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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⑤] 다윈의 ‘제니’와 요한슨의 ‘루시’ 

인류 기원 밝힌 혁신가의 행운은 예고돼 있었다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동물원의 오랑우탄에게 이름 붙이고 몰입해 진화의 영감 얻어… ‘진리’는 인내하는 탐구자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선물

▎역사의 수레바퀴는 진리를 향한 인간의 여정과 함께해왔다. 관찰과 몰입을 통해 진리의 근원에 다가서려는 혁신적 인간은 그 수레바퀴를 돌리는 힘이 돼왔다. 눈이 닿는 곳에 길이 있고, 생각이 미치는 곳에 진리가 있다. 손전등의 불빛이 닿는 곳에 우주의 비밀이 숨어 있다.
#1. 과학적 진리

학자는 과거의 생각을 과감하게 뒤집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만드는 용감한 인간이다. 최근 1960년대와 70년대에 등장한 과학기술과 정보기술(IT)은 기존 물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정과 그 기반을 흔들어 파괴하고, 학자들에게 새로운 탐구를 시작하도록 촉구한다.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인문학의 독점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그 실질적인 실마리를 생물학·진화생물학·물리학·정보기술·유전학·신경생물학·생물학·공학·화학에서 찾기 시작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과학과 융합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 나섰다. 아니 오히려 과학이 인간본성의 문제를 사변에 머무르지 않게 만듦으로써 가시적인 문제로 부각시키고, 가능한 해답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회, 그리고 우주를 탐구하는 여정에서 오늘날 인문학과 사회 과학은 과학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말장난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다.

과학적 지식은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도 있다. 자신이 실시한 실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항상 동일한 결과를 객관적으로 산출할 수 있는 ‘과학적 참(scientific truth)’,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과정이나 결과를 실제로 확인할 수 없지만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참’이라고 여기는 ‘연역적 추측(deductive guess)’, 그리고 자신이 경험할 수 없지만 그럴 개연성을 품은 ‘추측(speculation)’이 있다. ‘과학적인 진리’라 할지라도 기술과 사고의 발전으로 이전에 ‘참’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한순간에 ‘거짓’이 될 수도 있다. 15세기까지 천동설이 과학적으로 참이었지만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이후에 거짓이 되어 지동설로 대치됐다. 지동설은 이전에는 (연역적인) 추측이었지만 과학적인 참이 됐다. 이 세 단계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유동적이다. 과학적 진리는 시대불변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그 역사적인 순간에 진리를 향해가는 과정(科程)으로서의 참이다. 자신이 아는 과학적 진리를 시공을 초월해 모든 사람에게도 진리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근본주의자일 뿐이다.

과학적 진리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찰스 다윈에게 진화론의 영감을 준 곳은 런던의 동물원이었다. 동물원은 다윈의 관찰과 탐구의 실험실이자 사색의 공간이었다. 1800년대 런던의 동물원을 그린 삽화.
#2. 추측으로 시작해 참이 된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

인간의 과학적인 탐구는 추측에서 출발하며, 가용한 과학적인 지식으로 ‘참’을 향해 전진한다. 오늘날의 이 많은 인류의 조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인류가 ‘없음’에서 출발할 수 없다면, ‘있음’의 시작은 어디인가? 고인류학자들은 현생인류의 요람을 아프리카로 추정한다. 이것을 ‘아프리카 기원설’, 영어로는 ‘out of Africa theory(OOA)’라고 부른다. 굳이 영어 표현을 빌리는 것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으려 시도한 학자들이 서양학자였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1980년대 이전까지 추측에 불과했지만 유인원들의 유골로부터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분석을 통해 과학적인 참으로 인정됐다.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20만 년에서 6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현생인류로부터 진화했다. 유럽인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아시아에 거주하던 유인원 속(屬)에 속하는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에렉투스를 대치함으로써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현생인류의 조상이 됐다. 이 과정 중에 교잡이 일어나기도 하여 현생인류의 유전자 안에 다른 유인원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진화학자 찰스 다윈과 비교해부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아프리카를 최초 인류가 거주하던 장소라고 추측했다. 찰스 다윈은 모든 생물을 아우르는 공통의 조상이 있다고 처음 주장했고, 모든 인류는 아프리카에 거주하던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나왔다고 제안했다. 그의 주장은 상상력과 관찰을 기반으로 한 ‘연역적 추측’이었다. 그는 아프리카 사바나를 방문하고서 이런 추측을 내놓은 게 아니다. 그가 자주 방문한 장소는 런던의 한 동물원이었다.

