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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초점] 레임덕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 

이 대통령, FTA 비준동의안 처리 후 ‘외치’에서 ‘내치’로 무게중심 옮길 듯
후계 구도 다각화 타진하되 ‘안철수 신당’ 지원 등 대반전의 가능성 적어 

정치권에 ‘신당론’이 난무한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세론이 깨졌기 때문이다. 미래 권력이 흔들리는 요즘 현재 권력 또한 뚜렷하게 레임덕에 시달린다. 임기 말 이명박 대통령은 산적한 현안에 어떻게 대처할까?

▎11월 15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고자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요즘은 누가 전화를 걸어오면 내가 먼저 이 대통령을 탓한다. 그렇게 입막음을 해야 상대방이 이 대통령을 덜 헐뜯는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한 지인이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전화 받기가 꺼려진단다. 이 대통령과의 막역한 관계임을 아는 주변사람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실망했다는 말을 격한 어조로 쏟아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골프를 치다가 당사자로부터 이 얘기를 건네 들었다. 그는 이 대통령의 지인과 같은 고려대 출신이다. 요즘 이 대통령은 대학 동문들 사이에서도 별반 인기가 없다.

1996년 이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래 한솥밥을 먹었다는 여당 의원들은 한술 더 뜬다. 당 소속 국회의원 25명이 연판장에 가까운 형식으로 이 대통령은 실정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테면 ‘747(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강국) 공약’을 폐기하고, 성장지표 위주의 정책 기조를 성장·고용·복지가 선순환하는 방향으로 틀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인사 쇄신, 권위주의 시대의 비민주적 통치 행위 개혁, 권력형 비리의 신속한 처리와 검찰 개혁 등 그동안 야당과 시민단체가 MB정부를 공격해 온 단골 메뉴도 담겨있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데는 이제 여·야 구분이 없다.

청와대는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를 제대로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곤혹스러워한다. 박형준 청와대 사회통합특보는 “이명박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왔는가에 이해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747공약’은 이미 인수위에서 내용이 많이 바뀐 데다 수치상의 달성 목표라기보다는 그런 성장의 기반을 조성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그래서 ‘747공약’을 폐기하라는 건 “그런 성장 기반 조성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밖에 안 된다”고 항변했다.

전화벨 울리면 뜨끔한 MB 지인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부의 정책 기조가 복지 확충 쪽으로 돌아섰는데 새삼스레 정책 전환을 요구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여긴다. 내곡동 사저 구입 파문과 같은 구체적인 현안을 탓한다면 모르겠지만, 포괄적인 국정운용 기조를 문제 삼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게 과연 온당하느냐고 되묻는다. 물론 청와대도 국민의 정치 불신이 크고,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여론이 고조되는 만큼 “대통령이 민심을 어루만지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다만 박 특보는 “대통령이 국민통합방안을 고심하는 가운데 불쑥 연판장을 돌리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의원들의 집단행동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비싼 대학 등록금과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는 대학생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양측 주장의 시시비비를 떠나서 청와대와 여당이 이처럼 주요 국정 현안을 놓고 딴 생각을 한다는 게 문제다. 당·청 관계가 이렇다면 애당초 정책 공조가 잘될 리 없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당과 청와대의 엇박자는 현정부의 임기 말 권력 누수가 빨라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청년 실업, 고용 불안, 물가 앙등, 전세 대란 등 악화된 경제 여건은 서민의 삶을 무겁게 짓누른다.

양극화 심화와 정치 불신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올 4·27재보선, 10·26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을 연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동아시아연구원(EAI)과 한국리서치가 지난 10월 29일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36.3%로 지난 7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이후 3개월째 내리 하강곡선을 그었다.(62, 63쪽 도표 참조) 잇달아 터져 나온 저축은행 비리사건이나 측근비리 의혹, 내곡동 사저 매입 파동에서 정부 여당에 국민의 불신이 증폭한 결과다.

