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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부울경 혁신 리더(13) 구정회 은성의료재단 이사장 

경영은 모든 이해관계자의 마음을 얻는 일 

장진원 기자
은성의료재단은 부산과 영남 지역에서 ‘좋은병원’ 브랜드 11곳을 거느린 의료재단이다. 재단을 이끄는 구정회 이사장은 의료와 경영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한데 묶어 지역사회 의료 발전을 45년간 이끌어온 의사이자 CEO다.

2018년 4월, 구정회 은성의료재단 이사장은 대한병원협회 등이 주관하는 ‘존경받는 병원인상’을 수상했다. 은성의료재단은 지난 1978년 구정회정형외과와 문화숙산부인과(문화숙 원장은 구정회 이사장의 부인)에서 출발해 1991년 이후 의료재단으로 운영돼온 부산의 대표 병원이다. 현재 문 원장이 운영하는 좋은 문화병원을 포함해, 구 이사장이 이끄는 은성의료재단은 부산·경남·경북 지역의 11개 ‘좋은병원’ 네트워크에서 3200여 병상을 운용 중이다. 300여 명이 넘는 의료진과 간호사 1500여 명 등 임직원 4400여 명이 영남권 지역의 주민 건강과 지역의료 발전을 이끌어가고 있다.

45년간 지역사회 의료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의사에게 ‘존경받는 병원인상’이라는 시상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날 구 이사장이 받은 세부 시상명이 재미있다. 바로 ‘CEO 부문’이다. 정형외과 의사이자 은성의료재단 이사장, 즉 의사로서의 본분은 물론이거니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척박한 지역 의료 환경에서 의료재단을 ‘경영’하며 이뤄낸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부산 수영구에 자리한 좋은강안병원을 찾았다. 40년 넘게 의사이자 CEO로서 살아온 구 이사장에게 한국 의료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직접 물었다. 구 이사장은 은성의료재단에 대한 소개를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국내 의료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들을 쏟아냈다. 공익과 산업의 이중구조를 인정해야 한다는 고언이었다.

은성의료재단은 영남지역 의료계에서 대형 종합병원들만큼이나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소개 부탁한다.

현재 각 지역에서 ‘좋은병원’이라는 이름으로 11개 병원을 운영 중이다. 총직원은 4489명, 병상 수는 3235개이고, 서울에 있는 개인 불임센터까지 포함하면 13개 의료기관이 모여 있다. 시작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숙(부인) 원장과 부산 범일동에 구정회정형외과와 문화숙산부인과를 같은 날 개원했다. 30대 초반이었는데, 그때 무슨 거창한 꿈이 있었겠나. 먹고살고 직원들 월급이나 제대로 주자는 게 처음 목표였다. 처음부터 무슨 재단 같은 꿈을 꿨다는 건 거짓말일 게다. 집사람도 나도 운이 좋았는지 병원이 잘됐다. 입원실이 꽉 차고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환자들이 몰렸다. 병원 규모를 키워야 해서 옆에 있던 땅을 사 1986년 문화병원을 세웠다. 좀 더 큰 병원을 운영해야겠다는 마음은 1980년대 초부터 들었다. 내 나름의 꿈을 처음 실현한 게 1986년 즈음이었던 셈이다.

환자가 많았다는 건 그만큼 실력이 뛰어났다는 뜻 아닌가.

나는 모르겠지만,(웃음) 아내는 지금도 현장에서 신망받는 산부인과 의사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사업은 운도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보험이 시작된 때가 1977년이다. 그때부터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1986년 두 번째 병원을 짓고 나서도 환자가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범일동에는 더는 확장할 땅도 없었다. 그런 판에 백화점이 옆에 들어오니 병원 지을 땅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 땅값도 올랐다. 할 수 없이 주례동에 병원을 세우고 좋은삼선병원이라 이름 지었다.

그때부터 재단화와 대형화를 생각하신 건가.

병원을 늘렸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때가 남은 인생을 결정지은 갈림길에 선 순간이었다. 의사로서의 길을 계속 가야 할지, 즉 계속 병원을 할지, 다른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1990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주위에 조언을 구해보니 다들 “네가 의사인데 병원이나 하지 무슨 다른 사업을 하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이왕 병원을 할 거면 의료법인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국내 의료법상 의료법인은 100% 공익법인이다. 내 재산을 국가에 내어주는 것과 같다. 재단을 세우면 소유권은 없고 관리권만 갖게 된다. 그럼에도 1992년 의료재단을 설립했다.