#3. 찰스 다윈과 오랑우탄 ‘제니’

19세기 오랑우탄은 유럽인들에게 외계인이나 괴물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원숭이나 침팬지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정글에만 서식하기 때문에 그들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럽인들이 16세기 대항해시대를 맞아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이 신기한 존재들을 마주치게 됐다. 네덜란드 의사였던 야코부스 본티우스(Jacobus Bontius)는 1614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자바섬에서 거주했다. 그는 자바섬에서 야생 원숭이들을 만난 후, 그들을 말레이어로 ‘오랑우탄(orang-outang)’이라고 불렀다. ‘오랑’은 ‘사람’이며, ‘우탄’은 ‘숲; 야생’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오랑우탄’이란 ‘숲에 사는 사람’이란 의미다. 오랑우탄이란 용어는 아마도 자바섬에 살던 원시인들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유럽인들이 오랑우탄을 원숭이를 지칭하는 용어로 착각해 사용한 것 같다.

오랑우탄은 인간과 당혹스럽게 비슷하다. 영국의 지질학자 찰스 라일(1797~1875)은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go the whole orang”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표현은 영어에 ‘갈 때까지 가보다; 끝장을 보다’라는 의미를 지닌 ‘go the whole hog’이란 표현을 빌려 만들어낸 말장난 표현이다. 그는 인간과 오랑우탄이 같은 조상에서 왔다는 피할 수없는 가설을 과학적인 진리로 수용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 왕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인간은 이제 자기 자신을 객관적인 과학의 대상으로 관찰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동물 세계의 일원으로 편입시켰다. 몇몇 과학자는 유인원들을 ‘위대한 존재의 사슬’에서 인간 다음에 끼워 넣었다.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1707~1778)는 오랑우탄을 다른 원숭이들과 함께 인간과 동일한 속(屬)에 편입시켰다.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당시 대부분의 계몽주의 철학자가 주장하는 인간이 성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지닌 공감과 자비가 인간됨의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불평등기원론>(1755)이란 저서에서 인간과 유사한 오랑우탄을 언급한다. 그는 오랑우탄이 무지막지한 동물이 아니며 인간도 자연 상태에서는 오랑우탄과 같은 ‘야만인(l’ homme sauvage)’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진정한 야만인종이다. 옛날에는 어떤 지적인 덕목을 신장시킬 수도 없고 완벽을 추구할 수도 없어 자연의 원시적인 상태로 숲 속에 흩어져 살았다.” 루소에게 원시시대는 인간역사의 황금기이며, 토마스 홉스가 주장한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아닌 평화롭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상태였다.

인류 기원을 바꾼 다윈과 ‘제니’의 만남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 인간은 신과 손가락을 맞댐으로써 인류와 우주의 시원(始原)의 진리를 전수받았다
1838년 3월 28일, 아직 한기가 느껴지는 봄날. 다윈은 런던의 레전트 파크에 있는 동물원에서 특별한 사건을 경험한다. 29세의 다윈은 아직 무명이었다. 비글호를 타고 세상을 보고 돌아온 지 2년이 지났다. 그는 여행에서 수집한 수많은 화석과 살아있는 표본식물과 동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이것을 정리해 자신만의 진화이론을 발표하기까지는 20년이 더 걸려야 했다. 1838년에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지식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을 때였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거대한 원칙과 정교한 설명을 찾고 있었다. 당시 동물원은 ‘제니’라고 명명된 오랑우탄을 새로 영입해 선보였다. 오랑우탄은 남동아시아 수마트라와 보르네오 지역 섬들에서만 서식한다.

