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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낭만적 음식기행 | 지중해식 해물요리의 진미 

홍합은 토종 아니라 유럽에서 왔다 

유럽의 식생활 문화는 종교적 영향 커…지중해를 낀 지형 탓에 해물 먹거리 ‘풍부’

▎스파게티는 다양한 재료로 요리된다. 지중해를 끼고 있어 해산물이 풍부한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해물 스파게티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이탈리아 식당 주방장을 한 지도 13년이 흘렀다. 한국 외식업의 급격한 성장세에 투신한 세월이었다. 청담동과 논현동, 가로수길, 홍대 앞 같은 첨단 유행지역이 그 무대였다. 재미있게도 한국인이 이탈리아 식당에 거는 기대랄까, 선입견이 있다. ‘마늘을 많이 쓰고 매우며 해물요리가 많다’.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무슨 소리인가. 그건 이탈리아 요리가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이다. 국토는 아래위로 길고 통일된 지 150년 안팎이다. 다른 곳에서 종종 얘기한 적이 있는데, 북부에서 기차를 타면 꼬박 스물네 시간을 지나서 시칠리아의 한 궁벽한 어촌에 닿는다.

한국의 KTX처럼 빠른 기차를 타도 열두어 시간은 넘게 걸린다. 서울에서 아무리 멀어봐야 대여섯 시간이면 국토 어디든 도달하는 한국(남한)과는 비교하기 어렵게 큰 나라인 것이다. 논점이 옆으로 샜는데, 이렇게 국토가 길고 취향이 다르다 보니 앞서 여러 전제가 틀리는 경우가 많다. 마늘을 거의 쓰지 않고 요리하는 지역도 있으며(주로 북부), 매운 요리는 사실상 남부 일부 지역에 국한한다.

해물요리를 별로 먹지 않는 지역도 많다. 수송이 용이한 현대에도 관습적으로 해물요리를 멀리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토스카나의 한 수도원에 머문 적이 있다. 토스카나 하면 우리는 해물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토스카나는 지중해에 잇대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 열하루를 묵은 수도원에서 생선이라고는 안초비 한 토막 구경하지 못했다. 아침에는 정찬을 먹지 않고 빵과 커피로 때우므로 해물을 먹을 수 있는 식사는 점심과 저녁인데 진짜 완벽하게 육류 요리만 나왔다.


▎미식가들의 조국으로 여겨졌던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은 풍부한 해산물과 과일에 로마, 노르만족, 스페인, 프랑스 등 역대 정복자의 영향이 더해져 풍요로운 음식문화를 자랑한다. 사진은 시칠리아의 항구도시 카타니아 중심에 위치한 재래시장 모습.
주로 햄과 소시지인데, 소시지란 게 삶아서 보드라운 것도 아니고 생것을 그대로 말려서 얇게 썰어먹는 것(보통 ‘살라미’라고 부르는)만 나왔다. 햄은 너무도 짜서 빵에 얹어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기독교에서 금요일에는 원래 생선을 먹는 날이다. 그런데도 마땅한 게 없었는지 육류로 상을 채웠다. 햄, 햄, 소시지, 소시지, 가끔 풀…. 한국에서 어떤 이탈리아풍 식당이 ‘토스카나 해물요리 전문’이라고 써놓은 걸 보고 실소한 적이 있다. 토스카나에 가보기나 한 걸까, 이러면서.

토스카나에는 해물요리가 없다?

미국의 유명한 음식평론가 헤롤드 맥기는 바다야말로 ‘태고의 수프’라고 말했다. 육지보다 세 배나 넓고 더 깊은 바다가 인류에게 주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먹거리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아직도 바다에서 많은 것을 얻고 있다. 바다가 없었다면 인류의 식생활은 몹시 단조로웠을 것이다. 실제 어로기술이 떨어지던 중세 이전의 음식은 상상과 달리 상당히 단순하고 보잘것없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다.

