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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7) | 천소혜 하우저앤워스 디렉터 

다양성을 외치는 갤러리 문화 

정소나 기자
기록적인 작품 판매와 관람 열기로 전 세계 미술계를 감탄케 한 프리즈 서울이 막을 내렸다. 프리즈 서울의 성공적인 아시아 상륙에는 세계 최정상 갤러리들의 활약이 한몫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에 첫 상륙한 하우저앤워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컬렉터들을 설레게 하는, 지금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라고 할 수 있다. 오픈 첫날부터 프리즈 서울 부스의 열기를 한껏 끌어올리며, 개막 1시간 만에 작품 15점을 판매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정승우 이사장이 프리즈 서울을 통해 또 한 번 주목받은 하우저앤워스의 천소혜 디렉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사진:하우저앤워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많았다. 지난 9월 2일부터 5일까지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군 ‘프리즈 서울’ 얘기다. 팬데믹 와중에도 관람객 7만여 명이 방문했고, 결산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오픈 첫날부터 수십억원의 작품들이 속속 팔려나가 판매 수익이 프리즈 뉴욕이나 프리즈 LA를 능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리슨갤러리 등 국내 아트페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컬렉터들의 심장을 뛰게 할 거장급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프리즈 서울의 성공에 동력을 더했다.

세계 3대 갤러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하우저앤워스는 30억여원에 달하는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의 유화를 비롯해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조지 콘도(George Condo),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등 갤러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프리즈 서울의 부스를 장식했다. VIP들에게만 오픈된 개막 첫날, 조지 콘도의 작품이 약 38억원(280만 달러),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품이 약 24억5000만원(180만 달러)에 각각 판매됐다.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의 작품은 약 7억5000만원(55만 달러)에 일본 사립박물관이 구매하는 등 개막 1시간 만에 작품 15점, 시가 100억원대에 육박하는 작품들을 판매하며 인기와 명성을 실감케 했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7번째 인터뷰이는 하우저앤워스 디렉터로 활동하며 프리즈 서울에서도 맹활약한 천소혜 디렉터다. 서울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는 그녀는 현재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바쁘게 지낸다. 지난 2015년에 하우저앤워스에 합류했으며, 매년 눈에 띄게 변화하는 갤러리와 함께 성장 중이다. 현재는 작가나 작품에 연관된 활동뿐만 아니라 더 큰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시장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미술사를 전공했다. 큐레이터나 옥셔니어가 아닌 갤러리스트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갤러리 본연의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갤러리스트는 미술시장의 모든 측면을 살펴보는 전략가다. 업계의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며 갤러리의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모든 과정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하우저앤워스 갤러리스트로서 항상 최선을 다해 갤러리에 소속된 아티스트의 비전을 실현해주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컬렉터, 큐레이터, 유수 기관과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앞으로도 갤러리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통해 지난 30년 역사 동안 꾸준히 강화해온 다양성을 드러내고 싶다.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수년간 준비했고, 반응도 매우 좋았다.


▎프리즈 서울에서 큰 관심을 받으며 개막 첫날 판매된 조지 콘도의 작품. / 사진:하우저앤워스
하우저앤워스는 수십 년 동안 아시아에서 활동했다. 2018년에는 홍콩에 갤러리를 오픈해 아시아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2010년 아트 홍콩부터 2013년 아트바젤이 홍콩 아트페어를 인수하면서 시작한 아트바젤에 꾸준히 참여하며 아시아 미술계와 탄탄한 관계를 다져왔다. 홍콩을 기반으로 한 아트페어에 참여함으로써 한국을 포함한 더 넓은 아시아 지역의 컬렉터들에게 갤러리와 작품들을 소개해왔다. 한국 시장에 첫선을 보이는 프리즈 서울을 위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부터 동시대 현대미술 트렌드를 견인하는 작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공들여 선별해 한국의 컬렉터들을 만족시키고자 노력했다. 올해는 하우저앤워스가 창립 3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루이즈 부르주아, 제이슨 로즈(Jason Rhoades),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 등 1970년대에 갤러리에 합류한 초기 아티스트들부터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 에이버리 싱어(Avery Singer), 앙헬 오테로(Angel Otero)를 포함한, 갤러리를 대표하는 현대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통해 하우저앤워스의 지난 30년 여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페어 첫날, 단 한 시간 만에 15개 작품이 판매되어 보람을 느꼈다.

한국의 컬렉터들은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전 세계 미술시장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역사적인 현대미술 작품은 물론, 요즘 핫한 작가들의 작품까지 두루 섭렵 중이다. 지난 5월 진행된 홍콩 아트바젤에서는 조지 콘도의 대형 작품이 한국의 유명 사립미술관에 판매되기도 했다. 이번 프리즈 서울 참가는 갤러리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컬렉터들과 기관들 외에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안목 높은 컬렉터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고심해 선별한 작품들이 한국과 더 넓은 지역의 컬렉션에 소장될 수 있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최근 눈여겨보는 한국 갤러리나 작가가 있나.

국제 갤러리, 현대 갤러리, 아라리오 갤러리 등 1980년대부터 한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국내외 컬렉터들과 해외시장에 알리기 위해 열정을 다하는 국가대표 갤러리들에 경의를 표한다. 또 올해 프리즈 서울의 포커스 아시아 섹션에 참여한 젊은 갤러리들이 국내 작가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하고, 인상적인 작품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최근 세계 아트 마켓의 트렌드가 궁금하다.


