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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한·일 통화스와프협정, 14년의 始末 - “외환운용 자신 있다” vs “위기 때 고생할 수도” 

2001년 20억 달러로 시작, 최대 700억 달러까지 확대되기도… 양국 간 외교관계 경색으로 지난 2월 중단 

김우섭 한국경제 기자
한국과 일본 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가 2월 23일 만기와 함께 중단됐다. 이로써 지난 2001년 7월 20억 달러로 시작해 최대 700억 달러까지 확대됐던 양국간 스와프는 14년 만에 끝났다. 이명박 정부 당시 양국 관계가 경색되며 2012년 만기가 도래한 570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를 연장하지 않았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듬해 30억 달러 계약을 중단한 뒤 마지막 남은 계약마저 중단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10월 7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업인자문위원회와의 대화에서 수실로 밤방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박 대통령의 왼쪽은 아베 일본 총리
“외환위기 발생시 중요한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31.7%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입니다. 일본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연장하지 않아도 한국 경제의 체력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한국은행 관계자의 말)

한국과 일본 사이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이 2월 23일 만기와 함께 종료됐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2월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국과 일본 중앙은행이 체결한 통화스와프 계약을 계획대로 2월 23일 끝낼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통화스와프는 과거사와 독도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외교적 관계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정부와 한은은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통화스와프와 최근 한·일 간 외교문제는 별개라고 설명했지만 2012년 이후 계속되는 양국의 외교적 갈등이 14년 가까이 이어진 통화스와프 계약 종료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스와프란 외환위기 등 비상시 상대국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위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다. 한국은 외환위기 등 비상상황이 일어날 때 100억 달러 상당의 원화를 맡기고 일본에 미화 100억 달러를 받아오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반대로 일본이 외환위기에 처하면 한국이 100억 달러에 해당하는 엔화를 받은 뒤 보유하고 있던 100억 달러를 내준다. 두 국가는 원화와 엔화를 직접 맞바꾸는 통화스와프 협정도 맺었지만 이는 2013년 7월 이후 끝난 상태다.

통화스와프 종료의 배경에는 “한국의 요청이 없는 한 연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흘린 일본 측이 먼저 원인을 제공했다. 한국 정부도 일본 아베 정부의 위안부 발언 등 외교문제가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게 한은과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본을 제외한 5개국과 다양한 통화로 구성된 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35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통화스와프 종료 이후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배어 나온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통화스와프는 ‘정경분리 원칙’을 표명한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달리 이면에는 양국 간의 ‘자존심 싸움’이 내재돼 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한·일 통화스와프는 외교적 유대 관계가 경제문제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사안”이라며 “외환위기 상황을 대비해 한국 정부도 외환 보유고 확충 등 한·일 통화스와프 종료에 대한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월 17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안정적인 금융시장 상황과 건전한 거시경제 여건을 감안한 결정이었다”며 “우리나라는 외화 36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통화스와프 연장의 필요성이 금융안정 측면에서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여건이 안 좋게 돌아간다면 적극적으로 통화스와프 체결에 나설 상황이지만 현재 여건을 보면, 시계(視界)를 넓혀 보더라도 당분간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억 달러에서 시작해 700억 달러까지 확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월 1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통화스와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국가 간 디폴트(채무 불이행)는 나라 곳간인 중앙은행에 세계 공용화폐인 달러가 바닥이 나면서 다른 나라 빚을 갚지 못할 위기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외환위기가 닥칠 경우 다른 나라로부터 외화자금을 꿔올 수 있는 거래를 사전에 약속(통화스와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국 정부는 판단했다.

더욱이 일본은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통화위기 때 달러 부족으로 곤경에 처한 한국에서 100억 달러의 자금을 갑자기 빼내 한국이 외환위기에 몰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정부는 일본과 2001년 7월 처음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20억 달러 규모로 시작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1년 10월에는 700억 달러까지 확대됐다.

