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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버치의 코로나 생존기 

 

코로나19는 럭셔리 패션계에도 대재앙을 몰고 왔다. 21세기 들어 가장 진취적인 리테일 기업가(이자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자수성가 여성)로 꼽히는 토리 버치의 고군분투 생존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지난 3월 토리 버치는 햄튼에 있는 붉은 벽돌 저택에 완벽하게 꾸며놓은 서재를 작전실로 바꾸고 회의를 이어 가느라 일주일간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녀의 이름을 그대로 딴 패션 기업 토리버치 LLC의 CEO이자 그녀의 남편인 피에르 이브 러셀은 작전실의 녹색 소파에 앉았고, 레깅스를 입은 회장 버치는 그의 맞은편, 2만8300㎡ 면적의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문 옆 책상 앞에 앉았다. 부부는 3주간 서재에만 머물면서 회의를 계속했다.

버치는 “하루가 이튿날로 이어졌고, 일주일로 늘어나더니 바로 다음 주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3월 6일에 작은 여행 가방만 들고 파크 애비뉴 아파트에서 나올 때만 해도 봉쇄 조치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한 달 내내 한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정말 두려운 시간이었죠. 하루아침에 사업이 흔들리는 경험은 2008년에도 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됩니다. 훨씬, 훨씬 심각하죠.”

럭셔리 패션의 세계는 호황기에도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악독한 재난을 만난 것이다. 봉쇄 조치로 전 세계 매장이 문을 닫았다. 유럽과 북미에서 명품 매출의 30%를 차지했던 중국 관광객들은 더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 제이크루, 니만 마커스, 브룩스 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했다. 구찌의 모회사 케링과 러셀이 이전에 일했던 LVMH의 매출은 2분기 40%나 급감했고, 랄프 로렌은 매출이 67%까지 뚝 떨어졌다.

버치와 러셀은 상황의 심각성을 바로 알아차렸다. 두 사람은 몇 주 만에 전 세계 토리버치 매장 315개 중 다수의 문을 닫았고, 리테일 매장에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을 일시 해고하는 한편, 사업 확장 계획을 전면 중단했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동료를 코로나19로 영원히 잃는 슬픔도 겪었다. 그 와중에도 둘은 토리버치 LLC가 공중분해 되지 않도록 새로운 전략을 구상해야 했다.

전 세계 기업과 리테일 산업이 지각변동을 겪는 동안 갑자기 닥친 대종말의 시기를 헤쳐 나가야 했던 토리 버치의 8개월에 걸친 여정을 포브스가 함께했다. 버치와 러셀은 2019년 매출이 15억 달러에 달했던 (포브스 추산 수익률 11%의) 패션 사업을 살리기 위해 매장을 닫고 공급 경로를 바꾸고 전자상거래를 강화하며 살길을 찾아나갔다. 버치는 “방향을 급선회해서 민첩하게 대처하는 법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특히 더 힘들어지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둠 속으로 뛰어들면서 중요한 교훈도 얻었다.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 쇼핑을 하려 하지 않고 공공장소마다 치명적인 질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시기에는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배운 것이다.

