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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치] 미국 대선 ‘1라운드’의 승자는? 

‘러스트 벨트’(미시간·펜실베니아·오하이오) 매야 천하 얻는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최근 한 조사 결과 트럼프가 ‘무척 비호감’이라는 응답률 53%, 클린턴 37% ‘난형난제’… 민주 클린턴, 공화 트럼프 7월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 지명받은 뒤 1월 8일 본선 출정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미국 대선이 사실상 1라운드를 마무리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11월 18일 본선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마침내 미국 대통령 선거의 1라운드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5월 26일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후보 지명에 필요한 ‘매직넘버(전체 대의원의 과반인 1239명)’를 확보한 데 이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6월 6일 ‘매직넘버(2383명)’를 달성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두 사람은 7월에 각각 열리는 양당 전당대회에서 최종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 받은 뒤 11월 8일 본선에서 맞붙는다. 클린턴 대 트럼프, 트럼프 대 클린턴. 약 5개월간의 전쟁이 개막됐다.

클린턴은 지난해 4월 12일, 트럼프는 6월 16일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양자구도를 확정 짓기까지 1년여의 시간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부동산 재벌로 단 한 번도 선출직에 진출하지 못한 정치 문외한인 트럼프가 본선 후보에 오르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뉴욕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에 살면서 미스유니버스·미스USA 등 각종 미인대회를 개최하고,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린 그의 출마는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클린턴은 2008년 대선 경선까지 경험한, 손색없는 이력을 갖춘 준비된 대통령감이었다. 민주당 후보는 떼어놓은 당상이었고, 예비후보가 난립하는 공화당에서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쉽게 꺾으리라 여겨졌다. 두 사람이 본선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건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틀렸다. 트럼프는 주류 정치인들을 농락하듯이 언론의 관심을 독차지하며 자신을 선거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끝내 공화당 경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고 위협적인 본선 경쟁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듣게 됐다.

박탈감·위기감 큰 백인들의 가려운 곳 긁어준 트럼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후보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의 지원유세에 나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클린턴 부부의 딸인 첼시.
클린턴은 어떤가. 지지율은 트럼프 수준으로 떨어져 이젠 그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화려한 이력은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아 트럼프에게나 어울릴 법한 역대급 ‘비호감’ 후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처지가 됐다.

인종주의·반(反)페미니즘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막말과 기행으로 쌓아 올린 트럼프의 인기와 퍼스트레이디·상원의원·국무장관을 거치며 국가를 위해 일해온 힐러리에 대한 호감. 내로라하는 정치평론가와 유수의 언론이 예상하지 못한 이 같은 반전의 결과는 이번 미국 대선의 최대 미스터리다. 당연히 본선에 접어든 대선의 향방도 종잡을 수 없다. 예측 불가, 혼돈에 빠져든 선거를 둘러싼 다양한 분석과 해설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트럼프가 대선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을 당시만 해도 언론과 일반의 반응은 조롱뿐이었다.

“2016년 서커스에 ‘카니발 호객꾼(carnival barker)’이 껴들었다(시사주간지 <아틀란틱>)”, “역사상 가장 우스운 출마 선언(<허핑턴포스트>)” “20여 년간 집적거리더니 결국 대권에 도전했다(CNN)”

어느 매체도 호의적이거나 진지하지 않았다. 민주당 측에선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공화당을 싸잡아 비웃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대변인인 홀리 슐만은 트위터를 통해 “오늘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의 주요 대선후보가 됐다. 그가 공화당 경선에 매우 필요한 진지함을 보탰다. 그가 국가를 위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기를 기대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즈음 CNN·ORC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3%, 폭스뉴스 조사에선 4%를 기록했다. 10여 명에 이르는 공화당 후보 중 바닥권을 맴도는 초라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불과 한 달도 안 돼 상황은 역전됐다. 출마 선언 약보름 뒤에 실시된 CNN·ORC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12%를 얻었다. 지지율 10%를 넘긴 주자는 ‘3부자 대통령’을 노리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트럼프뿐이었다. 하지만 뒤이은 이코노미스트·유고브 여론조사에서는 15%를 얻어 공화당 대선주자 중 1위를 차지했다. 급부상한 트럼프는 ‘현상’이 됐다.

