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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맛의 ‘서민친구’ 청국장 

콩 단백질 98% 체내 흡수되는 영양만점…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우리 한식 

글·사진■유지상 중앙일보 음식전문기자 [yjsang@joongang.co.kr]
우리가 매일 먹는 우리 음식. 그러나 우리도 정작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다. 우리 음식의 유래 및 이와 관련한 뒷이야기와 각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점 소개 코너를 마련했다.그 첫 회로,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슬로푸드이자 건강식품으로 각광받는 청국장을 소개한다.

비싼 유기나 자기보다 뚝배기가 제격인 청국장.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만큼이나 간절한 음식을 꼽으라면 청국장을 빼놓을 수 없다. 뚝배기 안에서 바글바글 끓는 청국장. 바글거릴수록 묘한 냄새가 진동하는 청국장. 묘하다 못해 고약하기까지 한 청국장.

어릴 적에는 그 고린내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반찬투정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찾는 마니아가 됐다. 식탁 위에 청국장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울 정도다.

그리고 그 독특한 ‘향(香)’인지, ‘취(臭)’인지에 취해 배 두드리며 포만감을 만끽한다. 청국장의 매력은 소박함에 있다. 태생부터 아랫목이 아닌 윗목 신세여서 그런가 보다.

전기밥솥이 없던 시절 시골집 온돌방의 아랫목은 밥주발 차지였다. 밥주발은 일을 끝내고 돌아온 아버지, 아니면 공부가 한창인 큰아들 몫이었다. 밥이 식지 않게 솜이불로 꼭꼭 덮어둔다.

그 반대편 윗목에는 고린내를 풍기는 청국장 항아리가 자리한다. 딱히 누구를 위해 띄우는 것은 아니다. 찬거리가 없을 때 온 가족이 부담 없이 먹으려고 띄우는 것이다. 된장이나 고추장을 대신한 별미 개념이 깔렸다.

그러나 비싼 고추장을 아끼려는 속내도 숨어있다. 청국장 항아리는 낡은 옷가지 아니면 헌 이불로 덮었다. 고급스러움과는 일찌감치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청국장의 활동무대는 테이블보다 밥상이 어울린다. 이왕이면 두리반이 더 낫다. 한걸음 더 나간다면 부뚜막에 놓인 청국장이 더 살갑다.

청국장이 담긴 그릇도 비싼 유기나 자기보다 질펀한 뚝배기가 제격이다. 이가 듬성듬성 빠져 있어도 거부감이 없다. 그렇다고 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다. 거친 감이 없지 않지만, 각이 없는 둥근 어울림으로 와 닿는다. 그래서인지 개인그릇보다 숟가락을 함께 담글 수 있는 큰 그릇에 담긴 것이 반갑다. 숭덩숭덩 들어간 두부나 부서진 콩알도 입안에선 부드럽게 으깨진다. 거친 모양새 속에 숨은 부드러운 속 맛이다.

청국장(淸國醬) or 전국장(戰國醬)?

청국장의 기원은 우리나라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옛 영토인 만주 지방에서 콩을 삶아 말 안장 밑에 넣고 다니다 말의 체온으로 자연스럽게 발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콩단백질을 섭취하는 지혜를 발휘한 모양이다. 청국장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청나라에서 유래했다는 의미에서 ‘청국장(淸國醬)’과, 전쟁 중에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장이라는 뜻의 ‘전국장(戰國醬)’이다. 청나라를 만주족이 세웠고, 병자호란 때 청국장을 전시비상식량으로 사용한 기록이 있는 만큼 둘 다 설득력이 있다. 국내 문헌상의 기록으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청국장이 ‘시’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신라 31대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때 폐백 품목에 들어 있었다는 것. 그러니 고린 냄새가 코끝을 지나 뒷골까지 때리는 청국장이 적어도 1,400년 이상 된 우리의 전통음식임을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청나라에서 유래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청국장’이라는 이름은 다만 전설로 간주해도 좋을 듯싶다.

우리네 청국장과 닮은 일본의 ‘낫토’가 있다. 둘 다 콩 발효식품이라는 점은 같다. 그러나 먹는 방법이나 제조 과정에 차이가 있다. 먼저 먹는 방법이다. 청국장은 김치와 두부를 쑹덩쑹덩 썰어 넣어 끓여먹는 데 비해 낫토는 생으로 먹는다. 낫토를 휘저으면 실타래처럼 끈적끈적한 것이 생긴다.

일본인들은 그것을 하얀 밥 위에 얹어 그대로, 아니면 계란과 함께 올려 비벼 먹는다. 일본인들의 아침식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청국장과 낫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띄우는 기간. 둘 다 삶은 콩에 단백질을 분해하는 바실러스균을 이용해 발효시킨다. 그런데 낫토는 3일 만에 끝내는 반면 청국장은 소금 등 양념을 해 묵히는 과정을 거치므로 열흘 가량 걸린다.

소박한 맛의 청국장은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슬로푸드이자 건강식품으로 각광받는다. 주재료인 콩은 ‘밭의 쇠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탄탄한 영양원. 필수 아미노산이 골고루 들어있고 지방질에 포함된 불포화지방산 또한 질 좋은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청국장이 영양 면에서 부각되는 것은 콩단백질의 98%까지 체내에서 흡수된다는 점.

게다가 콩이 청국장으로 변하면서 생긴 미네랄과 비타민이 체내에서 매우 요긴한 역할을 한다. 청국장 100g에 3mg이나 들어있는 철분과 비타민 B12는 빈혈에 도움이 된다. 비타민 E는 항산화작용으로 노화방지 역할을 한다. 또 청국장 1g에는 무려 10억 개의 젖산균이 들어있어 소화 촉진과 정장효과도 크단다.

강북에 맛집 몰려 있어

서울에서 청국장이 맛있는 곳을 꼽으라면 강북 도심을 벗어나기 어렵다. 서울 필운동 사직공원 옆에는 변변한 간판도 없이 빛 바랜 천막 위에 ‘청국장’이라고 써놓은 곳이 있다. 일명 사직분식(02-736-0598). 눈에 쉽게 띄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쉽다. 게다가 공간도 좁아 ‘예약불가’에 ‘나홀로 손님 사절’이다.

그래도 제대로 된 ‘구린’ 맛의 청국장을 찾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 곳이다. 값은 5,000원. 창덕여고 뒤편 안국동 골목 안에 위치한 ‘별궁식당(02-736-2176)’도 훌륭하다. 끓는 소리부터 맛있는 청국장 뚝배기가 밥상 한복판에 놓이고, 무생채·총각김치·고추조림·김치볶음이 잇따라 오른다. 특유의 ‘고린’ 맛은 있지만 ‘구린’ 맛은 아니다. 7,000원.

200902호 (200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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