유럽에서 해물 식사는 종교적 영향 아래 있다. 주로 고기를 많이 먹는 지역인데 금요일은 종교적으로 육식이 금지돼 있다. 이때 해물과 생선을 먹는 관습이 생겼다. 이탈리아의 한 동네에는 작은 즉석 요리점이 하나 있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내내 고기 요리를 팔았다. 새끼돼지 구운 것, 오리를 훈제한 것, 어린 양고기 갈비, 소 허릿살 로스트, 돼지 안심을 익혀서 차게 만든 편채, 소시지와 햄, 소꼬리찜과 곱창찜….

그런데 금요일에는 온통 해물로 냉장 선반을 채웠다. 미리 만든 요리를 데워서 내는 간이 요릿집이라 진열 선반이 있었던 것이다. 이름도 모를 생선과 해물이 손님을 유혹했다. 금욕적인 의미로 고기 대신 생선을 먹는 게 아니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진미를 포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중에 필자가 가장 좋아한 요리는 문어와 오징어였다.

보통 서양인들은 문어나 오징어를 먹지 않는다(계율에서 비늘이 없는 것을 먹지 말라고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유태인이나 아랍인의 계율이다. 가톨릭과 기독교는 아무 상관없다. 특히 가톨릭지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사랑받는 재료다.

그런데 삶는 법이 한국과 좀 다르다. 한국은 살짝 삶아서 쫄깃하게 요리하지만, 이쪽에서는 아주 푹 삶는다. 부드러워지라고 와인 코르크도 몇 개 넣고 낮은 불에 한참 삶는다. 화이트와인을 넣고 흐물흐물해지기 전까지 삶은 후 차갑게 식힌 후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양념해서 먹는다.

스페인지역의 타파스를 좋아하는 한국인도 많은데, 그런 타파스바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게 바로 문어다. ‘뿔뽀(pulpo)’라는 이름의 이 스페인 문어요리는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다. 문어즙이 밴 오일에 빵을 찍어서 먹으면 환상적이다. 드라이한 화이트와인이나 생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기가 막히다.

필자는 현지의 지중해 식당에서 일하면서 문어를 어지간히 손질했다. 그런데 이 문어란 놈이 살아 있을 때는 참 미안했다. 먹물을 뿜어 문어(文魚)라고 명명했으나 진짜 학문을 한 듯 지능이 높은 문어여서인지 도마에 올려놓고 죽이기 전에 괴로웠다. 요리사들은 대상이 고등한 동물일수록 힘들다. 만약 소를 잡아서 요리한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소는 영물이라 눈물도 흘린다는데 말이다.


▎지중해식 문어 요리인 ‘뿔뽀’(Pulpo). 화이트와인을 넣은 물에 문어를 푹 삶은 후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양념해서 먹는다.
어쨌든 죽음에 직면한 문어는 자신의 운명을 안다고 믿는다. 머리를 크게 부풀리면서 심호흡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때는 가급적 빨리 죽여주는 게 예의다. 다리를 잡고 머리(실제로는 몸통)를 주방 바닥에 힘차게 내려쳐서 기절시키는 게 좋다. 일종의 안락사랄까.

참, 문어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는 어디일까? 필자는 내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간이다. 문어는 노랗고 진한 간이 아주 크다. 이것을 삶아서 마늘즙과 섞은 후 빵에 발라 먹으면 엄청난 맛이다. 혹시 문어를 살 기회가 있으면 간도 달라고 해서 한번 요리해보기를 권한다. 가끔 한국의 해안도시 횟집에서 문어 간과 된장을 섞어 소스로 제공하는 경우를 보았다.