버치는 펜실베이니아주 밸리포지에 있는 오래된 대저택에서 동화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직 배우와 금융가인 부모님은 멋지게 자신을 꾸밀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하고 1988년에 졸업한 그녀는 패션에 대한 열정을 품고 뉴욕으로 갔다. 처음 그녀를 채용한 유고슬라비아계 디자이너 조란은 버치의 어머니가 즐겨 입던 브랜드를 디자인 한 사람이었다. 이후 버치는 하퍼스바자, 랄프로렌, 베라왕에서 홍보와 에디토리얼을 담당했다. 1996년에는 투자전문가 크리스 버치와 결혼했고, 남편과 함께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면서 재정적으로 여유로워졌을 뿐 아니라 뉴욕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2004년 2월에는 맨해튼 놀리타에 토리버치의 첫 부티크 매장을 열었다. 합리적 가격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버치의 머리에서 나왔고, 경영은 부부가 함께했다. 2005년에는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었다. 출연 다음 날, 토리버치 웹사이트 방문자가 800만 명을 기록했다. 그해부터 매출이 1700만 달러로 증가했고, 부부는 리테일 사업에서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2년 뒤 매출이 1억1300만 달러로 늘어나면서 토리버치의 황금색 T 로고는 콧대 높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 목록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정 문제가 시작됐다. 2006년 버치는 결국 결혼 생활을 끝낼 준비를 시작했다. 이혼이 완전히 종결되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런데 2012년에 다시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전 남편 크리스가 패션 브랜드 C. 원더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했는데, 버치가 보기에 둘이 함께 시작한 토리버치 브랜드와 유사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결국 소송이 시작됐고 합의는 2013년 초에 이루어졌다. 2013년은 토리버치 LLC가 54개 매장에서 매출 8억 달러를 달성하고 버치가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에 처음 이름을 올린 해다. 이사직에서 물러난 크리스는 6억5000만 달러에 토리버치 지분 28%를 소수투자자 제너럴 애틀랜틱과 BDT 캐피털에 넘겼다. 버치는 공개 이혼이 진행 중이던 당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말한다.

이듬해부터 그녀는 러셀과 데이트를 시작했다. 러셀은 셀린느, 지방시, 겐조, 마크제이콥스 등 글로벌 브랜드를 보유한 LVMH 패션그룹 CEO이자 LVMH 억만장자 창업주 베르나르 아르노의 특별고문이었다. 버치와 러셀은 2012년 LVMH가 토리버치 투자에 관심을 가졌을 때 처음 만났다. 만남을 이어온 4년 동안 러셀은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지냈고, 둘은 2018년 12월 안티과섬에 있는 버치의 저택에서 결혼했다. 원예가이자 패션 아이콘이었던, 금융 재벌 멜론가의 상속녀 버니 멜론의 대저택을 인수해서 개조한 집이었다. 버치는 “부부가 됐으니 같은 나라, 같은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러셀에게 토리버치의 차기 CEO 자리를 제안했다. 설득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그도 동의했다. 러셀은 “팬데믹 이전에도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죠”라며 “우리가 다른 세계, 다른 문화, 다른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니 고민이 된 게 당연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러셀은) 처음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안나 윈투어 보그 편집장이 말했다. 같은 업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윈투어와 러셀은 친한 동료다. “아내와 함께 일하는 게 힘들 수 있기 때문에 설득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결혼하고 2주가 지나자 버치는 러셀의 CEO 취임을 공식 발표했다. 러셀의 공식 임기는 2019년 1월에 시작됐고, 버치는 좀 더 창의적인 업무를 맡았고 직함을 상임회장으로 바꿨다. 새롭게 시작된 부부의 파트너십은 얼마 안 가 시험대에 올랐다.

코로나19 위기가 닥친 것이다. 팬데믹은 버치가 한창 전성기를 달릴 때 시작됐다. 54살인 버치가 16년 전 시작해서 전 세계 35개국에 진출한 패션 사업은 2020년 1월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당시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2020년 9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뉴욕 패션위크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수백만 달러를 써야 해서 돈 낭비라고 생각되는 패션쇼에 참여하는 대신, 새로 부티크 매장을 오픈하는 맨해튼 머서 스트리트에서 블록 파티를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1월 28일에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중국 매장 일부를 닫았다. 같은 날, 토리버치 LLC도 전 세계 최대 면적(약 8900㎡)인상하이 매장을 포함해서 중국 본토에서만 29개 매장의 문을 닫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시아와 유럽에서 봉쇄로 인해 납품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토리버치 일부 상품의 생산에도 차질이 생겼다.

