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위성시스템을 개발하고 수출하는 민간기업은 쎄트렉아이뿐이다. 창업 20년 차로 한국 우주개발사와 궤를 같이한 이 기업은 소형 위성을 설계 제작하고 필요한 부품까지 직접 만들 수 있다. 우주개발이 ‘국가’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는 전환점에 선 김이을 대표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SpaceEye-T는 세계 최고 수준의 0.3m급 해상도를 가진 지구관측용 소형 인공위성이다. 현재 개발 완료 단계로 쎄트렉아이의 기술력이 집약돼 있다. 사진은 SpaceEye-T 모형 옆에 앉은 김이을 대표. |
|
“한반도 상공에 24시간 감시하는 ‘깜빡이지 않는 눈(unblinking eye)’을 구축할 겁니다.”지난 7월 28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한 말이다.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풀도록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김 차장은 여러 개의 저궤도 정찰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게 된 조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하지만 인공위성을 우주로 띄우는 우주발사체는 민간(상업)용의 경우 대부분 액체연료 로켓이다. 같은 달 21일 한국군 최초의 군 통신위성인 아나시스 2호를 쏘아 올린 스페이스X의 팰컨 9도 액체연료 로켓을, 항공우주연구원(KARI)이 2021년 발사를 목표로 만들고 있는 누리호에도 75t급 추력의 액체연료 로켓 엔진이 달린다. 일본의 입실론과 중국의 제룽(捷龍) 등 민간용 고체연료 로켓은 드문 편이다.“과거에는 소수의 국가에서 대형, 고가의 위성을 몇 기 발사하고 그 영상을 판독관 여럿이 분석하는 식이었죠. 하지만 이제 대형 위성 2~3기와 소형 위성 수십 기 정도가 보내는 빅데이터 영상을 인공지능(AI)이 분석하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소형 혹은 초소형 위성을 군집 형태로 운용하는 시대가 열린 건데 저희가 잘할 수 있고 주력하는 분야입니다. 최근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은 참 의미가 깊습니다. 위성 제조사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발사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그 의미가 훨씬 크죠.”지난 10월 15일 코스닥 상장사 쎄트렉아이 대전 문지연구소에서 만난 김이을(51) 대표가 그 배경을 설명했다. 쎄트렉아이는 1999년 설립된 중소형 위성 전문업체로 위성시스템뿐만 아니라 핵심 구성품도 직접 만든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와 더불어 국내에서 위성시스템을 자체 제작할 수 있는 세 곳 중 하나다. 민간업체로는 쎄트렉아이가 유일하다.그 뒤엔 우리별 1호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이 있다. 김 대표, 박성동 의장을 비롯해 10여 명 남짓한 창업 멤버가 1992년 발사한 국내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 개발진이었다.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에서 일하던 연구원이 영국 서리대학교(University of Surrey) 서리 스페이스센터로 유학을 가 위성 제작 기술을 배워오면서 출발했다. 초고해상도 지구관측 광학위성 SpaceEye-T(0.3m급 해상도), SpaceEye-X(0.5m급 해상도) 핵심기술과 부품을 자체 개발할 수 있었던 저력도 여기에 있다.실제 100~500㎏의 소형 지구관측위성 글로벌 시장에서는 프랑스의 에어버스나 탈레스, 일본 NEC, 이스라엘 IAI 등과 어깨를 견준다. 아랍에미리트(UAE)와 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에 위성 완제품을 공급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특히 UAE의 위성개발에 크게 기여했다. 2009년 두바이샛 1호, 2013년 두바이샛 2호, 2018년 일본에서 발사된 UAE의 인공위성 칼리파샛도 쎄트렉아이 작품이다. 올해 UAE가 중동 국가 최초로 미쓰비시중공업의 H2-A로켓에 무인 화성 탐사선 ‘아말(Amal)’ 호를 실어 발사하면서 쎄트렉아이의 입지는 더 확고해졌다.쎄트렉아이 자회사에도 관심이 쏠렸다. 아리랑 2·3·5·3A호의 위성영상 판매권을 보유한 SIIS(쎄트렉 아이 지분 62.5%), 항공·위성영상 데이터분석 플랫폼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SIA(쎄트렉아이 지분 89.2%) 두 회사가 상장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설명을 이어갔다.