일부 섬에서는 수컷 다랑어 성기 요리도

지중해에서는 한치·오징어·갑오징어·꼴뚜기 같은 고만고만한 연체류도 아주 많이 먹는다. 기본적으로 한국보다 아주 비싼 편이다. 물이 좋아 회로 먹으면 안성맞춤일 텐데 대개는 굽거나 삶는다. 간혹 이런 오징어류를 회로 먹는 지역도 있다. 바로 시칠리아와 풀리아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지도에서 공처럼 떨어져 있는 섬이고, 풀리아는 구두 뒤축에 해당한다. 얇게 썰어서 레몬즙과 후추, 올리브유를 뿌려 낸다. 마치 우리나라의 한치회처럼 가느다랗게 썬다. 공자가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던데 말이다. 첨언하자면, 공자의 그 말은 생선회가 아니라 육회라는 설이 더 우세하다.

시칠리아는 조개도 회로 먹는다. 한국에서 조개 회를 먹어봤는지. 대개는 서해안 조개의 경우 특유의 개펄 냄새가 있어서 날로 먹기 힘들다. 피조개의 비브리오균 파동 때문인지 조개 회는 더욱 인기가 없다(여전히 피조개는 날로 먹는 사람이 많지만). 그런데 살아 있는 조개는 아주 특별한 맛이 있다. 뭐랄까. 피조개류를 제외하면 조개의 피는 투명하다(우리 눈에 안 보일 뿐이다). 그 피 맛이 아주 특별하다.

헤모글로빈이 거의 없으니 비릿한 철분 맛은 아니고, 약간 감미로운 동물의 주스 맛이 난다. 그 맛이 어떤 맛이냐고 물으면 곤란한데, 토마토를 먹고 난 접시에 고인 즙에서 토마토 향을 뺀 것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비슷하다. 약간 농도와 밀도가 있고 알싸한 뒷맛을 혀끝에 남긴다. 조개 살을 씹으면 대단한 감칠맛이 나지는 않지만, 탄력 있게 잇몸을 어루만지는 물리적 감촉이 좋다. 약간 에로틱한 기분도 든다.

간혹 홍합회를 먹어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홍합과 조개는 회 맛이 다르다. 홍합의 경우 크리미(creamy)한 촉감이 있고 아주 진한 맛이 난다. 지나치게 진해서 몸서리가 쳐질 때도 있다. 그러나 보통 조개(생합류)는 요물처럼 칭칭 감기는 맛이 있다. 살점을 씹으면 피(물론 무색이다)와 육즙이 배어 나오는데, 약간 비릿하면서 해조의 맛 같은 떫은 감칠맛이 전해진다.

지중해 지역은 참치로 아주 유명하다. 우리가 일본어로 ‘혼(本)마구로’라고 부르는 참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청새치, 그리고 흔한 황새치를 두루 좋아한다. 뭐니뭐니해도 참다랑어가 가장 인기 있다. 지중해 지역의 여러 섬에는 산란철에 참다랑어회유 길목을 지키고 한몫 잡는 전통의 어로행위가 있다.

개체 수가 줄면서 이제 박제화된 행사가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사랑을 찾아 목숨을 거는 다랑어의 일생은 참으로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그물에 걸려든 다랑어떼는 어부가 찍어대는 작살에 피범벅이 되면서 짝짓기도 못하고 운명하고 만다. 좋은 다랑어는 부위별로 해체된다. 그중에 특이한 게 있다.

바로 수컷의 성기다[이탈리아에서 카초 디 톤노(cazzo di tonno)라고 부른다]. 물고기에 무슨 성기가 있어? 할 수도 있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마치 돼지의 그것처럼 길고 분홍색인데, 이것을 소금에 절였다가 말려서 요리해 먹기도 한다. 희한하게도 한국의 경우처럼 정력에 좋다는 속설이 있다. 간이 안 좋으면 동물의 간을 먹는 식의 이류보류(以類補類), 동기상구(同氣相求)의 전통 논리는 똑같은 것인가 보다.

홍합은 어디서든 값싸고 맛있는 해물이다. 파리에서 홍합 요리 전문점에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국물에 자작하게 삶아서 바게트를 찍어 먹는 요리 말이다. 홍합을 먼저 하나 살을 발라 먹은 후 그것을 핀셋처럼 이용해서 다른 홍합을 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이 요리를 파리에서 많이 먹다 보니 프랑스 요리인 줄 알지만 원래는 벨기에 전통요리다. 그런데 이 홍합을 보면서 한국 홍합과 똑같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맞다. 그런데 한국 홍합이 유럽에서 건너온 것이다. 본디 한반도에는 자생하는 홍합이 있다.

