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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의 인생 이모작] 임건홍 과학인강사협동조합 이사장 

무기과학자에서 ‘세상살이’ 도우미로 

글 고혜련 월간중앙 기획위원,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 사진 전민규 기자
퇴직 후 따낸 생활 자격증만 10개… 퇴직자 강사들과 조합 설립 후학 육성에도 관심

▎국방과학연구소에서 40년간 무기를 개발했던 임건홍 과학인강사협동조합 이사장이 전쟁기념관에 들려 동료들과 함께 개발한 무기들을 둘러보고 있다.
“세상에! 충격이었습니다. 나름 전문가라고 자부하면서 40년 동안 한 가지 일에 정진했는데 저보고 ‘보편적 전문성’이 없다니요? ‘그래서 어떤 강의도 할 수 없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을 때 정말 허탈하더군요.”

직장을 떠나자마자 곧바로 별로 쓸모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데 아연실색했다는 과학기술인 임건홍(65·전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씨. 국가방위를 위한 무기개발에 40년을 전념해오다 2012년 퇴직한 그는 한 복지관의 교양강좌의 강사직에 자원했다 보기 좋게 불합격을 맞았던 씁쓸한 기억을 떠올렸다.

40년 무기개발 경력이 은퇴 후 무용지물 돼


▎임씨가 자연건강법 강의를 하면서 자료화면을 활용해 체조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직장 밖에서 만난 세상은 가혹하게만 느껴졌다. 마치 당신이 그간 개발했던 105㎜ 견인곡사포며, 하늘과 지축을 뒤흔들며 발사됐던 유도탄들이 ‘계급장을 뗀’ 인생후반전을 사는 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비웃는 듯했다. 견인곡사포의 해외 수출이 결정되던 날, 유도탄 시험발사에 성공한 날 동료들과 서로를 얼싸안으며 감격했던 순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퇴직을 앞두고 한 방위산업체로의 이직 제의를 받았을 때 ‘떳떳하지도 않고 신세 지기도 싫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거절한 것이 못내 후회스럽기까지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어느 정도 예감은 했지만 현실이 이 정도인지는 몰랐죠. 퇴직 전에 연구소에서 나름대로 퇴직자 교육을 받긴 했지만 실제 현실을 겪고 보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가 당시 받았다는 퇴직자 교육은 재무설계, 건강이나 취미활동과 관련한 것이 전부였다. 한마디로 모아놓은 돈과 수령하는 연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면서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지 노년 생활을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먼저 퇴직한 선배 중에는 이 세상에 태어나 재능이든 재산이든 적어도 1%만이라도 사회에 환원하고 떠나라고 충고해주는 분도 있었어요.” 그 선배의 충고대로 그는 자신의 고급 지식과 경험을 살려 재능 기부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주민복지관이었는데, 그곳에서 보기 좋게 퇴짜를 맞은 것이다.

반평생을 바쳐 얻은 지식과 경험이 쓸모 없는 것이라니. 하지만 좌절하고 포기하기엔 그에게 너무 많은 시간과 일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었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강단’에 서는 일이었다. 주제는 달라도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발표하는 일이야 말로 그에게 가장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편견이나 좌절도 새 출발을 꿈꾸는 그를 주저앉힐 수 없었나 보다. 그는 우선 인생 전반전을 장식했던 전문적인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자고 결심했다. 이른바 ‘제로(zero)화 작전’이었다. 그는 그 후로 3년 동안 ‘세상살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각종 자격증이 열 개가 넘을 정도다.

‘보편적 전문성’의 부족을 이유로 미끄러졌다면 어떤 콘텐트로 강의를 할 수 있을까? 그는 우선 직장생활 중에 겪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헤아려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보았다.

‘그래 맞아, 바로 그거다! 난 자연건강법에 자신 있어. 비록 의사는 아니지만 실제로 10년 전 아토피로 고생했던 내 몸에 자연 건강법을 적용해 완치된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에 미치자 그는 무릎을 쳤다.

