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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김동석 美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가 말하는 ‘북·미 관계의 미래’ 

“오바마의 마지막 ‘한 수’는 평양” 

2017년 1월 임기 종료 이전 북한 연락사무소 개설 가능성 배제 못해… 미 유력 의원들 한국전쟁 종료 활동에 나서는 등 워싱턴 기류 심상찮다

▎김동석 미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참모들이 국익보다는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 사진·중앙포토
재미 시민활동가인 김동석 시민참여센터(KACE) 상임 이사(57)는 일본 정부에겐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2007년 미 연방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이가 바로 그였고, 2010년 뉴저지주에 한국 밖에선 처음으로 위안부 기림비를 세운 주인공도 그였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된 국제 홍보전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기 시작한 것도 이런 활동을 의식한 결과다. 일본 우익의 미움을 산 그의 신변안전을 우려해 미 연방수사국(FBI)이 보호에 나서는 등 김 상임이사는 한·미·일 미묘한 갈등의 중심부에 자리해왔다.

11월 2일 가까스로 성사된 한일정상회담이 계속 뒷말을 남긴다. 아베 총리가 회담에서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는 일본측 보도에 김 상임이사는 “위안부 문제를 인류 보편적 가치의 문제가 아닌 한·일간 분쟁 문제로 전락케 하려는 게 일본 정부의 노림수”라고 갈파했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를 외교 현안이 아니라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와 같은 인권침해 사건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미국이 움직이고 일본이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올해로 창립 19년을 맞는 시민참여센터를 줄곧 이끌어온 그는 미 의회와 정부의 동향에도 밝은 편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과는 무명의 정치신인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고 2007년 오바마 대선 캠프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기에 더욱 그렇다. 그는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 등 적성국가와 관계 개선에 나선 오바마 행정부의 행보에서 심상찮은 기류가 감지된다고 11월 중순 <월간중앙>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밝혔다. 예컨대 미국의 평양사무소 개설, 평화협정 체결을 향한 의미 있는 조치들이 취해질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했다. 지난 7월 미 하원의원 3명이 발의한 ‘한국전쟁 종식 결의안’이 오바마 정부의 대북관계의 출발점이 되리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최근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다. 어떻게 받아들였나?

“개인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한일정상회담’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성사되지 않은, 그야말로 쉽지 않은 회담이었다. 미국의 힘으로 성사된 회담으로 와 닿았다. 미국의 이해가 걸려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군 위안부 소녀상 철거 등 회담 내용을 흘리고 나섰다. 왜 그런다고 보나?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는 양국간의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힘의 역학 측면에서 일본에게 어찌해볼 방도가 없어 지금까지 이런 수준에서 유지해왔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게 밀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데는 이 문제가 미국의 이슈이기도 한 까닭이라고 이해한다. 2007년 연방하원의 만장일치 결의안이 통과된 이상미 국무부는 이를 그냥 넘기지 못하게 돼 있다. 그래서 일본도 구체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베 미 의회연설 성사에 2년을 쏟아부은 일본


▎2013년 미 뉴저지의 위안부 기림비를 찾은 마이크 혼다 미 하원의원(가운데)과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오른쪽). 두 사람은 2007년 미 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의 주역이다. / 사진제공·김동석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어떤 대응을 강구했나?

“결의안 내용의 핵심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범죄를 인정하고 뉘우쳐서 교과서에 넣으라는 것이다. 전범 권력인 자민당에는 아킬레스건과도 같다. 그것도 관계가 절대적인 미국 의회의 결의안이라 일본으로서는 발톱에 박힌 가시와 같았을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아베 총리는 그해 결국 총리직을 박차고 나와 절치부심하던 끝에 5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았으니 오죽하겠나. 올해 초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독도 분쟁에 대응하고자 대외홍보비 명목으로 500억 엔의 예산을 추가로 책정했다. 국제 홍보전에서 한국에 밀린다고 판단한 탓이다.”

아베 총리가 4월 29일 미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최초의 일본 총리가 되기까지 집요한 노력과 준비가 수반됐다고 김 상임이사는 전했다. 의회 연설을 성사시키는데 거의 2년의 세월을 쏟아부었으며, 특히 의회 지도부 설득작업에 올인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김 상임이사는 “아베는 총리직에 복귀하면서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을 무력화하는 궁리를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미 하원 지도부 공략에 엄청나게 공을 쏟은 것도 일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결국 위안부 문제도 미국의 힘이 아니면 일본은 꿈쩍도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일본과의 협상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는 미국을 움직여야 일본이 굴복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11월 2일 한일정상회담장인 청와대 집현실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위안부 문제는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해결될 수 없다는 말인가?

