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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12) 

무협지에 숨겨진 중국의 뼈아픈 역사 

중국은 무협소설 속 중국인들을 장풍으로 사악한 적을 무찌르는 절정의 고수로 표현하며 아편전쟁에서 받은 패배감과 정신적 외상을 치유해왔다. 이제 중국은 역사적 사실에도 판타지를 가미해 중국몽을 실현하려고 한다.

▎도교의 성지 중 하나인 화산. 중국의 시안시 동쪽으로 약 120㎞ 떨어져 있다.
무림의 절정 고수들이 자웅을 겨루었다던 화산논검의 무대

필자는 1970~80년대 학생 시절에 김용 선생의 『영웅문』, 『의천도룡기』 등 무협지에 심취했었고, 지금도 “강호에는 고수가 많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요즘 중장년층 대부분은 청소년 시절에 밤새 무협지를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와호장룡]과 같은 중국, 홍콩의 무협영화도 이런 무협지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정파무림을 일컫는 구파일방(九派一幇), 즉 소림, 무당, 아미, 곤륜, 화산, 점창 등 9대 문파와 거지들의 집단인 개방이라는 이름들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귀에도 익숙하다. 그런데 이 구파일방 중에 역사상 실존했던 문파는 소림과 무당밖에 없고 나머지 칠파일방은 1970~80년대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만 무협 작가 와룡생 선생의 창작이라면 어리둥절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표적 정통 무림인 소림파와 무당파조차도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고, 있다고 해봐야 별 볼 일 없는 자경집단 수준이었다. 소림사 무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당 태종 이세민을 소림사 승려들이 도왔다는 내용인데, 무슨 기술을 사용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다음 기록은 명나라 초기에 홍건적들이 쳐들어와 불상의 금박을 벗겨 다 털어갔다는 내용인데, 승려들이 다 도망가서 홍건적의 난이 진압될 때까지 한 명도 못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16세기 복건성의 장군 유대유가 소림사를 방문하니 무술이 크게 쇠퇴해 있어 승려 두 명을 군대로 불러 훈련을 시켰고, 그 두 승려로부터 소림 무술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후 소림사의 불목하니로 있던 긴나라 왕이 홍건적을 다 때려잡았다는 거짓말이 지금까지 전설처럼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실제 소림사가 무술로 유명해진 계기는 그 이후 밥을 얻어먹으려고 현상수배된 살인범죄자, 낙오된 도적패, 멸망한 나라의 장수 등 온갖 부류의 무술인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의 노하우가 점점 쌓여 오늘날의 소림사 무술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이 무술들도 문화대혁명 때 다 사라져서, 현재 소림사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무당파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다른 곳에서 최근에 끌어온 무술이라 한다.

달마대사가 소림사에서 면벽 수련하다가 허약해진 몸의 건강을 되찾으려 소림권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달마대사 시절에는 소림사라는 절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소림파와 함께 중국 2대 무술인 무당파 무술(태극권)도 창시자로 알려진 장삼봉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아, 그가 송나라 사람인지 명나라 사람인지 아직도 여러가지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무협지 속에서 장삼봉은 강호를 질타하며 천하를 떠도는 무림의 고수로, 일당백의 무술 실력으로 산을 뚫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내공이 있고, 심지어는 죽었다가 부활하는 신통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가 창시했다는 태극권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무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명나라 영락제가 무당산을 대규모로 정비하고 장삼봉의 동상까지 세운 것은 백성들에게 황위 찬탈과 관련된 진상을 숨기기 위한 기만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왜 현대 중국인들은 아직도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무협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전쟁, 아편전쟁


