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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트렌드] 현대판 <쇼생크 탈출>? 이색 납량카페 붐업 

예능프로 흉내 낸 방탈출카페 가볼까 

글 김상훈 월간중앙 인턴기자 / 사진 김현동 기자
지하실이나 감옥 등 폐쇄된 공간서 퍼즐 풀어 정해진 시간에 빠져나오는 방탈출 게임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심리는?

▎‘뇌섹(뇌가 섹시한) 시대’에 새로운 문화가 뜬다. TV 프로그램이나 온라인 게임에서나 볼 수 있던 탈출게임을 오프라인에서도 즐길 수 있는 방탈출 카페가 인기를 끈다. 10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주어진 퍼즐이나 미션을 제한시간(보통 60분) 내에 풀어야 탈출하는 게임이다. 사진은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패닉이스케이프’.
눈이 가려진 5명의 남녀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어딘가로 끌려간다. ‘쿵’하고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안대를 벗으니 사방이 캄캄하다. 어디선가 ‘뚜르르’ 하는 빠른 비트의 배경음악이 들려온다. 스산한 분위기에 긴장감이 감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모니터에 글이 뜬다. 이 방을 나가기 위한 미션이다. 제한 시간은 60분. 주어진 시간 내에 미션을 해결하지 못하면 이 방을 나갈 수 없다는 안내음성이 나온다. 이윽고 불이 켜지자, 10평 남짓한 사방이 막힌 작은방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품들이 잔뜩 어질러져 있고 벽에는 핏자국들이 선연하다. 미션을 풀어낼 단서들이다. 주위를 살피는 사이 카운트다운은 시작된다. 팀원들은 부리나케 좁은 방 구석구석을 뒤진다. 벽에 걸린 액자를 들어올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소품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단서를 좁혀나간다. 스릴 있는 음향에 낮은 실내 온도까지 더해져 긴장감은 더욱 높아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조급해졌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찾았다! 여기 좀 보세요!” 모두가 단서를 찾느라 정신 없는 가운데 갑자기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문이 활짝 열렸다. “성공했어! 탈출이야!” 카운트는 정확히 남은 시간 3분에 멈춰 있었다. 대기석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과 직원들이 “축하한다”며 박수를 쳤다. 팀원들은 안도하며 함께 환호했다.

‘쇼생크 탈출’, ‘셜록 홈즈’ 오감 자극하는 테마


▎참가자들은 제한시간 안에 미션을 해결해야 한다. 방탈출 게임의 인기는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 콘텐트다. 감옥, 범죄현장, 스파이, 공포물 등으로 참가자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게 즐길 수 있다.
공포 스릴러 영화 <쏘우>를 연상케 했던 이곳은 밀폐된 공간에서 추리, 탈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탈출 카페다. ‘방탈출 게임(Room Escape Games)’은 말 그대로 제한 시간 내에 방을 탈출하는 게임이다. 참가자들은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테마룸에 갇힌 채 주어진 시간(보통 60분 이내) 안에 힌트를 찾아내 어떤 스토리나 테마와 관련된 퍼즐을 풀고 탈출해야 한다.

최근 방탈출 게임이 20~30대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누린다. JTBC <크라임씬>, tvN <더 지니어스> 등 TV나 영화, 온라인 게임에서 눈으로만 봤던 게임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탈출 게임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 이미 대중화된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탈출 게임은 일본의 어드벤처 컴퓨터 게임인 ‘크림슨 룸(Crimson Room)’에서 파생됐다. 2007년에는 일본에서 이 게임을 현실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방’이 생겨나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태국·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로 확산됐고, 2011년부터는 동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올해 초 홍대앞과 강남 등지에서 방탈출 게임카페가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 서울 시내에만 네댓 곳이 성업 중이다. 이들 업체는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지만 입소문만으로 고객들을 끌어 모은다. 이미 두 달치 예약이 마감된 곳도 있다. 지난 5월, 강남구 역삼동에 문을 연 ‘코드 이스케이프’는 예약자가 10월까지 모두 차있다. 김태윤 ‘코드 이스케이프’ 대표는 “특별한 홍보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 주로 이용한 고객들이 자연스레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리면서 소문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방탈출 게임이 젊은층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 콘텐츠가 강점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입을 모은다. 방탈출 게임은 주어진 시간 안에 단서를 찾아 감금된 공간을 탈출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업체가 ‘감옥탈출’, ‘범죄현장’, ‘스파이’, ‘공포물’ 등의 테마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각 업체마다 독창적인 스토리 구성과 다양한 난이도로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능력과 기호에 맞게 구미에 당기는 테마를 직접 골라 경험해볼 수 있는 셈이다.