▎수준 높은 작품들로 채운 프리즈 서울 하우저앤워스 부스. / 사진:하우저앤워스
‘피지털(Phygital)’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고 싶다. ‘피지털’은 오프라인 공간을 의미하는 피지컬(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로, 디지털을 활용해 오프라인 공간에서 물리적 경험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는 예술을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하이브리드가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모든 하우저앤워스 갤러리 전시는 오프라인 쇼 외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관람객들이 디지털 플랫폼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경험을 함께 제공한다. 우리가 참여하는 아트페어마다 하이라이트 작품을 감상할 수 온라인 관람실(OVR)을 만들어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으로 열린 최초의 아트페어인 만큼 프리즈 서울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온 컬렉터들과 갤러리, 유수 기관의 전문가들과 언론인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행에 제한이 있는 중국과 홍콩 관람객들을 위해 중국어로 맞춤 콘텐트를 제작하고, 중국의 유명 모바일메신저 ‘위쳇(WeChat)’의 하우저앤워스 공식 계정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아트페어가 열린 첫날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로 성장한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인 ‘이티아오(Yitiao)’로 프리즈 서울을 소개해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오픈 첫날,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 작가인 장언리(Zhang Enli)와 함께 진행한 라이브 스트리밍 가이드 투어에는 1만7000명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아트페어가 활발히 열리는 유럽, 미국, 홍콩, 한국 시장을 비교한다면.

전반적으로 어느 지역이나 도시보다는 아트페어에서 선보이는 미술작품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다. 미술계는 역사적으로 유럽이나 미국 등이 지배적인 역할을 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아시아 미술시장의 성장세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행 제한이 완화되면 홍콩 아트 시장도 곧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 또한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매혹적이고 세련된 아트 신을 이어가리라 기대한다.

하우저앤워스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갤러리 문화로 잘 알려져 있다. 향후 한국 작가를 소개하거나 협업할 계획이 있나.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Gray Fountain’ / 사진:하우저앤워스
하우저앤워스는 현재 90명이 넘는 아티스트를 대표하며, 소피 테우버 아르프(Sophie Taeuber Arp), 루이즈 부르주아, 필립 거스턴, 헨리 무어(Henry Moore) 등 전설적인 거장부터 마크 브래드 포드, 피필로티 리스트, 에이미 셰럴드(Amy Sherald), 폴 매카시(Paul McCarthy), 신디 셔먼(Cindy Sherman), 라시드 존슨, 니콜라스 파티와 같은 동시대 아티스트들의 목소리까지 다양한 아티스트를 통해 미술사 궤적을 추적하는 하우저앤워스만의 탁월한 프로그램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티스트 마인드 갤러리’로서 세 공동 설립자를 비롯한 갤러리의 모든 사람은 아티스트를 먼저 생각하고,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을 처음부터 갤러리의 핵심으로 생각했다. 다른 어떤 갤러리보다 더 많은 여성 아티스트를 대표하고, 다양한 인종의 아티스트와 함께하며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을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한국 작가와 협업하기 위해 20년 전 갤러리의 공동 설립자이자 대표인 이완 워스(Iwan Wirth)가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너무나도 존경했던 한국의 아티스트 백남준에게 취리히 서부 산업 지역의 비어 있는 원시 공간을 위한 큰 프로젝트를 제안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결국 함께 갤러리에서 ‘Jardin Illumination’라는 전시를 해냈다. 그때 전시 카탈로그에 에세이를 쓴 피필로티 리스트는 지금까지 갤러리와 함께하며 큰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다. 백남준처럼 갤러리의 성격을 대표하는 한국 작가와 함께하는 작업이라면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재능 넘치는 한국 작가와의 작업을 기대해본다.

프리즈의 한국 상륙 이후 한국 미술시장의 전망을 예상한다면.

한국은 오래전부터 정부가 주도하는 예술 후원의 역사가 있고, 여기에는 정교하고 탄탄한 국내 인프라가 포함되어 있다. 국가가 후원하는 국립 미술관이나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리움, 호암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 기업이나 민간이 주도하는 미술관도 엄청나게 많은 컬렉션을 자랑한다. 한국 미술시장은 전 세계 이목을 끌 만큼 활기가 있고, 모든 시선이 서울로 쏠렸던 프리즈 서울은 한국 미술시장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5년간 열릴 프리즈 서울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이 자생력을 키운다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와 작품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의 컬렉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난 30년 동안 하우저앤워스는 ‘갤러리’의 정의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 외에도 역사적 건물이나 버려진 공간을 갤러리로 활용함으로써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지역 커뮤니티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중에서도 영국 시골 지역의 낙후된 건물인 농가를 개축해 세계적 수준의 아트센터로 재탄생시킨 하우저앤워스 서머싯을 비롯해 밀 제분소가 있던 단지를 근사한 갤러리로 바꿔놓은 로스앤젤레스, 버려진 해군 병원을 매만져 갤러리, 아트숍,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스페인 메르노카섬의 아트센터는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은 한국의 컬렉터들이 꼭 한 번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202210호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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