병원장과 의료재단 이사장의 역할은 분명 다를 것 같다. 위기는 없었나.


다른 건 몰라도 경영자로서 최소 10년에 하나 정도는 주례삼선병원만 한 병원을 새로 세워야 제대로 된 경영이라고 생각했다. 현재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 와중에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금리가 급등하니 의료장비 리스료(이자+원금)도 치솟았다. 시중 경기가 나빠지니 안팎으로 곱사등 꼴이었다. 흑자도산을 맞은 병원도 많았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는데,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됐다. 의사들이 다 튕겨 나가면서 또다시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좋은문화병원과 모태병원들이 잘돼고 대출도 없어 버틸 수 있었다. 주변 병원보다 난국을 잘 헤쳐나갔던 셈이다. 지금은 의약분업이 완전히 자리 잡았지만, 당시만 해도 의사들이 처방권만 갖게 되니 빨리 나가 개업하는 경우가 폭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의료재단이 더 성장하게 된 시대적인 운도 IMF 위기였다. 전국 땅값이 엄청나게 떨어진 거다. 병원을 세우려면 무엇보다 병원 부지, 즉 땅이 있어야 하기에 몇 곳의 땅을 헐값에 사들였다. 2005년 문을 연 좋은강안병원도 그렇게 마련한 부지에 세웠다. 탄력이 붙자 1년, 2년마다 하나씩 병원을 선보일 수 있었다. 아직도 병원을 짓지 못한 땅이 몇 곳 있다.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다면 어디 산 같은 데 사서 벌써 형질변경했겠지.(웃음)

의료계는 공익과 서비스산업 양쪽 주장이 팽팽한 대표적인 산업이다.

서비스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자원이 없으니 지식산업이라 해서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려 한다. 그런데 현실은 토양 자체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의료산업이 특히 그렇다. 의료서비스는 사업장별로 가격결정권이 없다. 5성급 호텔이나 동네 모텔이 똑같은 방값을 받는 꼴이다. 교육 분야도 엄청난 서비스 영역인데, 우리는 거의 대부분이 공교육이다.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목표로 점프하려면 제조업이 완전한 초일류로 가든지, 그게 아니면 서비스산업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둘 다 막혀 있다. 단순히 밤잠 안 자고 일하는 우수한 노동력만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여기쯤이 한계다.

헬스케어 산업이 유망하다고 해도, 현재 국내 의료산업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모든 미래학자가 헬스케어를 미래 유망 산업으로 꼽는다. ‘1년만 더 살 수 있다’ 하면 돈 있는 갑부는 1조원도 선뜻 낼 것이다. 구글 같은 ICT 기업도 헬스케어에 투자하니 유망하다는 건 맞는 말이다. 병원은 헬스케어 산업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투자는커녕 숨만 겨우 쉬는 정도다. 뛰는 건 언감생심이다. 병원은 어디까지나 공익재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병원이 공익재인 건 맞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이 산업의 영역으로 갈 수 있는 공간도 이중구조로 마련해야 한다. 큰돈을 내더라도 치료하고 싶다는 사람마저 막을 수는 없다. 많이 걷은 치료비는 그만큼 부족한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쓰게 만들면 된다.

의료관광은 활성화되지 않았나.

의료관광은 기본적으로 기술집약적 영역이다. 특정인에게 뛰어난 의학적 기술이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보편적인 의료산업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중동 부호가 특급호텔에 묵고 싶지 싸구려 모텔에 묵으려 하겠나? 특급호텔에 해당하는 의료기관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나마 공공의료 영역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은 전세비행기를 띄우는 곳도 있다고 한다. 우리 같은 병원도 같은 진료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특급호텔은 아니잖나. 사실 환자 진료로 돈을 버는 건 헬스케어 중 가장 낮은 레벨이다. 제약 같은 산업을 봐라. 화이자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겠나. 현재 국내 의료기 중 95%가 외산이고, 베스트 약품 100가지 중 97가지가 외산이다. 현재 한국은 제약이든 의료기든 개발할 수 있는 시장도 환경도 없다. 이미 세계 톱클래스 의료장비와 소모품, 시약 등은 글로벌 기준으로 마케팅한다. 반면 우리는 제대로 된 연구소 하나 없다. 이미 글로벌 네크워크에서 한국은 빠져 있다. 의료진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정부가 나서야 풀리는 문제다.