2008년 10월 맺은 한국과 일본의 통화스와프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정부는 중국·일본과의 통화스와프를 동시에 추진했다. 일본은 당시 1조 달러 가까운 외환보유액에 이미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상황이었다. 한국은 당시 외환보유액이 2122억 달러로 세계 6위였다. 그러나 외화의 유출 속도가 빨라서 언제 위기가 닥칠지 정부는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당시엔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일본을 먼저 접촉했다. 10월 11일 한·일 재무장관 회담을 시작으로 양국 간 금융위기 협력방안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처음엔 일본 재무성 담당국장이 한국 정부의 통화스와프 제안을 듣고 30억 달러 규모를 제안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금액의 10분의1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렇게 작은 규모로 통화스와프를 하는 건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다고 판단하고 대신 중국 정부와의 통화스와프를 곧바로 추진했다.

정부는 한·중 통화스와프는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접근했다. 결국 한·중 양측은 기존 40억 달러였던 통화스와프 규모를 300억 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중국과 합의가 끝났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일본의 태도도 변했다. 결국 한국은 중국 일본과 300억 달러 씩 총 6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일본 정부의 결정은 ‘위안화 국제화’를 꿈꾸는 중국과 아시아 내에서 경제패권을 잃지 않으려고 경쟁한 결과로 봐야 한다. 통화스와프 체결을 통해 해당국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높여 다른 이슈에서 지원사격을 얻겠다는 속셈이다.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지면서 2011년에는 통화스와프 규모를 700억 달러까지 늘렸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총리는 한국에서 만난 양국간 통화스와프를 700억 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가운데 금융시장을 선제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 통화 협력 강화가 중요하다”며 확대 배경을 설명했다.

2011년 통화스와프 규모 확대 당시 양국 정상은 통화스와프가 ▷‘선제적(Preemptive)’ 금융시장 안정효과를 거두고 ▷‘양국 모두에 도움(Mutually Beneficial)’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Sufficient)’ 규모로 통화스와프를 확대하기로 했다는 3대 원칙을 밝혔다. 글로벌 재정위기가 심화되자 불안정한 환율 및 주식시장을 안정시키고, 국가 신용등급 하락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다.

당시 이 대통령은 “역사를 잊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게 한·일 관계의 근간”이라며 “과거사에서 연유된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양국간 과거사문제와 관련해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양국 간 외교갈등으로 수명 다해


▎1. 2008년 10월 30일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을 발표하는 한국은행 이성태 총재(오른쪽)와 이광주 부총재보. / 2. 2008년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몰고 왔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2011년 9월 기준으로 3034억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7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는 상당히 큰 규모였다. 통화스와프 규모 확대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 확대 소식이 전해지자 금융 불안에 대한 위기감이 해소되면서 그간 급등했던 환율이 떨어지고 주식시장도 상승했다.

특히 2011년에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재정위기의 영향이 몇 달째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유럽 국가가 파산할 경우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져 한국에 투자된 외화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작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역사문제를 두고 급격히 나빠지자 통화스와프의 역할과 규모도 동시에 줄어들었다. 양국의 통화스와프 규모를 700억 달러로 늘린 지 1년 만인 지난 2012년 8월 15일 광복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격 독도 방문을 강행하자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당시 일본 재무성은 원화와 엔화를 맞바꾸는 통화스와프 만기가 다가오자 “한국의 요청이 없다면 확대 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말해 한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독도 문제로 양국의 외교 갈등이 확산되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본이 선제공격을 해온 것이다. 자금력을 무기로 한국을 길들이려는 일본의 속내가 드러난 셈이다.

