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여행(61) 마이산에서 나눈 특별한 우정 

 

죽마고우 두 친구와 함께 전북 진안군에 있는 마이산에 올랐다. 암수 두 봉우리가 오랜 세월을 함께해왔듯, 친구들과의 우정도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짐을 새삼 느낀다. 2025년 한 해가 ‘좋은 관계’로 충만하기를 기대해본다.

▎좌측의 암마이봉과 우측의 숫마이봉 아래 자리한 은수사. 이성계 장군이 왕조 창업의 꿈을 꾼 곳이다.
“2025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성취하시며, 행복이 늘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맞으며 지난 연말부터 어떤 한 해를 맞이할지를 생각해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건강하고 여유로우며 행복한 한 해, 의미와 재미가 있는 멋진 한 해는 무엇으로 이룰 수 있을까?’ 마음이 와닿은 2025년 한 해의 테마는 개인적이든 사업적이든 둘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 관련을 맺는 ‘관계(關係)’에 중점을 두고 설계하며 생활하려고 한다. 이 생각은 지난해에 어렸을 적 친구 두 사람과 전북 진안군에 자리한 마이산(馬耳山)에 올라 돌아보며 느낀 것이 동기가 되었다. 오랜만에 죽마고우들을 만나 멋진 명산을 산책하니 즐겁고 기쁜 마음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지방 출장길에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멀리서 신기한 모습의 산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도 특이하게 생긴 두 봉우리의 산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알아보니 그 산이 말의 두 귀를 닮은 마이산이었다. 그때부터 저 특이하고 멋진 산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마음에 있었다. 그러던 차에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공직자로서 자기 고향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해온 죽마고우 동기생 두 사람과 나들이를 하기로 약속했다.

어렸을 적부터 친구이기에 전라도 친구는 ‘권 대감’, 경상도 친구는 ‘박 대감’이라고 친근하고 재미있게 부른다. 마침 권 대감이 전주에 살아 서울 사람인 필자가 예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마이산에 가자고 제안했다. 아주 화창하고 맑은 날, 마이산 가까이에 있는 전라북도 진안군청에서 셋이 만나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나들이를 시작했다.

진안군청 로비에선 엄청나게 큰 ‘세계 최대 인삼주’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진안 인삼의 역사와 효능이 설명되어 있는데, 해발 300m 이상의 청정 고원지대와 사양토에서 재배되어 사포닌 함량이 월등히 높고 향과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인삼주를 담은 조형물은 진안 인삼 400여 개로 진안의 명산인 마이산을 조형화했고, 홍삼 140여 개로 탑사를 조형화했는데, 알코올 도수 30도짜리 술 1400리터가 사용됐다. 이렇게 큰 조형물 안에 수많은 인삼이 어우러진 인삼주 맛은 틀림없이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커~!” 하는 상상을 해본다.

태조 이성계의 정기가 서린 마이산


▎남쪽 호수에서 바라 본 마이산. 거대한 암벽에 벌집처럼 파인 타포니(Tafoni) 지형이 뚜렷이 보인다.
진안군청에서 용담호가 보이는 도로를 따라가다 ‘금강참붕어’ 식당에서 쏘가리매운탕에 ‘마이산 진안 생막걸리’를 곁들여 식사를 하니 시골에 내려온 편안함과 즐거움이 저절로 느껴진다. 이 식당은 용담호에서 평생 고기잡이를 하며 식당을 운영해온 60대 아버지와 30대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또 오래전 씨름으로 유명했던 이만기 선수가 진행하는 <동네 한 바퀴>라는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손님이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옆으로 보이는 용담호는 용담댐을 건설해 진안군의 1개 읍 5개 면을 수몰시켜 만든 거대한 담수호다. 용담댐은 금강 상류의 물을 도수터널을 통해 만경강 상류에 공급한다. 전라북도 전주권의 생활용수 해결을 목적으로 건설된 용담호는 이제 진안군의 관광 명소가 됐다. 이 거대한 역사를 이루는 과정에 참여했던 권 대감이 도청에서 실무 책임자로 일했던 시절의 추억담을 들으며 마이산으로 향했다.

