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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초점] 새누리당 ‘물갈이설’의 진앙지 TK 정치의 앞날 

‘권력의 메카’에서 ‘혼돈의 상징’으로 

박재일 영남일보 정치경제부문 에디터
박근혜-유승민 갈등 여파로 대대적 인물교체 기류 후폭풍… 해방 직후 ‘동양의 모스크바’로 불린 대구에서 야당의원 나올 가능성도 제기돼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유세가 열린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으로 몰려든 시민들. / 사진·중앙포토
대구·경북(TK) 정치권을 두 개의 키워드로 설명하자면 ‘박근혜’와 ‘유승민’으로 압축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심판을 요청한 ‘배신의 정치’,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 사퇴시 언급한 ‘헌법 1조’는 TK 정치권을 엮어가는 씨줄과 날줄이라 하겠다.

6월 25일 박 대통령은 정치권을 겨냥해 격정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른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는 일종의 대(對) 국민 호소문이었다. 그것도 국무회의 석상에서다. 내건 명분은 여야 정치권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합의하면서 끼워 넣은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이었다. 거기까지는 3권분립의 한 축인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박 대통령은 그 지점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발언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보자.

“정치권의 존재 이유는 본인들 정치생명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둬야 함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다. 정치는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구체적으로 특정인을 지목한 발언이었다. 나아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맹세에 가까운 선언을 했다. 그 정치적 신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저도 결국 그렇게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 남았다”며 발언수위를 높였다.

급기야 박 대통령은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주셔야 한다”고 메시지의 의미를 압축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고 나서 13일 뒤인 7월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유 의원은 물러나면서 ‘발언’을 남겼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사람들은 느닷없이 헌법 1조1항을 뒤졌고, 그러면 1조2항은 무엇인지 찾아냈다. 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유 의원은 이날 대통령이 아닌 국민에게 사죄했고, 헌법 조항을 내밀면서 스스로의 정치적 명분에서 후퇴하지는 않았다. 앞서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다음날인 6월 26일, “우리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미 유 의원은 원내대표 자격으로 국회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로 가야 한다”고 선언해 박근혜 정부의 정책적 기조를 흔들었다. 증세 없는 복지는 사실상 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자 국정운영의 핵심 철학이다.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간의 전례 없는 격돌은 세간의 정치적 흥미를 배가시켰지만, TK에서는 일대 혼돈을 불러왔다. 먼발치 ‘정치 드라마’로 치부하기에는 감정이입의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여진은 내년 총선을 5개월 앞둔 현 상황에서도 그칠 줄 모른다.

총선에 다가설수록 더 커져가는 혼돈


▎19대 총선일인 2012년 4월 11일 새누리당 대구·경북 개표 상황실에서 대구시당 당직자가 당선이 확정된 후보자들의 사진에 당선 축하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알려진 대로 박 대통령은 대구 달성군에서 1998년 보궐선거에 당선된 뒤 5선을 했다. 유승민 의원도 대구 동구 을에서 3선을 달리고 있다. 유승민은 한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2007년 한나라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한 뒤, 박근혜 후보의 연설 단상에 올라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뭔가 조언하던 이가 유승민이었다.

유 의원은 올해 1월 4일, <영남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퇴임 후까지를 포함해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 인간적 신의를 지키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정치적, 인간적 신의를 지키겠다는 그의 언급은 6개월 뒤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 발언과는 완전히 상치된 사단으로 이어졌다.

유 의원의 정치적 자산을 박 대통령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쨌든 나름 대구·경북의 차세대 주자로 지목돼왔다.

지난 7월말 <영남일보> 여론조사에서 여권 내 정치인 대상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유 의원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33.3%)에 이어 16.3%로 2위였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9.8%, 최경환 부총리 8.7% 순이었다.(대구·경북 1180명, 전화 자동응답, 95% 신뢰수준 ±3.01%)

유 의원은 TK 의원들 사이에서도 절대적 지지는 아니라도 일종의 구심점이었다. 그가 청와대의 지원을 받지 못한 불리한 여건에서도 원내대표로 선출된 데는 TK 의원들의 탄탄한 지지가 있었다. 대구의 한 의원은 한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만약 TK에서 자력으로 살아남는 국회의원 1명을 꼽는다면 그는 유승민이 될 것이다.”