대통령의 가까운 지인마저 주변의 등살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 사과를 요구할 정도인데도 대통령은 여전히 여론과 겉도는 듯하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9월 30일 현 정권을 돈 안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규정한 대목이다. 이날 예정에 없이 확대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이 대통령은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10·26 재보선 국면에서는 국민의 부아를 돋우는 악재로 작용했다고 정한울 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이 말했다. 정 부소장은 “이 대통령 자신은 사심이 없고, 나라의 국격을 올리고, 서민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듯하다”고 전제, “하지만 국민 다수는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서 은진수 전 감사위원,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차관에 이르기까지 정권 실세 인사의 측근 비리가 끊이질 않았다. 따라서 국민은 오히려 정부와 여당의 지도부가 사심이 있고, 측근 비리도 많고, 기득권을 옹호한다고 여긴다는 설명이다. 물론 정보의 불균형으로 대통령과 일반 국민의 인식에 괴리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치는 국민의 눈높이로 볼 때 해법이 나온다고 정 부소장은 말했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과 기준으로 말하고 행동하니까 국민이 더욱 답답해 한다.”

한나라당 억장 무너지게 한 MB 국회 방문

레임덕도 이런 데서 나온다. 일부에선 청와대가 “눈, 귀를 막고 자기들만의 세상에 살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청와대에 있으면 외부와 격리돼서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리라는 생각은 섣부르다고 지적한다. 그는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몰라서 함정에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세간의 여론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통로가 여럿이다. “예컨대 선거에서 연거푸 지고, 국정 지지도가 떨어지고, 여론 동향 보고도 받으면 민심의 흐름을 다 파악하게 된다”고 문 이사장은 말했다. “대처 방식에서 동티가 생긴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민이 뭘 잘 몰라서 그런다며 훗날 제대로 평가해주리라는 생각에 자기 고집을 부리면 탈이 난다”고 문 이사장은 지적했다. “현 정부는 여론을 알고도 무시하는 습관이 있다. 여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은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다.”


▎11월 6일 한나라당 당사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들.

이 대통령은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일한다”고 자부한다. “자신의 임기 중에는 레임덕이 없다”고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지난 9월 추석 즈음 방송좌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대통령이 국내 여의도 정치, 물가만 따지는 게 아니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면서 “21세기 대통령은 레임덕이라고 해서 어깨 힘 빼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레임덕에 상관없이 나라가 제대로 가도록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 말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본분을 다하는 자세는 옳다. 그러나 요령 없이 열심히 일만 하려는 대통령이 오히려 소통에 걸림돌이 되거나, 정당에 짐이 될 수 있음은 현재 국회에 제출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잘 말해준다.

이 대통령은 한 번의 연기 끝에 11월 15일 국회를 방문해 “미국에 3개월 내에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재협상을 요구하겠다”며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다시 한 번 촉구했다. 그래도 합의가 안되면 강행처리가 불가피하다는 메시지를 깔고 있다. 문제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야권은 고사하고 한나라당부터 이 대통령의 강행처리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다는 사실이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20~40대의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이반이 심각함을 일깨워줬다. 한나라당이 이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내부 개혁에 온 힘을 쏟아야 할 시점이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비판 여론에 귀 기울이겠다”며 환골탈태 수준의 쇄신과 친서민 행보를 약속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서울대 교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을 지낸 나승연 씨 등 청춘의 ‘아이콘’들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당사자들은 난색을 표했다. 따라서 변화와 자성 모드를 계속 유지해야 할 처지다.

이런 때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해야 한다면 한나라당의 심적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절반이 한미 FTA에 찬성한다지만 야권의 반대를 힘으로 제압하면서 단독 강행처리 했을 때 불어올 역풍이 걱정이다. 한나라당은 지금은 우호적인 한미 FTA 여론이 실력행사로 하루아침에 반전될지도 모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당을 충분히 설득할 만큼 해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밀어붙일 때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강행처리 할 경우의 여론 반응은 다르게 마련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괴리가 여기서 발생한다. 대통령은 한 번 임기를 마치면 정치는 끝이다. 다시 선거를 치를 일이 없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고자 하는 이 대통령은 국가 간 약속을 의회가 저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설 법하다.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방치해서는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워 임기 말 권력 누수가 통제불능으로 접어들지 모른다고 판단할 만 하다.

