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만사’다. 용인(用人)은 정치의 요체다. 정치의 잘잘못은 사람을 쓰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다산은 인재등용은 편당(偏黨)의 사심(私心) 아닌 공론(公論)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산은 1818년 18년 동안의 해배(解配, 유배에서 풀려남) 뒤에 이광수(李光壽, 자 景祉)의 소요원(逍遙園)에 글 한 편을 써주었다. ‘소요’란 말을 정풍(鄭風) ‘청인(淸人)’편에서 끌어와, 그것을 ‘어정거린다’는 뜻으로 규정했다. ‘청인’에 보면, “두 창은 깃 떨어져 갈고리만 남았는데 군사는 하릴없이 황하 가에서 소요하네”(二矛重喬, 河上乎逍遙)“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의 소요는 에서 말했듯이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꼭 해야 된다고 고집하거나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고집하지 않고, 그저 자기의 갑갑함이나 풀어버린다는 뜻이다.
이광수는 젊어서 서울에 노닐며 구직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농사를 지었으나 부농이 되지는 못했고, 글을 읽었으나 학문을 이루지는 못했으며, 말 타기와 활쏘기를 익혔으나 때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서 춘천에 소요원이란 작은 동산을 꾸미고 그 속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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