“이 문제는 외교 당사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합의한다고 해서 풀릴 사안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나선다고 해도 뚜렷한 한계가 있는 것이고, 일본 정부도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아베 정부에 중요한 건 한국이나 한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 의회일 뿐이다. 미국 여론주도층에서 위안부 문제가 더 확산되는 걸 방지하자는 데 일본 정부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의 전략은 위안부 문제를 인류 보편의 가치 문제가 아닌 한·일간 분쟁 현안으로 전락케 하는 것이다. 또 일본은 우리의 약점을 안다.”

어떤 약점을 말하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나 여타 인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표면화되더라도 안보 문제(북한 문제) 앞에서는 모두 후순위로 밀린다는 점이다. 일본이 이 점을 노렸다. 미국으로부터 집단적 자위권을 동의받고서는 한국에 대해서는 아주 느긋한 입장이 됐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며 2년 반 동안 버텨오던 박 대통령의 원칙도 미국의 영향력 앞에서는 무색해졌다. 한일정상회담에서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서로 노력하자란 수준에서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

미·일 관계나 백악관 분위기로 볼 때 아베의 의회연설은 이미 굳어졌다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미국은 의회와 백악관이 반드시 함께 가진 않는 나라다. 지난 3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이 대표적이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거의 주먹다짐 수준에까지 갔던 네타냐후 총리를 미 의회는 초청해서 연설을 들었다. 유대계 미국인들이 미국 의원들을 동원해서 성사시킨 것이다. 일본이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언론플레이를 하고 분위기를 조성한들 그게 미 의회에 쉽게 먹히진 않았을 것이다. 아베는 미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을 인정하지 않는 인물이기에 그렇다. 미국은 의회의 파워가 백악관에 버금가는 나라가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상대가 있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했다는 말이 나오던데… 정말로 아득하다. 일본은 국가권력이 미개한 나라다. 분쟁을 만드는 것은 일본의 전략이고 저들이 노리는 함정이다. 이 문제가 한일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위안부 문제를 한일 외교현안에서 떼어내 홀로코스트와 같은 보편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액션플랜을 제시한다면?

“한국은 위안부 문제에 관해 피해국으로서 지구촌과 연대해야 한다. ‘강한 피해자’가 되지 않고서는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전략이 바로 ‘지구촌 연대-강한 피해자론’이다. 우선은 미국 시민사회에 빼도 박도 못하는 인권문제로 제기해야 한다. 미국이 나설 때 일본도 ‘진정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라는 경각심을 갖게 된다. 미국이 인권문제에 앞장서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피해국 간의 연대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김 상임이사는 2차대전 종전 후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참상을 국제사회에 호소한 미국 내 유대인들의 활동상을 사례로 들었다. 전쟁 당시 동족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느낀 미국 내 유대인 사회는 먼저 나치 독일의 잔학상을 미국 시민사회에 알리는 노력부터 시작했다. 미 의회에 결의안을 상정, 통과시키고 각 주 별로 만행을 규탄하는 위원회를 결성하고 추도사업을 진행했다. 지역구 의원들로 하여금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묻고 재발을 방지하는 활동에 나서게 했다. 종전 직후 미국 내에서도 반(反)유대정서가 상존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정치, 문화, 예술, 학술계에서 홀로코스트의 책임 소재를 규명해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진실로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전 세계 반인륜적 범죄의 피해당사국들과 보조를 맞춰 위안부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게 김 상임이사의 제안이다.

쿠바의 예와 같이 미국이 어느 날 갑자기 북한 연락사무소 개설을 발표할 수도 있나?

“현재 미국에 정착한 쿠바인들은 대부분 카스트로 혁명정부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쿠바 봉쇄나 카스트로 정부 전복을 학수고대한다. 교육수준, 삶의 수준이 높고 자존심도 세 미국 내 정치적 영향력도 아주 강하다. 쿠바 출신 유력 정치인들이 미 의회에 다수 포진해 있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한 로스 넷트넨 의원도 쿠바 출신으로 우리 시민 참여센터와도 막역한 사이다. 2007년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킬 당시 미 의회 전문지 <더 힐(The Hill)>은 “유대인, 대만인, 그리고 쿠바인들에 이어서 한인들이 의회에 영향력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할 정도로 쿠바인들의 정치력은 막강한 편이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에 들어간 2013년 초까지도 쿠바와 미국의 수교를 낙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전 라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하는 오바마 2기 정부의 외교정책이 1기 때와는 아주 다르게 작동된다. 그 결과가 지난해 말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다. 수교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 미국 내 쿠바인들이 허를 찔린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의 북한에 주목하는 오바마


▎2000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가운데)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이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거행된 집단체조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오바마 정부 대외정책의 특징을 설명해달라.