반면 한나라당은 앞에서 본 대로 한미 FTA 처리 방식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 미칠 여파와 뒷감당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외국과 합의한 사안을, 옳건 그르건 깨거나 지체하는 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문제는 힘으로라도 밀어붙이라니 막막할 따름이다. 친박계의 한 재선 의원은 “한미 FTA 비준안은 하루 빨리 처리돼야 옳지만 정치란 야당을 설득하는 기술이라는 점을 이 대통령이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푸념했다.

내년엔 대통령 국정 지지도 상승?

사실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은 야당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받아들일 만한 사안이긴 하다. 11월 11일 국회 방문의사를 밝히면서 야당의 사전 양해조차 구하지 않았다. 과거에 이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야당을 직접 설득하고 소통하려 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타이밍도 그렇다. 임기 초·중반이거나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어느 정도 받쳐주는 시점이라면 그나마 진지한 소통의 노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레임덕에 접어든 시점이고, 평소 안 하던 일을 지금 와서 하겠다니 민주당이 시큰둥하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아무런 의제 조율 없이 국회에 와서 (야당 대표를) 만나야겠다는 것은 밀어붙이기용 명분 쌓기”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밀어붙이기식 일처리 방식은 여·야 어느 쪽에서도 환영 받지 못했다. 역으로 이 대통령은 여의도가 정쟁만 일삼고 국익을 소홀히 하는 비효율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관계자는 “한미 FTA가 청와대에 지어준 짐이 너무 크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한미 FTA를 중요한 치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청와대가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단독 처리에 미적거리는 한나라당이 불만스럽고 곤혹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경기도 여주군에서 열린 4대강 관련 기념행사에 참석한 이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 정부는 4대강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사업을 보는 여론이 호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 FTA 처리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절박성을 안 보이는 엉거주춤한 자세라고 본다. 이 관계자는 “야당이 불응한다면 한나라당만으로도 처리해야 하는데 당에서도 그렇게 하자는 쪽이 절반이고 할 생각이 없는 게 절반”이라며 “지금 추세라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은 빨리 처리될 수도 있고, 표류할 수도 있다”고 답답해 했다. 청와대가 한미 FTA 비준안 조기처리에 이처럼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대통령이 내치(內治)는 논외로 하더라도 “밖에서 열심히 뛰어 나라 경제를 살렸다는 업적을 남기고픈 열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신율 명지대 교수는 분석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인식 차이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평행선을 달릴 수 있다.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 참패를 걱정하는데 정부와 청와대는 내년 국정지지도가 상승하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김해진 특임차관은 “레임덕은 임기 후반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 대통령의 일에 대한 열정과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을 국민들이 평가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이나 한미 FTA과 같이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국가 경쟁력을 다져주는 업적을 국민이 제대로 평가해준다면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필요한 리더십을 확보된다는 게 그의 희망이다. 오는 11월 말 16개 보 릴레이 개방이 완료되는 4대강 사업은 사업초기 상당히 부정적이던 여론이 지금은 많이 호전됐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2009년 11월 민간업체 조사결과 찬성 32%, 반대 55%이던 여론이 지난 10월 조사에서는 찬성 46%, 반대 47%로 “균형점을 향해 간다”고 특임장관실은 밝혔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임기 후반 국정을 위협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로 추려진다. 정치 위기, 경제 위기, 안보 위기다. 여권의 한 당국자는 제도권 정당정치가 부정 당하고, 장외 정치가 펼쳐지는 현 상황이 정치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이 대통령이 임기 말을 원만하게 마무리하는 데 걸림돌이 될 만한 불안 요인이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정치 위기는 여야 정치권이 총선과 대선을 통해 풀어야 할 사안”이라며 “정치 위기는 대통령이 정리할 사안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정치 위기가 국정운영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지만 대통령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는 뉘앙스다.

경제 위기도 돌발변수다. 글로벌 재정위기가 한국으로 불똥이 튀면 수출입,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활동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헤쳐나가고, 한국의 재정 건전성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등 경제에 일가견이 있기에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다. 게다가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서울 개최, 내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 서울 유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재선 등 한국의 외교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하다. 이런 외교적 성과가 경제에 상승 효과를 불어넣고 위기 대응력을 키워준다고 정부는 낙관한다.