껍질이 두껍고 크기가 넉넉한 홍합이다. 그런데 아마도 개화기 이후 유럽의 배(상선이든 군함이든)가 한반도에 오면서 홍합을 ‘묻혀서’ 왔다. 배의 표면에는 수많은 부착생물이 있게 마련이다. 그중에 ‘지중해 담치’라고 하는 홍합이 우리의 바다에 씨를 뿌렸다. 양식하기 좋고 빨리 자라며 맛도 좋아 금세 주요 양식 품종이 되었을 것이다.

유럽에서 홍합은 아주 대중적이다. 특이한 건 유럽 각국의 대형 마트의 냉동해물 코너에 진열된 홍합이 대개 국산이라는 사실. 한창훈의 소설 <홍합>(그의 데뷔작이기도 하다)에 그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삶아서 살을 발라 수출하는 공장이 소설의 무대인데, 바로 이렇게 수출된 홍합이 IQF방식(개별 홍합 살마다 각기 냉동된 것. 맛과 품질이 더 잘 보존된다)으로 유럽의 마트에 진열된다. 필자도 두어 번 사먹어봤는데, 싱싱한 홍합을 쉽게 구해서 먹을 수 있어서인지 그다지 당기는 맛은 아니었다.


▎한국인이 놀라는 스파게티 재료 중 하나가 바로 고등어다. 우리에게 거부감없는 식재료인 고등어로 만든 스파게티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국내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선보인 고등어 스파게티.




▎지중해의 아귀 요리는 비싼 메뉴에 속한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는 아귀로 만든 지중해식 해물탕으로 불리는 ‘부야베스’가 있다.
홍합·아귀·멸치 등 모든 해산물 스파게티 재료

홍합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파게티의 재료로도 즐겨 쓰인다. 홍합을 마늘에 볶다가 화이트와인을 넉넉히 뿌리고 스파게티와 함께 버무려내는데, 정말 제대로 하지 않아도 맛이 기막히다. 지중해 현지의 홍합과 한국 것은 같은 종이지만 맛은 좀 다르다. 바닷

물이 달라서인지 유럽산이 좀 집중된 맛이 더 강하다. 현지 식당 주인들은 홍합 스파게티를 아주 좋아한다.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홍합은 싸고 다른 소스도 필요없다(한국처럼 토마토 소스를 넣지 않고 올리브유에 볶는 게 보통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탈리아 음식점 주인들에게(?) 인기 있는 메뉴다. 홍합 1㎏은 2천 원인데 4~5인분의 스파게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홍합 스파게티는 집에서 만들어 드셔보시라.

홍합은 한국처럼 국물을 많이 넣어서 요리하지 않고 아주 짜고 자작하게 한다. 토마토 소스를 넣거나 펜넬(Fennel) 같은 이국적 향료를 넣어 요리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지중해식 홍합찜을 요리해서 판 적이 있는데, 그다지 평은 좋지 못했다. “짜다”, “향이 이상하다” 등의 불평이 나왔다. 역시 홍합은 한국식의 넉넉한 국물 홍합이 좋은 걸까. 일본식으로는 버터(마가린)를 넣고 요리하기도 한다. 그 국물이 느끼하지 않고 의외로 담백하고 시원했다는 것이 먹어본 소감이다.

아귀는 한국에서 한때 ‘물텀벙’이라고 불렸다. 재수없다고 도로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설화(?)가 있다. 그런데 마산에 갔더니 이런 설을 뒤집는 나이 든 어부도 있었다. 아귀가 귀한 고기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맛이 있어서 말려서 술안주도 하고 맛있게 끓여 먹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 맛없던 것이 지금 갑자기 맛이 있어질 리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당시엔 어로 기술이 뛰어나지 않아서 몇몇 어종 외에 고기가 지천으로 잡히지도 않았다는 것이 부연설명이었다. 아귀가 많이 잡혀서 귀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 나름대로 즐겼다는 것이다.

