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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영 레고코리아 대표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잘 노는’ 그 날을 위해 

신윤애 기자
올해 레고코리아가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경기도 군포의 한 공장에서 출발한 레고코리아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성장했고, 전 연령층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엔 레고코리아 최초의 한국인이자 최초의 여성 대표가 탄생했다. 그 주인공 정희영 대표를 만났다.

▎레고코리아 최초의 한국인이자 최초의 여성 대표인 정희영 대표. 지난해 부임한 그는 “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인종과 연령을 초월해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기는 문화 콘텐트.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해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을 대표하는 장난감. 레고는 92년 전인 1932년, 덴마크 빌룬트라는 지역에서 가정용품을 제작하는 한 목공소에서 시작됐다. 목공소 주인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은 자투리 목재로 장난감을 만들어 함께 팔았는데 세계 대공황으로 폐업 위기에 몰렸던 당시 이 장난감이 잘 팔리는 덕분에 목공소를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다. 2년 뒤 그는 회사 이름을 ‘잘 논다’라는 뜻의 ‘레고(레그 고트, leg golt의 줄임말)’라고 짓고 본격적으로 장난감 생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1942년 화재로 공장이 불에 타는 위기를 겪었고, 나무 장난감 대신 당시 신기술이었던 플라스틱 장난감 제조를 목표로 공장을 재정비했다. 이때 탄생한 제품이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레고 브릭이다.

레고가 덴마크에서 머나먼 한국 땅에 도착한 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4년이다. 아시아 진출을 위한 생산기지가 필요했던 레고는 경기도 군포에 공장을 짓고 레고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의 국력이 점점 강해졌고 생산 국가로서의 경쟁력을 잃으며 공장은 하나둘 철수하고 세일즈 오피스만 남았다. 이후 40년이 지난 후 레고코리아는 이제 한국인에게 놀이 문화를 전파하는 훌륭한 친구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레고가 외국에 공장을 설립한 사례는 한국이 처음입니다. 한국과 중국을 두고 고민한 끝에 한국을 선택한 것으로 알아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레고는 쉽게 넘볼 수 없는 비싼 장난감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경제가 발전했고 자연스럽게 레고를 즐기는 인구가 많아졌죠. 모두 알다시피 이젠 전 연령층이 즐기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레고코리아가 우리나라의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7월 15일 강남에 있는 레고코리아 오피스에서 정희영 대표를 만났다. 그는 2023년 대표직에 올라 2년째 레고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레고는 해외 법인의 대표직을 현지인에게 맡기는 경우가 드문데 이례적으로 한국인에게 한국 법인의 대표직을 맡겼다. 더구나 정 대표는 레고코리아의 역대 대표 중 유일한 여성이다. 그가 레고에서 특별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6년 전 마케팅 상무로 레고코리아에 입사했습니다. 마케팅에서는 브랜드 지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놀이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곳이죠. 놀이를 하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개념을 알리고자 ‘놀이(레고)의 힘’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레고를 하며 유대를 쌓고 여러 지식을 전수해주는 모습을 여러 매체에 노출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 마케팅 외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특히 온라인 판매 채널을 대폭 확장해 매출 신장에 도움을 안겼죠. 새롭게 출시한 ‘레고 보태니컬 컬렉션’, ‘레고 BTS Dynamite’ 등 신제품도 성공리에 판매됐고, 글로벌 베스트 사례로 본사에 공유되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이 좋은 평가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정 대표에 따르면 레고코리아는 4~5년 전만 해도 온라인 플랫폼 중 한 곳에서만 제품을 판매했다. 그는 다른 플랫폼에도 입점할 필요성을 느꼈고 내부 설득을 거쳐 온라인 채널을 다각화했다. 그렇다고 온라인에만 집중한 건 아니었다. 레고는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해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만큼 오프라인 스토어 강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는 “2018년 레고코리아 합류 당시 6개였던 공식 레고스토어가 현재 23호점까지 늘었다”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11개 매장을 오픈해 엔데믹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입점 장소로는 여의도 더현대 서울, 코엑스 등 MZ세대와 키덜트가 즐겨 찾는 핫 플레이스를 공략하고 있다. 대표 부임 첫해인 지난해에는 코엑스점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연이어 오픈했고 올해 4월에는 서울 1호점인 잠실점을 레고코리아 40주년과 롯데월드몰 10주년을 기념해 리뉴얼 오픈했다.

