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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획] 조선帝王의 寢室 

‘주례’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
집단 섹스 즐겼던 중국 황제에 비해 엄격한 성윤리 적용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 smh@pknu.ac.kr
동양에서 군주제가 유지되던 시절 왕이나 황제의 인간적 욕망을 다루는 문제는 중요했다. 특히 색욕은 나라의 존망이 직결된 문제였다. 수많은 신하는 왕의 색욕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에 골머리를 앓았다. 조선시대 왕의 침실 역시 국가 차원에서 관리됐다. 조선 왕들의 침실생활을 엿보았다.



과거 우리나라의 왕이나 중국의 황제들은 절대권력자였다. 이들은 좋은 집에서 살며 진수성찬을 즐기고 예쁜 후궁들을 거느렸다. 왕이나 황제들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식욕과 색욕 그리고 권력욕을 무한히 행사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사실 몇몇 왕이나 황제의 색욕과 관련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예컨대 진시황의 경우 아방궁에 모은 후궁이 1만 명을 넘었다고 하며 양귀비와의 염문으로 유명한 당 현종 같은 황제는 후궁이 4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최대의 폭군으로 이름 높은 연산군 때 궁궐 기생은 1만 명을 헤아렸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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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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