▎무협지에 나오는 화산파가 유래한 화산에 와보니, 화산논검이라고 쓰인 간판이 있다. 화산논검(華山論劍)은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에 나온 천하제일인을 결정하기 위한 무림 대회로 유명한데, 실제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작가 김용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1715년부터 청나라와 무역을 시작한 영국은 인구가 많은 청나라에 팔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 올 것만 많고 가져다 팔 물건이 없었다. 청나라는 광저우만 개항을 허락했고 후덥지근한 광저우에서는 영국이 자랑하는 모직물이 팔리지 않았다. 오히려 도자기, 비단, 차만 계속 수입하면서 중국에 막대한 은을 지불했다. 1810년까지 청나라가 영국과 무역을 하면서 무려 2600만 냥의 이익을 얻는 심각한 무역 역조 현상이 발생했다. 유럽 상인들은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300년 동안 아메리카 대륙에서 강탈하고 수탈해 온 금과 은을 가져다 바치면서 중국에서 도자기와 차를 비싼 값에 사 가다가, 막대한 무역적자를 만회하려 인도의 아편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1757년 인도의 벵골 토후국과 프랑스 동인도회사를 상대로 영국이 이기면서 이 넓은 땅에 아편을 심어 싼값으로 중국에 수출했다. 1816년 아편 5106상자를 팔았고, 1824년 1만2434상자, 1838년에는 4만 상자를 팔면서 1836년에는 청나라의 아편 중독자가 1250만 명에 이르렀다. 청나라의 아편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무역적자도 급증해 1828년에서 1836년까지 3800만 냥의 심각한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청나라의 도광제는 결국 아편을 강경하게 금지하며, 임칙서를 광저우에 보내 영국 상인들의 아편을 모두 압수했다. 아편 수출이 금지되자 영국은 아편 무역에서 벌었던 막대한 이익을 잃게 됐고 중국에서 들여오던 차, 비단, 도자기도 수입할 수 없게 됐다. 그 후 영국은 청나라의 배, 포, 군대가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청나라의 아편 무역 금지를 빌미로 침략전쟁을 시작했다.

청나라의 패배와 난징조약


▎영화 [와호장룡] 포스터. 2000년 상영된 [와호장룡]의 ‘무협 판타지!’라는 홍보 문구처럼 무협영화는 아편전쟁부터 100여 년간의 치욕을 이겨내고자 한 현대 중국의 판타지다.
1840년 청나라는 아편전쟁에서 80만 대군을 가지고도 4000명 영국군에게 일방적이고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1차 아편전쟁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영국 군함 2척의 위력에 청나라가 항복한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국이 무력으로 청나라를 굴복시키고 맺은 난징조약으로 중국의 전통 산업은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광저우 등에서는 노동집약적인 제철업이 번성했는데, 영국에서 수입된 철판과 못, 농기구 등이 싼값에 대량으로 팔리면서 가격경쟁력에서 밀린 수많은 제철업 종사 노동자가 실업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청나라 수공업자들은 그 원인이 된 서양 오랑캐들의 물건을 수입하는 것을 허락한 청나라 조정에 분노했다. 그 분노는 ‘태평천국의 난’으로 터져 나와 청나라는 16년 동안이나 대혼란에 빠졌다. 결국 영국에서 증기기관을 이용한 산업혁명이 일어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수천 년간 우위를 지켜온 중국과 인도의 전통 수공업을 순식간에 망가뜨린 셈이다. 1894년 청나라는 경제 규모가 5분의 1인 일본과 청일전쟁으로 붙어 또다시 치욕을 당했다. 이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까지 약 100년 동안 서구 열강과 일제의 반(半)식민지와 분열, 내전을 거치면서 중국은 세계의 중심에서 주변국,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1840년 아편전쟁은 서구가 세계의 헤게모니를 빼앗아간 결정적 순간이었다. 일부 동양인들은 동양의 정신문명이 우월하지만 물질문명이 서구에 밀렸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마스터베이션에 불과하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고도의 물질문명은 고도의 정신문명의 소산이라고 설파한다. 기능은 기술, 과학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데 15세기부터 유럽에서 시작된 과학적 사고가 서구의 우월을 가져왔다. 중국은 기술의 시대에 머물러서 과학의 단계까지 발전시키지 못했다. 근대 동아시아에는 철학과 과학이 없었다. 유학은 인문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로서 지배집단의 통치이념으로 작용했지 철학과 과학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했다.

