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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역설의 리더십’(19)] “여성 리더는 좀 아니라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남성에게 기회를 빼앗기는 조직은 미래가 어둡다. 성차별을 하는 리더가 있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그를 내치고 여성을 리더로 삼는 게 낫다. 최소한 전임자였던 남성이 상상하지도 못한 세계를 그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유럽에서 여성 총리는 이미 뉴스가 아니고 유교적 가부장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조차 여성 대통령이 나왔지만, 유리 천장은 여전히 굳건한 채로 존재한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12년 상장기업 이사회 임원의 4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었다. 당시 초안에 따르면 근로자가 250명 이상이거나 매출액이 5000만 유로 이상인 기업은 매해 이사회 성비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만약 40% 쿼터를 채우지 못하면 벌금을 매기거나 국가지원금을 삭감하도록 했다. 하지만 영국과 스웨덴이 강력하게 반발해 결국 법안은 유럽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 기준 EU 회원국 중 여성 이사 수가 40%를 넘는 나라는 프랑스뿐이다. 이탈리아가 36%로 2위, 스웨덴과 핀란드가 비슷한 수치로 각각 3, 4위에 올라 있다. 이 나라들은 그나마 국가별로 자체적인 여성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

사외이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현재 유럽 기업의 여성 사외이사 비율은 평균 26.4%다. 이 중 최고위직으로 올라간 여성은 거의 없다. 이사장이 여성인 비율은 7.5%이며, CEO가 여성인 비율도 7.7%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2015년 이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이처럼 여성의 고위직 진출에 한계가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여성은 나약하다는 편견이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리더로서 때로는 단호하고 매정한 결단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여성은 마음이 약해서 그런 상황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편견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남성보다 강인했던 여성이 수없이 많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나 중국 측천무후처럼 겉으로 드러난 리더가 아니더라도, 남성들 그늘에 가렸던 수많은 여성이 위대한 남성 히어로 못지않은 결단성과 용기를 보여줬다. 전국시대 말기 제양왕의 부인 군왕후(君王后)가 그렇다.

강대국인 진(秦)나라의 사자가 제(齊)나라를 찾아왔다. 사자는 군왕후에게 옥련환(玉連環)을 바치며 말했다. 옥련환이란 옥으로 만든 연환 고리로, 도저히 풀 수가 없는 것이다.

“제나라 사람들이 총명하기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래서 이 지혜환을 바칩니다. 이 고리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군왕후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시종에게 금망치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이어 시종이 망치를 가져오자 옥련환을 내리쳐 산산조각을 내 버렸다. 그러고는 진나라 사자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어떻소? 우리는 이렇게 옥련환을 푼답니다.”

진나라 사자가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물러났음은 물론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생각나는 대목 아닌가. 고대 소아시아에 프리기아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칠 줄 모르는 내란으로 혼란스럽던 이 나라에는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되리라는 신탁이 있었다. 그때 평범한 농부였던 고르디우스가 이륜마차를 타고 나타나 왕으로 추대됐다.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자신이 탔던 마차를 제우스 신전에 봉안하고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뒀다. 그런데 이를 본 신전의 무녀가 무아지경에 빠져 신탁을 옮겼다.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리라.”

그 후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이 패권을 얻기 위해 매듭 풀기에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약관의 알렉산드로스가 원정길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리고 아시아의 지배자가 됐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고르디우스의 매듭 전설이다.

군왕후는 여자의 몸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단호함과 결단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제나라를 우습게 여겨 희롱하는 진나라 왕에게 망치를 날린 것과 다름 아니다. 남편인 양왕조차 감히 생각지도 못한 과감한 행동이었다.

용기도 그렇지만 지혜로 따지면 남자보다 현명했던 여성은 역사에 기록된 것만도 부지기수다. 이번엔 춘추시대의 제나라로 가보자.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가 제나라로 오게 됐다. 그러자 제나라 환공은 강씨의 딸과 혼사를 시키고 준마 80필까지 주면서 극진히 대접했다. 이 같은 환대에 도취돼 중이는 제나라에서 5년 동안이나 머무르면서 진나라로 돌아가 왕위를 계승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에 버금갔던 군왕후

그러자 중이의 수행원들이 뽕나무 아래에 모여 수근거리며 앞날을 논의했다. 한 여인이 뽕을 따다가 그 말을 듣고는 부인 강씨에게 알렸다. 강씨는 그 말이 새어나가는 것을 두려워해 여인을 죽이고 중이에게 말했다.