임건홍 씨는 50대 초반에 아토피를 앓으면서 생활 속에서 큰 고역을 치렀던 경험이 있었다. 그의 판단으로 아토피 원인은 잦은 출장과 외식 때문인 것으로 짐작한다. 그가 맞은 무기개발 업무는 대전의 국방과학연구소를 거점으로 이뤄졌는데, 무기마다 대략 3년에 걸쳐 생산계획부터 시제품 생산, 현장과 군부대 필드테스트, 양산, 성능점검 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 일을 하면서 임씨는 전국의 군부대 등을 찾아다녀야 했다. 출장이 빈번한 탓에 건강을 챙기는 일에는 자연히 소홀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40년 재직 기간 동안 연구소 기숙사에 기거하거나 출장지를 전전하며 살다 보니 연중에 자택에서 ‘집밥’을 먹어본 것이 손가락을 헤아릴 정도로 적었다. 잦은 외식으로 첨가물과 소금기 많은 음식을 주로 먹는 식사 패턴 때문에 50대 초반의 어느 날부터 아토피 피부질환을 앓게 된 것이다.

아토피 치료 경험 살려 자연건강법 강사로


▎도심권 인생이모작센터 에서 열린 강의실에서 수강생들이 임씨가 소개한 체조법을 따라 하고 있다.
아토피 증상이 심해지자 일과시간에도 가려움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생길 지경이었다. 아토피를 고치려고 양방이건 한방이건 전국의 용하다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찾아 다녔지만 비용만 들어갈 뿐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임 씨는 방송통신대에 마련된 자연건강관리사 과정을 6개월간 수강하면서 유기농 식재료를 이용한 식사법을 시도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아토피를 잡는 데 큰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국에다 밥을 말아먹던 평소 식습관을 버리고 가급적이면 국물 식사를 멀리하고, 번거롭고 맛은 떨어지지만 식당 반찬을 먹을 때도 물에 씻어 먹었다. 소금과 첨가물의 섭취를 줄이니 치료에도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임씨는 피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운동치료도 곁들였다. 그 결과 예전에는 피부에서 각질이 떨어져 진한 색의 재킷은 아예 입을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차츰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게 됐다. 임씨는 갖은 노력 끝에 아토피 증세를 치료한 뒤로는 자연건강 전도사가 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지금은 같은 또래의 사람들에 비해 건강과 활력이 넘치는 장년으로 변모했다.

“나눠드린 플라스틱 접시를 오른손 위에 올려놓으세요. 그리고 왼발을 앞으로 뻗어 오른발과 직각을 만든 자세에서 오른손을 몸 앞으로 당겼다가 다음은 뒤로 보낸 후 8자를 그리며 돌려보세요.” 참석자들이 팔이 꺾일 때마다 신음소리를 내며 그를 힘들게 따라 했다.

최근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 ‘도심권 인생이모작센터’에 개설된 열린학교 과정에서 그는 많은 사람 앞에서 자연건강법을 강의하고 있었다. “접시 돌리기는 언제 어디서나 5분이면 간단하게 할 수 있지만 척추를 중심으로 상체와 하체를 모두 사용하고 관절 주변 근육과 인대를 자극하는 전신운동이에요” 60대 중반의 그가 유연한 몸을 과시하듯 시범을 보였다. 흰 드레스셔츠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고 진지하게 강의하는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130세 시대의 자연건강법’으로 이름 붙여진 이 강의는 다양한 지혜와 경험을 가진 장년층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소통의 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서울시 이모작센터가 무료로 개설한 것이다. 지난 3개월간 이곳서 진행됐던 ‘추억을 담은 웰빙떡’, ‘이야기가 있는 댄스 스포츠’, ‘우리 손주는 왜 이럴까’ 등 16개 강좌 중 하나다.

그는 세상살이에 필요한 보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이 강단에 서기까지 인생이모작센터가 실시한 면접과 강의 테스트를 모두 통과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살아왔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접시 돌리기가 척추건강에 좋다’면서 건강전도사로 나섰으니 주최측에서도 놀랄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경험과 나름의 논리로 기회 얻을 수 있었다.