대통령과 원내대표 간의 파워게임은 일단 수그러들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증폭된 정치적 신호가 나왔다. 지난 9월 7일 박 대통령은 대구를 방문한다. 의례적인 지방자치단체 순시의 일환이었지만, 정치적 해석을 낳기에 충분한 행보였다.

대통령 행사에 12명의 대구 지역구 국회의원 전원이 모습을 감춘 것이다. 참석을 사실상 저지당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대신 TK 출마설이 나돌던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비롯 신동철 정무비서관,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과 함께 주무장관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대통령을 수행했다.

올 것이 왔다는 관측이 대두됐다. 최소한 대구의 상당수 의원은 청와대의 비토 속에 다음 총선에서 무사할 수 없을 거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른바 ‘청와대發 TK 물갈이’다.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 간의 파워게임이 없었다면 아마 TK의 2016년 총선은 평범한 진로를 택했을 것이다. 바꿔보자는 여론도 선거 때면 늘 있는 것이고, 또 대구의 야당세가 아직은 미미해 긴장감 넘치는 여야 대결구도를 시현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는 그런 평범한 구도가 더 이상 진행되기 힘들어 보인다.

당이 후보 바꿔도 맞설 명분 부족


▎박근혜 대통령이 9월 7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날 대구 국회의원들은 전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사진·중앙포토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11월 8일 유승민 의원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를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내년 총선 공천과 관련 묘한 발언을 해 논란에 불을 붙였다. 그는 “TK에서 20대 총선 공천을 잘해야 한다. 19대 때 대구에서 60%를 바꿔 그 힘이 수도권으로 이어져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넘긴 게 아니냐”고 언급했다. TK 물갈이를 통해 필승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였다.

물갈이는 당이 사실상 임명하는 ‘전략공천’을 말한다. 실제로 TK 물갈이는 지난 2012년 총선에서도 휩쓴 논리였다. 대구만 해도 현재 12명 의원 중 7명의 초선의원들(김희국, 류성걸, 김상훈, 권은희, 홍지만, 윤재옥, 이종진)이 지난 총선에서 사실상 전략공천 혜택을 받고 원내에 진입했다.

TK 물갈이론이 한편으로 먹혀드는 것은 대구·경북 현역 의원들이 자생력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정치력으로 혹은 인기를 기본 축으로 해서 금배지를 달았다면 아무리 외풍이 거세도 크게 흔들리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숙명 때문이다. 대구·경북은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27석 전석을 휩쓸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됐기 때문에 당이 후보를 바꾼다고 할 때, 딱히 내세울 정치적 논리가 부족하다.

전략공천을 동원한 물갈이가 이제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또 다른 친박 핵심인 서상기 의원(대구 북구 을)은 “대규모 물갈이를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너무 많이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2년 총선 등 과거에는 물갈이 전략공천을 다 각오했고, 당사자나 언론, 국민이 모두 수긍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런 벽을 넘기 어렵고 그렇게 물갈이 할 동력도 없다.” 서 의원은 그러면서 “물론 과거처럼 찍어 쳐내기는 없다 해도 여론조사 이런 데서 흔들리는 부분이 있다면, 보호하고 싶어도 빠져야 할 사람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지지세가 있다면 억지로 주저 앉히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의 당헌에는 “여성, 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 여론조사 등을 참작해 추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지역을 ‘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한다”고 돼 있다. 전략공천적 성격이 일부 내포돼 있지만, 힘으로 누르는 전략 공천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당내 민주주의의 명분을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어떤 형태로든 최소한 명분 있는 경선방식이 가미될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당원 50%, 일반 국민 50%(여론조사) 방식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래서 찍어내기 전략공천은 피한다 해도 남아 있는 핵심 변수가 있다. 이른바 박심(朴心), 박근혜 대통령의 후광(後光) 효과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최소한 TK에서는 그렇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TK에서 ‘8080’목표를 달성했다. ‘80% 투표율에 80% 득표율’을 말한다. 절대적 지지였다. TK에서의 격차 201만 표는 서울에서 잃은 20만 표를 열 배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대(對) 문재인 후보와의 전국 표차 108만 표의 절대적 기반이 됐다.