다윈과 제니의 만남은 할리우드 영화 소재로 제격이다. 실제로 할리우드가 2009년에 제작한 다윈의 전기 영화 <크리에이션(Creation)>에서 영화배우 폴 베타니(다윈 분)는 ‘제니’라고 불리는 오랑우탄과 함께 바닥에 앉아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내밀어 제니의 왼손 검지와 마주치는 장면이 나온다.[이 장면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The Creation of Adam)> 그림을 비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 ET에 등장하는 장면을 연출한 그 장면은 영화 포스터로 만들어졌다. 이 포스터는 우리 인간이 다른 유인원들과 하나였다는 강력한 은유를 품고 있다. 실제로 다윈이 오랑우탄과 손가락을 마주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의 만남은 다윈과 그가 주장하는 진화론, 그리고 새로운 인간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윈은 인간과 오랑우탄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제니가 있는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최근 발견된 다윈 노트에서 다윈은 동생 수잔에게 쓴 편지에서 제니와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록했다. “한 사육사가 제니에게 다가가 사과를 보여주기만 하고 건네주지 않자 제니는 바닥에 몸을 구르고 발로 차며 울고, 마치 개구쟁이 아이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사육사가 ‘제니, 만일 울지 않고 얌전한 소녀처럼 행동한다면 사과를 줄게’라고 말하자 제니는 이 모든 말을 알아듣고 어린아이처럼 더 이상 칭얼대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하더니 마침내 얌전히 앉았다. 그런 후, 사육사가 사과를 주자 사과를 받아 들고 안락의자에 뛰어올라 이 세상에서 가장 만족한 표정으로 사과를 먹기 시작했다.” 다윈은 그 후 같은 해 9월과 10월에 동물원을 다시 찾아가 제니와 다른 수컷 오랑우탄인 토미를 관찰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개발한 실험을 실시했다. 그의 오랑우탄에 대한 관심은 동물의 진화, 특히 인간의 진화와 연결돼 있다. 오랑우탄에 관한 기록이 ‘인간’이라고 적힌 파일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노트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육사들이 말하기를 원숭이들은 여성을 완벽히 구분해낼 수 있다. 오랑우탄은 성별을 위해 후각이 아닌 시각에 의존한다. 제니는 수컷 목욕을 지켜보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다윈은 이 관찰을 인간과 연결시켜 말한다. “원시 남성들이 나체 여성들 보는 것을 얼마나 즐겼을까? 그런 후 그들은 냄새를 맡았다. 후각은 시각과 연관되어 나중에 등장한다. 이것은 인간의 기원에 대한 증거로 가장 신기한 것이다.” 다윈은 제니의 얼굴에서 감정표현을 분석해냈다. “제니는 질투할 때, 자신의 치아를 드러내며 짜증내는 소리를 낸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 우리를 흔들거나 머리를 문에 박는다.” 다윈은 이런 행위들을 인간의 경험을 동물에게 전가시킨 억지주장이 아니라 오랑우탄과 인간이 공동의 조상을 두었기에 유사하게 감정을 표현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오랑우탄을 한 번 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마치 영장류 동물학자처럼 인내를 갖고 접근했다. 그는 제니의 감정과 행위를 유심히 지켜보고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거울과 음식을 주기도 하고 간지럼을 태우기도 했다. 다윈은 이런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인간과 오랑우탄이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고향은 아프리카라고 결론지었다. 다윈이 1838년 4월경에 남긴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사육당하고 있는 오랑우탄을 찾아가 얼마나 생생하게 불평하는지 듣고, 인간이 어떤 말을 하면 모든 단어를 이해하는 듯한 그 지적인 능력을 보고,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졌는지, 그것의 열정과화, 심술 부림과 극단적인 실망감을 보라. 그가 벌거벗은 채로 꾸밈없이 개량될 수도 개량할 수도 없이 야만적이며 자신의 부모를 웃기는지 보라. 그러면 그는 자신의 뛰어남을 감히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남미의 원주민 언어인 푸고언어를 이해하는 오랑우탄의 능력을 다른 원숭이들의 능력과 비교할 수는 없다.”

