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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투자자라면 알아야 할 NFT 마켓 ‘오픈씨’의 모든 것 

 

보통 스타트업이라면 특정 영역에서 전문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오픈씨(OpenSea)’는 예술, 음악, 게임 등 온갖 형태의 NFT 발매와 거래가 가능한 오픈마켓으로 일반화하면서 성공했다. 공동창업자들의 재산은 수억 달러로 불어났고, 지금은 10억 달러 기준을 넘기 직전이다. 그러나 성공과 함께 새로운 걱정거리도 찾아왔다. 경쟁업체와 사기꾼, 또다시 닥칠 암호화폐 폭락장이다.
2020년 3월,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오픈씨(OpenSea) 공동창업자 데빈 핀저(Devin Finzer)와 알렉스 아탈라(Alex Atallah)는 서로에게 사업을 이어갈 의지가 있는지 논의하기 위해 통화를 했다. 5명이 함께 꾸려가는 이들의 스타트업은 온갖 종류의 대체불가토큰(Non-Fungible Token, NFT) 발매와 매매가 가능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었다.

NFT는 예술 작품이나 음악처럼 고유성을 가진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블록체인 장부를 통해 추적하는 컴퓨터 파일을 뜻한다. 오픈씨는 야심 차게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출시 26개월이 지나도록 활성 사용자는 4000명밖에 되지 않았다. 월 거래액도 110만 달러에 그쳐 미미한 수준을 맴돌았다. 오픈씨 거래수수료가 2.5% 정도임을 감안하면 월 수입이 2만8000달러밖에 되지 않았던 셈이다.

NFT 시장이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CTO인 아탈라가 말했다. 뉴욕이 봉쇄에 들어가면서 그는 콜로라도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거처를 옮겨 지하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불길하게도 자금 사정이 훨씬 좋았던 경쟁업체 레어 비츠(Rare Bits)가 사업을 접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둘은 연말까지 사업 규모를 2배로 늘리기 위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전략을 세웠고, 결국 9월에 목표를 이뤄냈다.

2021년 2월, 오랜 동면에서 깨어난 NFT 시장은 곧바로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7월 한 달 동안 오픈씨는 NFT 거래로 3억5000만 달러 대금을 처리했다. 같은 달 앤드리슨 호로비츠가 주관한 투자 라운드에서 오픈씨는 기업가치를 15억 달러로 평가받고 창투사로부터 1억 달러 자금을 모집했다. 8월이 되자 NFT를 둘러싼 열기(와 ‘소외될 순 없다’는 포모(FOMO) 현상) 덕에 거래량은 10배로 급증해 34억 달러를 기록했다. 영업비용이 500만 달러도 되지 않는 오픈씨는 한 달 만에 수수료만으로 8500만 달러를 벌었다.

이후 한창 달아올랐던 열기가 진정되면서 거래대금은 월 20억 달러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그 사이 오픈씨의 활성 이용자는 180만 명으로 증가해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유하게 됐다. 직원 수는 70명으로 늘어났고, 급박하게 충원이 필요한 고객서비스 영업직을 포함해 인력 수십 명을 추가로 모집 중이다. 최근에는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투자 라운드를 한 번 더 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각자 19% 지분을 가진 핀저(31) CEO와 아탈라(29) CTO의 재산은 수억 달러로 늘어나서 ‘빌리어네어’ 기준이 되는 10억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11월 뉴욕에서 만난 아탈라는 성공에 들뜨기보다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었다. 인터뷰는 최근 개장한 마가리타빌 리조트 타임스 스퀘어에서 진행했다. 레스토랑은 저렴하면서도 트렌디한 분위기를 내세우고 있었다. 우리 자리 바로 옆에는 손에 횃불 대신 칵테일을 치켜든 10m 높이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아탈라는 제3회 NFT.NYC 컨벤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컨벤션은 등록 참석자만 5500명이고 대기자가 3000명에 달하는 등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호텔 안에는 수집·투자 대상이자 소셜클럽 입장권이 되어주는 1만 점의 원숭이 그림 NFT ‘보어드 에이프 요트 클럽(Bored Ape Yacht Club, BAYC)’ 스웨트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NFT 지지자이자 BAYC 팬이 분명한 이들은 모두 젊어 보였다.

