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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대학으로 가는 길] 지방 대학 웃기고 울리는 교육부 ‘글로컬대학30’ 이모저모 

“대학도 브랜드 시대, 상상력 없으면 탈락”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109개 대학서 65개 기획서 제출… 1000억 지원금 누가 차지할까
“사실상 대학 구조조정”, “군소 대학은 지원해도 안 돼” 볼멘소리도


▎윤석열 정부의 ‘글로컬대학30’ 사업은 교육부가 2026년까지 비수도권 대학 30곳을 지정해 1개 대학당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의 숨통을 트이게 할 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교육부가 야심 차게 시작한 ‘글로컬대학30’ 사업이 어느덧 반환점을 향해 가고 있다. 총 30개 대학을 선정해 지원하는데, 지난해 1차로 10개 대학(강원대·강릉원주대, 경상국립대, 부산대·부산교대, 순천대, 안동대·경북도립대, 울산대, 전북대, 충북대·한국교통대, 포항공대, 한림대)을 선정한 가운데 2차 지정을 위한 절차가 현재 진행 중이다.

글로컬대학30에 선정된 대학들은 5년간 약 1000억원, 규제혁신 우선 적용, 범부처·지자체 투자 유도 등의 지원을 받는다. 현재 지방 대학은 “벚꽃이 지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처럼 총체적 위기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현상이 지방 대학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2024학년도 대입 정시 전형에서 지원자 수가 적어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과들 대부분이 지방 대학들이다. 수도권 소재 대학 중정원이 미달된 대학은 경기권 1개 대학 1개 학과에 불과했지만, 지방 대학은 34개 대학 162개 학과나 됐다.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는 5개 대학 5개 학과가 모두 지방 대학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 사업 이너서클에 들어갈 더없는 기회”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21일 전남 무안군 전남인재평생교육 진흥원에서 열린 글로컬대학30 사업 간담회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컬대학 사업이 지방 대학에는 가뭄의 단비이자 구원의 동아줄이다. 글로컬대학에 지원하는 대학들마다 학내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할 만큼 사활을 걸고 있다. 영남권 소재 대학의 한 관계자는 “대학의 재정은 학생 등록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인문 계열을 중심으로 몇몇 학과는 학생 모집이 매년 정원 미달”이라며 “글로컬대학에 선정되면 단기적으로 대학 재정에 숨통이 트인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정부 사업의 이너서클에 들어갈 수 있는 더없는 기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연 어느 대학이 정부 지원이라는 튼튼한 동아줄을 잡게 될까? 교육부 안팎의 의견을 종합하면 혁신성과 실현 가능성, 그리고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와의 연계성이 높아야 한다. 세계화를 뜻하는 글로벌(Global)과 지역화를 뜻하는 로컬(Local)의 합성어인 글로컬 사업의 부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K대학을 향한 담대한 혁신’이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최정예 선도(Flagship) 대학을 육성해 지역마다 혁신 ‘허브(Hub)’로 정착시킨다는 전략이다.

요악하면, 계획이 파격적이면서도 허무맹랑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대학은 뛰어난 혁신성으로 예비지정을 통과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보완돼야 한다”며 본지정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반면 글로컬대학에 선정되거나 긍정적 평가를 받은 대학을 보면 방향성이 명확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주항공방산 분야 특성화’ 경상국립대다. 경상남도의 거점국립대학인 경상국립대는 앞서 조무제 총장 시절 생명과학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성과를 냈다. 경상국립대는 다음 스텝을 차근차근 준비해갔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우주항공방산 분야 특성화 대학이다.

경상국립대가 위치한 경남에는 국내 최대 우주항공 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포함한 104개 기업과 한국전기연구원, 한국재료연구원을 포함한 13개 연구기관 등이 몰려 있다. 여기에 더해 오는 5월 우주항공청이 경남 사천시에 개청하고, 경남항공국가산업단지가 진주와 사천 일대에 조성돼 집적 효과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우주항공방산 분야 특성화는 권순기 총장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성장한 전남대 화학공학부와 경북대 전자공학과 사례에 착안해 우주항공방산 특성화 모델을 제시했고, 성공을 거뒀다.

교육부는 경상국립대가 제출한 기획의 희소성과 시의적절성에 큰 점수를 줬다는 후문이다. 민간이 우주항공의 중심이 되는 ‘뉴스페이스 시대’에 우주항공방산 분야 인재 육성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 ‘우주항공’이란 명칭에 붙은 단과대학이 전 세계적으로도 몇 없을 정도로 희소하다는 점이 크게 어필했다.

