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이 시대의 화두다. 대기업·기관 등 ‘갑(甲)’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상생은 책무로 다가온다. 산업화 과정에서 양극화를 겪은 도시와 농촌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동농협은 수년 동안 도·농 간 상생을 이끌며 도시농협의 성공모델로 자리 잡았다.“농업과 농촌의 발전 없이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197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빌 게이츠가 지난해 자신의 자선재단 목표로 밝힌 ‘농업혁명’도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농업·농촌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취임 초기, “불합리한 농산물 유통구조가 농·수·축산인의 ‘손톱 밑 가시’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해법을 지시한 것은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데 정부의 역할 강화를 주문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정부보다 앞서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도시와 농촌의 상생에 힘써온 곳이 있다. 바로 서울 강동농협(이하 강동농협·조합장 박성직)이다.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강동농협은 대표적인 ‘도시농협’(서울과 부산 등 6개 광역시에 있는 지역농협을 의미한다)이다. 1100여 명의 조합원 가운데 900여 명이 서울 외곽에서 총 100㏊ 규모의 시설 농사에 종사한다. 규모가 크지 않은 지역농협(단위농협)에 불과하지만 이곳은 수년 전부터 ‘도·농 상생’의 성공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그동안 강동농협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강동농협의 변신은 박성직(62) 조합장이 취임한 2005년부터 시작됐다. 박 조합장이 “도시가 변해야 농촌이 산다”는 신념으로 도시농협의 역할을 강조하며 새로운 변화를 이끈 것이다.
산지 농협과 직거래로 도·농 상생의 길 터이를 통해 도시농협은 안전 농산물의 공급처를 확보하고, 산지 농협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도시농협이 신용사업으로 번 이익으로 농촌조합을 지원하고, 농산물 판매 확대에 노력하는 도·농 상생을 실천하는 것이다. 김 상무는 “자금 여유가 있는 편인 도시농협이 시골의 어려운 농협과 농민을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여러 가지 사업 중에서도 강동농협이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역시 친환경 영농사업이다. 먹거리의 고품질이 농촌에는 고소득을, 도시민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강동농협은 친환경 영농사업 활성화를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친환경 영농을 위한 유기질비료와 각종 영농자재 지원액은 연간 6억5000여 만원에 이른다.또한 친환경 농산물의 소비 활성화를 위해 2007년 전국 최초로 서울시 ‘친환경 농업 및 주말체험영농 육성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친환경 농가에 대한 지원 확대와 어린이들의 먹거리로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할 경우 필요예산을 지원해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의 학교와 직장 구내식당 등에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게 하는 등 농촌과 도시의 교류 및 지원사업을 추진해왔다.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도·농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고품질 친환경 농산물의 신속하고 안정적인 직거래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5월 13일 서울 성내동 농협 둔촌역지점에 132㎡ 규모로 문을 연 친환경 농산물 전문매장 ‘강동이네’가 대표적인 사례다. ‘강동이네’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연결해 친환경 농산물의 공급 확대를 꾀하기 위해 강동농협이 만든 브랜드다.강동농협은 ‘강동이네’를 통해 6~7단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유통구조를 2~3단계로 단순화해 얇아진 소비자의 지갑을 열었다. 이는 곧 박근혜 정부의 농업정책 핵심인 유통구조 혁신을 실천한 것이기도 하다. 강동농협 관계자는 “이번 판매장 개장으로 소비자는 농협을 방문해 예금 등 은행업무를 보면서 친환경농산물도 구입할 수 있게 됐다”며 “도·농 상생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도·농 상생 모델 해외에서도 인정받아강동농협의 친환경 영농 성과는 생산자 지원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친환경 농산물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가구당 500만원을 지원했다. 예산은 서울시의 친환경 농업 예산으로 충당했다. 강동지역 농가들이 서울 시민들의 식수원인 한강과 인접한 탓에 친환경 농업 예산을 받을 수 있었다.그 결과 전체 200여 채소농가 중 64개 농가가 친환경인증을 받았다. 특히 상추와 쑥갓 등 잎채소와 오이·호박·토마토 등 열매채소를 생산하는 농가들은 대부분 무농약·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았다. 현재 잎채소는 40종 이상이 친환경농법으로 생산된다. 이들 농가에는 천연미생물제제 등 농자재도 80%까지 지원한다.소비자 측면에서는 교육을 통해 친환경 농산물에 친숙함을 높인다. 유치원생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 친환경 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친환경 농산물 소비자로 육성한다. 성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해마다 ‘유기농 아카데미’를 열어 건강한 삶을 위한 바른 먹을거리 선택과 유기농산물의 이점, 구입 요령 등을 자세히 알려준다. 수료생들은 친환경 농산물 소비자가 되는 것은 물론 전도자로도 역할을 한다.이 밖에 조합원 복지사업도 활발히 진행한다. 전체 수익의 20%가량을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을 위한 복지사업에 투자한다. 특히 10여 년째 가구당 인원 제한 없이 지원하고 있는 장학금 사업은 조합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임원과 직원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성장 밑거름이라는 박 조합장의 믿음 때문이다. 박 조합장은 “자발적인 업무 수행이 고객에게 즐거움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강동농협의 우수한 경영실적은 주인의식이 그 원천이다”고 말했다.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농촌농협을 지원하는 등 도·농 상생의 새 역할모델을 만들어낸 강동농협에 대한 평가는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박성직 조합장이 2009년 비즈니스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IBA(국제비즈니스어워드) 대상 스티브상(Honorary Stevie Award)을 수상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IBA는 전 세계 기업과 조직들이 한 해 동안 펼친 사업활동 및 사회기여도 등을 평가해 기업·조직부문·팀·개인·광고 및 미디어 활동 등 5개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이 가운데 스티브상은 전 부문에 걸쳐 최고 점수를 받은 사람에게 주는 대상이다. 한국의 농협조합장이 국제 비즈니스계가 인정하는 대상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강동농협은 사회공헌 부문에서 대상을, 박 조합장은 경영부문에도 입상해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도시와 농촌을 하나로 묶는 도시농협의 새로운 역할모델을 개발해 도·농 상생프로그램 교류활동과 수익 환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게 IBA 측의 시상 이유였다.강동농협은 불법이 판치는 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2009년 조합장에 이어 2010년 총 10명(이사 8명, 감사 2명)의 임원 중 임기가 만료되는 9명(이사 7명, 감사 2명)의 임원 전원이 무투표로 당선돼 화제를 모았다. 농협과 조합원, 조합원과 조합원 간의 신뢰와 단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시와 농촌 간의 상생을 통해 ‘농자천하지대본’을 실천하는 강동농협의 성공 사례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