“나는 2006년 말부터 대선에 뛰어들어 오바마 후보 캠프를 관찰할 수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정한 목표는 반드시 성취하는 사람이다. 참모들을 철저하게 신뢰한다. 그의 외교·안보 참모들은 국익 이상으로 ‘가치’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두 분을 모시고 백악관을 찾은 적이 있다. 할머니의 증언을 청취한 사람이 수전 라이스 보좌관과 가까운 여성인권비서관이었다. 그로부터 ‘인권보다 우선하는 어젠다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오바마 측근들은 키신저보다는 브레진스키 방식을 추구한다. 단순하고 강경하다고 할까.”

지난 7월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 타결도 예기치 못한 뉴스였다.

“수전 라이스 보좌관은 유대인들의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극복하고 이란과의 핵 협상을 관철시켰다. 그 즈음 미국 내 주류사회의 유대계가 오바마 권력에는 두 손을 들었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원조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적은 곧 미국의 적’이라는 등식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깨져 나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스타일을 감안해서 북·미 관계를 예측한다면?

“오바마 정부는 북한과 관련해 클린턴 행정부의 임기말을 종종 언급한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하고 조명록 북한군 차수가 방미하던 그 시점 말이다. 쿠바와 이란은 가장 골칫거리 적성국가였다. 그 다음은 북한이다. 국가간 정상적인 관계의 첫 단추가 연락사무소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미·북간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수도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1월 중으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까?

“오바마 대통령 남은 임기의 대외정책 목표가 북한의 핵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서는 중국의 영향력을 활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북·중 관계가 꼬이면서 미국은 대북 정책을 새롭게 궁리하게 됐다. 북한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꾀하기 전에 주변상황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과정이다. 최근 미국이 북한 문제를 뒤로하고 쿠바·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통에 북핵 위협이 증가했다는 비판이 많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클린턴 행정부 당시의 성과를 기대하고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 간 대화는 가능한가?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우선 핵을 폐기해야 어떤 대화라도 할 수 있다고는 하지 않을 것 같다.”

48년 의정생활 마무리하는 찰스 랭글 의원의 집념


▎김동석 상임이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신인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왔다. 2006년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과 함께한 김 상임이사(오른쪽). / 사진·뉴시스
북한은 미국이 거들떠도 안 보는 평화협정 체결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왜 그러는 걸까?

“휴전은 쌍방간 합의 아래 전쟁을 잠시 중단한 상태를 말한다. 군사적으로 절대 약자인 북한 입장에선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막강 파워 미국 앞에서 북한이 살아남는 길은 그것밖에 없을 것이니까.”

예상되는 미국 정부의 향후 반응은?

“지구상 가장 적대적인 국가가 핵으로 무장한 상태를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 상황은 미국이 수용하기 어렵다. 북한은 핵무장을 했고 핵실험도 수차례 했다. 2009년 북한에 핵실험 징후가 있을 즈음 가깝게 지내던 미 하원외교위원장이 한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핵을 갖고 있든 아니든 관계없이 그것을 인정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건 미국의 군사전략상의 권한’이라고 하더라.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과의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맺자는 주장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다.”

미 의회는 행정부와 또 분위기가 다를 수도 있을 텐데.

“의회에서는 그동안 ‘북한의 핵’에 관해서는 논의가 별로 없었다. 최근 미국이 북한과의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종전 관련 이슈들이 간간이 언급되고, 관련 청원문서(Petition paper)들이 보좌관들 손에서 종종 쥐어져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미·북 간에 어떠한 움직임이 있음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할 정도라고 하겠다.”

청원문서는 어떤 걸 말하는 건가?

“그동안 연방의회에 북·미간 평화협정체결에 관한 청원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주로 기독교 진보단체들과 평화운동단체들이 의원실을 방문하거나, 각종 한반도 관련 청문회장에서 캠페인을 벌여왔다. 평화협정과 관련한 청원은 미국의 확고하고도 강경한 입장 때문에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전까지의 청원서는 그저 시민들의 서명운동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최근 평화협정을 염두에 둔 것처럼 한국전쟁을 끝내자는 논의에 거물 현역의원들이 뛰어들었다. 주목할 대목이다. 국내 언론에도 보도됐듯이 7월 27일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 미 하원의원 3명이 ‘한국전쟁 종식 결의안’(하원 결의안 384호)을 발의했다. 나는 이 결의안이 오바마 정부의 대북관계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북한이 여기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 있는 소위 친북단체(Pro-north group)들이 결의안 통과를 겨냥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결의안은 오바마 정부와 북한의 공통분모(Common ground)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0월엔 찰스 랭글 의원이 뉴욕 한인사회 대표자들을 초청, 이산가족상봉과 함께 이 결의안을 지지해달라고 적극 요청했다. 미 연방의회 의원이 직접 시민사회를 상대로 결의안을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예는 흔치 않다. 그의 의지가 아주 강하다는 걸 뜻한다. 11월 초엔 로스앤젤레스(LA)에서 384호 결의안을 지지하는 한인들과 만난 하비에르 베세라 미 하원의원(민주당, 12선)도 결의안과 관련해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북한 문제와 관련한 의회 기류는 행정부와 또 다르다는 말로 들리는데.