제니는 인간과 같은 감정표현이 가능하고 인간이 하는 말을 이해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나 다름없다. 이 내용은 후에 <인간의 유래와 성(性)에 관련된 선택>(1871)과 <인간과 동물의 감성표현>(1872)에 자세히 수록됐다. 특히 다윈은 남미 대륙에 위치한 티에라 델 푸에고에서 사냥채집으로 생활하고 있는 유흐간(Yuhgans) 원주민을 목격한 후, 인간과 오랑우탄을 연결시켰다. 유흐간 원주민은 고도로 문명화된 인간과 동물과 같이 야만적인 원주민 간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과장된 것이다. 다윈은 인간의 사촌 정도로 오랑우탄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시원 찾아나선 고인류학자


▎찰스 다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크리에이티브 (Creative)>의 한 장면. 다윈은 런던 동물원의 오랑우탄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오랑우탄이 인류와 같은 뿌리에서 파생한 가족임을 깨달았다. 다윈은 이 오랑우탄에게 ‘제시’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4. 도널드 요한슨과 ‘루시’

다윈처럼 문명화된 세계의 동물원이 아니라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인류의 시원을 직접 확인한 고인류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도널드 요한슨(1943~)이다. 그는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교수로 있었다. 그는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 동부 특히 에티오피아 지역을 오랫동안 탐사했다. 이곳은 이미 다윈과 토머스 헉슬리가 예견한대로 최초 인류가 거주하던 장소다. 그는 1973년부터 에티오피아 하다르 지역을 발굴해 유인원의 무릎뼈 몇 개를 찾았지만 그 뼈가 어떤 유인원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11월에 에티오피아 하다르라는 곳에서 세 번째 고고학 탐사 중이었다. 그가 지휘하는 고고학 발굴팀은 인간과 다른 유인원들이 속하는 호모 속(屬) 다리뼈들과 턱관절을 이미 발굴했기 때문에 자신이 위대한 고고학적 유물을 발견할 것이란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11월 24일 아침, 다른 일원들은 모두 쉬고 있었다. 그때 톰 그레이라는 대학원 생이 전에 방문했던 계곡으로 다시 가려 했다. 그레이는 고고학팀이 방문한 지역을 지도에 정확히 표시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가 다시 계곡으로 가려 할 때, 운명의 여신이 요한슨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는 후에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그날 아침 무의식적으로 그레이와 같이 가야만 한다고 느꼈다. 어떤 굉장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날이었다.” 이미 뜨거워진 태양과 정리해야 할 많은 보고서도 그를 막지 못했다. 둘은 함께 차에 올라 6㎞ 정도 떨어진 이미 말라버린 작은 계곡으로 향했다. 그는 떠나기 직전 자신의 일기에 “그레이와 함께 오전에 162지점으로 간다. 왠지 기분이 좋다”라고 기록했다.