국가정보기관의 난맥상

안보위기라면 내년 강성대국 완성을 앞둔 북한의 도발이나 핵실험 등에서 촉발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이 권력 교체기에 들어가면서 한반도 주변 강대국 간의 공조가 이완되는 시점에서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도 있다. 그래서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6자회담 재개 노력, 보다 유연한 대북정책 등으로 안보위기의 사전 차단막을 만들고 상황을 안정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각오다. 정부의 이 당국자는 “이처럼 임기 말에 3각 파도가 닥쳐올 수도 있는데 얼마나 능동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이 대통령에 대한 국정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과 정부는 “일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넘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열쇠는 손발이 그것을 얼마나 따라 주느냐다. 벌써 권력 핵심부에서 기강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후보 대선 캠프와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여권 인사는 최근 공직 기강이 겉으로 표가 나지는 않지만 안에서 무너진다고 우려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모 국가 정보 관련 기관을 들었다. 이 인사는 “최근 이 기관이 단행한 인사는 파벌끼리의 쟁탈전과 나눠먹기의 난장판이었다”면서 “그 와중에 청와대에 허위 보고마저 일삼았다”고 격분했다. 정부 정보계통의 중추신경계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주장이다.

어느덧 청와대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크게 줄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일부 자리에는 적임자가 없어 인물난을 겪는다. 김현석 국가경영연구원장은 “현 정부의 초기 인사패턴이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특정지역과 출신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임기 말로 갈수록 인재풀이 좁아지는 자충수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1월 14일 구미시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부근에 세워진 고인의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협력 여부가 대선의 주요 변수다.

이를 테면 특정 직위에 ‘회전문’ 인사라 해서 자기 사람을 주로 심다 보니 임기 말로 가면서 외부 전문가들이 그 자리를 피해가는 분위기다. 그래서 일부 요직을 채우는 데도 인물난을 겪는다. 외부 전문가들은 다음 정권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능력과 식견을 갖춘 까닭에 굳이 임기 말 정부에 참여해야 할 매력을 크게 못 느낀다는 얘기다. 김 원장은 “그래서 공정한 인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정권 출발 시점부터 객관적 잣대로 인사를 했더라면 임기 말에도 큰 부담 없이 일하려는 전문가들이 있겠지만 지금 정부에 참여하면 ‘MB사람’으로 찍힐 까봐 조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런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직기강 잡기에 나섰다. 지난 9월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의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졌을 때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9월 27일)에서 “정말 이대로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일수록 더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날 이 대통령은 참석한 장관들에게 소관 부처 직원들의 비리 엄단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부처에 비리가 있으면 장관들이 선제적으로 고발하고 대처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부서의 비리를 덮어두면 (일시 은폐로) 정권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국가에 독이 된다”면서 “자기 부처 비리부터 척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레임덕은 더 가속화하리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통념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차기 주자와의 관계 설정에 실패하면 여권은 내홍과 자중지란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요즘 ‘안철수 바람’이 불면서 정치권에서는 여러 신당론이 분분하다. 안철수 신당론이 뜨자 친박계 일부에서는 청와대에 눈을 흘긴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아마 내년 대선과 관련 이 대통령에게 최악은 민주당 집권이겠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집권 역시 여전히 차악일 수 있다”고 <월간중앙> 10월호(9월 17일 발행)에 말했었다.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아닌 제 3세력이 집권하는 게 이 대통령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MB, 장관들에게 부처비리 고발 지시

최근 들어서 각 언론은 “청와대가 현재의 야당이나 박 전 대표 보다는 제 3세력에 정권을 넘겨주는 것이 낫다고 인식하는 게 아니냐”고 일부 친박 인사가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고 보도한다. 심지어 친이 구주류 일부가 탈당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이 합류하는 신당을 청와대가 모색한다는 설도 나돈다. 이 대통령이 안철수 바람이 불자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고, 참모들도 “안철수 바람이 기성 정치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이런 소문이 피어 올랐다.

현직 대통령 입장에서는 후계자가 좀 고분고분하고, 이왕이면 자신이 힘을 보태서 당선되면 좋은 게 인지상정이다.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보여줬듯이 박 전 대표는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이 대통령의 지원이 무색할 정도로 당내 입지가 확고하다. 이런 마당에 안철수 원장 등 제 3의 인물이 돌풍을 일으켜 대선 판도를 흔들면 이 대통령은 여권 내 차기 구도를 여러 갈래로 모색해볼 여지가 커진다.

