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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을 리을 대표 

생각의 틀을 깨다 

장진원 기자
올해 포브스아시아가 선정한 ‘30세 이하 유망주’에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가 등장했다. “한국의 전통예술과 디자인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패션에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은 김리을 리을 대표다. 김 대표는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30세 이하 유망주’ 명단에도 동시에 이름을 올리며 2023년 가장 핫한 신진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약관의 청년이 창조해낸 ‘한복 정장’이 글로벌기업들과 셀러브리티들의 시선을 끌어모은 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한복 원단으로 만든 라이더재킷이라니. 강렬한 붉은빛 앞에 서 포즈를 취한 흑인 모델의 입엔 곰방대를 물렸고 머리엔 갓까지 얹었다. 세상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희한한 조합은 시각적 강렬함만큼이나 세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낯선 이미지는 급기야 ‘조선의 힙(hip)’이라는 찬사와 함께 2016년의 SNS를 대표하는 ‘짤’ 혹은 ‘밈(meme)’이 됐다. 김리을(본명 김종원) 리을 대표가 ‘한복 정장’이라는 파격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디자이너로서의 출발을 알린 시작이었다.

“이걸 빌려주겠다고? 그러려면 뭐라도 찍어서 SNS 같은 데 올려야지!” 영혼이라고는 1도 없이 던진 친구들의 조언. 하지만 그 덕에 한복 원단으로 만든 라이더재킷과 테니스 치마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SNS 게시 일주일 만에 조회수 2만 건을 넘어섰다. 세상에 없던 가치를 곧장 알아본 건 기업이었다.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가 광고 촬영을 제안했다. 이제 막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무명 디자이너에겐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모델 한현민씨가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었어요. 원래는 해당 브랜드 옷을 입혀야 하는데, 초보인 데다 아는 것도 없어 제가 만든 한복 정장을 입혔지 뭐예요. 예산이랄 것도 없는 소규모 SNS 광고였던 터라 고객사도 그냥 넘어갔죠. 그런데 그게 또 대박이 난 거예요. 패딩, 샌들 같은 제품 광고 의뢰를 연이어 받았어요. 그렇게 우연히도, 운 좋게도 하나씩 하나씩 연결돼나갔죠.”

전통 한복 원단이 주는 고유한 아름다움, 여기에 한복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선을 서양식 정장에 담아내자 여기저기서 ‘입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후 BTS, 대통령 후보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셀러브리티들이 김리을이 만든 한복 정장을 찾았다. 맥라렌, 펩시, 삼성전자, 대한항공 같은 글로벌기업들도 그와의 협업을 반겼다. 그저 ‘돈 벌어보겠다’는 마음에 시작한 한복 정장 제작은 2023년 현재 ‘리을’이라는 브랜드로, 김리을이라는 이름의 디자인 자체로 무한 확장 중이다. 포브스코리아 ‘30 under 30’ 선정에 참여한 한 심사위원은 “한국 문화가 글로벌하게 주목받는 시대에,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며 “익숙함을 새로움으로 진화시킨 영리한 디자인”이라고 평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한복 정장


▎2016년 리을의 한복 정장을 세상에 알린 첫 SNS 화보.
“전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2016년 무렵부터 한옥마을이 인기를 끌면서 찾는 사람들이 엄청 늘더군요. 관광객에게 한복을 빌려주는 상점도 많아졌는데, 처음엔 1시간에 5만원씩 받을 정도로 인기 폭발이었어요. 외국인들에게 ‘한복을 왜 빌려 입느냐’고 물었더니 원단은 예쁘고 좋은데 평소엔 불편해서 입기 힘들겠다’는 동문서답이 오더군요. ‘그러니 너도 안 입잖아’ 하면서요. 원단은 한복인데 입기 편한 정장 스타일이면 어떨까? 그런 옷이라면 빌려 입는 사람이 더 많겠구나, 돈 벌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세상일이 으레 그렇듯 아이디어와 현실은 사뭇 달랐다. 한복이라는 원단 자체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 걸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

“한복은 평면재단이에요. 잘 접히는 옷이죠. 그에 비해 양복은 모두 입체재단이죠. 양복 상의를 차곡차곡 접기는 어렵거든요. 옷 제작의 기본인 바느질 자체가 달랐어요. 한복 실크(비단)를 양복식으로 재단해 바느질만 할라치면 울기 십상이었죠. 양복집에서도 한복집에서도 다들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어요.”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원단을 떼다 ‘양복을 만들어달라’며 전국을 헤매길 석 달여. 마침내 경기도 부천에서 “한번 해보자”는 은인을 만났다. 젊은 날 대통령 옷까지 만들었다는, 한복과 양복을 모두 제작할 수 있는 숨은 장인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찾아와 한복 정장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에 말년의 장인은 “그래, 해보자”는 답을 줬다. 패션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변변한 디자인 교육도 받은 적 없었지만 20대 초반의 청년은 ‘한복 정장’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이끌었다.