한국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과거 한·일 통화스와프가 종료돼도 큰 영향이 없었다. 상황을 보고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통화스와프는 700억 달러에서 130억 달러로 대폭 줄어들었다. 한국 경제가 정 궤도로 진입한 상황에서 굳이 일본에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3년도 마찬가지였다. 30억 달러 규모에 대한 추가 만기가 돌아오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그해 6월 “한국이 요청해올 경우 연장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한국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면 받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한·일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통화스와프를 정략적으로 활용한 일본의 태도에 한국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국제 외교상 기본 원칙으로 여겨지던 정경 분리도 깨졌다. 당시 김중수 한은 총재는 “통화스와프 규모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한·중 스와프와 달리 활용한 사례도 없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30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가 예정대로 종료됐다.

줄어들고 있는 두 나라간 교역량도 통화스와프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고 있다. 한국의 대(對)일 수출은 전년대비 ▷2012년 -2.2% ▷2013년 -10.7% ▷2014년 -7.2% 등으로 3년 연속 감소했다. 수입도 ▷2012년 -5.8% ▷2013년 -6.7% ▷2014년 -10.4로 크게 줄고 있다. 대일본 수출입이 3년 연속 동반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역량 감소엔 일본의 경기부진으로 인한 수입·수요 감소와 엔화 약세에 따른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 약화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베 정권이 출범 당시인 2012년 12월 100엔당 1280원대를 기록했던 원·엔 환율은 3월 10일 현재 921원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체결된 한·미 스와프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월 10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해서도 각국 정상의 기념촬영 과정에서 아베 일본 총리와 불편해하는 기색을 나타냈다.
국내 경기 위축도 일본 제품의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철강제품, 산업용 전자제품, 정밀기계 등 주로 기업 설비투자와 관련된 품목의 수입 감소폭이 컸다. 소재 부품의 대일 수출 의존도는 지난해 2009년 이후 5년 연속 감소해 사상 최저치인 18.1%에 머물렀다.

한류와 함께 크게 늘어났던 일본인 관광객도 최근엔 엔화 약세로 감소하고 있다. 엔화약세는 원화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일본인 관광객 입장에서는 여행비용이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일본인 관광객은 2014년 8월 20만8147명에서 올 1월엔 13만9632명으로 6개월 연속 감소 중이다.

주무 부처인 기재부는 2012년 11월을 끝으로 열리지 못한 한·일 재무장관회의가 약 2년반 만인 5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 회의를 계기로 한·일 경제 관계가 회복되면서 양국간 통화스와프에 대한 논의가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가장 성공적인 통화스와프는 2008년 체결했던 한·미 통화스와프다. 정부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이후 한국에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감지되기 시작한 2008년 9월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본격 추진했다.

이때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위기의 불길이 잦아들었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이 발표된 당일 금융시장은 사상 유례없는 호조를 보였다. 코스피 지수는 장이 열리자마자 100포인트 넘게 뛰더니 하루 만에 115.75포인트(11.95%) 상승, 1084.72를 기록했다. 이날 상승폭과 상승률은 증시 개장 이래 최대였다. 원화가치도 달러당 177원이나 오르며(환율 하락) 1250원에 마감했다. 하루 상승폭으로는 사상 둘째로 높았다.


그 다음날 신제윤 당시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미 통화스와프의 의미를 “주한미군 주둔 효과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통화스와프는 전 세계 금융 안정에 큰 기여를 했다. 최근 공개된 2008년 당시의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 따르면 미 연방준비위원회(Fed)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달러화 부족에 시달리는 외국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조용히 외국 중앙은행들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 수단이 통화스와프였다.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 안정에 큰 도움이 됐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 이후 미국에서 직접 300억 달러를 융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안정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국 일본 등과의 통화스와프 체결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미국은 초기에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며 “미국은 선진국만을 대상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있는데 당시 한국은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이 미국 측에 ‘우리가 보유한 미 국채를 내다팔 경우 한국은 통화스와프 없이 위기관리가 가능하다’는 입장과 ‘이 경우 미국 통화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 또 ‘미국이 호주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서 경제규모가 더 크고 국제통화기금(IMF) 지분이 높은 한국을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면서 “결국 미국이 3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통화스와프 체결로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불신이 크게 해소됐고 우리는 외환위기 문턱에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국가간 통화스와프가 한 나라의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디폴트 가능성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은 “외환 보유고 문제없다”