박 대통령은 집권 1년차 대선 불복, 2년차 세월호 참사, 3년차 메르스 사태란 험난한 여정에서도 TK에서의 지지세는 확고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60% 전후를 달린다. 현역 의원은 물론 청와대든 정부 쪽 인사든 선거에 나설 경우, 박 대통령의 지지세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대구의 바닥정서에서는 ‘청와대가 낙하산 공천으로 선거에 왜 개입하느냐. 그것 또한 권력암투에 불과하다’는 기류도 있다. 반대로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이후 ‘어떻게 대통령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고개를 쳐들고 배신할 수 있느냐’는 분위기도 상존한다.

좀 더 분석하면 대통령이 어려울 때나 4대 개혁이란 국정 현안이 돌출할 때 TK 의원들이 발벗고 나서지 않았다는 점은 대통령으로서는 굉장히 서운한 부분이라는 게 정설이다. 더구나 유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와 사퇴 과정에서 중립은커녕 오히려 유 의원을 은근히 도왔다는 대목도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출마하는 신예들, 박심(朴心)인가?


▎11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20대 총선과 관련해 ‘국민 심판론’을 제기했다. 그 옆으로 내년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국무위원들이 앉아 있다. / 사진·중앙포토
익명을 요구한 대구의 한 국회의원(최근 대구에서는 청와대와 공천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의원들이 공개적 발언을 꺼린다)은 이렇게 분석했다.

“새로 출마하는 이들이 알게 모르게 대통령의 복심으로 출마한다. 또 그런 배경을 가지고, 내가 ‘진짜 친박(친 박근계)’으로 대통령을 보위하고 지켜낼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면 당내 경선에서 단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미운 털이 박힌 현역들은 속수무책일 것이다.” 이른바 고수의 전략공천 혹은 ‘쳐내기’라 하겠다.

TK 정치권의 소용돌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특히 원내대표 경선에서 유승민 의원을 적극 도운 지역 초선의원들을 타깃삼아 청와대가 이미 스크럼을 짰다는 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의 전·현직 청와대 출신이나 정부 인사들이 자리를 떠나면서 속속 총선 결전장으로 향하고 있다. 상당수는 유독 TK 지역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11월 8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일요일인 이날은 공교롭게도 유승민 의원이 선친 부고(訃告)를 낸 날이었다. 정 장관은 향후 거취와 관련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했다. 사실상 출마 행보다. 그는 대구에서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고, 지역구를 고정하지 않은 채 빙빙 돌리고 있다. 그는 유승민 의원과 경북고 동기다. 2012년 한나라당 공직자후보추천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기자 출신의 전광삼 전 대통령실 춘추관장도 이미 사표를 내고 대구 북구 갑(현역 권은희 의원) 출마를 기정사실화했고, 판사 출신인 김종필 전 대통령실 법무비서관도 같은 대구 북구 갑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 출신의 곽상도 전 민정수석비서관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직을 던졌다. 이종진 의원이 버티는 대구 달성군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윤두현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도 김상훈 의원 지역구인 대구 서구 출마가 점쳐진다. 2014년 6월 홍보수석으로 들어와 올 초 청와대를 떠난 윤 전 수석은 에서 보도국장을 지냈다.

9월에 사표를 던진 백승주 전 국방차관은 구미 갑 출마를 굳혔다. 심학봉 전 의원이 성추문 파문으로 의원직을 사퇴한 지역구다. 백 전 차관은 국방연구원 대북정책실장을 거쳐 국가비상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TK 물갈이설이 확산되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11월 10일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또 한번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예의 노동개혁 및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에 미적거리는 국회를 집중 비판하면서 국민을 향해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이제 국민 여러분께서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주시고, 그렇게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른바 ‘진실한 사람 선택론’이다.

파워게임은 여전히 진행중인 것일까? 진실한 사람은 누군지,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또 누군지를 두고 울렁거리는 해석들이 나돌았다. 야당은 자신의 사람을 당선시키겠다는 노골적인 대통령의 선거개입이라고 맹비난했다.