“제게 ‘디자인하다’는 말은 ‘김리을의 눈으로 보고 김리을의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뜻이에요. 한복 라이더재킷이든 정장이든 치마든 그전까진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무수한 편견에 갇혀 아무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디자인, 비단으로 만든 21세기의 재킷이 바로 리을의 눈과 방식이에요.”

한복 정장 탄생기를 짚어가던 김 대표는 뜬금없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마키아벨리의 유명한 테제 중 하나로, 이때의 목적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의미가 있다. 김 대표는 처음엔 그저 돈을 벌려고 시작한 한복 정장이 8년여 시간과 경험을 거쳐 리을이라는 브랜드의 수단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SNS 대박 후 일주일 만에 광고 제작 제안을 받았어요. 이후에도 여러 기업과 협업해 광고·마케팅 작업을 이어갔죠. 돈은 거기서 번 걸로 충분했어요. 굳이 한복으로 돈을 벌 이유가 없었어요. 한복 없이도 사업이 가능하니 굳이 한복 만들어서 팔려고도 안 했고요.

가장 한국적인 브랜드의 꿈


▎BTS 지민이 입은 한복 정장을 ‘ㄹ’ 모양 조형물에 전시했다.
반전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더는 한복 정장 만들어 팔 일은 없겠다’는 판단은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세상에 없는 한복을 원하는 이들의 연락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외 공연을 앞둔 김덕수 사물놀이패, 오페라 무대나 연주 공연에 설 아티스트들이 제일 먼저 김리을의 한복을 찾았다. 배우·가수 같은 셀럽들도 하나둘 그에게 옷을 부탁했다. 때마침 트로트 열풍이 불자 한 프로그램에선 100팀의 의상을 전담하기도 했다. 신곡 발표차 미국 토크쇼에 출연한 BTS,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김연경 선수, 대선 개표방송에 나선 대선 후보들도 그의 한복을 찾았다. 김 대표는 “안 입은 연예인을 찾는 게 더 쉬울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왜? 도대체 왜 나를? 한복 만드는 사람도, 패션 전공자도 아닌데 제게 옷 만들어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한복이 뭐길래 이렇게 열광하나 싶었죠. ‘한복은 이제 그만’이라던 차에 외려 ‘한복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맘이 커지더군요.”

이야기를 풀어가던 김 대표는 불쑥 “한복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한국의 전통의상 양식 아니냐는 대답에 “사전적 의미는 그렇다”며 웃었다.

“우리가 떠올리는 한복은 대개 근대 이후 양식이죠. 사실 한복은 세기별로 저고리와 치마 길이가 모두 달라요. 그럼 전통한복이 뭘까요? 제 주관적으로 전통한복의 멋은 원단과 선(線)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실크 같은 소재, 그 소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라인이 바로 한복의 가장 큰 매력이죠. 8년여의 작업이 대중에게 소구한 결과를 보면 제 생각이 틀린 건 아닌 것 같아요.”

애당초 ‘한복 정장으로 돈 벌지 않겠다’는 다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입는 이마다 감탄했던 의상 400여 벌은 지금도 집 안 장롱에 고스란히 모셔져 있다. 원단 가격대가 워낙 높아 한 벌 만드는 데 최소 150만원 이상 든다는 제작비가 아쉬울 법도 하지만 “리을이라는 브랜드와 디자인을 알리는 수단이 됐다면 족하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한 번도 돈 받고 판 적이 없어요. 그럴 생각도 계획도 없고요. 스타마케팅이라는 말도 간혹 들리는데, 정말 1원이라도 얻었다면 ‘그게 무슨 한복이냐’, ‘디자인이 뭔지 아냐’ 등등 욕 많이 먹었을 거예요.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란 걸 8년간 직접 보여줬고, 한글과 한복을 제대로 알리겠다는 목표가 가장 크다는 걸 다들 알기에 응원해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400벌이 넘는 의상도 유명하지 않은 분께 드린 경우가 훨씬 많아요. 공연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 같은 경우죠.”