멀리 마이산 두 봉우리의 북쪽 면이 보이는 마을 입구에 ‘명승 제12호 馬耳山(마이산)’이라고 씌어 있는 아주 큰 바위 표지석이 서 있다. 조금 더 이동하니 ‘마이열차’ 정류장이 있는데 긴 골프카트처럼 생긴 차량이다. 요즘은 이 차를 타고 7~8부 능선까지 올라갈 수 있다. ‘마이열차‘를 타고 ‘연인의 길’이라는 숲길을 따라 1.9km 올라가서 내린 다음, 그곳에서 약 10~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동쪽의 숫마이봉(667m)과 서쪽의 암마이봉(673m)이 나뉘어지고 남쪽으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길의 정점인 천왕문이 나타난다.

진안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 왕조를 창업한 이성계가 고려 말 황산대첩에서 승리하고 귀경하는 길에 마이산에 들러 왕조 창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꿈속에서 하늘로부터 나라를 다스릴 권한인 금척(金尺)을 받은 후 이곳에 올라 왕(王)이 하늘로 오른다는 의미로 천왕문(天王門)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안내판이 국가지정 명승 제12호인 마이산을 잘 설명해준다.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넓게 펼쳐져 있는, 말의 귀 모양으로 생긴 두 봉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으로 이루어진 세계 유일의 부부봉이다. 또한 세계 최고의 여행 안내서인 프랑스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별 3개 만점을 받아 대한민국 최고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마이산은 계절마다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여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 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다.’


▎은수사 뒤로 우뚝 솟아 오른 숫마이봉의 특이한 풍광.
천왕문에서부터 암마이봉은 등산이 가능하고 숫마이봉은 등산이 금지돼 있다. 꽤 가파른 암마이봉 등산로를 중간까지 올라가서 숫마이봉을 바라보니 멀리서 보던 산세와는 전혀 다른 묘한 모습이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가서 전주 권 대감이 예약한 해설사를 만나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주변을 돌아보고 남쪽 방향으로 하산해서 숫마이봉 남쪽 아래에 있는 은수사(銀水寺)에 도착했다. 숫마이봉 바로 아래 자리한 은수사는 고려 장수였던 이성계가 왕조의 꿈을 꾸며 기도를 드렸던 장소로 전해진다. 기도 중에 마신 샘물이 은같이 맑아 은수사라는 이름이 붙은 사찰이다. 현재 샘물 옆에는 기도를 마친 증표로 심은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가 서 있다.

은수사 안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금척을 받는 몽금척수수도(夢金尺授受圖)와 어좌 뒤의 필수 그림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가 경내 태극전(太極殿)에 모셔져 있다. 경내를 돌아보다 바로 뒤에 우뚝 솟아 있는 숫마이봉을 보니 그 형태가 육중하고 매우 신비스럽게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있다. 금척을 받는 꿈을 꿀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쪽에 자리한 은수사에서 숫마이봉의 우측을 바라보니 거대한 봉우리 절벽에 크고 작은 동굴 모양이 보인다. 이렇게 봉우리에 폭격을 맞은 듯한 작은 굴들을 타포니(Tafoni) 지형이라고 한다. 타포니는 특히 암석의 측면 암벽에 벌집처럼 집단적으로 파인 구멍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중 암마이봉의 벌집동굴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신기한 타포니 지형을 보며 하산하는데 암석체가 여느 산에서 보는 흙이나 바위와는 전혀 다르다. 모래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퇴적층에 자갈이 곳곳에 박혀 있는 역암이라는 특이한 지질로 형성되어 있다. 마이산은 과거 호수 환경이었다가 신생대기에 솟아오르면서 화강암이나 흙이 아닌 역암 지질로 이루어져 지금도 민물고기 화석이 간혹 발견된다고 한다. 손으로 만져도 부서질 듯한 역암층에 어떻게 마이산이 솟아올라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향해


▎탑사에는 일자형과 원뿔 모양 등 다양한 모습의 탑들이 서 있다. 자연에서 돌멩이들을 모아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모양의 탑을 쌓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오솔길로 내려와 그 유명한 마이산 탑사에 도착했다. 탑사는 암마이봉의 거대한 수직벽을 따라 올라가는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크고 작은 돌탑들이 일자형과 원뿔 모양 등 다양한 모습으로서 있다. 조각해서 만든 탑이 아니고 자연에 흩어져 있는 돌멩이들을 모아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모양의 탑을 쌓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천지탑’이라는 안내판에 다음과 같은 자세한 설명이 있어 궁금증을 풀어준다.