“어쩌시려고 이곳에 이리 오래 머물러 계십니까? 진나라로 돌아가 왕위를 계승하셔야지요.”

중이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그러시오? 안락한 생활을 즐기며 한세상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왕위를 꼭 가질 필요가 있소?”

이에 강씨가 정색하며 말했다.

“공자님은 불가피하게 제나라에 피난 온 몸이 아니십니까? 공자님을 수행한 신하들은 모두 공자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입니다. 진나라에서 위험도 사라진 지금 공자님이 진나라로 돌아가 왕위를 차지하지 않으시고 이곳의 안락함에 만족하고 계신다면 지금까지 공자님을 위해 헌신한 그들은 뭐가 됩니까? 공자님의 말씀을 들으니 신첩도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으시단 말입니까? 하루빨리 진나라로 돌아가십시오.”

이렇게 말하는데도 중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에 강씨는 수행 신하들과 짜고 중이에게 술을 먹여 만취하게 만든 다음 수레에 싣고 제나라를 떠났다. 부인 강씨의 이 같은 현명함과 결단력이 없었다면 중이는 훗날 진문공으로 이름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강씨 부인 이야기 역시 또 다른 여인의 현명함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당 태종의 부인 장손황후다. 당 태종은 ‘정관의 치(貞觀之治, 627~649년)’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끈 중국 최고의 성군 중 하나다. 그가 그런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위징 같은 명신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손황후 같은 현명한 아내를 둔 덕이기도 하다.

위징은 당 태종에게 300번 이상 ‘노(No)’라고 외쳤을 정도로 쓴소리를 한 인물로 유명하다. 태종이 무슨 일만 하려면 반대하고 나서니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민 태종이 “저놈을 당장 끌고 가 참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가 이내 거둬들인 것도 여러 차례다.

당 태종을 이끌었던 장손황후

어느 날 태종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내전에 들어왔다. 장손 황후가 이유를 묻자 태종이 대답했다.

“위징 때문이오. 그놈의 촌 늙은이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중신들 앞에서 나를 모욕하지 않겠소? 내가 이번엔 기필코 그놈의 목을 치고야 말겠소.”

그 말을 들은 장손황후는 조용히 물러났다가 조복을 차려입고 다시 황제 앞에 나서 절을 올렸다. 조복이란 공식적으로 황제를 알현할 때 입는 예복이다. 당 태종이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묻자 황후가 대답했다.

“역사책에서 보니 군주가 어질고 현명할 때야 비로소 충성스런 신하들이 황제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위징이 그렇게 거리낌없이 직언할 수 있는 것은 폐하께서 어질고 현명하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훌륭한 황제를 지아비로 두었는데 어찌 경하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황후에게 태종은 종종 의견을 구했지만 황후는 항상 “아녀자가 어찌 정사에 관여하겠느냐”며 사양했다. 그러나 어느 날 태종이 장손황후의 오라버니인 장손무기를 승상으로 삼으려 하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 오라버니와 조카들이 권력을 가지길 바라지 않습니다. 한나라 여후(呂后)의 예를 살피십시오.”

여후는 한고조 유방의 부인으로 고조가 죽자 실권을 잡고 여씨 일족을 중용해 전횡을 휘두른 인물이다. 태종은 장손황후의 말을 듣지 않고 장손무기를 승상으로 삼았다. 장손무기는 무능하고 타락해 정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으며, 결국 태종은 이듬해 그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했다. 장손황후는 능력이 아닌 정실 인사의 폐혜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측근을 중용하면 자신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절대 그렇지 않다. 어떤 자리의 입지는 아랫사람의 친소 여부가 아니라 능력으로 결정된다. 아래에서 사고를 치면 윗사람의 자리가 안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요직에 중용하는 인사의 결과는 가문의 미래를 망치는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남자들이 모르던 그런 평범한 진리를 장손황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남편을 영웅으로 만드는 아내의 사례는 바보 온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무궁무진하다. 기왕 당 태종의 얘기가 나왔으니 그와 관련된 예를 또 들어보자. 수나라 때 이정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뜻한 바 있어 서경을 지키고 있던 양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양소는 일어나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 거만한 태도로 이정을 맞았다. 그러자 이정이 허리를 굽혀 공손히 인사를 한 뒤 말했다.