김종원 대신 디자이너 김리을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질수록 내로라하는 글로벌기업이나 기관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지난해 영국의 슈퍼카 브랜드 맥라렌과 협업한 아트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한국적 디자인으로 세계적 명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리을의 아이덴티티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한국의 문화적 고유함을 바탕으로 한 브랜드를 찾던 맥라렌의 눈에 리을이라는 브랜드가 포착됐다. 맥라렌은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메이커나 명품 브랜드, 아티스트 등과 협업한 글로벌 아트카(Art Car) 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루이비통이 파리를, 펜디가 이탈리아를 상징하듯, 오롯이 한국의 문화와 이미지를 추구하는 브랜드로 리을을 선택한 것이다.

“맥라렌 디자인이 동글동글해요. 고려청자의 선이 떠오르더군요. 여러 슈퍼카 업체가 아트카를 선보이곤 하는데, 아무리 색을 잘 써도 화려한 서구식 원색을 구현하진 못할 것 같았어요. 청자에 새겨진 학과 소나무를 하얀색 자동차에 새겨 넣었어요. 수묵화를 맥라렌에 씌우자 싶었죠.

마치 한지와도 같은 여백에 한국의 수묵화가 새겨진 슈퍼카는 미학적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파격을 선사했다. 김리을의 아트카 디자인에 매료된 영국 본사에선 아예 실내디자인까지 맡겼다. 수묵화를 차용한 외관이 가을을 표현했다면 휠에는 겨울 나뭇가지를, 시트에는 초록 여름을, 실내 곳곳에 새겨진 자개 장식에는 화려한 봄을 담아냈다. 한국의 사계절을 영국의 슈퍼카에 담아낸 셈이다.

파리에서 찾은 한국의 미(美)


▎영국 슈퍼카 브랜드 맥라렌과 협업한 아트카 프로젝트. 외관을 수묵화로, 내부는 화려한 자개 장식으로 꾸몄다.
한국적 전통을 모티프로 삼되, 파격적 자유로움을 잃지 않는다는 형식은 20대 젊은 디자이너의 특권과도 같다. 거침없는 창작과 열정, 이를 실행에 옮기는 과감함은 비단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리을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우기 전인 20대 초반부터 사업가로 나선 과정을 풀어냈다.

“어릴 땐 축구선수가 유일한 꿈이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십자인대가 끊어져 꿈을 접어야 했죠.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등록해둔 특허가 있었는데, ‘축구도 못 할 바에 돈이라도 벌자’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특허 덕이었는지 서울산업진흥원(SBA) 창업사관학교가 주관하는 청년취업사관학교 과정에 합격해서 문정동 공유오피스 5층에 사무실을 얻은 게 서울살이 출발이었어요.”

때마침 창조경제니 청년창업이니 하며 사회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들어섰고, 창업사관학교 과정도 학점으로 인정돼 무사히 졸업장도 받았다.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뛰어나 각종 상금도 두둑하게 챙길 수 있었다. ‘악착같이 돈 벌겠다’ 다짐하며 사무실 위 10층에 있던 찜질방에 200일치 티켓을 끊었다.

“반쯤 미친 거죠.(웃음) 같이 창업했던 동료 중에 실제 특허와 제품화에 성공해 대형마트에 납품까지 성사한 케이스가 나오기도 했어요. 자극 좀 받았죠. 그런데 막상 판매로 돈이 돌지 않다 보니 금방 주저앉더군요. 특허 같은 아이디어와 현실 속 사업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배웠어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깨달음은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서른 이전에 번 돈은 네 돈이 아니다. 기회가 되면 무조건 해외로 나가라”는 선배의 조언에 가슴이 뛰었다. 가진 돈이 변변치 않으니 기업의 대학생 해외봉사에 도전하기로 맘먹었고, 금융사가 주관하는 활동에 뽑혀 캄보디아를 찾았다.

“축구를 잊고 그곳 아이들과 뛰어놀고 싶다고 적었어요. 왜 뽑혔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실제로 캄보디아에서 5개월을 살았는데, 우리보다 축구를 더 좋아하는 나라인지라 5개월 내내 볼만 찼습니다. 프랑스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 때문에 곳곳에 유럽의 흔적이 남아 있었죠. 식민지였던 나라는 경험했으니, 프랑스는 어떤 곳일지 궁금해졌어요. 캄보디아 생활을 마치고 얼마 후 무작정 파리로 떠났죠.”