올해 초 여권에서 개헌론이 한창일 때 이 대통령의 한 청와대 참모는 박 전 대표 지지율 향배를 이렇게 점쳤다. “대선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역대 대선 주자들 중 2년 전에 1등이 성공한 예가 있는가? 지금 지지율은 별로 의미가 없으며,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계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내년부터는 내려가리라고 본다. 강력한 경쟁 상대가 등장해 꺾인다기보다는 피로감 때문에 스스로 내려갈 것이다. 그 땐 다른 주자가 대항마로 나오게 된다.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은 웃기는 말이다. 친이계도 자신들이 권력을 잡자면 친이계 후보 단일화를 통해 한 명의 후보를 키워야 한다. 그게 김문수 경기지사든 오세훈 서울시장이든.”

예상치 못했던 안철수 바람 탓이기는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그 시기도 앞당겨졌다. 박 전 대표가 앞으로도 계속 밀리면 그 참모가 말했듯이 대항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김문수 경기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이재오 전 특임장관 등 당 안팎의 잠재적 대선 주자들과 중진, 소장파 그룹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또 이들이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이끄는 보수신당에 합류한다면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 수도 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가 아닌 다른 후계 카드가 생긴다는 점에서 이런 정치권의 지형 변화를 반길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이 기존 보수진영에 속하지 않은 안철수 원장을 후계 구도에 포함해 적극 움직일 가능성도 있을까? 임기 말 대통령이 외부의 인사를 차기 주자로 미는 데는 “가히 혁명적 상상력과 두둑한 정치적 배짱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정치컨설턴트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원은 말했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고도의 정치공학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는 유형의 지도자도 아니다. 차라리 이 대통령을 따르던 정치 세력이 안 원장 쪽이나 박세일 신당에 합류하는 일은 있을지언정 다시 출마할 일이 없는 이 대통령이 그 대상은 아니라는 게 황 수석연구원의 진단이다.

박영준, “이 대통령이 안철수 민다는 소문은 낭설”

예컨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이 대통령이 안철수 원장을 민다는 소문은 한마디로 낭설”이라고 못을 박았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대통령의 정무참모로 일해온 박 전 차관은 “이 대통령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정치에 무관심할 수는 없으며 상황은 파악하고 계실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특히 “이 대통령은 (뒤에서 누구를 밀고 하는) 그런 일을 할 분이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그런 정치공학적인 걸 가장 혐오하는 분이 이 대통령”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오히려 “보수정권을 되찾아온 당사자로서 이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장 시절 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또 다른 관계자도 이 대통령의 스타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뼛속까지 기업 CEO다. CEO는 생존의 바다에 혼자 헤엄쳐야 한다. 언제든지 대주주 마음에 따라 갈아치워진다. 이해관계 속에서 세상을 대했고, 이익이 없으면 돌아서는 관계로 사물을 봐왔다. 그나마 서울시는 국가와 기업의 중간 단계다. 서울시는 정책 집행이 많아 국가보다는 기업 경영과 가깝다. 자치단체에는 정치적 게임이 없지만 국가는 정치적 게임이 태반이다. 국가운영은 국민적 합의나 총의를 모으고, 갈등을 조정하고, 권력을 배분하고 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합과 배제라는 게임을 이 대통령이 한 적이 있나? 그건 정치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으면 못한다.”

더구나 청와대 내부를 보면 “안철수 신당과 같은 그런 대반전을 꾀할 정도의 역동성이 감지 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청와대 참모진 중에는 기획안을 올려도 수용되지 않아 맥이 풀린다는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한다고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이 대통령의 인기가 높고, 청와대가 힘이 있어야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정치권 일각의 인식이다. 설령 청와대가 그런 꿈을 꾸더라도 안 원장이 현 여권과 한배를 탈 것인지는 미지수다. 지금은 안 원장이 기성 정치권은 물론이고 제 3의 신당과도 거리를 두는 게 이롭다는 시각이 우세한 게 사실이다.

임기 말 대통령은 2인자와의 관계 설정이 퇴임 후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박근혜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라는 압력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안철수 원장의 등장으로 ‘박근혜 대세론’이 깨졌기에 그렇다.