요한슨과 그레이는 몇 시간 동안 별로 찾은 것이 없었다. 동물 뼈와 치아 몇 개뿐이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근처 계곡으로 가 땅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야외에 나가서 할 일이란 땅을 자세히 보는 일이었다. 고인류학자가 할 일이란 자신이 정한 지역에서 마음을 열고 특이한 물건이 있는지 인내를 가지고 관찰하는 일이다. 이미 오랫동안 관찰을 수련해온 요한슨의 눈은 남달랐다. 자신이 상상해온 수많은 뼈를 염두에 둘 뿐만 아니라, 자신이 본 적이 없는 신비한 화석을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과 눈을 열었다. 이런 ‘관찰’은 인간됨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관찰’은 인간을 인간답게 한 중요한 특징이다. 마음과 눈을 열고 사물에 몰입해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을 통해 많은 혁신이 태어났다.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 중 자신을 생존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시각적 능력과 사회적 능력이다. 시각적 능력이란 자신이 관찰하는 대상에 몰입해 그 대상과 일치하는 신비한 기술이다. 이 능력은 모든 혁신적인 인간, 특히 예술가, 사상가 그리고 과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내공이다. 1996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신경심리학자 지아코모 리졸라티 교수팀이 짧은 꼬리 원숭이의 뇌로 실험하던 중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나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있는데도 자신이 실제로 행동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신경세포를 발견했다. 이 신경세포를 거울신경(mirror neuron)이라고 부른다. 다른 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거울처럼 똑같이 흉내 내듯 뇌 안에서 활성화되어 자신의 일부가 된다. 인간화에서 가장 필요한 과정인 배움이 바로 이런 흉내에서 출발한다. 공감으로 진입하고 언어, 도구, 불의 사용과 능력으로 이끄는 핵심 능력이다. 거울신경세포를 극대화한 상태가 무아화의 과정이며 심지어 상대방의 내면과 일치하여, 그 대상의 희로애락을 공감하게 된다.

몰입과 관찰을 통해 깨우친 인류의 기원


▎1973년 11월 24일, 미국의 고고학자 요한슨은 에티오피아 하다르에서 새로운 유인원 화석을 발견했다.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관찰과 몰입을 통해 그는 인체의 약 40%를 복원 가능한 뼛조각들을 찾아냈다. 이 화석은 인류 진화의 역사를 뒤바꾼 새로운 유인원 ‘루시’로 명명됐다.
사회적 능력이란 인간이 거울신경을 작동시켜 어떤 대상에 몰입하여 자신의 존재를 잊게 될 때, 그를 보호하는 체계를 사회라고 부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보살핌과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구석기 시대 사냥채집에 몰입하여 자신은 다른 동물의 습격의 위험에 노출된다. 그는 그 순간에 동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능력이란 자신이 평상시 이타적인 행동으로 사회성을 키워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다.

요한슨이 몰입해 화석을 찾고 있는 그때, 광활한 땅에서 화석처럼 보이는 반짝이는 흰색 뼈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단번에 그 뼈가 유인원의 아래팔 안쪽에 위치한 삼각 기둥모양의 긴 뼈인 자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그 지역에서 이미 발견한 개코원숭이나 긴꼬리원숭이의 뼈일 수 있었다. 그러나 원숭이 자뼈의 형태에서 흔히 발견되는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에 새로운 유인원의 뼈란 사실을 확신했다. 요한슨이 다시 눈을 돌리니 그 발 옆에 두개골 부분들이 파묻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계곡 언덕을 보니 많은 뼈가 햇빛을 받으면서 반짝이고 있었다. 거의 일렬로 턱뼈와 인체에서 가장 길고 큰 골조직인 대퇴골(넓적다리)도 보였다. 요한슨과 그레이는 일생일대의 세렌디피티를 경험했다.

영어단어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흔히 ‘우연한 행운’이라고 번역된다.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오히려 ‘운명적으로 예정된 행운’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1754년 1월 28일에 영국 작가 호레스 월폴(1717~1797)이 만들어낸 단어다. 월폴은 영국의 최초 수상인 로버트 월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 가운데 하나로 신비한 의미를 지닌 ‘세렌디피티’를 영어 어휘에 선사했다. 그는 또한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세렌디피티’는 스리랑카의 고대 이름인 세렌딥(Serendip)에서 유래했다. 그는 이 단어를 제목으로 <세렌딥의 세 왕자들>이란 추리소설을 저술했다. 세 왕자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들이 처음에는 염두에 두지 않은 것들을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 발견도 한 분야에 오랫동안 인내와 현명함으로 머물러 탐구할 때 운명적으로 주어진 선물이다.