사실이야 어떻든 유럽은 아귀가 대접받는 고기다. 생김새가 독특해서 한국은 지옥을 묘사할 때 나오는 귀신의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데(불교에서 아귀는 늘 배고픈 귀신으로 묘사된다. 마구 먹어대지만 목구멍이 작아서 음식이 배로 제때 들어가지 않는 고통을 겪는다) 이탈리아에서는 ‘개구리 고기’라고 부른다. 별로 친근감은 없어 보이는 작명이다. 일하던 식당에 간혹 아귀가 입고됐다. 끈적끈적한 껍질을 벗기고 살을 발라내는데, 특이하게도 등쪽 살만 쓰고 나머지는 곧바로 육수 끓이는 냄비로 들어간다.

한국에서 아귀찜을 시키면 가장 인기있는 부위가 쫄깃한 날개 부위다. 가시가 있지만 쫀득해서 맛이 좋기 때문이다. 간혹 하얀 살코기 덩어리가 나오면 다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반대다. 살코기만 취해서 쓴다. 맛있는 껍질과 가시 많은 날개 부위는 몽땅 육수나 끓이는 것이다. 등쪽 살은 두툼하고 둥그런 살점이 두 개 나온다. 이것을 팬에 구워 육수를 졸여 얻은 소스를 뿌려낸다. 웬만한 쇠고기 등심 스테이크보다 더 비싼 메뉴다.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에 가면 이 고기가 들어가는 귀한 메뉴가 있다. 바로 유명한 ‘부야베스’다. 노란색의 샤프론 향료를 넣어 자작하게 졸여 내는 부야베스는 지중해식 해물탕으로도 알려져 있다. 원래는 버리다시피 하는 잡고기와 조개, 갑각류를 넣고 서민적으로 끓여 먹던 탕이 고급화되어 요즘은 아주 비싸다.

바다가재 같은 최고급 재료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대개는 이 요리의 명성을 맛보려는 어리숙한 관광객을 등치는 메뉴가 되기도 한다. 마르세유에서 이 요리를 먹으려면 해안 관광지를 피해서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허름한 식당을 찾는 게 좋다. 물론 어지간한 프랑스의 해안도시에서 대개 이 메뉴를 판다.

양의 생선 가운데 한국인이 놀라는 것이 바로 고등어와 멸치다. “이런 생선도 먹느냐?” 하는 시선이다. 한국에서 필자는 고등어 스파게티를 팔았다. 반응은 “퓨전 스파게티구만”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흔하지는 않지만 제법 즐겨 먹는 스파게티의 한 종류다. 스파게티라면 미트 소스나 토마토·크림소스가 전부인 줄 알지만 어떤 재료든 다 만들 수 있는 게 스파게티이고 파스타다. 심지어 우랑(소 불알)과 곱창 파스타가 있을 정도니까.

고등어는 지중해 물이 차지 않아서 지방이 두텁지 않고 날렵하다. 얼핏 보면 청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등의 줄무늬가 아주 선명하고 싱싱하다. 서민의 생선이라 값도 싸다. 스파게티를 만들려면 우선 살을 발라서 마늘 올리브유에 볶는다. 화이트와인을 뿌리고 삶은 스파게티와 버무리면 완성되는 간단한 메뉴다. 강남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주인이 이 메뉴를 한국에서 처음 공개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굳이 이름을 밝히자면 ‘그란구스토’라는 식당인데, 고등어 스파게티의 원조 격이다.