‘천지탑, Chun Ji stone Tower(Heaven And Earth Stone Tower) 전라북도 문화재 제35호(막돌허튼씩 쌓기 돌탑). 완공 연대 1917년, 이 탑은 이갑룡 옹께서 만 3년의 고행 끝에(1917년) 완성한 탑으로, 기공법과 축지법에 가장 많은 정성이 들었다고 한다. 보는 쪽에서 왼쪽이 음탑이고, 오른쪽이 양탑으로 타원형으로 돌아 올라가면서 축조했다. 상단부 삼각형 부근은 작은 납작돌로 정교하게 놓아 음돌을 받치는 것으로 작은 돌들이 뭉쳐서 일자로 올라간 돌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후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을 음과 양으로 한 층씩 하루 한 덩어리의 돌을 올렸다. 맨 꼭대기 마지막 돌은 백일기도 후 올렸다고 한다. 천지탑 주변의 일자형 33개의 탑은 신장탑으로서 천지를 감싸고 우주의 33천의 세계를 뜻한다.’

막돌허튼층쌓기라는 기법은 사이사이에 최대한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작은 돌 여러 개를 끼워 틈새를 메워 견고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틈새를 완전히 메우지 않고 어느 정도 공간을 두어서 바람이 통하도록 만든 구조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마이산은 멀리서 보면 말의 귀처럼 너무 멋지게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참으로 특이한 타포니 지형과 역암 지질로 놀라움을 준다. 그리고 은수사의 전설과 특이한 탑들이 서 있는 탑사에서는 신비로움을 느낀다. 이렇게 신성한 느낌을 주는 마이산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 특히 죽마고우 두 사람과 마이산 북쪽에서 남쪽으로 넘어오며 깊은 우정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탑사에서 내려와 마을로 걸어가다 예쁜 커피숍이 있어 들렀다. 무척이나 친절한 주인장이 맛있는 커피를 내주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진안마이산휴게소에 들러서 멀리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마이산의 풍광을 카메라에 여러 장 담았다.

마이산 여행이 풍광의 신비함에 더해 더욱 특별했던 것은 사람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수십 년간 쌓아온 친구들과 우정을 깊이 나누는 시간은 너무 즐겁고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이 학창 시절에 만나고 또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며 수많은 관계가 형성돼 간다. 전주의 권 대감은 아직도 청년 못지않게 건강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아침에 테니스를 치고 오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발걸음이나 말하는 모습도 열정이 넘친다. 그와는 정기적으로 서울에서 만나는데 새해에는 전주에서 회동하기로 했다.


▎진안 인삼 400여 개로 마이산을, 홍삼 140여 개로 탑사를 조형화한 진안군청 인삼주 조형물.
창원의 박 대감은 몇 년 전에 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몸이 불편할 텐데도 아무 내색 없이 즐겁게 마이산을 올랐다. 최근 반가운 소식은 만 4년째의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뉴스다. 그와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휴대폰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가끔은 연애편지 하듯이 가슴에 느낌을 주는 장문의 메시지를 나눈다. 반세기가 넘은 우리의 우정을 생각하니 어떨 때는 코가 찡하다. 그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진해져간다.

개인 간 관계가 소중하듯이 기업을 경영할 때는 사업파트너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가까이 국내나 멀리 외국까지도 파트너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사업이 원활히 돌아간다. 깊은 관계를 유지했기에 긴급할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경험도 있다. 더 나아가서 국가나 정상 간에도 좋은 관계의 형성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얼마 전에 전(前) 국가안보실장의 강의를 들었는데 외교에서도 정상 간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새해를 맞아 개인적으로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돈독히 해 행복한 한 해를 보내려고 한다. 그리고 사업 경영을 위해서도 내부 임직원과 외부 고객, 협력업체들과 소중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가려고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좋은 외교관계를 확대해 많은 성공을 거두길 기원한다. 옛날 공자님도 논어 첫 페이지 둘째 줄에서 ‘벗이 먼 곳에서부터 오고 있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유붕자원방래, 不亦樂乎: 불역락호)’라며 관계의 기쁨을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깊이 있게 확장해가며 기쁨이 넘치는 새해를 이루어내자.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세계 최대 펌프 제조기업인 덴마크 그런포스그룹의 한국 법인 창립 CEO 등 33년간 글로벌 기업 및 한국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고, 2014년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 회장 및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와 2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을 컨설팅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501호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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