공급망이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납품하는 아이템이 하나 있었는데, 단추였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봉쇄된 것이죠.” 버치가 설명했다. “스웨터에 달 단추가 없어서 스웨터 자체를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생산에 차질이 생겨 특정 아이템의 납품이 중단되자 기획팀은 디자인을 변경하거나 해당 모델 자체를 없앴다. 그렇게 인도와 동유럽에서 생산하던 자수 드레스 2벌,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던 구두가 컬렉션에서 사라졌다. 이전 시즌 재고에서 남은 패브릭을 가져와서 새로운 디자인에 적용하거나 재이용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코로나19의 타격을 받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브라질 등으로 생산지를 옮기기도 했다.

그러다 품질 문제가 불거졌다. 러셀은 “샘플로 받은 제품 중에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럴 때는 아이템을 포기하거나 남은 부분을 중심으로 새로 디자인을 했다. 브라질에서 납품한 주얼리도 생산 문제로 품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컬렉션 전체를 취소하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판매가 되는 곳으로 재고를 옮겼다. 실시간 데이터분석으로 영업을 재개한 매장의 위치, 소비자 구매심리가 강한 곳을 찾아내 평가하고, 상품을 아시아 나머지 국가에서 중국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 일부 리테일 매장에서 애틀랜타 온라인 유통센터로 옮겼다. 이에 더해, 계절상품 주문을 줄이고 가방이나 스니커즈처럼 계절을 타지 않는 스테디셀러 아이템에 집중했다.

상품을 살리는 게 가장 먼저였지만, 어디에서 판매할지 결정하는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가 봉쇄에 들어가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많았던 토리버치의 현금 손실이 눈에 띄게 불어났다. 3월 중순이 되자 버치와 러셀은 315개 매장 중 절반이 넘는 곳의 문을 닫았다. 중화권 38개, 미국 111개, 캐나다 6개, 유럽 13개 등이다. (2월 말 중국 일부 매장은 영업을 재개했다.) 이후 회사는 미국 영업사원 대부분과 유럽 리테일 직원의 과반수를 일시 해고했다. 전 세계 직원 5000명 중 몇 명을 내보냈는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래도 미국 직원들의 의료보험은 계속 납부했다. 버치는 당시의 결정에 대해 “그동안 이룬 것을 지키지 못하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지죠”라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사세가 뒤집힌 다른 기업가 수백만 명도 같은 경험을 했겠지만, 버치 또한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정과 냉철한 이성 사이 균형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긴장해야 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세웠던 러셀은 2022년까지 중국에 신규 매장 20여 개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최대한 많은 매장의 오프닝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확장 전략을 포기할 수 없었던 둘은 개장을 뒤로 미루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올해 문을 연 매장은 두 개밖에 없고, 12월에 오프닝이 예정된 매장도 두 개 정도다. 러셀은 “모든 매장이 폐쇄되고 재개장은 기약 없이 미뤄지는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회사의 능력에 대한 궁극의 시험대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제품 가지치기

2021년 제품 라인업을 구성할 때도 군살 빼기 전략을 적용해 컬렉션 규모는 20% 축소됐다. (버치는 팬데믹 이전부터 제품 가지치기를 계획 중이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유행을 잘 타지 않아서 장기 구매에 적합하거나 투자로 간주되는 구두나 가방의 비중을 계속 늘릴 계획이다. (이번 가을 톱셀러는 토리 참 로퍼와 토리 스니커즈다.) 그 외 상품은 비슷하게 유지된다. 이미 캐주얼과 스포츠, 정장용 등 다양한 모델이 판매되는 중이라고 대변인은 말했다.

