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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기업에서 배운다 | 프레다 린 바이엘코리아 CEO & 이지숙 CFO 

바이엘 여성 리더에게 듣는 ‘넥스트 노멀’ 

올해 많은 기업에서 주요 키워드는 코로나19였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기업의 대응이 시험대 위에 올랐다. ‘뉴노멀’이 아니라 ‘넥스트 노멀’이라 정의한 바이엘은 생명과학 기업으로서 비전을 더욱 공고히 하며 유연한 대응으로 주목을 받았다. 바이엘코리아 여성 직원 비율은 50%에 달하고 C 레벨 임원진도 여성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프레다 린 바이엘코리아 CEO(왼쪽)와 이지숙 CFO
‘아스피린’. 150년 장수기업 바이엘이 만든 세기의 약품이다. 바이엘은 그 업적에 안주하지 않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렸다. 바이엘은 전 세계 90개국, 420개 지사에 구축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인구 증가와 고령화 등 인류 문제 해결에 앞장서왔다.

철학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건 직원의 몫이다. 11월 초 바이엘코리아에서 만난 프레다 린(Freda Ta-Ling Lin, 57) 최고경영자(CEO)는 “인류 공영에 이바지한다는 거대한 철학 앞에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데 직원들의 노력이 제일 컸다”고 강조했다. 이지숙(50) 최고재무책임자(CFO)도 “기업 내에서 열린 마음으로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여야 기업 철학을 이어갈 수 있다”며 “‘여성 친화적 기업’으로 바이엘이 꼽히는 이유도 이런 공감대에서 출발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바이엘코리아 전 직원 중 여성 직원 비율은 절반에 이른다. 임원진만 보면 여성이 70%가 넘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600대 상장기업 직원 118만7000명 중 남성 비율은 76.2%(90만4000명)인데 반해 여성 비율은 23.8%(28만3000명)에 그쳤다.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2017년 기준 56.9%로 여전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63.7%)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두 임원이 여성이라 바이엘코리아를 이끄는 건 아니다. 20년 넘게 글로벌 마케팅과 전략 기획을 수행한 베테랑들이다. 올해 사장으로 선임된 프레다 린 CEO는 25년간 아시아와 유럽 제약업계에서 바이엘의 영업·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2013년부터 대만 바이엘에서 전문의약품 총괄 및 대표이사로 일했고, 앞서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서 근무하며 대만과 중국, 아시아태평양, 영국 본사 등에서 글로벌 경험을 쌓았다. 이지숙 CFO는 1994년 바이엘코리아에 입사해 독일 본사·아태 지역 등에서 근무하며 회계, 재무, 기획, 컨트롤링, IT 분야에서 활동한 파이낸스 전문가다. 2018년 바이엘코리아 최초 한국인 CFO 자리에 올랐다. 두 사람에게 글로벌 바이오·헬스케어업계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올해는 ‘코로나19’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프레다 린 바이엘코리아 CEO(이하 프레다 린): 사실 취임하자마자 한국에서 감염이 확산됐다. 당시엔 한두 달이면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1년이 다 돼가는데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바이엘의 ‘넥스트 노멀’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 직원들 덕에 한국의 따뜻한 ‘정(情)’ 문화를 느꼈고 환대에 감동했다.

이지숙 CFO(이하 이지숙): 팬데믹 초반 우리의 비즈니스에도 영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금방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고, 황반변성 치료제는 최고 실적을 달성하는 등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건재함을 증명했다.

프레다 린: 맞다. 기존 제품들이 시장에서 이끌어주었기에 우리는 올해 두 가지 신약을 국내에 내놓았다. 항암제 2종이 지난 5월 국내 허가를 받았다.

바이엘은 왜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직접 뛰어들지 않나?

프레다 린: 모두가 같은 일을 할 수는 없다. 백신사업부가 있는 여러 제약사가 현재 임상 중이다. 임상은 막대한 자금과 시간,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일이다. 빨리 백신이 나와서 보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만, 제약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방백신을 개발하거나 치료제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심혈관질환치료제사업부(Heart Health), 특수의약품사업부, 여성건강 사업부, 컨슈머헬스 사업부, 크롭사이언스 사업부로 구성된 글로벌 생명과학 기업이다. 기존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지숙: 동의한다. 코로나19로 영업과 마케팅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올해 항암제 2종을 들여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병원에 가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 등을 통한 셀프케어 수요가 늘어 컨슈머헬스 사업부가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제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뉴노멀(New Normal)’에 대해 바이엘은 새로운 개념을 규정했다고 들었다.

프레다 린: 바이엘은 뉴노멀(New Normal) 대신 넥스트 노멀(Next Normal)이라 칭한다. 지금 새로운 것이 내일이면 또 익숙해지고 지속적으로 다음의 것을 준비한다는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두었다. 장소 개념이 사라진 넥스트 노멀 시대에도 우리는 ‘Health for all,Hunger for none’이라는 비전하에 인간의 기본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만은 변함없다.

