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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매력탐구 | 우리 아버지들의 초상 황정민, 그리고 <국제시장> - 한국의 ‘톰 행크스’가 쏘아 올린 연기의 ‘결(結)’ 

일상에서의 연민을 끌어당겨 관객 내면을 다시 바라보다… 그의 연기는 너무도 인간적인 카타르시스적 변주곡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영화 <국제시장>이 최근 관람객수 1천만 명을 넘어섰다. 배우 황정민은 자신이 주연을 맡은 <국제시장>을 기점으로 영예의 ‘관객 천만 배우’ 대열에 합류했다.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들인 지 25년 만에 ‘국민배우’로 거듭난 그의 연기 인생을 재조명했다.

▎배우 황정민이 자신이 주연을 맡은 <국제시장>으로 영예의 ‘관객 천만 배우’ 대열에 합류했다.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들인 지 25년 만에 이룬 성과다
황정민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건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라는 게 영화계의 전반적인 평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삼류 드러머로 분한 황정민을 두고 일부 관객은 “어디서 인디밴드 하는 애를 데려다 출연시켰군”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천연덕스러운 생활 연기에 ‘실제로 밴드생활 하는 청년을 재미삼아 출연시킨 게 아니냐’는 물음표가 맴돈 것이다.

‘삼류 드러머’ 황정민은 이듬해 동성애를 다룬 영화 <로드무비>(2002)에서 한 남자를 사랑하는 홈리스 역을 맡아 잔잔한 충격을 선사한다. 그는 결혼 후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뒤늦게 깨닫고 노숙자 생활을 택한 남성(대식)의 내면에 몰입했다. 이 영화에서 황정민은 동성과의 키스신도 불사하며 노숙자면서 동성애자라는 사회적 소수의 극점을 사실적으로 가감 없이 보여준다. 소재의 특성상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으나 <로드무비>를 기점으로 영화계는 비로소 황정민만의 연기 ‘스펙트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대망의 <너는 내 운명>에서 오로지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정파 시골총각으로 대중과의 교감에 성공한다. 자신의 여자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처절한 순정을 바치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관객은 너무나도 쉽게 설득당했고 눈물을 훔쳤다. 그 결과 황정민은 2005년 제4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제42회 대종상영화제와 제26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다.

당시 그는 <너는 내 운명>에서 곧바로 건져 올린 모습으로 수상 소감을 해 대중의 마음을 다시금 사로잡았다. “저를 설레게 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연기할 수 있게 해준 전도연 씨한테 감사드립니다. 도연아,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 건 나한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고마워.”

‘천의 얼굴’ 황정민의 스펙트럼


▎1.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 황정민은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정파 시골총각으로 분해 대중과의 교감에 성공한다. 자신의 여자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처절한 사랑을 바치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관객은 눈물을 쏟았다. / 2. <로드무비>에서 그는 동성과의 키스신도 불사하며 동성애자라는 사회적 소수의 극점을 사실적으로 보여줬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영화계는 비로소 황정민 만의 연기적 ‘스펙트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내 유명 영화제에 단골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온 한옥희 영화평론가는 황정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바람난 가족>의 인텔리 변호사에서 <남자가 사랑할 때>의 양아치, 그리고 <국제시장>에서 보여준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천의 얼굴’을 가졌다.” 한 평론가는 “비겁한 사랑을 하는 남자 <행복>, 마약사범을 잡는 집요하고 악랄한 형사 <부당거래>, 서민 출신 정치인 <댄싱퀸> 등 어떤 장르에서도 ‘황정민이지만 황정민이 아닌 연기’를 선보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정민을 알기 위해선 그만의 미묘한 메쏘드 연기(method acting: 배우가 극중 배역에 몰입해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연기하는 방법)에 주목 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너는 내 운명> 이후 잠시간 주춤했던 황정민은 느와르 영화에서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한옥희 평론가는 황정민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낀 작품을 회고했다. 바로 황정민이 잔인하고 비열한 조폭 역을 맡았던 <달콤한 인생>과 <신세계>다. 조각처럼 잘 다듬어진 미남배우들이 즐비한 한국영화계에서, 그의 어수룩한 얼굴은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시간이 갈수록 독기를 뿜어내는 눈빛으로 묘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일까? 황정민의 친근한 인상 이면에 냉혈한 눈빛이 노골적으로 표현된 <신세계>는 약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의 역대 출연작 중 관객 동원수 2위를 기록한다.