국내 유일의 민간 위성시스템 제작사
▎쎄트렉아이 대전 문지연구소에는 위성 광학실험동이 있다. 김이을 대표는 인터뷰 당일 실험동 내 위성용 지구관측 카메라 성능 시험장비를 보여줬다. |
|
자회사 두 곳의 상장 소식을 들었다.그렇다. 쎄트렉아이는 위성 본체, 전자광학 탑재체, 지상체의 위성시스템 3대 핵심 구성품을 자체 기술을 기반으로 직접 제작한다. 초고해상도 지구관측 광학위성을 개발하고 수출하다 보니, 고객과 시장은 결국 이런 위성으로 취득한 정보를 사용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2014년부터 우리나라 정부의 아리랑 2·3·5·3A호 영상 판매권을 획득해 위성영상을 판매하는 SIIS를 설립했다. 이후 2018년 AI 기반 데이터분석 서비스를 더해 군사 및 정보기관에 제공하는 데이터 솔루션 기업 SIA도 설립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시장은 훨씬 빠르게 변하고, 조직도 이에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회사로 분리했다. 이 분야의 성장이 시장 수요와 직결되는 만큼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쎄트렉아이는 국내 유일의 민간 위성 제작업체다.벌써 창업한 지 20년이 흘렀다. 참 아이러니하다. 당시만 해도 위성 개발, 우주 분야는 국가 주도가 당연했다. 예산 규모만 수천억원, 연구개발(R&D)도 십수 년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는 대단위 사업이었다. 1989년 개발에 돌입한 우리별 1호는 3년 만인 1992년에 발사됐다. 최순달 카이스트 교수가 영국 서리대에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학사 과정을 갓 마치고 서리대로 떠난 연구진 9명의 피와 땀이 서린 프로젝트였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22번째 위성 보유국이 됐고, 이듬해인 1993년 9월 ‘우리별 2호’ 개발과 발사에 성공했다. 이후 소형 관측위성인 우리별 3호를 개발했고, 세계전도와 촬영한 위성영상을 비교하면서 흥분했었다. 고가의 대형 위성과는 분명히 다른 시장이 열릴 거란 확신도 들었다.
최근에야 소형 위성 시장이 열린 것 아닌가.그렇다. 소형 인공위성의 가능성을 보고 1999년 동료들과 인공위성연구소를 나왔는데 당시는 소형 인공위성의 실용성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 않았다. 발사 기회도 많지 않았지만, 주로 교육과 실험용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국가 주도 사업에선 전략적으로 대형 위성을 선호했다. 물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가 주도하는 우리나라 우주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꾸준히 참여해왔다. 몇 년 전부터 타 산업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우주개발도 전환기에 들어섰다. 특히 몇몇 기업의 성장과 실적이 큰 자극제가 됐다. 미국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저궤도 통신위성 수만 기를 띄우는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실현해나가자 소형 위성에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더불어 ‘뉴스페이스’란 개념도 나온 것 같다.스페이스X가 쏘아 올린 ‘공’이라고 해야 하나. ‘뉴스페이스’는 민간 주도의 우주개발을 의미한다. 소형 위성 등을 통한 우주산업이 열렸다고 봐야 한다. ‘스타링크’와 같은 제궤도 위성군이 당장 통신위성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더 많은 위성을 발사해야 하고, 규제와 관련한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무엇보다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 요즘 추세를 볼 때 기술적인 문제는 짧은 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처럼 소형 위성도 종류가 많은데 우린 중·소형 지구관측 위성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구관측 소형 위성에 어떻게 특화돼 있나.우리 강점으로 초고해상도 전자광학 탑재체, 이를 탑재한 500~700kg급 중.소형 지구관측 위성, 그리고 수십년간 축적한 지상체 기술을 꼽고 싶다.자체 개발 능력을 갖춘 것도 ‘특화’로 볼 수 있다. 위성 본체, 전자광학 탑재체, 지상체 3개가 개발의 큰 축인데 우린 이 주요 구성품을 직접 설계·제작할 수 있다.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고객사의 요구에 최적화한 위성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 큰 강점이다.