요한슨은 이 지층에서 이미 300만 년 이상으로 추정된 돼지와 코끼리뼈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 새로운 뼈들의 연대를 300만 년 이상이라고 확신했다. 그 전까지 발견된 화석들 중에는 300만 년 전의 것이 거의 없어 비교할 수 없었다. 새로 발견된 유골들이 어떤 유인원의 뼈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요한슨이 세렌티피티로 발견한 이 화석들은 두개골과 두개골 아랫부분 뼈들인 허벅지뼈, 척추, 그리고 갈비뼈까지 거의 인체의 40%에 달했다. 한 장소에서 이렇게 온전한 신체 전체의 뼈가 발견되기는 처음이다. 요한슨과 그레이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자동차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캠프로 돌아와 “도널드가 굉장한 걸 발견했어!”라고 외쳤다. 그는 후두부로부터 추정한 두개골 크기가 자몽만한 것을 근거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계열의 유골로 추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송곳니와 어금니 사이의 이인 소구치(小臼齒)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달라 새로운 속으로 판단했다. 요한슨은 이 유골을 에티오피아 아파르 지역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 하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고 불렀다.

그날 밤, 고고탐사팀 멤버들은 획기적이며 새로운 유물의 발견을 기념해 파티를 열었다. 사막에 해가 붉게 타오르며 지고 있을 때 누군가 비틀스의 여덟 번째 앨범인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밴드> 음반을 밤새도록 배경으로 틀어놓았다. 당시 탐사팀 일원이었던 파멜라 알더만이 이 앨범에 실린 노래인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를 따라 부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쉬운 ‘루시’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여, ‘루시’가 탄생했다. 비틀스의 존 레논은 아들 줄리안이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인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는 루시’라는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같은 이름의 노래를 작곡했다. 루시는 줄리안이 유치원에서 좋아하던 여자아이 이름이었다.

#5. 현생인류로 가는 중간단계로서 루시

요한슨은 그 후 하다르에서 루시와 같은 속에 속하는 13명의 유인원 뼈를 더 발견했다. 학자들은 이들을 ‘인류 최초의 가족’이라고 명명했다. 루시의 골반을 조사하니, 20세 정도의 여성이었다. 키는 105㎝ 정도였으며 400㏄ 정도의 뇌 용량을 가졌다. 현생인류의 뇌 용량이 1450~1600㏄인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다. 루시는 인간처럼 직립 보행을 했지만 그녀의 엉덩이와 무릎은 침팬지처럼 보행할 때 구부러져 있었을 것이다. 루시는 440만 년 전 유물로 추정되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와 마찬가지로 침팬지 크기의 두뇌를 가지고 인간처럼 두발로 걸었다. 이 사실은 다시 한번 이족보행이 인간이 되기 위한 신체적 혁신의 기반이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학자들은 루시의 갈빗대를 조사해, 그녀가 아직 채식주의자란 사실을 확인했다. 손가락이 굽은 것으로 보아 저녁에는 나무 위에서 거주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루시의 가족은 아직 불을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식물을 주식으로 삼았다. 아마도 흰개미와 같은 작은 곤충을 잡아먹었고, 해변가에서 거북이나 악어의 알로 영양분을 섭취했을 것이다. 인간은 대표적인 다식성 동물이다. 인류의 조상들은 전통적인 채식주의에서 벗어나 고기를 통해 단백질, 에너지, 칼로리 등을 섭취한다. 학자들은 이전까지 도구 제작시기를 260만 년 전으로 추정했지만 최근 에티오피아 디키카에서 발견된 석기들은 34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루시의 가족들은 이미 돌로 만든 도구를 제작하였으며 고기를 먹는데 사용했을 것이다. 이들은 아마도 사자나 표범이 남긴 고기를 찾아 먹는 효과적인 동물이었다. 만일 루시 가족들이 육식동물들이 남긴 음식을 관찰해 찾을 수 있었다면, 그 남은 고기는 루시 가족의 몫이다. 요한슨이 발견한 루시의 송곳니와 소구치가 작은 이유는 루시가 직접 사냥하지 않고 지상에서 하이에나, 독수리와 경쟁하는 동물이었음을 나타낸다.

