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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FORBES PICK! | 배우 백진희 

“작품 후엔 봉사활동으로 재충전” 

유독 춥고 팍팍했던 2020년. 기부·봉사·챌린지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온기를 나눈 스타들의 선한 행보에 대중은 큰 박수를 보냈다. 배우 백진희도 봉사활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대표적인 스타다. 10년째 쉬지 않고 지구촌 어린이들을 위해 솔선수범하고 있다.

2012년, 배우 백진희는 MBC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모든 촬영을 마치고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치앙마이에서도 차로 3시간을 더 달려 한 산골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엔 출생등록도 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들이 길거리에서 꽃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백진희는 아이들과 부모를 만나 미래를 위해선 출생등록과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돌아왔다.

2014년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떠났다. 드라마 [트라이앵글]이 종영한 직후였다. 목적지는 우기마다 상습적인 침수로 가난에 시달리는 마을. 백진희는 그곳 아이들과 다양한 놀이를 즐기며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했다.

이처럼 백진희는 작품이 끝나면 어김없이 봉사를 떠났다. 2017년 드라마 [미씽나인]이 끝나고도, 2019년 드라마 [죽어도 좋아]가 끝나고도 그랬다. 극을 끌어가는 주인공으로 수개월간 에너지를 쏟아낸 직후라면 잠시 충전하는 시간을 가질 법도 한데, 그는 기꺼이 힘을 내 어려운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사실 작품을 끝내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요. 그런데도 매번 봉사를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에게서 얻는 에너지 때문인 것 같아요. 특히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가 힘을 주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에요.”

누구보다 성실하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배우 백진희를 만났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뜻한 마음이 묻어났다. 특히 아이들을 회상할 때마다 얼굴에 퍼지는 미소는 누구보다 온화하고 사랑스러웠다.

백진희가 해외 봉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 그의 곁엔 항상 ‘플랜코리아’가 함께했다. 플랜(PLAN INERNATIONAL)은 어려움에 처한 지구촌 아동들을 돕는 8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국제 NGO 단체다. 2012년 플랜코리아와 연을 맺은 백진희는 10년째 홍보대사로서 다양한 캠페인, 봉사활동, 교육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초보 봉사자에서 베테랑 봉사자로


현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플랜코리아는 개발도상국 아이들을 돕는 단체예요. 구호활동보다는 장기적인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힘쓰죠. 그들과 함께 보건이 취약한 나라에선 손 닦는 교육, 급수탑을 세우는 활동을 하고 여자아이들의 인권이 열악한 곳에선 인권 교육이나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는 누구인가요.

처음 봉사활동 가서 만난 아이가 가장 먼저 기억나요. 태국 시골마을에 사는 와디라는 아이죠. 태국으로 떠나기 전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주고 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다시 만나리란 기약이 없으니까요. 먹을 것부터 장난감까지 선물을 잔뜩 사서 갔습니다. 선물을 주며 와디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골라보라고 하니까 “선물보다 자기를 보러 와준 게 가장 좋다”고 대답하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 순간 느꼈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해요.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초보 봉사자 백진희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고되기로 유명한 인도(델리, 첸나이)까지 다녀오는 동안 베테랑으로 거듭났다. 이젠 자신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린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커질수록 고민과 걱정도 늘어난다”고 털어놨다.


▎인도 첸나이에서 봉사활동 했던 백진희 모습.
어떤 부분이 고민인가요.

인도네시아에서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신기하게도 아이들 모두가 새와 나무만 있는 풍경을 그리는 거예요. 바다라는 세상이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하더라고요. 그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어요.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물음이죠. 아이들이 구할 수 없는 새로운 장난감, 과자를 선물하면 저희가 떠난 후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부족함과 박탈감에 힘들어한다고 들었어요. 같은 의미에서의 고민인 거죠. 아이들이 속한 환경과 세상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경험을 누리게 해주는 방법. 그게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물론 말은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주로 미술활동을 많이 준비해 가요. 미술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흰 티셔츠에 아크릴물감으로 함께 그림 그리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통해 있죠. 사실 손잡고 마당에서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기뻐해줘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힘든 봉사를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인가요.