‘감옥탈출’ 테마의 경우 대략적 스토리 구성은 이렇다. 게임 ‘지하감옥’과 ‘대탈옥’에선 수감자로 변신해 감옥을 탈출해야 하는 미션을 받는다. 무기징역을 운명을 피하기 위해 지하감옥을 탈출해야 하는 설정이다. ‘프리즌브레이크A·B’ 게임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 착안해 만들었다. 탈출을 위해선 좁은 통로나 어려운 코스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머리뿐만 아니라 활동적이고 운동신경이 좋은 고객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살인사건이라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범죄현장’ 테마 가운데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흥미를 가질 만한 테마 있다. ‘WAR: 전쟁의 시작’이 그것이다. 최종 목표는 군부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현장에서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고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다.

‘스파이’ 테마도 있다. 특히 ‘미션 인크레더블(MISSON INCREDIBLE)’게임 과정에서 나오는 초록빛의 레이저 보안장치는 마치 영화 <미녀 삼총사>에서 카메론 디아즈가 하얀 옷을 입고 덤블링으로 레이저를 피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요즘 같은 여름에 제격인 ‘공포물’ 테마는 그야말로 ‘제철’을 맞았다. 미성년자는 게임 자체가 불가하다. 퇴마사의 스토리를 다룬 ‘엑소시스트’나 경찰로 변신해 인신매매 조직에게 납치된 친구를 찾아 내야 하는 ‘키드냅’ 등이 있다.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줄 전형적인 공포물들은 참가자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스릴과 공포를 고조시켜 성인들마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고 한다. 셜록 홈즈, 명탐정 코난 등 추리물에 열광했던 사람들이라면 직접 탐정이 돼보는 것도 좋다. ‘명탐정 루캣: 카지노 음독사건’은 탈출게임보다는 오히려 추리게임에 더 가깝다. 카지노 사장을 죽인 범인을 찾아야만 자연스레 방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탈출게임의 재미를 높여주는 것은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 게임만이 아니다. 탈출게임의 묘미는 참가자들의 현실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향장치와 소품, 조형물 등이다. 이를테면 벽에 피로 쓰여진 ‘죽여 버릴 거야’ 같은 섬뜩한 메시지와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귀신과 좀비, 어두운 조명 등은 참가자들의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김태윤 대표는 각종 소품이 탈출게임의 재미를 배가 시킨다며 이렇게 말했다. “오픈 전 사업구상부터 인테리어 부분에 더 신경을 써 시각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참가자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입장 시 안대를 착용시킨다거나 게임 하는 내내 흘러나오는 빠른 비트의 배경 음악, 그리고 오싹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차가운 온도 유지 등은 참가자의 긴장감과 공포감을 극대화할 중요 포인트이다.”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테마별 난이도 수준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쉬운 난이도의 게임을 선택해 탈출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가장 높은 난이도를 선택해 탈출 결과와 상관없이 게임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대학생 김민정(가명·23) 씨는 “막상 탈출하면 기분은 좋지만, 남들이 다 탈출하는 것에 성공하는 거라면 아쉬움이 남는다”며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도전의식 같은 게 생기니까 더 몰두하고 열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탈출 성공 확률은 보통 30% 남짓 된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탈출 성공 확률이 너무 높으면 게임의 재미를 떨어뜨린다고 본다. 업체들이 좀 더 어려운 트릭을 추가하거나 디자인을 변경하는 등 난이도 조정을 통해 성공률을 10~20%대에 머물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그래서다. 이용료는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1인당 2만원 선이다.