석 달을 파리에서 먹고 잤다. 파리라는 도시는 생각보다 작았다. 아침에 운동하고 할 일이 없어 오후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섭렵했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 낮잠 자는 일이 잦아질수록 ‘한국의 미(美)란 무엇인지’만 궁금해졌다. 한글은 들어봤어도 막상 ㄱ, ㄴ, ㄷ, ㄹ 같은 자모를 아는 유럽인이 적다는 것도 내심 자극이 됐다. 이제껏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상을 네모로, 그 안에 깃든 한글 자모 리을(ㄹ)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표현하는 형상’을 상징해 비로소 ‘리을’이란 브랜드를 창조했다. 2016년 여름 SNS에서 대박을 터뜨린 한복 정장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좌충우돌 김종원 라이프였다.

백옥에 또 다른 전통을 담다


▎한복 원단으로 만든 라이더재킷을 입은 김리을 대표.
젊은 패기와 신박한 아이디어 하나로 한 방에 떴을 거란 세간의 평가는 김종원과 김리을이 걸어온 길과는 분명 거리가 멀었다. 이제 막 스무 살에 접어든 시절부터 창업과 사업에 나섰고, 2016년 리을 론칭 후론 하루 2시간 자는 날이 허다했다는 게 김 대표의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과감히 도전하는 청년의 특권 뒤에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냈던 10년의 내공이 숨어 있었다.

“영어보다 많이 쓰는 게 아라비아숫자잖아요. 파리에 있을 때 ‘ㄹ’을 보여주면 ‘숫자 2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게 아니라 한글 자모 리을이라고 하면, 그때부터 이야기 주제가 삼성전자, 현대차에서 한글과 한복으로 바뀌었어요. 바로 문화의 힘이죠.”

‘ㄹ’이라는 한글과 한복이라는 소재로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가 되겠다는 꿈은 8년 전 첫 출발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정성을 쏟아 만든 옷을 시장에 내놓아 돈을 벌지 않겠다는 다짐도 여전하다. 이십 대 초반부터 영글기 시작한 한국적 명품의 꿈은 최근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리을이라는 브랜드를 좀 더 구체화할 작업이다.

“제품이든 브랜드가 내놓은 디자인이든 명확한 아이덴티티, 즉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소재가 있어야 해요. 리을만이 표현할 수 있는 한국적 소재를 찾는 일이죠. 전 세계에서 가장 매장량이 풍부한 백옥(연옥) 광산이 춘천에 있다는 걸 아시나요? 1386만㎡(420만 평)에 달하는 6개 광구에 약 30만 톤의 백옥이 매장돼 있죠. 지금 속도로 캐내도 200년쯤은 거뜬하다고 해요.”

김 대표는 올해 들어 백옥 브랜드 ‘옥산가(玉山家)’ 지키기에 나섰다. 지하 420m 옥벽에서 흐르는 물을 뽑아낸 ‘옥정수’를 샘물 브랜드 ‘범 8.5’로 론칭했다. 생수를 판매해 번 돈 역시 옥 광산을 외부 자본으로부터 지키는 데 오롯이 쏟아부을 예정이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재활용률이 가장 높은 알루미늄 캔을 사용한 ‘캔워터’도 선보였다. 현재 국내 5성급 호텔과 납품 계약을 진행 중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또 다른 프로젝트도 뒤를 잇는다. 경남 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 가거대교 해저터널 중간 섬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게소’를 짓는 작업이다. 김 대표와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가 의기투합했고, 대우건설이 리모델링에 나설 예정이다. 한복 정장에서 슈퍼카 디자인, 먹거리와 건축에 이르는 다양한 길을 리을이라는 디자인 IP로 무한 확장하는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을 표현하면서 산다고 생각해요. 옷이나 안경, 하다못해 휴대폰까지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죠. 그 모두가 디자인이에요. 리을은 제가 보는 세상을 제 방식대로 표현한 디자인이자 브랜드죠. 인간의 타고난 디자인적 본성을 더 잘 포장하고 드러내주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하는 일마다, 내놓은 것마다 화제를 뿌린다는 요즘 가장 핫한 디자이너. 이런 세간의 평가에 대해 김 대표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답했다. SNS 대박 짤도, 대선이 5월로 당겨져 한복을 입힐 수 있었던 것도, 셀럽들이 자신을 찾은 것도, 도움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는 조력자들을 만난 것도 모두 운이 좋아서였다는 설명이다. 대신 운을 잡으려 노력하기보다 잘하고 의미 있는 일에 진력하자는 자세만큼은 변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이어갔다.

“성공이요? 그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워요. 아직 세상에 나간 것 같지도 않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대신 앞으로는 좀 더 도전적으로 살아보려 해요. 20대 김리을은 ‘들어온 일만 하는’ 보수적인 사람이었거든요. 한국적 아름다움을 리을의 방식대로 표현하는 삶이 오래도록 이어지면 좋겠어요.”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기자

202308호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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