자금 지원을 통해 상장(IPO) 기업으로 키워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기술력, 사업 전망, 창업가의 자질 등 성공에 필요한 삼박자를 갖춘 업체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기대도 크다. 그의 손을 거쳐 간 무수히 많은 업체 중에 미래의 유니콘이 탄생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아직 내 생애 가장 보람된 순간은 오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매일 즐겁게 일하고 있다”는 음재훈 트랜스링크캐피탈 공동 창업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먼저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배경이 궁금하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한 학기 만에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음 대표는 서울대학교 화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그래서 비즈니스 스쿨로 눈을 돌렸는데 직장 경력이 있어야 했다. 마침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서울에서 채용박람회를 열어 서울에서 2년간 근무 후 베이징과 뉴욕을 거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MBA 과정 중이던 1997~1999년은 닷컴 광풍이 불 때였는데.

맞다. 당시에는 MBA 동기들이 다 창업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MBA 졸업생 365명 중에 창업해서 생존한 스타트업이 75개가 넘었다. 내 경우엔 직접 사업에 뛰어드는 것보단 훈수 두는 게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1999년 졸업 당시는 닷컴 버블이 피크였을 때라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MBA 출신을 많이 뽑았다. 그렇게 싱가포르 국부 펀드 ‘테마섹’ 산하 VC인 버텍스벤처스의 실리콘밸리 오피스에 인턴으로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자본은 1990년대 초반부터 VC에 투자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잘나가던 VC 1위부터 40위까지 전부 출자했었다. 당시 페이팔 등 무선통신, IP기반 서비스, 생체의학 포트폴리오사들을 관리하면서 어떤 식으로 업체를 실사하고 투자를 결정하는지 많이 배웠다.

버텍스에서 3년여간 근무한 뒤 삼성벤처스로 옮겼다.

삼성은 2002년부터 실리콘밸리에서 VC들과 네트워킹을 본격화했다. 나도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국인이니 여러 방면으로 교류하게 됐다. 그러다 1년 뒤인 2003년에 삼성벤처스 미주 사무소가 개설되어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삼성벤처스에서는 미국 벤처캐피털 사업부를 설립하고 이끌었다. 16개 신생업체에 50만 달러 이상의 지분 투자를 감독했고, 600여 개 업체를 삼성 사업부에 소개하는 등 리더로서 여러 시스템이나 투자를 직접 실행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2007년 일본인, 대만인 공동 창업자와 함께 트랜스링크캐피탈을 설립했다. 독립한 이유는 무엇인가.

실리콘밸리에는 워낙 무림 고수가 많아서 살아남으려면 필살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MBA 동기인 일본인 친구, VC업계에서 공동 투자해온 대만인 친구와 의기 투합했다. 미국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VC로서 차별화 전략을 쓴 것이다. 또 아시아 기업 중에는 얼리어답터가 많다. 실리콘밸리에서 신기술이 개발되면 삼성, LG 등 아시아 기업들이 도입해 양산한다. 가장 먼저 5G를 도입한 것도 한국과 일본이다. IT, 통신, 가전 등 분야는 자체 경쟁이 심해 기술력 있는 미국 업체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파트너를 찾고 시장에 진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수많은 포트폴리오사 중에 가장 성공적인 투자 경험을 꼽는다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음재훈 트랜스링크 캐피탈 공동창업자 / 사진:음재훈
음성인식 인공지능(AI) 업체인 사운드하운드다. AI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시기였지만 가능성을 알아보고 2008년 트랜스링크가 VC 중 최초로 투자했다. 사운드하운드는 2005년 스탠퍼드에서 음성인식 기술을 전공한 졸업생이 만들었다. 당시 시장에는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업체 뉘앙스(Nuance)라는 큰 경쟁사가 있었고, 기술을 내놓는 순간 소송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음악인식으로 전환했는데 소위 대박이 났다. 애플 시리, 구글 보이스, 아마존 알렉사가 나오기 전 IT 공룡들에 필적할 만한 기술이었다. 이후 이를 알아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KT, 네이버 등이 약 1500억원을 투자했다. 실리콘밸리 기업에 한국 굴지의 4개 기업이 동시에 투자한 사례는 사운드하운드가 유일하다. 3억 달러였던 기업가치는 현재 12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트랜스링크캐피탈이 투자한 업체들을 소개해달라.