유럽에서 ‘회’는 부와 세련미의 상징

멸치도 지중해에서 즐겨 먹는 생선이다. 통조림만 먹는 줄 알았는데 마치 기장의 멸치요리처럼 싱싱한 놈을 이용한 것도 많다. 멸치는 워낙 작기 때문에 손질이 까다롭다. 칼을 쓰기도 뭣해서 손가락으로 일일이 배를 따고 뼈를 발라내야 한다. 안초비 통조림은 북아프리카나 스페인 남부의 해안도시에서 만드는 것이 많은데, 불법 이민자 어린이와 여성 노동자가 동원된다고 한때 말이 많았다. 값이 너무 싼 건 피하자는 말도 나온다.

한국은 대부분 저가 안초비가 유통된다. 진짜 맛있는 고급 안초비는 주방장이 직접 담근 것이다. 요리사들이 밤을 새워 손질한 후 아주 좋은 소금과 최상급의 올리브유에 재워 지하창고에 보관한다. 다 익으면 요리에 곁들여 내는데, 입에 넣으면 그냥 녹아버릴 만큼 맛있다.

한국의 멸치로 시도해 보았는데 솜씨가 나쁜지, 아니면 멸치의 상태 때문인지 영 맛이 아니었다. 멸치는 금세 피부가 상하기 때문에 싱싱한 걸 써야 한다. 그런데 죽방멸치면 모를까, 노량진시장에 나오는 멸치는 이미 피부가 많이 상하고 벗겨진 것이 대다수다. 남해나 기장, 제주에서나 해볼 수 있는 요리가 아닐까 싶다. 사족인데, 지중해에도 갈치가 산다. 그런데 값이 아주 싸다.

지난해에 이탈리아에 갔다가 얼굴이 비칠 만큼 반짝이는 질 좋은 갈치 한 마리를 5천 원 정도에 샀다. 포를 떠서 회로 먹었는데, 살점이 탄탄한 게 여간 맛있는 게 아니었다. 일행 중 어떤 이가 “지중해 갈치를 수입해서 한국에 팔아볼까”하고 운을 띄우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수입이 되고 있다. 지중해와 가까운 아프리카 갈치는 지금 우리 시장에 엄청나게 풀렸다. 세네갈·모잠비크 같은 지역의 갈치다. 먹이가 달라서 우리 갈치와 맛이 좀 다르지만 먹을 만하다는 게 중평이다.

유럽이라고 횟감을 아주 안 먹는 건 아니다. 활어는 아니고 선어 상태로 유통되는데 아주 신선한 것은 회로 팔리기도 한다. 우선 연어는 회로도 잘 먹는다. 양식이므로 질을 담보할 수 있는 까닭이다. 기름져서 날 생선의 느낌이 적다는 것도 어필한다. 그냥 회가 아니라 이 지역에서는 ‘카르파쵸’라는 그럴 듯한 이름의 요리로 팔린다.

굴은 물론 회로 먹는다. 말도 못하게 비싸서 서민들은 접근도 할 수 없는 값이다. 한 열 개쯤 시키면 스테이크보다 더 비싸다. 그래서 서양에서 굴은 부의 상징이다. 일반 돔이나 광어, 농어 같은 것도 회로 먹는 추세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회 먹기는 바닷가 어부의 취미 정도로 취급됐다. 그러나 요즘은 부와 세련미의 상징이 되었다. 고급 식당에서 생선이 겨우 서너 점 들어 있는 요리 접시를 5만 원씩 주고 포크 나이프로 썰어 먹는 부호와 유명인사가 많다.

초고추장이나 간장은 쓰지 않고 레몬즙이나 라임즙, 화이트와인 소스처럼 새콤한 것을 뿌려 먹는다. 그러고 보면 초고추장은 회의 맛을 돋우는 데 나름 의미 있는 조합일 수 있다. 너무 맵고 달다는 게 단점일 수 있지만. 스페인과 페루의 요리법이 합쳐져 세계적인 요리가 된 ‘세비체’라는 것이 있다. 물론 날생선에 라임이나 레몬을 치는 요리다. 아마 10∼20년 후에는 유럽인들이 한국식 회를 먹자고 달려들지도 모를 일이다.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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