노년 수강생들의 인기로 강의 요청 늘어나


▎강의 도중 복식호흡에 좋은 하모니카 연주시범을 보이는 임건홍 씨. 강의를 재미있게 끌어가기 위해 코주부 안경을 쓰고 나오자 수강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맞았다.
그의 자연건강법 강의는 수강생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를 모은다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 용어 대신 경험을 통한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그 만의 강의 방식 덕분이었다. 마침 다른 지역의 인생이모작센터나 동네 복지관 등에도 비슷한 강좌가 개설되면서 그의 강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단다. 퇴직한 지 3년 차인 그는 건강강의 외에도 마포 평생학습관, 서울시노인복지센터, 취업훈련센터 등에서 문해반(한글교육), 취업교실, 방송통신 피해예방을 주제로 하는 강의 등을 하기도 한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그동안 흘린 땀이 하나둘 결실을 거두게 된 것이다. 그는 현재 중등학교 정교사 2급,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 외에도 각종 기관이나 단체에서 발급한 치매조호관리사, 음악심리상담사, 자연건강생활관리사, 위험물안전관리사, 소방안전관리자, 독서치유지도사, 국내여행안내사 등 10여 종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또 방송통신대학과 이모작 지원센터, 희망제작소 등에서 마련한 훈련과정도 이수했다. 현재도 강의하랴 공부하랴 하루하루가 분주한 일상이다.

그의 강의 내용도, 시니어 수강생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두 번째로 강의실을 찾았을 때, 강의가 시작되기 전인지 교실에서 친숙한 팝송이 흘러나왔다. 195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끈 가수 페티 페이지가 부른 ‘체인징 파트너’라는 노래다. 다른 교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아련함이 강의실을 맴돌았다. 마치 인생이모작으로 만난 삶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파트너지만 옛 연인과 같은 지나간 삶을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갖게 할 정도였다.

1주일 만에 열린 두 번째 강의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이론 위주의 첫 번째와는 달리 아슬아슬했다. 실기 위주에, 보여주려는 자료가 많은 만큼 효과적인 강의를 위해선 컴퓨터 영상을 활용해야 했다. 하지만 여러 개의 화면을 오가며 많은 프로그램을 구동하다 보니 오류가 생겨나고 강의가 끊어지곤 했다. 마치 옛날 영화관에서 상영 중에 필름이 끊기 듯 말이다.

하지만 동병상련의 심정에서일까? 장년층의 수강생들은 불평 하나 하지 않고 차분히 그를 기다려주었다. 임씨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다양한 자료, 비지땀을 쏟으면서 그걸 다 펼쳐 보이려는 노력과 인내, 의지가 수강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 듯했다. “좀 더 잘해보려고 엊그제 노트북을 최신형으로 바꾸었는데 손에 익지 않아 이리 됐으니 이해해 주세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강의를 이어가는 그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그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는지 가방에서 하모니카를 꺼내더니, 하모니카 연주가 건강에 좋은 복식호흡에 도움을 주니 배워보라며 수강생들에게 권유했다.

오랫동안 무기개발연구에 젊음을 바쳤지만 그는 예술적 소양도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재직 시절 ‘너와 내가 높이 든 연구의 횃불/ 힘 모아 나아가자 호국의 영광/ 민족생존 보전할 기술의 산실/ 묵묵히 정진하는 보람찬 직분…’으로 이어지는 국방과학연구소의 소가(所歌)를 작사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4개월여를 배우면 이 정도의 연주가 가능하다”며 그가 하모니카의 구성진 가락을 뽑아내자 다소 어수선했던 교실 분위기가 금방 차분해졌다. 박수와 앵콜 요청이 쏟아졌다. 그가 이번에는 콧수염이 달린 장난감 코주부 플라스틱 안경을 꺼내 쓰더니 가요 ‘잊혀진 계절’을 구성지게 연주했다.