이지숙: 변화는 늘 태생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전환은 우리가 갈 방향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시기가 앞당겨진 것과 같다. 똑같은 위기 상황을 맞닥뜨려도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넥스트 노멀이 지속가능성을 의미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프레다 린: 사회적 측면에서는 고품질의 영양을 제공하고, 혁신적인 의약품과 서비스로, 고령화 시대 사회가 처한 도전을 함께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걸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건강을 돌보는 데 집중한다. 인류가 먹고살 수 있게 하는 게 바이엘 비즈니스의 성공과 지속가능성이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이지숙: 한마디 덧붙이면, 기업 내부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 지속가능성은 디지털 마케팅 변화뿐 아니라 업무 환경도 해당한다.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유연근무제를 실시했고, 한 달에 한 번 재택근무가 가능했다. 코로나19 직후 전면적인 재택근무 시행에도 직원들은 빠르게 적응했다. 이런 기틀을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떻게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었나.

이지숙: 바이엘의 바이오니어(Bayoneer) 덕분이다. ‘Bayer’과 ‘Pioneer’의 합성어로 ‘일하기 더 좋은 공간(a better place to work)’을 만들어가기 위한 직원들 모임이다. 회사 복지 프로그램부터 사내 문화까지 직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구심점이 되어준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임원들에게 제안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실행한다. 재택근무, 유연근무제, 패밀리 프라이데이를 의미하는 YO! FTP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다.

아시아 여성으로서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신다면.

프레다 린: 나는 사실 젠더에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어느 성별이 뛰어나고 우월한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다르고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도 다양해졌다. 젠더의 다양화는 인력 분야의 넥스트 노멀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가진 여성 인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젠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역량을 발휘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이지숙: ‘여성’이라는 키워드는 이제 메가트렌드에 속한다고 본다. 국가에서도 기업에서도 여성 인력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여성 리더로 성장하는 데 바이엘 문화가 영향을 끼쳤나.

이지숙: 그렇다. 여성 인력 지원은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더 주목하고, 투자하는 게 효과적이다. 바이엘은 Diversity & Inclusion program 일부로 젠더 다양화에 노력해왔고, 멘토링 프로그램 등 리더들을 양성하는 데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바이엘에서만 30년 가까이 근무했기 때문에 임신·출산·육아를 모두 경험했다. 당시 한국에는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히지 않았고,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복귀하는 여성 직원도 많았다. 약 10년 전 독일 바이엘 본사에서 근무하면서 놀란 건 아이를 낳은 여성에 대한 배려가 사회제도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매우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점이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프레다 린: 아시아 국가의 특성상 여성이 리더 포지션을 갖는 게 우리 때도 어렵긴 했다. 하지만 바이엘은 일과 삶을 병행하면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복지 규정을 마련했다. ‘아시아 여성’이라는 것이 약점이라 생각한다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시아 시장은 포화된 유럽이나 북미 시장에 비해 개척할 부분이 많다. 아시아 지역에서 경험이 많은 여성 인재라는 것은 오히려 장점이다.

여성 리더로 자리 잡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프레다 린: 굳이 꼽자면, 위기를 만나면 피하지 않고 도전하는 태도?(웃음) 마케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남성 직원들 사이에서 스스로 기대 환경을 만들고, 책임을 지는 자세로 도전해왔다. 세일즈 매니저가 되기 위해 팀 방식을 빠르게 습득했다. 여성 직원들에게는 쟁취하고자 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래서 난 출산, 육아를 이유로 중단하지 말고 계속 일하라고 권고한다. 리더십 관점에서 내 철학은 ‘(여성 직원들의 경우) 쉽게 포기하지 않고 일을 해나간다면, 회사는 언젠가 너에게 적절한 기회와 성장할 수 있는 지원을 늘려갈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지숙: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믿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도 나를 믿어준다. 15년 전 파이낸스 디렉터 제안을 받았을 때, 난 유일한 여성이자 최연소 디렉터였다. 부담스러웠다. 당시 바이엘도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위계적이었고, 시니어 남성 매니저들이 오래전에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 ‘그래, 해보자.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팀과 어떻게 조화하며 일할지를 제일 많이 고민했다. 비즈니스 실무에서 베테랑 직원들에게 더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을 잃지 않았다. 업무 파트너로서 최대한 많은 걸 습득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려 했다.

C-level들의 열린 사고도 필요해 보인다.

프레다 린: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조직, 인재의 기준도 시시때때로 바뀌는 만큼 원칙과 유연성의 조화, 지식과 지혜의 균형이 필요하다. 회사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젠더나 나이는 통합의 과제다. 글로벌 마인드를 키울 수 있는 경험과 도전의 기회를 기업 차원에서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 둘 다 그런 기회의 수혜자다.

이지숙: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한 축은 실행하는 리더이고, 다른 한 축은 기업과 직원들의 적응인 것 같다. 기업마다 적응 수준이 다른데 바이엘은 열린 마음으로 습득했고, 기업문화로 뿌리내리게 해 확실한 기회의 장을 마련했다. 많은 기업이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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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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