이때만 해도 그의 인기는 노이즈 마케팅 덕분이라는 분석이 대세였다. “(멕시코인들은) 마약을 가져오고 범죄를 몰고 온다. 성폭행범이다” 같은 자극적 발언을 쏟아내는 트럼프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언론은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도 ‘장·노년 보수 일부의 관심을 받은 것”이라며 “전체 유권자로 보면 의미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약발은 곧 떨어져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고 단언했다. 민주당은 ‘트럼프 현상’을 반겼다. 트럼프로 인해 공화당이 혼란을 겪고 내부 표 다툼에 몰두하면 민주당이 유리해진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여성·이민자·소수자를 비하하고, 기성 정치인이었다면 정치 생명이 위태로웠을 막말을 하고도 그는 주저앉기는커녕 날아올랐다. 그러자 언론이 본격적으로 트럼프의 인기 비결을 찾아나섰다.

미국인 평균보다 많이 버는 트럼프 지지자들


가장 먼저 거론된 건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 공고한 양당체제 안에서 엘리트 정치인이 좌지우지하는 정치에 대한 불만이 ‘아웃사이더’인 트럼프를 대안으로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세력이 연방정부에 있다고 대답한 미국인은 10명 중 3명밖에 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정치 엘리트와 대중 사이의 괴리감을 트럼프 열풍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특히 미국 사회의 전통적 주류인 백인 보수층의 불만과 불안이 트럼프 인기의 자양분이 됐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 결혼 합법화 등 진보적 정책을 펼치는 데 분노한 이들이 트럼프를 통해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의 막말이 실상은 미국인의 속내를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트럼프가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민감한 소재를 끄집어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들려준다는 얘기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거나 “테러리스트들을 고문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이 그 예다.

대선후보가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이런 말들이 본토박이 백인 미국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소수 인종 이민자가 늘면서 변방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두려움과 박탈감, 무슬림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위협에 대한 공포…. 백인들의 가려운 곳을 트럼프가 속 시원히 긁어준 셈이다.

이처럼 여러 이유를 찾아내고도 공화당 지도부와 언론은 트럼프를 계속 깎아내렸다. 트럼프의 인기는 확장성이 떨어져 끝내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지지자는 저학력·저소득자라 그의 선동에 넘어갔다고 폄하했다.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지난해 8월 “(트럼프가) 매사 시비를 걸고 싸움을 일삼아 소외된 사람들의 한풀이를 해준다”고 썼다. “자기확신이 없는 빈곤층에 이런 장광설(長廣舌)은 쉽게 먹혀든다. 사람은 자신감이 없을수록 자신만만해 보이는 지도자를 갈망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지난 3월 [NYT]는 트럼프 지지자들과 가장 상관관계가 큰 키워드 10개를 전했다. 그중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백인, 이동식 주택, 농업·건설·제조 등 구(舊)경제의 직업 등이 포함됐다. 이런 분석들이 공화당 지도부의 판단을 흐트러뜨렸다. 대중의 열광과 여론조사 수치를 보고 ‘설마’와 ‘혹시’하는 우려 섞인 전망을 하면서도,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은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결정적 계기는 지난 2월 네바다주에서 열린 공화당 코커스(당원대회)였다. 히스패닉 인구 비율이 높은 네바다에서 이민자를 내쫓자던 트럼프가 1위를 차지하면서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는 기정사실이 됐다.

애초 그의 출마를 기인(奇人)의 돌출행동쯤으로 보던 언론 보도가 급변했다. 본격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이 시작됐다. CNN은 “혐오에 투표하지 말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고, [NYT]는 ‘트럼프의 발을 거는 5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를 향한 공격과 비난이 거세질수록 트럼프는 강해졌다.

그제서야 트럼프 지지자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기존의 분석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지적하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 5월 데이터기반 저널리즘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잇(www.fivethirtyeight.com)’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소득을 분석했다. 출구조사와 인구센서스 자료를 바탕으로 한 조사였다.