5년간 레고코리아를 안팎으로 성장시킨 정 대표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이 달린 대표직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최초의 한국인·여성 대표라는 점에서 한국 직원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까지 ‘롤 모델이다’, ‘동기부여가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며 “막중한 책임감, 부담감, 기대감이 동시에 들었다”고 회상했다.

경영자가 되면 누구나 어떤 리더가 될지, 어떻게 회사를 이끌지 고민하고 미래를 그려보기 마련이다. 40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회사의 수장이 된 정 대표도 경영 철학,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깊었을 터다. 그에게 초심이 어땠는지, 현재까지 잘 지켜지고 있는지 물었다.

“얼마 전 직원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앨버트 허버드의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인생이 당신에게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말처럼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생각을 전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고 당부했어요. 저 또한 거창한 경영 철학보다는 늘 창의적으로 접근하자는 생각으로 이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또 회사의 모토인 유대관계, 포용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죠. 다만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를 돌아보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합니다. 레고는 의사결정 단계에서 컨센서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여서 결정된 사안은 모든 사람과 공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 성격이 다소 급한 데다 빨리 결과를 내려다 보니 직원들에게 이 부분을 많이 채워주지 못한 것 같아요. 앞으로 직원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유대감을 쌓기 위해 시간을 많이 보낼 예정입니다.”

실제로 정 대표는 최근 영어공부 클래스를 만들어 직원들과 함께 공부 중이다. ‘도전을 게을리하지 말자’는 자신의 말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직원들은 “희영님 나이에도 열심히 공부하는데 나도 노력해야겠다”며 동기부여를 얻는다고 한다.

대표를 ‘희영님’이라고 부르고 직원들과 격의 없이 함께 공부하는 모습은 레고의 수평적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덴마크 기업인 레고 본사의 문화가 그대로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얼마 전 덴마크가 ‘불닭볶음면’의 수입을 금지하며 ‘폐쇄적인 국가’라는 이미지가 불거졌기에 혹시 덴마크 기업에서 외국인 대표라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했다. 정 대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의아했어요. 덴마크는 ‘휘게’ 문화가 강해 친구, 가족과의 유대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게 덴마크와 레고의 문화예요. 최근 레고가 내세우는 교육 포인트 중 하나가 ‘마이크로 어그레션’, 즉 ‘먼지 차별’에 대한 내용이에요. 보통은 주변에 먼지가 있어도 잘 느끼지 못하잖아요. 이처럼 나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덴마크가 속한 북유럽 국가들은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아이를 평등하게 대하며 정해진 지침서나 매뉴얼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혁신적인 방법으로 교육한다. 그러다 보니 놀이도 교육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레고 놀이 또한 아이들이 지식을 습득하고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도구라고 말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놀이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정적인 편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거나 착한 일을 했을 때 ‘1시간 놀기’를 허락해주는 것처럼 ‘보상으로 주어지는 사탕’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정 대표는 “레고에서 ‘놀이가 항상 우선순위인가’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아니다’라고 답한 비율이 우리나라가 83%, 글로벌 평균은 79%, 덴마크와 스웨덴은 그보다 훨씬 낮은 58%와 57%를 각각 기록했다”면서 “게다가 한국에서는 레고를 사주는 이유 중 하나로 ‘아이가 혼자 잘 놀아서 자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답한 비율이 꽤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하지만 모든 놀이가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면서 “레고를 예로 들면, 꼭 조립하지 않고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숫자를 세어보거나 색상을 맞춰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은 레고코리아는 한국에 놀이의 중요성을 전파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정 대표의 목표는 한국에서 ‘놀이를 통한 배움(Learning Through Play)’의 가치를 널리 전파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연세대와 교육혁신 및 놀이를 통한 배움 실현을 위한 협력을 진행 중이다. 레고를 활용한 커리큘럼을 개발·운영하고 연세대 신촌 캠퍼스 내에 관련 연구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지난 1학기 건축공학과와 건설환경공학과 등에서 시범 운영해 교수진과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이어 오는 8월 레고를 활용한 교내 연구 공간을 완공하고 연세대학교와 레고코리아 간 정식 업무협약 체결을 추진할 예정이다.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는 우주과학 관련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우주 분야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핵심 산업이다. 실제로 레고그룹이 최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7개국 부모와 아이 약 1만6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의 86%가 새로운 행성과 별, 은하 탐험에 관심이 있었으며, 77%가 우주여행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레고코리아 차원에서는 더 많은 어린이가 레고를 통해 우주과학과 친해질 수 있도록 2022년부터 국내 유일의 국제 과학우주 청소년단체인 ‘한국과학우주청소년단’과 협력해 실제 초등학교에서 레고 우주 제품을 활용한 체험수업을 진행하는 ‘찾아가는 창의력 우주과학 교실’을 운영 중이다.