은성의료재단은 11개 개별 병원마다 분야와 지역을 특화해서 운영한다. 보통 대형 종합병원으로 키우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경영학적으로 접근하면 당연히 그렇다. 큰 병원을 운영하려면 그만큼 넓은 땅을 확보해야 한다. 이만한 병원 하나 세우는 데도 수천억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못 할 때는 기다려야 한다. CEO가 핸들링할 수 있는 적정 규모의 범위를 넘어선다면 무리하게 크게 벌이지 말아야 한다. 그게 병원과 일반 기업의 차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대형 종합병원 수준의 큰 병원을 지으려면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아래선 대학병원 아니면 어렵다. 더욱이 우리처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인적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의과대학이라야만 인턴, 레지던트, 펠로 같은 하부구조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병원이 갈수록 어려움에 처하는 것도 이런 하부구조가 허약해져서다. 외과, 소아과 등은 아예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대학병원도 사정이 심각한데 지방 독립병원은 오죽하겠나. 의과대학을 세우는 건 엄청난 정치적 백그라운드나 로비가 필요한 일이다. 거의 도박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러니 대기업을 배경으로 둔 대학들이나 세울 수 있다. 나보다 10년 정도 선배들이 그렇게 대학병원에 뛰어들었다. 나 때는 이미 규제 차원으로 차단됐다. 지금도 지역마다 의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아우성이지만, 너무 어려운 구조로 바뀌어버렸다. 대형 종합병원에 걸맞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출 자신이 없다.

산술적으론 11개 병원을 한 군데서 통합하는 게 낫지 않나.

구축함 여러 대보다 항공모함 한 대가 좋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설립이 어렵다면, 300병상 수준으로 지역에서 접근성이 좋은 2차병원으로 가자는 게 우리의 접근법이다. 그걸 조금 미화하면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게 아니라, 병원이 환자를 찾아가는’ 개념이다. 대학병원은 다소 불편해도 거길 가야만 하는 환자만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의료전달 체계가 확립되지 않아서 감기만 걸려도 대학병원에 간다. 큰 병원은 백화점처럼 거대해지고, 지역 병원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쏠림 현상이다. 이렇게 되면 나라와 국민, 병원, 의사, 환자가 다 불편하다. 현재로선 서로 이익이 얽히고설켜 못 고친다. 사회적 숙고와 합의를 거쳐 언젠가는 바로잡아야 한다.

‘좋은병원’이라는 브랜드가 지역에선 신뢰 있는 중형 병원의 이미지로 통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관리 능력을 갖춰야 했다. 10개 넘는 병원을 탈 없이 관리할 수 있는 능력, 그게 우리 재단의 작은 자랑이자 결과물이다. 한마디로 무식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웃음) 우리는 300~400병상 정도 되는 2차병원을 세우고 퀄리티를 높여서 대학병원에 안 가도 되는 안전하고 편리한 병원을 추구한다. 그게 우리의 목표이자 갈 길이고 운명이다. 은성의료재단 경영의 골자이기도 하다. 낙후된 곳에 병원을 세워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우리의 주된 존재 이유다.