그 결과 그의 지지자 대부분이 전체 미국인 평균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가계 중간소득은 7만2000달러로, 전국 가계의 중간소득인 5만 6000달러보다 높았다. 심지어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 지지자의 가계 중간소득(각각 6만1000달러)보다도 높았다. 적어도 트럼프 지지자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불만을 품고 선동에 쉽게 넘어간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지지율도 비호감도도 트럼프와 엇비슷한 클린턴


▎2005년 트럼프의 결혼식에 참석한 클린턴 부부. 트럼프의 세 번째 부인인 멜라니아(오른쪽)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모델이다.
지난 4월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트럼프를 몰래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그중엔 쿠바 이민자의 딸인 20대 변호사,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에 참가했던 청년, 소득 상위 1% 안에 드는 인도계 변호사, 은퇴한 생화학 공학자 등이 포함됐다. “기성 정치에 질렸다”, “사업가로서의 경험이 정부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한 지지 이유를 밝힌 이들은 “아내도 트럼프 지지 사실을 모른다”, “부모가 알면 까무러친다”며 익명 보도를 요구했다.

이 같은 보도대로라면 지금껏 기성 정치권·언론은 헛다리만 짚은 셈이다. ‘트럼프 현상’의 실체를 파악조차 못해놓고 트럼프를 저지하겠다고 했으니, 애초에 공화당 경선은 트럼프가 이기는 판이었을지도 모른다.

8년 전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했을 때 클린턴은 승복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언젠가 백악관에 여성을 보내게 될 것이다. 지금 그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뜨리지 못했지만…. 다음번엔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했다”

자신의 ‘예언’대로 클린턴은 유리천장을 깨고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됐다. CNN은 ‘힐러리 클린턴이 역사를 만들었다(Hillary Clinton Makes History)’고 보도했다. 그러나 역사는 절반만 완성됐다. “백악관에 여성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언젠가’가 과연 올해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와 달리, ‘대선 재수생’인 클린턴은 처음부터 미국 여야 정치권을 통틀어 대선후보 지지도 부동의 1위였다. 대선 가도의 최대 적은 너무 일찍 조성된 ‘대세론’이라고 할 정도였다.

불행히도 대세론이 클린턴에게 약보다 독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이 됐다. 대선은 변화를 향한 갈망이 폭발하는 무대인데, 클린턴은 유권자에게 식상한 후보로 비쳐졌다. 그의 자질과 장점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버니 샌더스라는 복병이 나타났다. 무신론자보다 당선이 더 어렵다는 사회주의자는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대중을 사로잡았다. 압승을 거둘 줄 알았던 클린턴은 고전했다. 경선을 승리로 마무리했지만 ‘상처뿐인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일반 대의원 확보 수에서 55%(클린턴) 대 45%(샌더스)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국 지도를 놓고 보면 오히려 샌더스가 승리한 지역의 면적이 클린턴보다 넓다. 클린턴의 지지층이 흑인과 히스패닉이 몰려 있는 일부 도시에 쏠려 있다는 의미다.

어쨌든 민주당 경선에서는 이겼지만 본선은 첩첩산중이다. 트럼프는 승승장구하는데, 클린턴의 인기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대선후보가 되기 전 클린턴은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국무 장관 시절 지지율은 66%까지 치솟았다. 출마 선언 직후인 약 1년 전만 해도 50%대를 지켰다.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본격적으로 대선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지지율 급락은 시작됐다.

급기야 NBC방송이 지난 5월 30일~6월 5일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클린턴은 트럼프와 오차범위 내 접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자 대결 땐 48% 대 44%로 간신히 앞섰고, 대안으로 떠오른 자유당의 후보 게리 존슨과 녹색당의 질 스타인을 함께 넣은 조사에선 트럼프(40%)가 클린턴(39%)을 근소한 차로 앞섰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건 지지율만이 아니다. 비호감도에서도 클린턴은 트럼프와 별 차이가 없다. IBD·TIPP의 지난 3월 말 조사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 중 트럼프와 클린턴은 각각 비호감 1·2위를 차지했다. 트럼프가 ‘무척 비호감’이라는 응답률은 53%, 클린턴은 37%였다. 이번 대선은 ‘차악(次惡)’을 뽑는 선거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CBS방송은 “클린턴의 최대 장애물은 경쟁자가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지적했다.