이전까지는 비등한 정권 심판론이 박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이나 반박(反朴) 정서로 이어지진 않았다. 박 전 대표는 한때 세종시 수정안 등 특정 이슈에서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했기에 이 대통령을 견제하는 걸로 비쳐졌다. 박 전 대표의 집권이 정권 교체라는 여론지수가 높았다. 지난해 8월 청와대 회동으로 이 대통령과 관계가 개선되면서 박 전 대표 지지율은 40%를 뛰어넘는 고공행진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알게 모르게 공동운명체가 됐다.

그런데 8월 말부터 상황이 헝클어졌다. 이른바 ‘안철수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박 전 대표 말고도 잠재적 대안이 생겼다. 박 전 대표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견제자가 나타난 것이다. 정권 심판론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상황이다. 과거같이 박해를 받거나 이 대통령을 견제하는 모양새가 아니어서 정권 심판론은 박 전 대표에게도 타격을 줄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얘기다.

친박계 일부에서는 정책 면에서 이 대통령과 의식적으로라도 분명하게 선을 긋거나, 아예 친박 신당을 만들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는 박 전 대표가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집권당의 개혁과 반성을 주도하면서 자성 모드로 여론을 달래리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박 전 대표는 표를 의식해 특정인을 공격하거나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에게 한 가지 위안이라면 보수 지지층들이 보수진영 안에 뚜렷한 대안이 없는 한 그를 중심으로 결집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이다. 박세일 신당 등 제 3당으로 한나라당 일부가 떨어져나가거나, 아예 분당되는 사태로 가려면 내년 총선에서 보수 지지층이 거기에 동의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지지도에서 여권 내에 구심점이 될 만한 차기 주자는 사실상 박 전 대표밖에 없다.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적정 거리

변수가 없지는 않다. 대세론이란 게 일단 흔들리면 관성에 따라 지지율이 계속 하락할 수도 있다. 11월 초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지지율에서 안철수 원장에 9% 포인트 이상 뒤졌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20% 선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런 때일수록 여권이 정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협력이 중요하다(지난해 8월 청와대 회동에서 두 사람은 현 정권의 성공과 정권재창출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었다).

한나라당은 딱 한번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1997년 대선 때 김영삼 대통령(YS)과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등을 돌렸을 때다. 정치권은 김 대통령이 이 후보의 당선을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야당의 김대중 후보 당선을 도왔다고 본다. YS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용태 전 내무장관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YS는 내게 분명히 ‘나는 이회창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에 어긋나는 일은 안 하겠다고 했다. YS 자신은 또 대통령으로서 선거에 관한 한 정말 중립을 지키려고 했다. 그 결과 통상 여당 후보가 누리던 프리미엄을 이 회창 후보는 별로 못 누렸다.”

당시 YS 옆에서 DJ로의 권력 이양을 지켜본 김 전 장관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예컨대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가 자신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박 전 대표가 걸어온 길을 고려해볼 때 MB정부와 같은 색이면 별로 그답지 않은 게 된다.” 박 전 대표 또한 종국에 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더라도 여당의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수록 권력 누수를 막아주는 데 협조하면서도 얼마든지 박 전 대표만의 특색을 발휘할 수 있다”고 훈수했다. 그래야 국민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박 전 대표를 신뢰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정거리를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이와 관련해 박영준 전 차관은 지난해 8월 청와대 회동 이후 우호관계를 맺어온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으며, 최근 박 전 대표가 FTA 비준 동의안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도 양자 간의 기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4년 전인 2007년 대선 당시로 돌아가보자. 선거운동 기간 내내 유권자 대다수는 ‘이명박’ 하면 가장 먼저 ‘경제성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는 TV토론 과정에서 온갖 인신공격을 받으면서도 ‘경제 살리기’ 메시지 전달에 올인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주요 지표상으로는 좋다고 하지만 서민과 중산층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경제 양극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라 한국만 빠져 나올 묘책을 가진 것도 아니다. 결국 이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을 상당부분 지키기 어려운 처지다. 경제가 아닌 다른 국내 현안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 후 임기 종료 시까지 내부 문제를 챙기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레임덕 관리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는 말로 들렸다.

201112호 (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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