소림사 무술 고수의 실체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서양 열강을 이겨보려는 중국 민중의 열망은 황비홍류의 판타지로 나타났다. 영화에서 보는 황비홍은 불의한 영국 상인들과 일본 무사들을 혼내주는 역할이 많은데, 실제 황비홍이 영국인들을 혼내줬는지는 의문이다. 영국인이 데려온 독일산 셰퍼드를 한 발로 차서 죽였다는 기록도 있지만, 몇 년 전 광둥성 역사 위인 116명 선정 당시 설화적인 요소가 많다는 이유로 황비홍을 제외했다. 이런 설화적인 황비홍 스토리로 중국, 홍콩에서는 영화 100여 편이 만들어졌으니, 중국 사람들의 황비홍에 대한 판타지는 망국의 치욕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의 세계 인식에는 아편전쟁의 치욕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지금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인들에게 180년 전의 치욕적인 아편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학생 시절에 무협지와 무협영화에 심취했던 필자의 머릿속에 항상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중원에는 기라성 같은 무림지존(武林至尊)이 많은데, 왜 이들이 역사책에는 등장하지 않는가?’ 실제 1899년에 발생한 의화단 운동에서는 다양한 무술 고수가 리더로서 큰 활약을 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화살과 창, 칼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싸움 좀 잘한다는 무술의 고수들이 실전에서 활약하기란 쉽지 않다. 왜구들이 명나라 동부 해안에서 판을 칠 때도 무술 고수들을 몇 번 앞에 보내봤는데, 칼 잘 쓰는 일본 사무라이들에게 처참하게 당했다고 한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중국의 쿵후 고수들이 실전 격투기인 UFC 선수들에게 별로 힘을 못 쓰고 일방적으로 깨진다. 몇 년 전에 소림사의 무술 고수가 UFC에 참가했다가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참하게 K.O. 당했던 적이 있다.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UFC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전 세계를 통틀어 한두 명에 불과하다. 즉, 무림과 강호의 고수들은 무협지와 영화에서만 있었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환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아편전쟁 이후에 제국주의 열강에 굴욕을 당한 중국 사람들은 정신적인 혼란과 열패감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 전통무술에 기반을 둔,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상상 속의 ‘무림과 강호’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협지의 원류가 『수호지』나 『사기』의 ‘자객열전’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1920년대 중국에서 시작돼 100년 역사를 가진 소설류이며, 그 중심에는 이 같은 중국 역사의 치욕기에 대중의 정서를 사로잡은 김용, 와룡생 같은 무협작가들이 있었다. 김용의 『사조영웅전』과 같이 20세기 중국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작품도 있지만, 무협소설의 대부분은 즉흥적 흥미를 유발하면서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문학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3류 작품들이다. 요즘 제작되는 중국 역사영화를 보면 순수 무협 판타지보다는 『초한지』, 『삼국지』, 양귀비, 진시황, 당태종 등 역사적 사실에 애국적 무협 판타지를 가미한 작품이 많다. 중국이 21세기 경제대국으로 크면서 100여 년 전의 치욕을 무협 판타지로 위로해오다 이제는 역사 판타지로 중국몽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을 만나보면 애국심이 매우 강해서 되도록 역사 이야기나 중국 비판은 삼가는 편이다. 게다가 개혁개방 이후의 성공적인 경제성장으로 자신감도 충만하다. 필자의 느낌에는 요즘 중국 사람들은 한국의 1970~80년대 수준의 국수주의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도 맹목적이고 비합리적 국수주의가 큰 문제가 되곤 하는데, 앞으로 중국 사람들의 국수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동아시아에 훨씬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100여 년간 쌓아온 치욕, 무협 판타지와 강렬한 국수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몇 세대의 세월이 지나야 해소될 것이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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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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