해외 정부기관, 韓 국방부 정찰위성 사업 수주글로벌 시장에서 프랑스의 에어버스나 탈레스, 일본 NEC, 이스라엘 IAI 등과 경쟁하고 있다. 쎄트렉아이를 어필하는 포인트가 있나.솔직함이다. 혹자는 너무 미련하다고 하더라.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경쟁사와 달리 우리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가능 여부를 정확히 나눠 얘기해준다. 또 개발단계에서 단계별 리스크를 정확히 짚어주고 리스크에 수반되는 비용과 시간을 설명한다. 사실 수주 단계에서 고객사에 솔직히 말하긴 쉽지 않다. 생산 중인 위성에 제작 결함이 생겨 결과적으로 보완했어도 그 과정을 모두 공유한다. 해외 고객사들이 계속해서 일감을 주는 건 솔직함 덕분인 것 같다. 쉬운 예로 ‘DMC 3 위성의 무게는 약 450㎏이지만 동급 해상도의 당사 위성 무게는 약 240kg이기에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높으며 적은 비용으로 발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위성개발 분야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나. 특히 군사위성은 기술 수준이나 보안이 까다롭다고 들었다.우리가 주력하는 지구관측 위성은 민수용과 군용으로 모두 쓸 수 있다. 군용의 경우 추가로 요구되는 기술적인 내용이 있고 보안과 관련한 조건이 까다로워 진입장벽이 높다고 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투영된 기술만 보면 다른 분야보다 난도가 월등히 높은 건 아니다. 하지만 우주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가동되기에 고려할 사항이 많고, 위성개발과 발사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하다. 솔루션 개발이 주목받는 시대에서 우리가 위성 제조라는 하드웨어를 주력으로 하는 것은 솔루션 개발의 근간이 되는 위성에 대한 도메인 날리지(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가 탄탄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뉴스페이스’ 바람 덕에 진입장벽은 점점 더 낮아지고, 기술 ‘융합’ 시도도 다양해질 것 같다.
설립 20년 차, 굴곡도 있었겠다.기업가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회사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 운이 좋아 상장까지 했다(.웃음) 굳이 꼽으라면 우리를 믿어준 고객사와 버텨준 임직원의 힘이 전부가 아닌가 싶다. 야심 차게 창업에 나섰지만, 글로벌 시장에 나섰을 때 연구원으로서 초라한 우리 기술 수준이 부끄러울 때도 잦았다. 우리가 개발한 위성기술과 시스템의 가치를 알아봐준 고객이 수년간 믿어준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하드웨어 제조사다 보니 항상 수주 가뭄이 걱정이긴 하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2월 이후 해외출장을 한 번도 못 갔다. 좀 더 적극적인 해외 수주 활동을 고민 중이다.
최근 가장 주력하는 바는 뭔가.세 가지 축이다. 먼저 생산력 확대다. 지난해 해외 정부기관 위성체계 사업(753억원)을, 국방부 군용 정찰위성 개발사업인 425 사업의 지상체 개발도 수주했다. 위성 시스템을 직접 개발·제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업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외 정부와 관련 기관 등 초소형 위성 수요처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생산력을 키우고 있다.다음은 신규 시스템 개발이다. 지난 8월에도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 과학기술정통부가 진행하는 2133억원 규모의 ‘초소형 위성 군집시스템 개발 사업’을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와 수주했다. 소형 지구관측 위성 11기(835억원)를 개발하고 제작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기존 우주개발 방식과 달라 우리나라 위성 개발사에 한 획을 그을 것 같다.마지막으로 신규 솔루션 개발은 쎄트렉아이의 미래 사업이라 생각한다. 자회사 SIIS와 SIA의 역량을 강화해 위성영상 데이터를 AI로 정교하게 분석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고객사와의 비밀유지계약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언제나 회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하는 다양한 시도를 진행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한국 우주개발 산업의 외길’을 걸어왔다. 한국 정부는 우주개발 사업에 그 어느 나라보다 열망과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열망과 의지에 비해 산업화가 늦은 면이 있지만, 미래를 위해 놓칠 수 없는 게 우주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쎄트렉아이는 설립 초기부터 재무적 성과와 같은 정량적인 목표만 우선으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20년을 견뎠고,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고 있다. 지금도 한국이 소형 위성 개발과 같이 특정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