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비와 노래 

비를 노래하는 음악은 많다. 대부분 감미롭고 멜랑콜리한 노래들이다. 사람들을 죽고 다치게 한 폭우를 노래하는 음악은 있을까. 폭우에 다치고 상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음악은 있을까.

▎제17회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청중이 여성 두 명을 헹가래를 치며 파도타기를 시키고 있다. / 사진:코스트르진 로이터 = 뉴시스
8월 13일까지 이재민만 7000여 명. 역대 최장 장마였다. 장마를 소재로 한 노래가 있을까. 정태춘과 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떠오른다.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그렇게 서울은 장마 권에 들고.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한 시대를 증언했던, 1993년에 발표된 노래다. 정치적 시대성이 탁월한 음유시인의 노래에 묻혀 흘러간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흘러갔을까.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종로에서 군중을 기다리는 정치적 상황이 더는 없기를 기대했을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그땐 뭐가 보였던 모양이다. 2020년에는 비가 영 그치지 않아 안 보였다. 이 노래는 뜻밖의 사실 하나를 증언한다. 1992년에 장마는 있었으나 큰 재앙은 없었다는 점. 실제로 국가수자원관리종합정보시스템(WAMIS) 자료는 1992년을 비 피해가 적은 축에 속하는 해로 알려준다. 비로 인한 사망자가 1991년 19명, 1990년 71명인데 비해, 1992년에는 1명이었다. 전체 피해액도 적은 축에 속했다. 참고로 485명이 사망했던 1972년이 최악의 해였다. 정태춘과 박은옥이 이 노래를 1972년에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표현된 노래들도 있다. 미국 팝그룹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Who’ill stop the rain’이라는 노래가 있다. 1970년 빌보드차트 2위에 오른 인기곡이다. 그룹의 리더 포거티에 따르면 이 노래는 1969년에 열린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뉴욕주 베델 평원의 한 허름한 농장에서 열렸던 이 축제는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반문화, 특히 히피문화의 총결산이었다. 축제 첫날인 8월 15일, 비가 쏟아졌다. 열악한 공연 시설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40만 명이 서로 엉겨 붙어 춤추고 노래했다. 상업적 축제의 첫 성공 사례였다. “내 기억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죠. 신비한 구름이 땅 위에 혼돈을 퍼부었어요. 아주 옛적부터 착한 사람들은 태양을 찾으려 애썼답니다. 그래서 궁금해요. 누가 이 비를 멈출지.” 이 또한 증언하는 바가 있다. 비가 퍼부었다고는 하나 사망자가 생기는 재앙은 없었고, 사람들은 전염병 걱정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황아영의 ‘비야, 그만 와’도 있다. “내 슬픔은 왜 비가 내릴 때 멈추지 않고 따라 흐를까. 지나간 아픔은 흐려지고 그렇게 잊혀져지는데 슬퍼해 맑은 저 하늘도 찢어질 듯한 가슴만 움켜쥐며 이 이별이 지나가길 제발 비야 그만 와.” 이 노래 역시 무언가를(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증언한다. 이 노래가 발표된 2016년에도 장마는 큰 재앙이 아니었으며, 장마가 아닌 시기에 내렸던 비도 큰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다. 큰 사고가 있었다면, 개인적 서사에 그치는 가사보다는 다른 가사를 쓰지 않았을까. 2016년 역시 장마 기간이 짧고 강수량이 적었던 해였고, 사망자는 물론 이재민도 전혀 없었다. 이 노래의 비가 작곡가와 작사가의 마음속에 분명한 기억으로 존재했던 현실의 비였긴 했을까.

음악은 정치적·사회문화적 시대성뿐만 아니라 기후 환경도 증언한다.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폭우에 의한 재앙을 슬피 노래하는 음악이 없다는 것은 우리 현대사에 폭우로 인한 사망과 피해가 적었기 때문일까? 『장마백서』(기상청, 2011)에 따르면 장마 재해는 전체 기상재해에서 약 30%를 차지하며, 최근 호우에 의한 재해는 연 10회 정도 발생한다. 호우 피해가 가장 많았던 해는 1998년으로 이재민 2만4000여 명과 인명피해 324명이었고, 재산 피해액은 1조2900여억원이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실종자를 포함한 사망자는 연평균 140여 명이며 재산 피해 액은 연평균 1조7260여억원에 이른다.