유례없는 TK 내부의 경쟁


▎11월 9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운데)가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오른쪽에서 둘째)의 부친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대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해 조문했다. / 사진·중앙포토
물론 청와대는 선을 그었다. 청와대측은 “장관이 됐든, 전직 참모가 됐든 본인이 나가겠다고 하면 이를 말릴 수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선거에 출마하라 말라는 지침을 준 적은 없으며, 오로지 본인의 뜻에 따른 것이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친박·비박을 넘어 누가 진정한 박근혜계 인지를 가려내는 ‘진박(眞朴·진짜 친박)─가박(假朴·가짜 친박)’ 논쟁이 총선 가도에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발 물갈이는 별개로 하더라도 TK 정치권의 총선 장(場)은 이미 섰다. 새누리당 아성인 만큼 여야간 접전은 드물다. 대신 새누리당 내 경선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국가대표 되기가 더 어렵다는 여자양궁에 비유된다.

당장 유 의원(대구 동구 을)은 지역 구청장 출신인 이재만 전 동구청장의 도전에 시달리고 있다. 청와대에서 이 전 구청장을 유승민 제거의 ‘자객’으로 보낸다는 소문까지 들리고 있다.

10월4~5일 <영남일보>가 동구 을 주민 14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승민 대(對) 이재만’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 40.1% 대 38.6%로 오차범위 내 경합이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 유승민의 기존 정치적 위상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힘든 데이터다.

여론조사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눈길이 가는 대목이 포착된다. 이 전 구청장의 손을 들어준 이들에게 지지 이유를 물었더니 절반에 가까운 44.5%가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유 의원을 바꾸고 싶어서’라고 응답했다.

물론 유 의원을 지지하는 이유로 ‘정치노선이 좋아서’, ‘큰 정치지도자의 가능성이 있어서’가 62%를 차지했지만, 대통령과의 파워게임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7월초 조사에서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 사퇴 여부를 놓고 동구 을 주민 1천 명에게 물은 결과,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이 45%, 사퇴할 일이 아니다가 51.1%였다.

역대 대구 정치 1번지인 중-남구는 김희국 의원에 맞서 이인선 전 경북도 경제부지사가 청와대 교감설 속에 출마를 준비 중이고, 박창달·배영식 전 의원이 출전을 선언했다. 김희국 의원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 파동의 와중에 핵심측근으로 활동해 운신의 폭이 부담스럽다.

류성걸 의원의 동구 갑의 경우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출마설마저 나돌고 있다. 둘은 유승민 의원과 함께 경북고 동기다. 김상훈 의원의 서구는 한동안 적수가 없는 듯했지만, 윤두현 전 홍보수석이 등장할 경우 대격돌이 불가피하다.

북구 갑은 권은희 현 의원에다 이명규 전 국회의원, 정태옥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 양명모 대구시 약사회장, 전광삼 전 대통령실 춘추관장, 박형수 전 대구고검 부장검사, 박준섭 변호사까지 나서 북새통을 이룬다. 여론조사에서는 아직 절대 강자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다 앞서 언급한대로 김종필 전 대통령실 법무비서관까지 뛰어들면, 그야말로 난타전이 예상된다. 북구 을은 서상기 의원에 맞서 주성영 전 국회의원, 조영삼 전 새누리당 수석전문의원이 공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홍희락 현 비례대표 의원이 주목된다.

달서 갑도 일찌감치 장이 섰다. 홍지만 의원에 맞서 박영석 전 대구MBC사장, 안국중 전 대구시 경제국장, 송종호 전 중소기업청장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달서 을은 똑같이 경찰 치안정감 출신인 윤재옥 의원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간의 경합 구도가 형성됐다. 윤 의원은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김 전 청장은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축소 논란에 섰던 인물이다. 달서 병은 친박인 조원진 의원에게 남호균 전 청와대 민원비서관실 행정관이 출전 의사를 내비쳤다.

경북으로 건너가면 대구와는 강도가 다르지만, 경합되는 곳이 일부 눈에 띈다.

