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보이는 현상만 따라가다 보면 본질과 숨은 의도를 놓치기 쉽다. 콘솔 게임 대전에 나선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의 경쟁이 그렇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시리즈X와 구독형 게임 모델인 ‘게임 패스’.(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5에 재탄생한 마블의 히어로 스파이더맨.(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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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연말 게임업계는 몇 년에 한 번씩 펼쳐지는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콘솔 대전으로 뜨겁다. 소니의 야심작 플레이스테이션5와 엑스박스 시리즈 X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소니와 엄청난 자금력으로 빠르게 뒤쫓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대결은 마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대표하는 두 팀인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의 승부만큼이나 뜨겁다. 게임 전용 하드웨어(콘솔)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거나, 아예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로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게임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차세대 클라우드 시장의 판도를 바꿀 중요한 변곡점일 수 있다.
게임 시장은 이미 클라우드 전쟁터미국 비디오게임의 역사는 깊다. 1세대 아케이드 게임기 ‘퐁(Pong)’부터 게임기의 대중화를 이끈 2세대 ‘아타리 2600(Atari 2600)’ 모두 미국에서 출시된 게임기였다. 하지만 3세대 게임기를 대표하는 닌텐도 ‘패미콤(Family Computer)’의 등장과 함께 우리에게도 익숙한 슈퍼마리오의 출현으로 게임업계에서 일본의 위치는 전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4세대 ‘슈퍼 패미컴(Super Famicom)’을 거쳐 5세대부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전 세계 최고의 게임 콘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 후로 닌텐도 ‘위(Wii)’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시리즈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소니가 게임업계의 왕좌를 지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 시장에 관심을 가진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역대 모든 소프트웨어를 통틀어 잠시나마라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Windows)보다 많이 팔린 소프트웨어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1993년 출시된 전설의 슈팅 게임 ‘둠(Doom)’은 1995년 말 윈도95의 판매량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 있는 소프트웨어였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이 소식을 접한 후 둠의 제작사 아이디 소프트웨어(id Software)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대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1세대를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게임 시장에 진출했다. 빈약한 게임 종류와 인지도 부족 등의 이유로 순항하지 못했지만 꾸준한 투자를 바탕으로 엑스박스 360을 넘어 엑스박스 원(One)을 만들어내며 플레이스테이션의 경쟁자로 손색없는 수준으로 올라왔다.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 제작사 인수에도 공격적이다. 2014년 25억 달러(당시 약 2조5000억원)를 들여 마인크래프트(Minecraft: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비디오게임)를 인수했으며 올해 75억 달러(현재 약 9조원)를 투자해 제니맥스 미디어(ZeniMax Media) 같은 인지도 높은 게임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으로 더 많은 게임사를 인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 콘솔 업계 1위인 소니를 따라잡기 위해 왜 이토록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일까? 비록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업계를 장악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소니를 이기기 위함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 콘솔 시장을 장악해 아마존, 구글 등과 벌이고 있는 클라우드 게임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현재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 모두 게임기를 판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크지 않은 편이다. 게임 콘솔의 가격은 그것에 들어가는 하드웨어 성능과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보았을 때 상당히 저렴하다. 두 회사 모두 플랫폼 싸움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저가 정책을 유지 중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시되는 엑스박스 시리즈 X는 500달러 정도의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12테라플롭의 GPU 성능을 지니고 있다. 이 정도의 성능을 지닌 RTX 2080 Super 그래픽카드의 경우 가격이 미화 1000달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시리즈 X의 콘솔 가격은 비슷한 성능의 그래픽 카드 하나 가격보다 저렴한 셈이다.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게임 콘솔
▎전자오락실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듯, 콘솔 게임도 클라우드 환경에서 힘을 잃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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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앞으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 게임 콘솔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구형 게임 콘솔의 능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좋은 스마트폰이 이미 사람들 손안에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개인용 PC도 게임 전용 콘솔의 성능에 견주어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끊김 없는 화려한 그래픽을 고사양으로 즐기기 위해 게임 콘솔로 게임하는 것이 여전히 스마트폰 혹은 PC로 게임을 할 때보다 더 좋겠지만, 이는 클라우드 기술이 더 발달할 미래에는 큰 장벽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제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게임을 할 때 로컬 하드웨어에서 게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 서버에서 프로세싱까지 마친 상태로 그래픽만 디스플레이에 쏴주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하드웨어 자체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클라우드, 5G,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이 게이밍 환경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다.그런 측면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떤 디바이스에서 게임을 즐기더라도 끊김 없이 빠르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클라우드 베이스 게임 생태계 구축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이들의 구독형 게임 서비스 모델인 ‘게임 패스(Game Pass)’가 좋은 예다. 게임 패스를 통하면 수백 개 게임을 스마트폰, PC, 게임 콘솔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곳에서 언제든지 플레이할 수 있다. 하나 팔아 큰 이득을 챙길 수 없는 게임 콘솔 판매보다 게임 패스 같은 클라우드 베이스 구독형 서비스 제공이 훨씬 수익성 높은 사업이다. 이러한 이유로 내로라하는 클라우드 업체들 모두 게임 부문에 엄청난 투자를 진행 중이다. 애플(아케이드), 구글(스태디아), 아마존(루나), 엔비디아(지포스 나우) 등이 이미 참전 중인데, 진입장벽이 대단히 높다 보니 구글, 아마존 같은 공룡들조차 현재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그뿐 아니라 게임 분야는 다른 분야에 진출할 때도 활용이 용이하다. 게임 개발을 위해 사용하는 3D 기술, 캐릭터 개발, 스토리텔링 등의 기술은 의료용, 산업용 혹은 교육용 콘텐트 개발에 바로 투입할 수 있다. 앞으로 더욱 커지게 될 증강현실 부문에서의 활용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증강현실에서 가능한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3D 활용이 절대적이며, 현재 전 세계 어떤 분야보다 게임산업에서 3D 활용 기술이 발달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게임의 장점을 마이크로소프트는 홀로렌즈로 대변되는 그들의 혼합현실 사업과 결합해 시너지 창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와 증강현실 같은 새로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게임을 교두보로 삼은 모습이다.모든 게임이 당장 클라우드 베이스로 넘어가거나 게임 콘솔 개발이 이번 콘솔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현재 게임 콘솔 자체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조금씩 사라질 것이고, 게임 전용 하드웨어는 게임을 즐기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가정용 게임 콘솔은 우리가 오락실에서 바라보던 덩치 큰 아케이드 게임기처럼 추억의 물건이 될 것이다.
※ 이상인 MS 디렉터는… 이상인 마이크로소프트(M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재 미국의 디지털 디자인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인 디자이너로 꼽힌다. 딜로이트컨설팅 뉴욕스튜디오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일한 그는 현재 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서 디자인 컨버전스 그룹을 이끌고 있다. 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 속해 있는 55개 서비스 프로덕트에 들어가는 모든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