웨어러블 제조업체 미스핏, 스마트폰 리모컨 개발사 필, 앱 검색 엔진 퀵시 등에 투자했다. 우리가 투자한 미국 최대 비디오 광고업체 유미와 클라우드 백업 서비스 회사 카보나이트는 나스닥에 상장했고, 나머지 다수 업체가 구글, 우버, 오라클, 시스코, 드롭박스 등에 인수됐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스타트업들에도 투자와 자문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계에 조만간 ‘박세리 모먼트’가 올 거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박세리 선수는 1998년 LPGA 투어 US오픈에서 깜짝 우승을 거두면서 ‘우리도 세계 무대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전 국민에게 심어줬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한국 여자 선수가 LPGA에서 통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 많은 ‘세리키즈’가 글로벌 대회를 주름잡고 있다. 20여 년간 VC업계에 있으면서 1000여 개 한국 업체를 만나왔지만 아직 미국에서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그러나 향후 수년 내에 미국에서 시작해서 성장한 한국 스타트업들이 ‘대박’ 나는 시기가 올 거라 본다. 김동신 대표가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센드버드(Sendbird), 정세주 대표가 뉴욕에서 시작한 ‘눔(Noom)’ 등이 유력 후보다.

미국에서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한국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는 길은 두 가지다. 한국에서 창업해 미국에 진출하는 경우와 처음부터 미국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창업하는 경우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류현진 선수와 추신수 선수를 예로 들겠다. 두 선수 모두 성공했지만 걸어온 길은 정반대다. 류현진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후 미국으로 건너와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스카우트됐고, 7년 만에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 투수가 됐다. 반면 추신수 선수는 한국을 거치지 않고 곧장 미국 마이너리그 팀에서 시작했다. 이후 산전수전을 겪었지만 결국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됐다. 내가 창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이와 같다. 한국 시장을 장악한 뒤에 해외에 진출할지, 아니면 해외시장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할지, 어느 방법이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 잘 판단해야 한다.

새로운 가능성


최근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달의민족을 인수했는데 전자의 방법으로 성공한 사례다.

한국에서 대표선수가 되어 해외로 넘어오면 더 큰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 주전선수로 뛸 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가능성이 높다. 연습생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건 무모하다. 배달의민족도 한국 시장을 평정하니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한국 1위가 되니 세계 1위가 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한국 스타트업도 대규모 글로벌 M&A가 가능하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을 찾아 투자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다. 기술이나 산업 전망, 경쟁사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지만, 결국 창업자의 문제 해결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스타트업은 하루에도 수많은 문제에 직면한다. 문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하다. 똑똑한 창업자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경중을 잘 판단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도 계산한다. 사업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아이템이 진통제처럼 꼭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비타민처럼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사람을 찾아 설득하는 스킬도 있어야 한다.

문제 해결 능력도 중요하지만 끈기나 인내심도 중요하지 않나.

물론 타이밍이랄까, 운도 중요하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은 어느 타이밍에 시작해야 하는지, 시장에서 반응이 없을 때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까지 내다보고 판단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스타트업이 채용해야 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

어느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이면서 불확실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20여 년간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항상 아직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다. 벤처 투자가는 매일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고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을 숨 가쁘게 해결해야 하는 일상을 산다. 하지만 내가 발굴해 투자한 업체들이 잘 될 때의 기쁨과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 스타트업들의 약진은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 곧 닥칠 ‘박세리 모먼트’를 설렌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

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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