우선, 포항 남구-울릉은 행정자치부 장관 출신인 박명재 현 의원에게 김정재 새누리당 부대변인, 김순견 전 한국전력 기술 상임감사가 도전하고 있다. 포항 북은 5선에 도전하는 이병석 의원과 박승호 전 포항시장이 여론조사에서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허명환 중앙공무원 교육원 객원교수와 이창균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이 새누리당 공천경쟁에 가세했다.

이 밖에 안동은 김광림 의원, 권오을·권택기 전 국회의원, 이삼걸 전 행정안전부 차관이 누비고 있고, 구미갑은 심학봉 전 의원이 성추문으로 의원직을 사퇴한 가운데, 김성조 전 의원, 백성주 전 국방부 차관, 구자근 경북도 의원, 박종석 구미아성병원 이사장이 거론되고 있다.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11월 4일 대구 방문에서 “대구·경북민을 만나보니 야당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다.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당을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당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지만, 대구·경북에서의 취약한 야당 입지를 반영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발전에 목마른 대구, 이제는 야당도 넘본다

안 의원 말대로 대구·경북의 정당지지도는 새누리당이 압도적이다. 여론조사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새누리당은 개략적으로 50~70%대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은 10% 선을 잘 넘지 못한다. 새누리당이 보수당이라면 대구·경북은 확실히 보수 색이 강하다고 하겠다. TK의 국회의원 의석은 새누리당 독점구조다. 2012년 총선에서 27 대 0 이었다.

해방 이후 한때 ‘동양의 모스크바’라고 했던 대구가 보수 색이 짙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분명한 점은 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보수의 진원지인 대구·경북에서 최소한의 몫을 가져가야 승부를 기약할 수 있다. 보수적 측면은 지방선거에서도 그 일말을 내비친다. 대구의 8명 구청장·군수 가운데 4명이 행정고시 출신이다. 타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직선제 도입 후 대구시장의 경우도 문희갑·조해녕·김범일 전 시장이 모두 고시출신이었다. 현재 3선인 김관용 경북도지사도 행정고시 출신이다.

반면, 근년 들어 변화의 조짐이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권영진 시장의 당선은 일종의 파란이었다. 권 시장은 새누리당 경선에서 서상기·조원진 현역의원과 이재만 전 중구청장, 주성영 전 의원을 꺾고 당내 경선 1위에 올랐다. 현역 의원들로서는 수모였다. 대구도 이제 변해야 한다는 기류에 힘입은 바 컸다.

물론 이 결과는 새누리당 내 경선이라 확대 해석하기는 이르다. 진짜 파란은 과연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1당독점 구조’가 깨질 수 있느냐는 데 있다.

파란이 인다면 1순위는 대구의 명실상부한 정치 1번지로 서울 강남에 비견되는 수성구 갑일 것이다. 대구의 여론주도 층이 많이 살고 있다. 4선의 이한구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곳이다. 선거구도는 사실상 압축됐다. 이변이 없다면 새누리당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새정치민주연합의 김부겸 전 국회의원(3선)간 혈전이 예상된다. 둘은 경북고, 서울대 선후배 사이고, 학생운동권 출신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영남일보> 10월 4일 여론조사에서 김문수 대 김부겸은 36.9%대 44.3 %로 김부겸 전 의원이 앞섰다. 앞서 <매일신문> 9월 20일 조사에서는 43.6% 대 43.9%로 초접전이었다.

하나마나 한 얘기인지는 몰라도 예측불허다. 김문수 전 지사의 승리를 점치는 쪽에서는 “지금 논란은 있지만 결국 투표장에 가면 다 1번을 찍을 것이다”고 한다. 그가 승리하면 차기 대권후보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도 김 전 지사 게 유리하게 작용한 소지가 있다.

반면, 김부겸 전 의원 지지 쪽에서는 “대구에도 이제 야당 의원이 필요하다. 국가 예산 확보나 지역발전 차원에서도 언제까지나 한 쪽 정당에 일방적으로 기댈 수는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실제로 대구·경북의 국가 프로젝트 예산이나 지역 SOC예산을 놓고 국회에서 ‘집권당 프리미엄 예산‘이라며 칼질에 나섰는데, 야당의원이 전무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반성도 나오고 있다. 도시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 다양성이 이제 요구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 박재일 영남일보 정치경제부문 에디터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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