토리버치 고객 대부분이 다양한 색상의 샌들과 소형 핸드백을 선호하기 때문에 2015년 출시한 럭셔리 스포츠웨어 컬렉션 토리 스포츠가 주력 브랜드로 부상했다. 토리버치는 스포츠 라인을 홈페이지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고 웹사이트에 라운지웨어숍을 추가하는 한편, 스포츠웨어를 홍보하는 이메일 발송도 늘렸다. 토리버치는 토리 스포츠의 온라인 매출이 팬데믹 시작 이후 ‘3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가지치기를 마친 신규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버치는 일부만 완성된 드레스를 햄튼 저택으로 배송 받아서 작업을 이어갔다. 사무실은 서재보다 좀 더 공간이 넓은 식당으로 옮겼다. 러그와 가구가 빠진 자리는 화려한 패브릭 견본과 행거가 채웠다. 날씬한 몸매를 가진 버치는 패션 아이콘으로도 유명하지만, 새로 디자인한 옷은 자기보다 ‘피팅모델에 적합한’ 직원 두 명에게 주로 입혔다.

세상은 수개월 만에 초현실적으로 변했다. 괴로운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14년간 알고 지낸 친구이자 동료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을 때는 더 견디기 힘들었다. (친구의 개인정보라서 더는 밝힐 수 없다고 토리 버치는 말했다.) 그녀는 “끔찍했습니다. 너무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어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힘들겠죠”라고 말했다.

팬데믹은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대단한 변화 촉매제였다. 대형 할인점과 골목상권 모두 살아남기 위해 즉각적인 혁신을 단행해야 했다. 5년 뒤로 계획했던 전자 상거래 전략을 당장 이행한 기업들은 승자가 되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위기는 넘겼다

토리버치 또한 마찬가지다. 러셀은 오프라인 매장에 집중했던 전략에서 벗어나 중국, 중동, 일본 등지에서 전자상거래 인프라에 투자하고 온라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규모가 310억 달러에 달한 일본 명품시장에서는 팬데믹 이전만 해도 온라인 구매의 영향력이 미미했다. 럭셔리 제품은 만족감을 위한 구매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건네기 전 구매 제품을 직접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아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구매 행태가 바뀌었다. 이를 눈치챈 러셀은 일부 아이템을 알리바바 전자상거래 사이트 티몰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글로벌 웹사이트 네트워크도 새로 손보고 확장했다. 6월에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을 겨냥해 아랍어와 영어 웹사이트를 열었다. 웹사이트 개선과 조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7월과 8월에는 신규 채용도 했다. 현재 12개인 토리버치 웹사이트를 모바일 사용 환경에 맞게 최적화하는 한편, 인공지능을 적용해 개별 고객의 취향을 반영한 맞춤식 아이템 추천도 시작했다.

가상 스타일링 서비스도 도입됐다. 고객들이 일대일 동영상 예약을 하면 매장의 다양한 아이템을 온라인상에서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최고 고객들은 이보다 훨씬 참여도가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8월 말에 버치는 고객 35명과 줌 화상회의를 하면서 이들이 토리버치 브랜드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버치는 인스타그램에서도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편이다. 팬들에게 DM으로 아이디어를 보내달라고 요청할 때도 있다.) 이들은 일상적인 영업시간이 아닐 때도 프라이빗 예약을 잡을 수 있다. 스타일링 컨시어지 서비스도 있다. 고객에게 맞는 아이템으로 퍼스널 패키지를 구성해 보내주면 고객이 집에서 직접 착용해보는 서비스다.

신속한 대응이었지만 상황은 더 빠르게 변화했다. 얼마 안 가 전 세계에서 봉쇄가 해제됐고, 버치와 러셀은 다시 매장을 열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해고했던 직원 대부분이 복직했고, 6월 초에는 315개 매장 대부분이 영업을 재개했다. 그러나 고객들은 예전처럼 매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매장 방문자 수는 45%가량 줄었다. 토요일 오후, 맨해튼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에 자리한 토리버치 매장을 방문했다. 직원 말에 따르면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대였지만, 매장에는 225달러짜리 토리 스니커즈와 700달러짜리 엘레노어 백을 살펴보는 손님 3명뿐이었다. 그래도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최근 매장을 찾는 고객은 연령대가 낮아지고 실제 구매 비율이 더 높아졌다.