수강생들은 그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고 일부 수강생은 감회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강사와 수강생의 진한 교감과 감동이 교실 안을 가득 채우는 모습이었다. 두 차례의 자연건강법 강의가 끝난 뒤 수강생들이 강의평가서에 후한 점수를 줬을 게 분명하다.

그는 나머지 강의 시간을 경침의 효용과 경침 고르는 법, 모세혈관운동법과 식이요법, 상반신을 좌우로 흔드는 금붕어운동 등을 소개한 뒤 학생들의 실습을 유도하면서 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됐다. 긴장감이 풀린 탓인지 하모니카 연주 이후 그가 컴퓨터를 다루는 것도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다.

퇴직자 강사들과 의기투합, 조합 만들기도


▎임씨와 함께 강의를 이끌어가는 과학인강사 협동조합 멤버들.
최근 임씨의 대외 활동은 더욱 범주를 넓혀가는 듯하다. 자신의 뒤를 이을 강사 양성에 나선 것이다. 그는 최근에 ‘서울골든과학기술인강사협동조합’이란 단체를 설립해 이사장직을 맡았다. 임씨는 그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강사양성교육장에서 만났던 강의하시는 분들과 함께 만들었어요. 강의를 주최하는 곳에서는 아무래도 개인보다는 법인이나 조합 등과 계약을 맺길 원하거든요. 함께 조합을 만든 분들은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인데 저는 그저 나이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이사장직을 맡았을 뿐입니다.”

조합원은 교장 퇴직자, 은행원, 간호사 출신 등 10명으로 구성됐다. 임씨처럼 퇴직 후에 지식 전달에 뜻을 둔 이들이다.

“앞으로 조합원들과 함께 퇴직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강의 프로그램도 기획·개발해 은퇴자들이 새로운 인생에 잘 적응하고 행복한 여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그러려면 강사진도 보충하고 강의 내용도 허술함이 없도록 더 많이 연구해야지요.” 임씨는 자신이나 동료 강사들이 퇴직 전에 들었던 퇴직자 교육의 내용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이 조합을 만들었다.

현재 조합원들은 향후 조합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논의하고 있다. 때때로 퇴직자 강의 프로그램을 원하는 기업이나 단체에 제안서를 내기도 했지만 아직 내세울 만한 실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임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유명 강사가 없다는 이유로 계약이 성사된 것은 없지만 실망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제가 그래도 한 직장에서 그 어려운 일을 40년 동안이나 성공적으로 해온 뚝심이 있잖아요.”(웃음)

가끔 국방TV 등에서 개최하는 강연회에 무기 개발이나 체계 등 방위산업과 관련한 강연을 하기도 하는 임씨는 열정적인 활동 덕분인지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가 읽히지 않았다. 그가 말을 이어간다. “아내는 ‘그만하면 됐다’며 쉬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젊은 나이 아닙니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이면 뭐든할 준비가 돼 있어요. 그동안 다소 소홀했던 가장과 아버지, 아들의 역할도 제대로 하면서 말이죠.”

35년 동안 주말부부로 살면서 혼자서 묵묵히 시부모님을 모셔온 아내에게 깊이 감사한다는 임씨는 “멀리 떨어져 살아 그동안 식구들에게 못다 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며 “아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우면서 아름다운 황혼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소망을 내비쳤다.

인생 후반전에서도 전반전 못지 않게 전력투구를 하는 임건홍 서울 골든과학기술인강사협동조합 이사장. 그가 ‘은퇴 후배’들의 손을 이끌며 함께 채색해가는 황혼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자못 기대된다.

고혜련 - 칼럼니스트. 이화여대에서 국문학, 미국 뉴저지주립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파이낸셜뉴스 문화부장과 런던특파원을 지냈다. 저서로 <신문, 취재와 기사작성> <자연에 산다> <매스커뮤니케이션개론> 등이 있다. 홍보 및 콘텐트 기획사 ‘제이커뮤니케이션’과 블로그(www.우리들이사는법.com)를 운영하고 있다.

201509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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