복수의 대학 관계자들은 “이제 무전공·무학과제와 같이 모두가 시도하는 혁신만으로는 교육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 것”이라며 “평가위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명확하고 일관된 테마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오는 7월 발표될 2차 본지정 결과도 브랜드와 테마가 있는 대학이 선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대 흐름에 맞는 명확하고 일관된 테마 필요


▎김우승 글로컬대학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 글로컬대학 본지정 선정’ 결과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또 눈여겨볼 부분이 바로 대학 간 연합·통합이다. 부산대·부산교육대는 ‘에듀-트라이앵글(Edu-TRIangle)’ 모델을 제시해 1차 본지정에 성공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양 대학의 교원 양성 기능을 일원화하고, 첨단 디지털 인프라 및 디지털 선도학교 연계 등을 통해 교원의 AI·디지털 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부산교대에 초·중등·고등·평생교육 기능을 집적한 교육 중점대학을 구축하고 단계적으로 이전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이런 점을 눈여겨 본 2차 지원 대학들은 속속 통합·연합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국립창원대는 경남도립거창대·경남도립남해대와 통합하고, 한국승강기대·한국전기연구원·한국재료연구원 등과 연합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서둘러 통합 계획을 내놓았다가 진통을 겪는 대학도 있다. 한국교원대 총동창회는 최근 대학이 청주교대와 진행 중인 통합 논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총장이 주도하는 글로컬대학30 사업 신청은 독선”이라는 것이다. 학내 반발에 부딪힌 한국교원대는 “여러 우려의 목소리로 인해 예비지정 신청과 관련한 일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교육부의 글로컬대학 선정 사업이 사실상 ‘대학 구조조정’이라고 본다. 교육부는 “대학 간 통합에 가산점을 주지 않는다”라고 밝혔지만, 1차 지정된 대학 10개 가운데 통합을 제시한 4개 대학이 포함됐다. 교육부가 경쟁력 있는 일부 대학에만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학 간 통합은 ‘국립대 중심론’과 결부돼 우려를 낳고 있다. 학교법인이 존재하는 사립대 간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글로컬대학 사업은 결국 국립대 위주로 지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된 10개 대학 가운데 7개가 국립대였다는 사실도 이러한 우려를 증폭시킨다.

이러한 교육계의 우려를 의식한 듯 교육부는 ‘2024년 글로컬대학 지정계획’ 신청 유형에 ‘연합대학’을 포함시켰다. 대학 통합뿐만 아니라 대학 간 연합 형태도 글로컬 대학으로 신청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사립대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사립대 총장은 “연합은 거버넌스를 통합해 단일 총장에게 인사권·재정권 등을 쥐여줘야 의미가 있다”며 “같은 학교법인에 속한 대학 간에는 가능할지 모르나, 서로 다른 법인을 가진 대학이 인사권과 재정권을 한 대학에 몰아주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당 총장은 “사립대가 고등 교육의 많은 부분을 맡고 있는 만큼 2차 지정은 사립대에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학교법인 영향력 약해질라… 지원 포기하는 사학도


▎지난 3월 15일 청주 한국교원대 학생이 모교와 청주교대와의 통합을 반대하며 교육문화관 앞 계단에 학교 ‘과잠’을 벗어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점 때문에 글로컬대학 사업 지원을 포기하는 대학도 상당하다. 글로컬대학 사업이 대학 내 학교법인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글로컬대학에 지정되면 교육부로부터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받기 때문에 교육부의 감사와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대학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학교법인의 주장이다.

교육부 글로컬대학 사업이 지방의 군소 대학에는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혁신성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과 대학이 소재한 지역사회와의 연계성도 중요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지방 군소 대학 입장에서는 도전해도 헛수고라는 것이다. 한 지방 군소 대학 관계자는 “글로컬대학 사업 신청을 두고 내부 회의를 했지만, ‘어차피 지원해도 안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며 “우리가 거점 대학을 제치고 이 사업을 따낼 방법을 고심했지만, 재정 규모가 10배 이상 차이 나는 상황이라 뾰족한 수가 없더라”고 토로했다.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글로컬대학 사업은 “과연 국내 대학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혁신 경쟁력을 갖추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국가 경쟁력보다 대학 경쟁력이 하위권에 머물러 정체된 상황이라는 것.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평가에 따르면, 조사 대상 64개국 중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2021년 23위, 2022년 27위, 2023년 28위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대학 경쟁력은 2022년 46위, 2023년 49위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빈약한 대학 재정에서 찾는다. 대학 당국이 등록금을 인상하려고 해도 학생·학부모들의 반발과 함께 등록금 관련 규제로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들은 2009년부터 14년째 등록금 동결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에듀플러스가 335개 대학 총장과 처장을 대상으로 4일부터 11일까지 ‘새 국회에 바라는 점’을 조사한 결과, 대학 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재정’(59.0%), ‘재정지원사업’(18.1%)이 꼽혔다.

과연 글로컬대학 사업이 지방 대학들을 살리는 구원의 동아줄이 될 수 있을까? 교육부는 향후 10~15년을 대학 혁신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20년 후 대입 자원이 현재 기준 절반 정도로 감소하게 되면 존폐 위기에 놓인 대학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2차 공모에는 109개 대학에서 총 65건의 혁신기획서를 제출했다. 지원한 대학 총장과 추진단장을 대상으로 비대면 면접을 진행한 교육부는 20개 대학을 예비지정해 오는 7월 본지정 결과를 공개한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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