버치는 “장기적인 성장 방향에 맞게 회사를 키우기 위해 지난 15년간 일에 파묻혀 지냈다”고 말했다. “강해지고 싶었고, 힘든 환경에서도 우아하게 방향을 전환하며 위기에서 회사를 구하는 능력을 갖추고 싶었는데, 결국 그렇게 해냈습니다.”

옛날부터 착실히 실천했던 훈련이 도움이 됐다. “(버치는) 언제나 비용 효과성을 생각했다”고 2005년부터 2016년까지 토리버치 사장으로 일했던 브리짓 클라인이 말했다. “처음부터 그런 방식을 습관화하고 기업문화에 반영하면 배당금이 생깁니다. 비유적 표현이지만 실제 배당금이 늘어나기도 해요.”

실적을 보면 희망적이다. 리테일 매장과 온라인 신용카드 거래액을 익명화해서 분석하는 세컨드 메저 데이터를 보면 봄에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토리버치의 미국 직접 매출은 4월 전년 대비 67% 감소했고, 5월에는 41% 감소했다. 그러나 8월에는 하락률이 4%에서 멈췄다. 버치와 러셀이 태풍을 이겨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토리버치 LLC 대변인은 세컨드 메저 데이터의 방향성이 맞지만, 현금이나 페이팔, 애플 페이를 통한 구매액은 포함되지 않아서 그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치와 러셀은 토리버치의 올해 전체 매출이 약 20% 정도 하락해서 12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확실히 이전만큼은 아닙니다.” 버치도 인정했다.

둘 중 누구도 토리버치가 수익을 내고 있는지, 손실 중이라면 그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밝히지 않았다. 러셀은 그저 회사가 “합리적 수준의 채무”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출 감소와 기업가치 하락으로 포브스가 계산한 버치의 보유 지분 28.3%는 2019년 8억 달러에서 현재 5억 달러로 가치가 떨어졌다. 그래도 현금과 부동산으로 2억5000만 달러 자산을 따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모두 합한 버치의 총재산은 7억5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미국 최고의 자수성가 여성 순위에서 26위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버치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권에 올랐지만, 이후 상장된 브랜드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순위에서 탈락했다.

순위권이든 아니든, 그녀의 사업은 이어지고 있다. 버치와 러셀이 함께 단행한 경영 조치는 장기적으로 회사의 전망을 밝게 만들었다. 팬데믹으로 캐주얼 의상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가속화되긴 했지만, 힘든 시기에도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여성의 심리는 변하지 않았다고 버치는 말했다. 러셀도 거들었다. “좀처럼 유행을 타지 않아서 투자 대상이 되는 상품들이 있습니다. 한 번 사면 언제 어디에서든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죠. 그런 상품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갈 겁니다.” 이를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러셀과 버치는 좀 더 신중하긴 하지만 다시 사세 확장에 나섰다. 올해 안에 캐나다에서 3개 매장을 신규 오픈하고, 호주에서 1개, 중국에서 2개를 오픈할 계획이다. 2021년 초에는 중국 고객을 위한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한편, 하반기에는 홍콩과 싱가포르, 호주, 브라질 고객을 위한 웹사이트를 열 계획이다.

“미래를 알려주는 수정 구슬이 있는데 2008~2009년 금융위기 전날 골드만삭스 주식을 매수할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없겠죠.” 투자자문사 BDT 캐피털 파트너스의 설립자 바이런 트로트가 말했다. BDT 캐피털 파트너스는 토리버치의 소수투자자다. “그러나 팬데믹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지켜봤고, 지난 8년간 토리버치에 투자하며 경기 사이클을 함께 지나왔습니다. 그런 만큼, 재무적 측면에서 토리버치의 뛰어난 위기 회복력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산전수전을 겪고 난 지금은 통찰력까지 생겼다. “위기가 길어져서 매장을 계속 폐쇄해야 했다면 회사 사정은 지금과 아주 달라졌을 겁니다.” 러셀이 말했다. “아직 팬데믹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죠.”

- DENIZ CAM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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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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