앞서 한 평론가가 주목한 황정민만의 메쏘드 연기는 무엇일까? 그가 조폭 역을 맡았던 <달콤한 인생>과 <신세계>를 비교해보면 된다. 비슷한 역할이지만 작품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인생>에서 냉소적이면서도 공감 능력이 결여된 조폭을 표현했다면 <신세계>에서는, 아끼는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도박을 걸 정도의 인간미를 보여주면서도 나머지 인물에게는 저열한 섬뜩함을 드러내는 이중성을 선보인다. 또한 <달콤한 인생>에서의 냉소적인 눈빛은 <바람난 가족>에서 인텔리 변호사로 분했던 그가 친모를 상대로 보여준 눈빛 연기를 닮아 눈길을 끈다. 친모의 개방적인 연애사를 인지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며 내비치는 냉소는 <달콤한 인생>에서 상대에게 “몰랐어? 인생은 고통이야”라고 쪼개는 미소를 지으며 말할 때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이렇듯 황정민은 눈동자에 영혼이 있고 없음을 미묘하게 손질해 담아낸다. 캐릭터의 ‘결(結)’을 세밀하게 다루는 데 독보적인 재능을 보여온 것이다. 특히 그만의 ‘결’ 살리기는 <신세계>에서 유독 빛난다. 의리라는 관념이 표면적으로만 강조된 의뭉스러운 인물 정청이 ‘언더커버’로 조폭 세계에 잠입한 경찰 출신 이자성을 목숨 걸고 보호하려는 지점에서 남자들 간의 의리로만은 설명하기 부족한 동성애적 코드마저 느껴지게 한다. 이를테면 정청이 이자성의 배신을 인지하고서도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분노섞인 살인을 하고 빗물에 피를 즉흥적으로 닦아내는 모습에서, 관객 일부는 사랑하는 여자가 죽을 죄를 졌음에도 그를 내치기보단 스스로에게 화풀이하는 한 남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당시 대본에는 없었던 빗물을 손에 받아 세수하는 리액션은 황정민이 직접 캐릭터 분석 후 만들어낸 애드립이었다.

대본을 지독히도 분석하는 ‘연습벌레’


▎<신세계>에서 황정민은 아끼는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인간미를 보여주면서도 나머지 인물에게는 저열한 섬뜩함을 드러내는 이중성을 선보인다.
황정민 표, 연기적 ‘결’ 다루기의 노하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연기를 위해 태어난 것 같은 그이지만, 실은 학창시절(계원예고·서울예대) 연기가 아닌 연출, 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연기는 또래들과 달리 군대를 다녀온 뒤에서야 뒤늦게 시작했다. 극단 ‘학전’에 들어가 처음으로 연기의 물꼬를 텄다. 대학동문인 배우 류승룡, 정재영 등이 황정민에게 “너 연출하는 거 아니었어? 네가 연기를 해?” 하며 놀랐다는 얘기는 영화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뒤늦게 연기에 합류한 그가 최근 한국영화사에 족적을 남길 태세를 보이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황정민은 그동안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극에 임하기 전 캐릭터 분석에 충실해왔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대본을 닳도록 읽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황정민 식의 캐릭터를 재창출해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신세계>의 정청 역이다. 그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청도 대본상에서는 조금 평면적이었다. (중략) 그래서 생각한 게 욕이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설 때 ‘정청’ 하면 ‘씨O’ 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자동적으로 딱 떠올랐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대사를 조금씩 고쳤다”고 말했다. 그 결과 <신세계>를 거론하면 관객 뇌리에서 번쩍 떠오르는 문제의 장면이 탄생됐다. “아이 좋아. 역시 명품이 좋긴 좋아. 씨O. 시커먼 게 존O 안 보여. 씨O.” 잊을 수 없는 명대사다. 황정민은 <신세계>로 제34회 청룡영화상에서 생애 두 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저열한 양아치의 세계와는 달리 <국제시장>은 오직 가족을 위해 희생적 삶을 살아온 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 덕수 역을 맡은 황정민은 20대 청년의 풋풋한 모습에서 30~50대 가장의 희생, 70대 노인의 회고 등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특히 70대 노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게 그의 목표였다고 한다. 노인 특유의 몸짓과 손 떨림, 눈빛 등을 학습한 그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또 하나의 숙제를 풀기 시작한다. 황정민은 자신이 기본적으로 연예인이다 보니 일반 사람들 입장에선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배우 황정민과 평범한 아버지 덕수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관객들이 느끼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탑골공원으로 달려갔다.