한국과 미국의 통화스와프 협정은 금융위기가 진정된 2010년 2월 종료됐다. 더 이상 통화스와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다. 그러나 한국이 믿는 구석은 따로 있다. 한국은 이미 5개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다. 중국 64조원, 인도네시아 10조7천억원, 아랍에미리트 5조8천억원 등 통화스와프의 규모를 늘리고 있다. 아세안·일본·중국과 함께 참여하는 치앙마이(CMIM)의 다자간 통화스와프도 체결해 놓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도 이런 한국을 여느 신흥국들보다 높게 평가한다.

홍승제 한은 국제국장은 “이번에 종료되는 한·일 통화스와프를 제외하고도 1190억 달러 상당 스와프 계약분이 남아 있다. 충분한 수준이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에 비해 급속히 불어난 보유외환과 경상흑자로 ‘신흥국의 스위스’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통화스와프를 위해 일본에 저자세를 보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204억 달러에서 지난해 말 기준 3636억 달러로 과거 외환위기 때에 비해 18배로 불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차곡차곡 늘려왔다. 반면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에만 27억 달러 넘게 감소했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한국과 일본의 상황은 다르다. 외환 보유액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게 모아둔 ‘적금’이라면 통화스와프는 급할 때 인출해 쓰는 ‘마이너스통장’, 경상수지는 달마다 꾸준히 들어오는 ‘월급’ 격이다.

1997년에는 103억 달러 적자였지만 201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6%가 넘는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쌓았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894억2천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1년 만에 경신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해 2분기, 3분기 연속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 서정민 한은 국제금융협력팀장은 “한국의 경상수지와 외환보유액 등 여러가지를 판단해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한·일 통화스와프가 연장돼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중단됐다고 해서 우리 경제에 큰 상관은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외환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측면은 있지만 한국은 오히려 외환 사정이 좋은 편”이라며 “경상수지 1천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통화스와프에 매달리는 듯한 인상을 대외적으로 줄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통화가 안정적인 준(準)선진국으로서 원화로 표시되는 자산이 안전자산의 효과까지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럴 때 통화스와프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외화의 급격한 유출을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거시건전성 3종 세트(선물환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를 시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외환건전성 부담금 적용 대상을 제2금융권까지 확대하는 등 외환시장 방어벽을 한층 높였다. 한·일 통화스와프가 실제 거래된 일이 없어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변수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통화스와프 상시화


▎1998년 1월 12일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달러를 스와프 창구가 사실상 폐쇄된다는 점에서 걱정스러운 측면도 있다. 한국이 맺은 384억 달러 규모의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 다자간 스와프의 30%는 회원국의 동의를 얻어야 집행된다. 나머지 70%도 IMF의 구조개혁 권고안 등을 수용해야 지원받을 수 있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한국은 중국·호주·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과도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지만 모두 지역통화 기반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긴 안목에서 보면 미국 금리가 6월 이후에 올라갈 것이고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가능성도 있다”며 “국내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아 내년 이후에는 여전히 자본 유출의 위험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일 통화스와프가 중단돼 앞으로 달러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은 CMIM 정도인데 이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부분이 적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상시화 한다든지 외화보유액을 더 축적한다든지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통화스와프는 지금처럼 평상시에 쓰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왔을 때 활용하는 임시방편”이라며 “한국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전에 맺은 통화스와프 계약이 없어서 고생을 해왔는데 이를 잊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올해 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급격한 외화 유출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최근엔 미국의 고용지표가 ‘완전 고용’ 수준에 도달하면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경제지표가 좋은데 금리 인상을 미루면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에 문제가 없어도, 아시아·남미 등에서 외환위기가 터질 경우 휘말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정선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연구원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을 중심으로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김우섭 한국경제 기자

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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