겸손은 핀저와 아탈라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전문가들은 오픈씨가 예술이나 게임, 음악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 전문화해서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특정 카테고리로 제한되지 않는 범용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어떤 NFT가 유행할지 짚어내는 선견지명이 자신들에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망을 넓게 던진 것 외에도 오픈씨는 “적절한 시간, 적절한 장소에 있었던 덕분에” 이용자들의 요구를 열심히 들음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핀저는 말했다. 오픈씨는 이더리움을 비롯한 여러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NFT 이동을 추적하며, 모든 거래는 암호화폐로 이루어진다. 판매자는 정해진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고 경매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더불어 예술가들은 작품이 재판매될 때마다 특정 비율의 수익을 가져간다. 핀저는 NFT 소유권 검증 모델이 최종적으로 콘서트 티켓부터 부동산에 이르는 거의 모든 거래에 적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어떤 분야에서 언제 성공할지 모를 뿐이다. “미래는 항상 불확실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핀저가 겸손하게 말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성공을 누리고 있긴 하지만, 오픈씨는 사기 거래, 또다시 찾아올 NFT 시장 붕괴, 새로운 경쟁업체 등 심각하고 다양한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10월에는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오픈씨 최초 투자자 중 한 명이 자체적인 NFT P2P 마켓플레이스를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발표 후 수주 만에 250만 명이 코인베이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브라이언 암스트롱 CEO는 신규 사업인 NFT 마켓플레이스가 핵심 사업인 암호화폐 거래소에 “버금갈 만큼 커지거나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오픈씨가 선택한 오픈마켓 사업 방식은 위조품이나 각종 신용사기 리스크를 높일 수밖에 없다. 아마존과 이베이만 봐도 분명하다. 사기꾼이 다른 사람의 예술 작품 이미지를 복사해서 NFT로 판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핀저는 위조품을 자동 식별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며, 의심스러운 상품을 조사하는 관리자들을 두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사람과 관련된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9월에는 CEO가 오픈씨 최고상품책임자(CPO)의 사임을 요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NFT가 오픈씨 홈페이지에 올라와 가격이 정해지기 직전 이를 매수한 암호화폐 지갑 계정이 CPO의 것이었음을 트위터 이용자들이 밝혀냈기 때문이다. 오픈씨 중역이 회사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회사 자산에 대한 선매매 거래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오픈씨 창업자들의 표현은 매우 겸손하지만, 목표만큼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의사 어머니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베이에어리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핀저는 하버드와 스탠퍼드, 프린스턴, 예일에 입학하지 못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브라운대학에 만족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핀터레스트에서 짧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한 그는 2015년 자신의 첫 스타트업 클레임도그(Claimdog)를 창업하고 1년 뒤 크레디트 카르마에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아탈라는 콜롬비아에서 이민 온 아버지와 아르마니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콜로라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새나 브라우저 등 자신이 아는 모든 사물의 특징을 비교하는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스탠퍼드를 졸업한 후에는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핀저와 팀을 이루게 됐다. 2018년 1월에 둘은 이용자들이 와이파이 핫스폿을 공유하면 암호화폐로 값을 지불하는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Y 콤비네이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에 들어갔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디지털 고양이 카툰 거래 내역을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크립토키티즈(CryptoKitties)가 등장해 사람들에게 암호화폐의 가능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암호화폐를 동전으로만 생각하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잠재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탈라가 말했다. 둘은 재빨리 방향을 바꿔 오픈씨 사업계획을 생각해냈고 사무실을 뉴욕시로 옮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디지털 인형 크립토키티즈는 전통적 봉제인형 비니 베이비즈와 마찬가지로 수집 가치가 있는 투자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급이 너무 많아서 가치가 높아질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암호화폐와 NFT 열기는 2018년 초 반짝했다가 깊은 동면 상태에 들어갔다.

시장은 2021년 초 다시 깨어났다. 흐름을 주도한 건 오픈씨가 아니라 억만장자 윙클보스 쌍둥이가 보유한 양질의 예술 NFT 플랫폼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였다.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작품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 무려 6900만 달러에 낙찰된 것이다. 생존 작가 작품 중 NFT가 세 번째로 높은 가격을 받으면서 세간의 관심이 NFT에 확 쏠렸다.

충격적으로 높은 가격 덕에 NFT 시장은 보통 사람들의 영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직접 NFT를 발매하거나 수집 또는 투자를 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오픈씨로 몰려든 것이다. 오픈씨가 선택된 이유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철학,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의 연결성, 그 외 편리한 기능 덕분이었다. 예를 들어, 오픈씨에서는 원하는 기준에 맞는 NFT를 필터링하는 기능이 있어서 희귀해서 가치가 높은 NFT를 찾아내기 쉽다. (BYAC 시리즈의 경우 황금색 털을 가진 원숭이 토큰은 46점밖에 되지 않아서 프리미엄이 상당히 높다.)

신규 NFT가 발매되어 이더리움에 기록되면, 오픈씨에는 자동적으로 이를 전시하는 웹페이지가 형성된다. NFT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됐다는 점에서 이 또한 매우 유용하다. 사람들이 오픈씨 페이지를 공유하고 자신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보유 NFT로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러움과 욕망이 더욱 강한 부러움과 욕망을 불러오는 순환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시장을 오픈씨가 확실히 잡은 거죠.” 벤처캐피털 1컨퍼메이션(1Confirmation)의 파트너이자 초기 오픈씨 투자자인 리처드 첸이 말했다.

조지아에 살고 있는 전직 패션디자이너 대니(27)가 ‘월드 오브 위민’ 등의 NFT에 투자한 1만7000달러짜리 포트폴리오는 가치가 71만5000달러로 치솟았다. 게이밍 회사 CEO였던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AJ(37)가 1만 달러도 안 되는 돈을 투자해 얻은 NFT는 현재 130만 달러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그의 설득에 따라 위장병 전문의인 형도 NFT 투자에 뛰어들었다. 형의 친구들도 함께 NFT 세계에 입문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한 후 전화기를 꺼내 구매 신청 중인 NFT 신작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요즘 형과 친구들이 하는 일”이라고 AJ는 말했다.

이 정도면 거품이 만들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픈씨는 언제까지 거품 위 항해를 계속할 수 있을까? “겨울이 오더라도 버틸 수 있습니다. 솜옷을 잔뜩 준비해뒀거든요.” 핀저의 답이다.

※ NFT의 해 공동창업자 알렉스 아탈라(좌)와 데빈 핀저가 오픈씨의 새로운 소호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었다. 2018년 창업한 오픈씨는 2020년 매출이 100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21년 매출은 3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 지난 8월 스테판 커리는 보어드 에이프 NFT(#7990)를 18만 달러에 매수했다. 보어드 에이프 NFT는 커리 외에도 지미 팔론과 마크 쿠반 등 다양한 유명인이 보유하고 있다.


- JEFF KAUFLIN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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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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