그럼요. 힘을 주러 간 건데 오히려 힘을 받고 올 때가 많죠. 태국에서 만난 와디의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집을 나서는데 제 손을 꼭 잡으며 “앞으로 하는 모든 일이 잘되길 기도하겠다”고 말하시더라고요.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처했더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되돌아봤죠.

인프라 개선은 이뤄지고 있나요.

미미하지만 개선되고 있어요. 캄보디아는 두 번 다녀왔는데, 두 번째 갔을 때는 이전보다 다소 발전돼 있더라고요. 처음엔 보건소도 없고 아이들이 손 닦는 법조차 몰랐거든요. 재방문했을 땐 보건소도 생기고 아이들을 교육한 효과도 느꼈어요. 뿌듯한 순간이었죠.

여러 가지 경험을 쌓고 감정을 느끼는 새 20대 초반이었던 나이도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다. 백진희는 “가끔 봉사 다니며 찍었던 사진을 보곤 하는데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실제 사진 속 그는 볼살 통통한 앳된 모습에서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다만 아이들에게 건네는 환한 미소와 따뜻한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사진 속에선 환히 웃고 있지만 힘든 일이 많았겠죠.

사실 전 더위도 배고픔도 잘 참는 성격이어서 무언가를 인내해야 하는 상황들은 힘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처음 겪는 낯선 상황들을 마주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인도의 환경이 가장 열악했어요. 사람, 가축할 것 없이 모두 길에 볼일을 보고 있더라고요(.웃음) 또 호숫가에선 빨래하는 옆에서 오리를 도축하고 있었고요. 충격을 받아 한동안 고기를 못 먹었어요.

인도가 가장 힘들었나봐요.

네. 인도에선 얼굴이 흰 여성에게 유독 관심이 많아요. 한국인도 인도에선 피부색이 흰 편이다 보니 주목을 받는 편이죠. 인도에 도착해 공항 밖으로 나갔는데 저희를 보기 위해 모인 인파가 엄청났어요. 마치 퍼레이드를 하는 기분이었죠. 그런 관심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것은 여성 인권이 열악한 나라였기 때문이에요. 제가 방문하기 전 임산부를 성폭행해서 달리는 버스의 창밖으로 던져버린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당시 타고 다니던 버스에 창문이 하나도 없어서 의아했는데, 그 사건 때문이란 이야기를 듣고 참 먹먹했죠.

인도에 가장 가고 싶어 했다고 들었는데요.

고등학생 때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공장에서 일하며 가장 역할을 하는 여덟 살짜리 인도 소녀의 사연이었죠. 그 소녀 외에도 세상엔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아동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죠. 언젠가 NGO 단체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꿈을 품게 해준 인도에 꼭 가보고 싶었어요. 플랜코리아에도 그 의견을 자주 피력했죠. 봉사를 시작한 지 5~6년 만에 인도에 가며 소원을 성취했다고 좋아했는데 막상 가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더라고요.

그럼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는 어디예요.

인도 말고 캄보디아요. ‘소피아’라는 후원 아동이 있어서예요.(웃음) 2015년에 결연할 때 만나고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그동안 편지와 사진으로 소식을 전하고는 있는데 많이 컸더라고요. 직접 만나 소피아와 친밀한 시간을 쌓고 추억거리를 만들고 싶어요. 팬데믹의 기승으로 하늘길이 막힌 2020년은 백진희에게 유독 아쉬운 한 해였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국내에서 진행된 기부, 봉사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틈틈이 국내 영아원을 찾아 아이들을 만났다. 그는 “국내에도 도움이 필요한 아동이 참 많다”며 “봉사를 망설이고 있다면 마음의 문을 조금만 더 열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마음, 금전적인 여유가 있어야만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아요. 초코파이, 바나나 같은 간식거리 조금이어도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사랑과 관심이에요. 당연히 처음엔 망설일 수 있어요. 하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거기서 내가 얻는 위안이 크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해보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에요.”

10년간 묵묵하고 성실하게 봉사해온 백진희. 이제 그는 더 큰 꿈을 그리고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 학교들을 짓고 싶어요. 꿈 많은 아이들이 더는 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껏 교육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요. 저는 학교들을 방문하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싶고요.”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102호 (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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