팀빌딩에 좋아 직장인들에게도 인기

방탈출 게임 체험은 기업의 새로운 팀빌딩 프로그램으로서의 잠재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기업에서 팀워크 향상을 위해 방탈출 체험을 권장하고 있는 추세다. 김태윤 대표도 외국에서 파견근무 할 당시 처음으로 방탈출 게임을 접했다. “회사에서 방탈출 게임을 체험하도록 적극 권장했어요. 아무래도 조직 활성화를 위한 팀빌딩 프로그램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후 김 대표는 획일적인 조직문화가 강한 한국에 방탈출 게임을 도입하면 어떨까 생각했고, 올해 3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탈출 카페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단순한 술자리나 회식보다도 팀원들과 함께 방탈출 게임을 하는 것이 팀원들 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단체로 방 안에서 탈출 게임을 하다 보면 게임에 몰입하면서 각 개인의 특성이 잘 드러나기 마련이죠. 어떤 사람은 통솔력이 강한 리더가 되고, 또 다른 사람은 묵묵히 단서만 찾는 모습을 보이는 등 자의든 타의든 그 특성이 나타나게 되거든요.” 직장인 박진영(27·서울 서초구) 씨는 “지난 회식 때 저녁을 먹고 단체로 방탈출 카페에 갔는데, 함께 아이디어를 모우며 팀워크를 다지는 데도 좋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업체들은 기업이나 동호회 단체를 위한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코드 이스케이프’는 같은 동호회 소속 회원이나 회사 직원 8명 이상이 함께 방문하면 요금의 20%를 할인해준다. 김 대표는 건전한 기업문화를 위해서 꾸준히 지원할 생각이다. “단체 손님으로만 받을 경우 매출 상 저희 쪽에서는 손해지만, 방탈출 체험을 통해 기업문화가 좋아진다면 계속 지원할 생각입니다.”

젊은이들은 방탈출 게임이 영화관, 노래방과는 달리 새로운 놀이문화를 제공해 데이트 코스로 활용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방탈출 게임을 체험한 이들의 후기와 인증사진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뇌섹시대’라는 대중문화 코드와도 맞물린다. 가상현실 속 퀴즈와 추리물들을 수동적으로 접하던 사람들은 점점 능동적으로 직접 경험하고 싶어한다.

최근 들어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뇌섹녀(뇌가 섹시한 여자) 등의 키워드가 유행하는 가운데 브라운관에서는 뇌를 자극하는 ‘브레인 게임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다. 대표적인 프로가 JTBC <크라임씬>이나 tvN <더 지니어스> <뇌섹시대-문제적남자>다. 이들 모두 참가자들의 두뇌싸움, 순발력 등이 부각되는 프로그램들이다.

평소 추리소설이나 영화를 즐겨본다는 대학생 김아영(가명·22) 씨는 “tvN에서 하는 <더 지니어스>를 즐겨보는 편인데, 그동안 연예인들이 문제를 풀고 미션을 해결하는 걸 보며 추리게임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을 넘어 이제는 일반인들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좋다”고 말했다.

다양한 테마 확보가 유행의 관건


▎방 안에 쓰여진 섬뜩한 메시지가 참가자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위) 공포물 테마는 무더운 여름철을 맞아 더 많은 인기를 누린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이들이 방탈출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가 미디어 트렌드와도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대중문화에서 몰입도를 높여주는 추리 코드가 인기인 데다 최근에는 복잡한 놀이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탈출 미션이나 두뇌싸움을 하는 TV 예능프로그램이나 영화를 통해 연예인들이 하던 게임을 직접 즐기면서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는 또 “방탈출 게임은 요즘 젊은이들이 겪는 현실에서의 답답함을 좁은 방에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출구를 열어 탈출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해소되는 듯한 후련함,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도 “사람들은 문제 해결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 특히 범죄나 추리소설, 영화 속에 자주 나오는 상황에 처해졌을 때의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지적 능력을 보여주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방탈출 카페 업계는 성황을 누리고 있지만 탈출게임 이용자들에게 아쉬움도 없지 않는 듯하다. ‘추리 커뮤니티 RS’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노영욱 씨는 방탈출 카페가 한국에서 문을 열자마자 체험해 보았다. “회원들과 함께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단편적인 암호 풀이나 퍼즐 위주의 게임 패턴이 살짝 아쉬웠다”며 “발상의 전환을 주는 추리적인 요소가 가미된다면 좀 더 많은 이들이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방탈출 카페 업체들이 느끼는 것도 크게 다르진 않다. 고객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업체들은 자연스레 아이디어적인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앓고 있다. 서울의 한 방탈출 카페 관계자는 “앞으로 경쟁 업체도 늘어날 텐데 어떤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고객들을 끌어들여야 할지가 항상 고민이다. 고객들이 진부하게 느끼지 않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윤 ‘코드 이스케이프’ 대표도 “소비자층을 더 넓히기 위해 모바일 방탈출 게임과 연계된 방법을 찾는 등 아이템 개발에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 글 김상훈 월간중앙 인턴기자 / 사진 김현동 기자

201509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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