그래서인가, 은성의료재단은 어려운 시기에도 공격적인 투자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IMF 외환위기 때 투자해 병원을 짓고, 2014년에도 병원을 신축해 산부인과에서 소아과, 성형외과 등으로 새로운 성장의 틀을 만들어나갔다. 2006년 3월에는 경영난을 겪고 있던 울산 소재 문수병원을 인수해서 정형외과·신경외과 전문 좋은삼정병원을 재개원했다. 2016년에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포항 선린병원을 인수해 좋은선린요양병원으로 재개원했다. 사실 울산과 포항 M&A는 내가 좀 건방졌다 할까, 외도라 할까. 병원 경영의 새로운 변화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10년마다 좋은강안병원만큼 괜찮은 병원을 만들자는 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었다. 병원 하나 지고 앉아서 10년간 머물러 있는 건 경영자의 임무가 아니다. 좋은강안병원도 개원 초기에는 의사를 어찌 구하겠나 하는 우려와 시샘의 눈길이 많았다. 하지만 초기부터 잘 정착해 지금에 이르렀다. 병원 하나 세우는 데 10년은 족히 걸린다. 땅 사고 설계하고 집 짓는 데만 그 정도다. ‘이럴 게 아니라 망한 병원을 살리고 고쳐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CEO로서의 목표를 좀 더 빨리 이룰 수 있겠다 싶었다. 호기심 반 도전 반 욕심 반이었다. 그러던 차에 울산에서 기회를 찾았다. 그렇게 17년 만에 좋은병원 하나를 더 세웠다. 울산이 되니 포항에서 또 찾아오더라. 사실 복병은 병원 경영이나 운영 자체가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의사 수급이다. 지방에서는 고급 인력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의료 인력 확충은 국가적 화두기도 하다. 이사장님의 견해가 궁금하다.

당연히 의료 인력을 늘려야 한다. 연 3000명 정원으로 20년이 흘렀다. 의료 장비와 수술이 늘었고 노령화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급증하는 의료 수요를 지금의 의사 수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런데도 대학병원 교수들이 오전에만 환자 200명 보는 걸 즐기는 게 말이 되나. 당장 국민적 합의를 봐서 의사 정원을 늘려야 한다. 그게 어려우면 비교적 간단한 처치나 비전문적인 업무는 간호사 등에게 넘겨야 한다. 의사는 의사대로 바빠 죽고 환자는 환자대로 힘든 게 우리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잘살게 되면서 생긴 주름살이 여기저기 많다.

특정 질환이 아니면 우리 같은 병원이 훨씬 편안하고 이용하기 편하다. 가족적이고 편리하다. 그게 바로 서비스다. 지금은 동네 병원도 예전처럼 청진기 하나만 가지고 개원하는 시대가 아니다. MRI, CT 등을 갖춰야 하는데, 개인 의원이 이를 다 마련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동네 병원이 컨설턴트 수준에 머물고, 정확한 진단은 원초적으로 어렵다. 동네 병원을 못 믿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정부와 의사, 국민 등 모든 이해당사자가 힘을 합쳐 풀어내야 할 난제다.

말씀을 듣자니 11개에 달하는 병원을 운영하는 게 정말 어려울 것 같다.

경영을 해보니, 성공한 사례를 모듈화해서 표준화하는 게 제일 편하더라. 지역 병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재단 나름대로 축적된 경험을 표준화했다. 결재 같은 의사결정 과정, 업무 프로세스 등이 대상인데, 내가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그다음, 행정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병원 행정을 가르쳐야 한다. 병원행정가(관리행정가)를 찾아 가르치고 감독하는 일이다. 그게 바로 나의 주된 업무다. 병원마다 개성이 있지만 닥치는 문제들은 대개 비슷하다. 의사나 간호사의 의료사고 등이다. 이들에 대해 40년 넘게 쌓아온 매니지먼트 방법론이 우리의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병원 경영은 확실히 일반 기업과는 다른 것 같다.

극단적으로 말해 사망 사례가 가장 많은 공간이 병원이다. 의료 사고만 해도 법적으로 해결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45년간 병원을 경영했으니 나만큼 경험이 많은 CEO도 드물다. 사고로 한번 위축된 의사는 손이 떨려 수술을 못 하겠다고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병원에선 이사장이 모든 걸 받쳐준다는 신뢰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전담 조직이 따로 있을 정도다. 개별 의사 입장에서도 개원 대신 큰 병원에 남는 데는 이런 배경도 있다. ‘환자만 보면 된다. 나머지는 재단과 이사장이 다 해결해준다’는 믿음이 있으면 어떤 의사가 마다하겠나. 경영이든 정치든 리더에겐 긍정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행동이 필수다.