▎정태춘과 박은옥 / 사진:뉴시스,
한국 대중가요에는 재앙의 원인이 아닌, 외로움이나 슬픔, 회한 같은 개인적 감정과 연합되는 비가 많이 노래된다. 이정화가 부른 신중현 곡 ‘봄비’(1967)에는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라는 가사가 있다. 후반부에서 흔치 않은 다성음악적(polyphonic) 부분이 소리를 키우며 감정을 고양한다. 여기서 비는 한없이 내리지만 내 눈물로 되는 데도 부족하다. “언제까지 내리려나?”는 언제까지 나는 울고 있을 것인가라는, 자신에 대한 질문이다. 비와 눈물을 연결한 것은 뛰어난 상상력이다. 그런데 이 연결은 이미 몇 년 전 미국에서 제시된 바 있다. 그룹 애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가 1962년에 발매한 ‘Crying in The Rain’이 그런 연결을 먼저 선보였다. 1990년 노르웨이 그룹 아하(A-ha)가 리메이크해서 더 유명해진 이 노래의 애절한 가사다. “우리 헤어졌으니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폭풍우가 몰아치기만을 기도할래요. 당신이 (내 눈물을) 알아채지 않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내 눈물이 다하면 난 미소 지으며 햇살 아래로 걸어 들어갈 거예요.” 이장희가 작곡해 윤형주가 1972년에 처음 발매했고 이후에는 송창식의 노래로 더 유명해진 ‘비의 나그네’도 있다. “님이 오시나 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이 가시나 보다. 밤비 그치는 소리.” 이 노래에서 비는 임이 오고 가는 걸 방해하지 않는다. 노래는 클래식 스타일의 3부분 형식(A-B-A’)이며, 중간 부분(B)은 장조, 앞뒤 A와 A’부분은 단조다. A’부분은 A의 반복이다. 송창식은 1975년에는 “창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 불고요. 그대의 귀여운 얼굴이 날 보고 있네요”라는 가사로 ‘창밖에는 비 오고요’를 발매했다. 같은 해에 금과은은 ‘빗속을 둘이서’에서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저 돌담 끝까지”라고 부른다. 비 따위가 무슨 문제이랴. 돌담 끝이 아니라 세상 어디까지도 갈 수 있다. 1년 뒤, 채은옥은 ‘빗물’에서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주듯이”라고 부른다. 짧은 순간 한 옥타브를 넘나드는 음역의 노래는 따라 부르기가 어렵다. 선율의 특정 부분을 반복하는 일 없이 계속 다른 음들을 제시하면서도 귀에 잘 들리는, 매우 수려한 선율이다.

통기타 시대였던 1970년대가 막을 내리면 혜은이가 ‘새벽비’(1985)에서 “새벽비가 주룩주룩 철길을 적시네/지붕을 적시네… 삑삑삑삑 메아리를 남기고 이제 정말 나는 갑니다”라는 가사로, 예전보다 빠르고 씩씩하며 경쾌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1년 전인 1984년에, 배따라기는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라는 가사가 담긴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라는 서정적 노래를 발표했다. 혼성 듀오를 통한 음색적·음역적 대비가 눈에 띈다. 남자가 낮은 음역에서 질문하면 여자가 높은 음역에서 대답한다. 1984년은 비 노래가 많은 해다. “안개비가 하얗게 내리던 밤. 그대 내겐 단 하나, 우산이 되었지만 지금 빗속으로 걸어가는 나는 우산이 없어요.”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이다. 우순실은 반음계적 선율이라는 새롭고 어려운 음악적 현상을 선보였다. 2년 후 록그룹 부활은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비에 비 맞으며 눈에 비 맞으며 빗속의 너를 희미하게 그리며”라고 부른다. 같은 해 김현식의 불멸의 노래가 발표된다. ‘비처럼 음악처럼’(1986).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1988년에는 햇빛촌의 ‘유리창엔 비’가 발표됐다. “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이슬만 뿌려 놓고서, 밤이 되면 더욱 커지는 시계 소리처럼 내 마음을 흔들고 있네.” 서정적이면서도 다소 웅장하며 묵시록적인 느낌이다. 비가 낮부터 내렸으나 저녁이 되어 이슬밖에 남지 않았다. 물리적으로는 수량이 무척 적은 비를 암시하지만, 무언가 소득이 없고 소용이 없는 우리네 허무한 인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 프로그램 / 사진:위키피디아
이은하의 ‘봄비’(1990)는 트로트 느낌이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사랑은 아쉽다. 비는 그 배경. 박미경의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1990)은 왜 화요일일까. “그대 기억하겠지 (그대 내 곁을 떠나는) 슬픈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 비지스의 ‘Mondays Rain’과 카펜터스의 ‘Rainy Days And Mondays’의 영향을 받았을까. 1993년, 록그룹 바람꽃은 지금까지 소개한 노래들과 180도 다른 록으로 비 노래를 선보인다. ‘비와 외로움’과 ‘Rain Of The Night’이다. 한국 대중가요 중에서 부르기가 가장 어려운 곡들일 것이다. 하지만 가사는 여전하다. “낯설은 이 비가 내 몸을 적시면 살며시 찾아드는 외로움.” 영화배우 박중훈이 영화 [라디오스타](2006)에서 부른 ‘비와 당신’도 감미롭다.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 아주 오래전 당신 떠나던 그날처럼.” 10년이 지난 2016년에도 여전하다. 소녀시대 출신 태연은 ‘Rain’에서 “쓸쓸한 기분에 유리창을 열어 내민 두 손 위로 떨어진 빗방울. 가득 고이는 그리움 나의 맘에 흘러”라고 노래한다. 미국 팝도, 프랑스 샹송도, 고전음악도 비는 현실 속 재앙이 아니라 분위기 있는 가상의 느낌이다.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일까.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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