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진화하는 K팝의 글로벌 진출 전략 

 

신윤애 기자·정하은 인턴기자
불과 10년 전만 해도 K팝 아이돌에게 ‘빌보드’ 차트 진입은 평생 있을까 말까 한 꿈같은 일이었다. 일본·중국 시장 진출만으로도 힘든 도전이고 큰 성공이었다. 오늘날 K팝 아이돌이 빌보드 차트 접수를 넘어 상위권을 석권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기까지, 기획사들은 한 수 빠른 글로벌 진출 전략을 세워왔다.

▎모든 멤버가 일본인인 JYP의 걸그룹 니쥬(왼쪽)와 외국인 멤버가 포함된 YG의 걸그룹 블랙핑크.
# 2021년 11월,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의 솔로 앨범 수록곡 ‘머니(MONEY)’가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 100에 진입해 화제가 됐다. 같은 앨범의 수록곡인 ‘라리사’의 연이은 쾌거로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는 최초의 성과를 이뤄냈다.

# 역시 같은 해 11월 일본에서 데뷔한 JYP의 걸그룹 ‘니쥬’가 일본의 음원 차트를 휩쓸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멤버 9명 모두 일본인이지만 서울에서 교육을 받고, K팝 스타일로 탄생한 K팝 아이돌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두 사례는 K팝의 글로벌 진출 전략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2010년대 이후 국내 기획사들은 외국인 아티스트를 영입하는 전략으로 글로벌 무대를 겨냥했다. EXO, 2PM, 슈퍼주니어, 트와이스, 블랙핑크 등 주요 아이돌 그룹에 모두 외국인 멤버가 포함돼 있는 이유다. 이들은 국내에서 인지도를 쌓은 뒤 해외에 나가는, 다소 안정적인 스텝으로 보폭을 넓혀갔다. 리사도 그 전략의 일환으로 블랙핑크에 합류했고, 블랙핑크와 함께 국내 인지도부터 쌓아나갔다.

반면 니쥬는 ‘처음부터 해외 무대를 노린다’는 차원에서 모든 멤버를 외국인으로 구성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탄생한 그룹이다.

이 전략은 기존의 K팝 그룹 육성 시스템을 그대로 따르되, 현지인을 중심으로 그룹을 결성해 국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해외 무대를 향하는 게 특징이다. 국내 엔터기업들이 시도 중인 가장 최신 버전의 글로벌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는 “현지에서 그룹을 데뷔시키는 것은 보편화된 케이스는 아니었지만 니쥬와 같은 선례로 성공 가능성을 점친 몇몇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이 전략의 첫 케이스나 다름없는 ‘니쥬’가 성공적인 결과를 내자 JYP는 니쥬의 보이그룹 버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중이다. 현재 전 세계 11개 도시에서 국제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JYP뿐 아니라 걸그룹 ‘모모랜드’의 기획사 MLD도 2021년 1월 한일 합작 9인조 보이그룹 ‘T1419’를 한국, 일본, 미국에 동시 데뷔시켰다. MLD의 어시용 본부장은 “T1419는 목표한 일본, 미국을 넘어 남미에서도 인기가 많다”며 “남미의 유명 아티스트 대디 양키, 나티 나타샤, 말루마 등과 컬래버해 커버 영상 제작, SNS RT 등 여러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이브도 글로벌 오디션 개최에 나서며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이브 재팬과 하이브 재팬 산하의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은 공동으로 서바이벌 오디션 [앤오디션(& audition)] 제작을 시작했다. 여기서 탄생하는 그룹은 일본에서 시작해 세계 무대로 진출할 전망이다.


SM 또한 현지 데뷔를 추진하는 기본 전략은 같지만, 방법에서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인다. 기존의 아이돌 그룹을 각지에서 인기 있는 멤버들로만 재구성한 ‘유닛’으로 선보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2016년 데뷔한 23인조 무한 확장형 그룹 NCT는 NCT 127, NCT DREAM, NCT U, WAY V, NCT2020 등 다양한 유닛으로 분화했다. 중국인 7명으로 구성돼 중국 시장을 겨냥하는 WAY V는 중국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019년 미니 앨범 [Take Off]로 중국 무대에 데뷔한 직후 현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큐큐뮤직 차트 2위에 진입하고, 아이니치 팬카니발, 저장위성 송년 파티 등 현지 주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기세를 몰아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 세계 30개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기획사들은 중국, 일본 등 동양어권을 넘어 좀 더 다양한 언어권으로 해외 무대를 넓히려는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BTS의 성공으로 K팝의 북미 진출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판단한 SM과 하이브는 적극적으로 북미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SM은 NCT의 또 다른 유닛이자 미국 현지화 보이 그룹인 NCT-Hollywood를 기획 중이며, 하이브의 미국 법인 하이브 아메리카는 UMG 산하의 게펜 레코드와 함께 현지에서 걸그룹을 결성 중이다. 하이브 아메리카는 트레이닝 시스템과 육성 인력을, UMG는 현지 유통 및 마케팅을 지원한다는 복안이다.

활동 무대가 확장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국적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2018년, 걸그룹 마마무 소속사인 RBW는 베트남 현지 보이그룹 ‘다이버스(D1Verse)’를 데뷔시켰다. 이들은 네이버 브이라이브와 베트남 VTV9에서 동시 방영된 서바이벌 리얼리티 [위윌 데뷔]를 통해 구성됐다. 같은 해 기획사 쇼비티는 필리핀 국적의 5인조로 구성된 보이밴드 SB19를 선보였다. 이들은 지난 4월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후보에 올라 방탄소년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미국, 유럽,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아이돌 멤버가 포함된 아이돌 그룹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동윤 평론가의 표현에 따르면 ‘다인종 글로벌 팝’으로 진화한 모습이다

외국인 멤버의 존재는 국내 팬에게 색다른 매력을 주고, 해외 팬에겐 친근감을 준다. 실제 GOT7은 태국인 멤버 뱀뱀 덕분에 태국에서 광고를 많이 찍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예기치 못한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해결사’가 되기도 한다. 중국과 같이 정계가 엔터 업계를 좌우할 힘을 갖고 있고, 외부인의 시장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경우 중화권 멤버가 있다는 점은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 중화권 멤버가 있는 SM의 다국적 그룹 ‘웨이 브이’는 한한령 속에서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기획사들의 현지화 전략을 두고 한동윤 평론가는 “대체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 멤버가 영입되면 애국심으로 해당 멤버를 지지해주는 현지인 팬층이 생성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신윤애 기자·정하은 인턴기자 shin.yunae@joongang.co.kr

202201호 (2021.1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