“미 국무부의 북한담당 관료들의 얼굴만 봐서는 워싱턴에서 한반도 문제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쿠바와 이란 문제가 그랬다. 어쨌거나 워싱턴의 기류도(쿠바와 이란과 같은) 그런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한국전 참전용사이자 대표적 지한파 정치인인 찰스 랭글 의원이 내년 정계 은퇴 계획을 밝혔다.

“랭글 의원의 임기는 내년 12월까지다. 미국에서 한국전쟁에 관해서는 반드시 그를 거쳐야 어떤 일이라도 진척을 본다. 그는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 웬만한 발언은 존중받는다. 요즘 랭글 의원은 미국 내 한국사회를 돌면서 전쟁을 끝내야 할 때라고 언급한다. 랭글 의원실을 상대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캠페인을 활발하게 벌이는 미국 내 진보 단체도 있는 것으로 안다. 더 중요한 변화는 랭글 의원의 적극성이다. 북한에 가족을 둔 미주 한인들의 문제와 한국전쟁 종전 문제로 48년 의정생활을 마무리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북미평화협정 논의에 선결과제가 있나? 에드윈 퓰너 전 해리티지재단 이사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 주한미군 문제를 선결과제로 들었다.

“한국 입장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은 핵문제 해결 없이는 북한과의 어떤 관계설정도 불가함을 강조해왔다. 한반도 비핵화가 기본원칙이다. 북한은 현실의 존재다. 북한과 대화하자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가장 현실적인 전문가로 1993년부터 10여 년간 미 국무부에서 대북담당관을 지낸 조웰 위트(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의 운영자이자 존스홉킨스대 연구원)를 들고 싶다. 그는 미국이 북한을 향해 ‘우리는 평화협정 협상을 진행할 의향이 있지만 동시에 이 협상의 일부분에는 비핵화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제안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책의 약한 고리는 미 의회

한국과 미국 정부의 ‘선(先) 비핵화’ 빗장을 풀 수 있을까?

“조웰 위트는 가장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으로 문제를 푸는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과거 클린턴 정부 10년 동안의 (대북한) 성과는 거의 그의 능력에 의지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평화협정과 비핵화 협상을 병행하자는 주장을 편다. 그는 북한의 핵을 그냥 방치하는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냐고 따진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이 점점 더 불리해지므로 우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 그렇게 해야 대화가 된다는 말이다.”

국익을 도모하자면 미 의회를 더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떤 취지인가?

“냉전시절 미국과 한국의 이익은 언제나 일치했지만 지금은 경쟁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정부 대 정부의 전통적인 외교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미국을 상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내자는 말이다. 미국 정부는 국익을 우선시한다. 의회는 다르다. 납세자들의 말에 긴장하고 유권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누가 먼저 손을 쓰면 외교정책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래서 의회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키우자고 하는 것이다.”

김 상임이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한인 인맥으로 분류된다. 인연을 소개해달라.

“2004년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둘째 날 연단의 주요연설자가 오바마 일리노이주 연방상원의원 후보자였다. 거의 무명의 인사였는데 연설 연습하는 방에서 그와 만나 인사하고 명함을 교환했다. 그 인연으로 2007년부터 오바마 대선후보 진영에 들어가 그의 선거운동 과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개인적인 접촉이 어려웠고 연락도 거의 두절됐지만 오바마는 대통령으로, 나는 유권자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시민참여센터(KACE)는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가?

“1992년 LA 흑인 폭동이 계기가 됐다. 피해를 본 한인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고, 가해자인 흑인들은 올바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스스로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자면 정치력을 키워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해 1996년 시민참여센터가 문을 열었다. 한인들의 권익 신장과 한·미 관계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 미국에 유대계 시민 결사체인 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 위원회(AIPAC)과 같은 조직을 지향한다. 시민참여센터가 문을 연지 올해로 만 19년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워싱턴 대회를 개회하는 전국조직으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중이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한미 비자면제프로그램, 한인 공로인정 결의안,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의회를 상대로 하는 입법활동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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