의사처럼 프라이드가 높은 직군을 관리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병원사에서 가장 큰 위기는 노조가 엄청나게 커졌던 노태우 정부 시절이다. 당시 문 닫은 병원이 부산에서만 4~5개에 달했다. 병원은 특히 의사직군과 비의사직군 간 갭이 크다. 의사들은 자부심이 높다. 그러니 수평적 사고를 갖기도 어렵다. 버릇이 그렇게 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실제로는 병원 직원 중 50%가 간호사다. 은성의료재단은 무노조 경영이다. 노조 설립을 막으면 감옥 가는 일이니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노조가 생기기 전에 CEO가 열심히 하면 굳이 노조가 필요 없다는 게 45년 경영에서 배운 나만의 철학이다. 노조가 생기고 노사가 갈등할 수밖에 없는 토양의 기업이 있다. 첫째, 조직이 부정을 저지를 때다. ‘경영자가 약점이 있을 때 노조가 팔자 고친다’는 말이 있다. 대기업 노조가 힘이 센 건 대기업 회장에게 그만큼 약점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르고 달랠 수밖에 없다. 둘째, 조직에 주인이 없을 때다. 헤게모니 싸움이 일어난다. 마지막은 경영을 못해서 망할 때다. 경영을 정확하게 하고 항상 회사가 발전하면 노조가 있어도 갈등이 없다. 다른 건 자랑 못 해도, 법인 전환 이후로는 법인 돈을 단 1원도 가져간 적이 없다. 내 돈을 보태준 적은 있어도 말이다. 약 한 알도 내 돈으로 사 먹고, 직원들 밥도 내 카드로 사주지 법인카드를 쓰지 않는다. 그러니 노조가 할 일이 없다. 노조는 사측, 경영자와 붙어야 하는데. 내가 다른 직원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노동자인데 붙을 일이 뭐 있겠나. 경영은 사내 이해당사자들의 마음을 사는 종합예술이다.

무료진료, 장학사업, 후원활동, 사회복지활동 등 왕성한 사회공헌활동이 인상적이다. 여기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나.

재단을 설립하니 경영자라는 새로운 책무가 생기더라. 수십 년 간 의료재단을 운영하면서 경영자가 가져야 책무를 나름의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법률·경제·도덕·봉사에 대한 책임이다. 봉사나 기부는 내 생활의 가치라는 소박한 마음이지, 내세울 만큼 엄청난 건 아니다. 부산과 영남이라는 지역 소사이어티에서 기대어 먹고사니 그만큼 기여하는 게 당연하다. 직원들에게 봉사가 인생을 사는 행복의 큰 요소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는 그만한 실천적 교육이 따라야 한다. 봉사는 내 삶을 지탱하는 힘 중 하나다.

2018년 존경받는 병원인상 CEO 부문을 수상했고, 이에 앞서 2014년 의료경영 대상, 2008년에는 대한민국 윤리경영 대상도 받으셨다. 의사를 떠나 CEO로서의 철학이 궁금하다.

의사가 감히 경영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다만 내게 주어진 사람과 시간 같은 환경을 가치 있게 만드는 기술자가 바로 경영자라 생각한다. 그중 제일 큰 기술이 바로 사람이다. 내 경영의 가장 큰 모토는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과 환경을 갖추도록 훈련하는 일이다. 그게 내 책무다. 그런 다음 들어오는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능력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하자 해서 갖춰지는 건 아니다. 가치와 목표를 세운 후 끊임없이 훈련하고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실천적 프로세스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실수와 실패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이를 줄이는 조직으로 가야 한다. 실수는 어쩔 수 없지만 작게 하고 예방해야 한다. 둘째, 나보다 좀 더 나은 사람과 조직을 본받아야 한다. 벤치마킹이다. 셋째, 그러려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 훈련과 공부다. 우리 재단만 해도 4000명이 넘는 직원이 있다. 넓게는 이들을 넘어 환자와 거래처 모두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게 내 포지션이다. 자기 자리에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쉼 없이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얻은 솔루션을 유지해가는 자기 관리도 필수다. 경영자의 관리 능력은 나를 관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게 어려워지는 상황이 있는데, 세칭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할 때부터다. 교만, 오만, 우쭐거림이다. 성공은 할 수는 있지만 지켜가기는 어렵다. 성공하면 그때부터 더 어려운 날을 보내야 한다.

※ 최영찬 대표는…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305호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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