마케터로서 탄탄대로를 걷고 대표직까지 올라 레고문화를 널리 전파하고 있는 정 대표는 사실 신문방송학 전공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무역상사를 거쳐 마케터로 전향했다. 마케터로서는 쿠팡, 필립스코리아, GS칼텍스 등 국내외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레고로 자리를 옮겨 5년 만에 레고코리아 역사상 첫 한국인이자 첫 여성 대표인 GM(General Manager)이 됐다. 사회초년생부터 전직 후 최고 리더가 되기까지 각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이나 ‘유리천장’은 없었을까.

“국내 대형 무역상사에 첫 대졸 여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당시 남자 직원들은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입고 여성 직원은 치마 유니폼을 입어야 했어요. 차별을 느끼고 무기력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우린 동등하다고 여기며 목표를 이루는 데 집중했습니다. 마케터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이후엔 외국계 기업을 다수 경험하며 점점 남녀에 대한 차이를 개의치 않게 됐죠. 더구나 우리나라도 사회 전반에 젠더 감수성이 높아져 개개인의 능력이 공정하게 조명받는 시대가 됐습니다. 저는 남녀 구분 없이 후배들에게 늘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기회가 찾아온다고요.”

레고는 육아휴직에서도 남녀평등을 지향한다. 남녀 상관없이 주양육자일 경우 26주간 100% 유급휴가를 쓸 수 있다. 부양육자에게는 8주간 100%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정 대표는 “레고는 가족 간 유대관계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정 대표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여러 가지 목표를 의욕적으로 나열했다.

“우선 놀이를 통한 배움의 중요성을 지속해 알리는 것입니다. 놀이권은 1989년 UN에서 채택한 아동의 기본 권리예요. 아이들이 미래 경쟁력을 지니기 위해서도 놀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새로운 놀이 문화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레고 슈퍼 마리오’처럼 물리적(physical) 놀이와 디지털(digital) 놀이를 결합한 ‘피지털(phygital)’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죠. 더불어 한국에서 성인 소비자를 늘리는 것도 목표입니다. 현재는 전체 매출의 20%가량인데, 전 세계 시장에 비하면 많이 낮은 수준이어서 제품 론칭,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ESG를 위한 노력이죠. 레고 본사에서 올해부터 글로벌 모든 직원에게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성과를 보너스 KPI로 측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친환경 팩토리를 짓고 있고 레고 브릭의 20% 이상을 사탕수수 기반의 친환경적인 원료로 만들고 있죠. 레고코리아도 레고 포장재, 쇼핑백 등을 친환경 재질로 바꾸는 등 ESG에 적극 동참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8호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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