“천하가 어지러워 영웅들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때 중임을 맡은 양공께서는 마땅히 현자들을 공경하게 대하고 호걸들을 끌어들여야 하거늘 어찌 그렇게 의자에 앉은 채로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마지못해 양소가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 곁에 있던 한 시첩이 이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녀는 붉은색 먼지떨이를 들고 있어 홍불이라 불리었다.

자신을 맡길 사람을 알았던 홍불녀

이정이 물러나자 홍불은 시녀에게 그가 어디에서 머무르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시켰다. 그날 밤 이정이 여관에서 잠을 자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정이 문을 열고 보니 자주색 옷을 입고 머리에 사모를 쓴 사람이 손에 자루 하나를 들고 문 밖에 서 있었다. 눈을 비비고 보고 나서야 이정은 그가 낮에 양소 집에서 홍불을 들고 있던 시첩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정은 급히 그녀를 방 안으로 맞아들였고 여인은 도포와 사모를 벗더니 이정에게 절을 올렸다. 이정이 급히 맞절로 대하고는 그녀가 찾아온 사유를 물었다.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양소공을 모신 지 오래고 천하의 적잖은 호걸을 보았으나 지금까지 나으리 같은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정이 그녀의 이름을 물으니 그녀는 자기의 성이 장씨라고 대답했다. 이정은 홍불녀와 잠자리에 들었는데 며칠 뒤 홍불녀를 찾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이정은 그녀와 함께 성을 나와 태원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영우라는 마을에서 쉬어 가기 위해 객점에 들었다. 그때 방 안에서 홍불녀가 긴 머리를 빗고 있었는데 키는 보통이고 얼굴에 구레나룻이 시커먼 사람이 객점에 들자마자 넋이 나간 듯 홍불녀를 쳐다봤다. 이를 본 이정이 그에게 욕을 하려는데 홍불녀가 그를 만류하고는 그의 앞에 나서 성을 물었다. 그가 장씨라고 대답하자 홍불녀는 말했다.

“어머 저도 장씨인데 그럼 제가 오빠라고 불러야겠네요.”

이어 홍불녀가 이정에게 구레나룻 난 사람을 오빠라고 소개했고 세 사람은 의기투합해 술을 마셨다. 세 사람은 태원에 있던 이세민을 찾아갔다. 구레나룻 난 사람은 이세민의 상을 보고는 천자의 상임을 알아봤다. 그러고는 자신의 재산을 몽땅 내다 팔아 바꾼 돈 스무 수레를 이정에게 주며 말했다.

“내가 보아하니 이세민은 곧 천자의 자리에 오를 인물일세. 불행하게도 나는 그에게 쓰임새가 없음을 알고 있네. 자네는 그에게 도움이 될 테니 이세민을 도와 공을 이루고 나라를 일으켜 세우게나.”

구레나룻 난 사람은 다음 날 처와 함께 하인을 하나만 데리고 바람처럼 떠나버렸다. 이정은 그가 남긴 돈으로 이세민을 보좌해 천하를 통일하고 당나라를 세운 뒤 위국공이 됐다.

홍불녀는 이름 없는 남자의 시첩에 불과했지만, 세상을 일으킬 인물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처지에 있었던 것은 시대적인 현실이 그랬기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 능력이 있었기에 이정을 알아보고 또 그를 도울 구레나룻 난 사람을 알아봤던 것이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이세민이 아버지 이연과 함께 당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혜안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홍불녀의 시대에서 15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불이익을 받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조직은 성장하고 발전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다. 능력으로 평가받는 정당성의 문제다. 특정한 이유, 학연이나 지연만으로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조직이 있다면, 그 조직의 미래가 어찌 밝을 수 있겠나. 나아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남성에게 기회를 빼앗기는 조직은 더욱더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한 여성의 기회를 빼앗고 능력을 사장하는 것을 넘어, 그 조직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성차별을 하는 리더가 있는 조직은 앞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그런 리더가 있다면 차라리 그를 내치고 그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을 리더로 삼는 게 훨씬 밝은 앞날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여성은 최소한 전임자였던 남성이 상상하지도 못한 세계를 그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202011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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