“70대의 덕수를 정확히 표현하지 않으면 20~40대의 덕수도 망가질 것이라 생각했다. 노인을 흉내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상과 생각을 이해해야 했다. 탑골 공원에 가서 어르신들을 취재해서 연기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70대 노인들이 내복은 어떻게 입는지, 같은 자세로 얼마나 오랫동안 앉아 있는지 등에 대해 마치 기자처럼 알아봤다고 한다. 그가 치열한 취재 끝에 메쏘드 연기를 선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황정민은 말한다. “<국제시장>을 보고 ‘우리 아버지 같다’라는 생각한다면, 조금이나마 각자의 아버지를 떠올리신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 자연스러움이 전달되기를 원한다. 그뿐이다.”

“황정민은 한국의 톰 행크스예요.”


▎덕수는 파독(派獨) 광부 면접에서 벌떡 일어나 애국가를 열창한다. 황정민은 동생의 대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이 장면을 통해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순정파 남자에서 능글능글한 양아치, 잔인한 조폭 두목으로의 변주를 보이던 황정민이 드디어 천만 관객이 선택한 국민배우 대열에 올랐다. 이를 두고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미국에 국민배우 톰 행크스가 있다면 한국엔 황정민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톰 행크스는 <빅> <터미널> <캐스트어웨이> <포레스트검프> 등에 출연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배우다. 심 평론가는 한국의 톰 행크스이자, 차기 국민배우로 황정민을 지목했다.

황정민은 한국 토종의 투박함이 있는 배우다. 어떤 영화에서든지 가장 한국적인 인물을 묘사해내는 천부적인 소박함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천부적인 소박함은 곧 관객 누구나 이입이 가능한 ‘빈 그릇’ 같은 캐릭터로 분화된다. 너도나도 황정민의 역할에 풍덩 빠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시장>에서 현대사의 격동을 온몸으로 헤쳐나왔던 우리네 아버지의 희생,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보여준 ‘주변인’의 방황, <너는 내 운명> <남자가 사랑할때>에서 진정으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서툰 감정, 거기서 느껴지는 연민이 그렇다. 극중에서 어눌하던 황정민이 여자를 위해 헌신할 때 관객이 느끼는 통쾌함은 강렬하다. 관객의 내면이 투영된 한 남성이 용기를 내 감정을 토해낼 때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황정민이 선사하는 현실화된 판타지는 수차례 겪어도 그때마다 쉽게 빠져들고 마는 힘이 있다. 한평생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 ‘덕수’를 그린 <국제시장>에서 황정민은 이러한 판타지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요? 나 진짜 힘들었다”는 울음 섞인 고백을 두고, 심 평론가는 “관객이 황정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장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했다.