침팬지도 도구를 만들지만 인간만이 도구를 장식한다. 장식에는 정교함과 단순함, 그리고 미적인 감각이 들어있다. 이런 것들은 오랜 수련을 거친 가치들이다. 아직 루시가 말을 하지 못했지만, 이런 도구들을 제작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상상했을 것이다. 이 상징적인 생각과 다른 루시 가족들이 전달해준 석기 만드는 기술의 전통이 후대 등장하는 인류문명의 핵심이다.

인간의 가족이 된 ‘루시’와 ‘제니’


▎루시가 속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30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정착한 인류의 조상이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 쿠스의 머리뼈 화석.
#6. 최초 가족의 등장

루시 가족은 다수의 수컷과 암컷이 집단을 이루며 살았다. 오늘날 아프리카 침팬지들의 서식형태와 비슷하다. 특히 송곳니와 소구치의 크기가 현격하게 줄어들어 동시대 다른 유인원들과는 생활방식에서 중요한 차이점을 시사한다. 침팬지나 고릴라의 경우에는 커다란 송곳니를 사용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러나 루시 가족들의 줄어든 치아는 동족 내 갈등이나 공격이 줄어들었다는 증거다. 집단 내에서 수컷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폭력이 크게 줄면서 집단에 대한 충성과 신뢰가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지역 라이톨리에에서 유인원들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1976년 고고학자 매리 리키(1913~1996)가 발견한 화산재로 굳어진 화석에는 루시 시대 유인원들의 27m나 되는 행렬에 70개 이상 발자국이 간직되어 있었다. 이 발자국은 360만년 전으로 추정되며 두 명이 보행한 흔적이다. 이들은 발뒤꿈치를 먼저 땅에 대고 발가락을 후에 떼며 걸었다. 오늘날 현생인류의 걸음과 같다. 세렝게티에 남긴 두 명의 발자국은 가족이라는 협동공동체의 상징이다. 로켓을 만들어 달나라에 갈 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협동이다. 루시가 속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300만 년 전 아프리카 동부에 도래한 기후변화로 자신의 흔적을 감춘다. 세렝게티의 발자국은 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흔적이다.

다윈은 오랑우탄을 동물원에 가서 그저 구경만 하는 신기한 대상으로, 3인칭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오랑우탄을 섬세하게 관찰함으로써 자신과 유사한 동물일 뿐만 아니라 그 옛날 언젠가 같은 조상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가 만난 오랑우탄은 그에게는 인격을 지닌 ‘제니’였다. 다윈은 몰입을 통해 자신과 제니가 동일시되는, 즉 1인칭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제니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동물 기원에 대한 숭고한 원칙인 ‘진화’의 비밀을 밝혔다. 요한슨은 인내와 몰입으로 그 넓은 사막에서 발견한 몇 개의 뼛조각들을 폐기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류의 기원을 찾는 혁신가의 여정엔 상상력과 인내라는 세렌티피티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비틀스의 <루시 인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강에서 배를 타고 있는 당신을 상상해보세요. 오렌지나무와 마멀레이드 색깔의 하늘과 함께. 누군가 당신을 부르고, 당신은 아주 천천히 대답하죠. 만화경 같은 눈을 가진 소녀와, 노랗고 연두색의 셀로판 꽃들이 당신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고 있어요. 태양을 눈에 담은 소녀를 찾아 나섰지만, 그녀는 사라졌어요.”

배철현 -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원전 6세기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비시툰비문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가르치고 있다. 창의 인재 혁신 프로그램인 ‘건명원’을 기획하고, KBS ‘궁금한 일요일 장영실쇼’ 진행을 맡고 있다.

201603호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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