황정민이 송강호, 최민식과 차별화될 수 있는 속성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하다. 심 평론가는 “<신세계>에서 황정민은 송강호, 최민식과 달리 소박함이 값싼 잔인함으로 급변하는 지점을 가지고 있다. 송강호, 최민식의 유려한 카리스마와 광기가 없는 대신, 일상에서의 연민과 동일시가 스며들 수 있는 인간적인 ‘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송강호, 최민식의 경우 관객을 압도하는 힘이 강하다면 황정민은 관객의 내면에 스며든다. 같은 양아치 역을 할지라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양아치가 아니라 어디선가 시장통에서 마주쳤던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분명 섬뜩하고 무섭기도한 양아치지만 왠지 모르게 사연이 있을 것 같고 연민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에게는 하나의 작품 같은 카리스마보다는 평범함의 정서로 관객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이렇게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라는 가상의 텍스트를 통해 또다시 일상으로 이입하게 하는 기묘한 힘은 <바람난 가족>에서도 빛을 발한다. 임상수 감독 연출 특유의 감정 없는 ‘마론인형’ 같은 시선과 힘을 뺀 말투, 소시오패스 성향의 대사들은 관객에게 이질감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요소들이다. 때문에 관객이 정서적으로 소외당할 수 있는 장면에서도 황정민은 인텔리 변호사의 공감 능력이 결여된 대사를 어디선가 있을 법한 일상의 감성을 담아 매끄럽게 소화한다. 극중 “60년 만에 오르가즘을 느꼈다”는 친모(윤여정 분)의 말에 황정민은 눈썹을 찌푸리며 부끄럽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한다. “누가? 엄마가?”

<국제시장>의 덕수는 황정민과 ‘쌍생아’


▎<국제시장>은 가족을 위해 희생적 삶을 살아온 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주인공 덕수 역을 맡은 황정민은 20대 청년의 풋풋한 모습에서 30~50대 가장의 희생, 70대 노인의 회고 등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가족을 위한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희생과 헌신의 역사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독일, 베트남에 간 건 순전히 동생들의 진학과 결혼을 돕기 위해서였다. 한옥희 평론가는 “우리네 일상을 담을 수 있는 배우는 황정민뿐이다. 그런 점에서 <국제시장>은 황정민의 운명이었다”라고 말한다. <국제시장>과 황정민은 떨어뜨릴 수 없는 ‘쌍생아’라는 것. 한국전쟁 흥남철수작전 때 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보며,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이나 목표는 접어버린 채 오로지 ‘가장’으로서 희생적인 삶을 살아온 <국제시장>의 ‘덕수’. 만약 다른 배우를 캐스팅했더라면 어땠을까? 한 평론가는 “지금처럼 천만 관객 돌파가 이뤄졌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국제시장>이 격동의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개인으로서 느꼈을 내면적 갈등이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흥행영화의 ‘웃음과 눈물’ 공식을 두루 갖추고 ‘이래도 안 울어?’ 식의 멜로드라마적 집합을 보여준다는 비평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호평이 분명히 존재하는 이유에는 황정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영화 전문가들은 입 모아 말한다. 한 평론가는 “극중 캐릭터를 두고 전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캐릭터와 배우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몰입단계에서 ‘연기하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 황정민의 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황정민이라는 배우에 우리가 자신을,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이입할 수 있던 이유에는 그가 평소 대중에게 일관되게 보여준 따뜻한 인간성에도 기인하는 듯하다. 그는 2005년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주연상 시상식에서 “감독과 스태프들이 잘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라는 수상소감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남우주연상 수상에 몸 둘 바를 모르며 촉촉이 젖은 눈망울을 한 채 선보인 겸손한 ‘숟가락’ 소감은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1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를 두고 황정민은 “예술가라면 분명히 포기해야 할 부분은 포기해야 한다. 철저하게 절제해야 하는 것도 있고, 철저하게 겸손해야 하는 것도 있다. 그냥 내 마음대로 할 거라면 배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며 겸손한 자세를 일관되게 보여왔다. 늘 타인을 향해 배려의 시선을 가지고 있던 <국제시장>의 덕수와 어쩐지 맞닿아 있는 모습이다. 덕수의 삶과 비교할 때 배우 황정민의 삶은 어떠할까?

그는 “덕수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은 아니었다.(웃음) 힘은 들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살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누구나 다 힘든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국제시장>에서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가장 평범한 아버지’이자 ‘가장 위대한 아버지’의 진정성을 보여준 황정민.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그의 올해 목표는 무엇일까? 역시 연기다. 황정민은 올해 영화 <히말라야> <검사외전> <베테랑> 등 네 편의 영화와 뮤지컬 <오케피>에서 그의 연기를 누릴 준비를 하고 있다. 관객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고 그의 연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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