유력 대선후보인 클린턴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상 신호의 발단은 e메일이었다. 지난해 2월 그가 국무장관 재임 시절 공식 부처 e매일 계정이 아닌 개인 계정을 업무에 사용해 연방법을 어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른바 ‘e메일 스캔들’에 대해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클린턴이 늪(morass)에 빠졌다”고 표현했다. 클린턴은 “(개인 e메일은) 국무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사용했다”며 사과하지 않았다. 이런 초기 대응은 ‘정직하지 않다(dishonest)’, ‘믿을 수 없다(untrustworthy)’는 부정적 이미지만 심어줬다.

일·경력·출세뿐인 정치인의 삶, 인간미 없어


▎일찌감치 조성된 ‘대세론’이 오히려 독이라는 평가처럼 힐러리 클린턴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클린턴의 차량이 지나가자 1달러짜리 지폐를 뿌리며 야유하는 시위대.
[NYT]의 데이비드 브룩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5월 24일 게재된 ‘왜 힐러리는 트럼프 못지않게 비호감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는 “클린턴이 ‘무엇을’ 했느냐보다는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비호감의 원인이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클린턴의 삶이 일과 경력·출세에 장악돼 있기 때문에 그의 이미지는 이력서나 정책 보고서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브룩스는 “일에서 벗어나 안식처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며 “그래야 단순히 생산적인 정치인이 아니라 진짜 사람 냄새가 느껴지는 정치인이 된다”고 조언했다. USA투데이 역시 6월 7일자 기사에서 클린턴을 향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인간미를 보이라고 주문했다.

신문은 그가 “항상 입바른 말을 하지만 가슴을 뜨겁게 하진 않는다”고 꼬집었다. 경쟁자인 샌더스가 젊은이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은 것도, 트럼프가 기존의 판을 뒤집으며 돌풍을 일으킨 것도 그들이 대중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건 시사점이 크다. 클린턴은 누구보다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최근 ‘할머니’로서의 일상적인 모습을 노출하는 것도 유권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클린턴이 ‘꿈’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은 또 있다. 무엇보다 패배한 샌더스의 버티기가 골칫덩이다. 그는 “역사에 맞선다”는 언론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경선 완주를 고집하고 있다. 그는, 클린턴이 경선 승리 연설을 한 6월 7일에도 “트럼프의 승리를 막기보다 미국을 개조하는(transform) 것이 더 중요하다”며 경선을 포기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의 협력을 요청에도 원론적 답을 했을 뿐 포기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미 언론들은 그가 마지막 경선인 7월 14일 워싱턴DC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마치고 사퇴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보도대로 그가 전당대회 전 패배를 인정하고 클린턴을 돕는다 해도 열광적인 샌더스 지지자는 클린턴의 골치로 남는다. 샌더스 지지자 10명 중 1명은 클린턴을 뽑느니 트럼프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 혁명의 꿈을 못 버린 샌더스 지지자들이 7월 25~28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난장판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나로 똘똘 뭉쳐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 마당에 ‘내부의 적’이 분열을 조장하고 있으니 클린턴으로선 속이 탈 수밖에 없다.

‘외부의 적’도 물론 만만치 않다. 민주당 최종 후보가 확정되기 전부터 클린턴에게 자극적인 공격을 퍼부었던 트럼프는 본격적인 폭로를 시작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이미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폭행’ 주장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고, 부동산개발 의혹 사건인 ‘화이트워터 게이트’와 관련된 살해 음모론까지 거론한 트럼프다. 충분히 ‘추잡한 대선전’을 가동한 그가 어떤 ‘폭탄’을 던질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1라운드의 반전, 본선까지 이어질까


▎독설과 기행을 일삼는 트럼프에게도 비호감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워싱턴 베리존 센터 밖에서 반(反)트럼프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클린턴이 당선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근거는 여러 가지다.

일단 유권자의 인종 분포가 클린턴에게 유리하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6년 대선은 유권자의 인종이 가장 다채로운 선거다. 약 2억2577만 명에 이르는 유권자 중 백인은 69%(약 1억5608만 명), 흑인과 히스패닉은 12%(각각 약 2740만 명, 2730만 명), 아시아계는 4%(약 928만 명)이다.

2012년 대선에 비해 백인 유권자 수는 2%가 늘었지만 히스패닉은 17%, 아시아계는 16%가 늘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성향인 백인 유권자의 수보다 민주당 성향을 보이는 소수 인종 유권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민자에 대해 막말하는 트럼프를 저지하기 위해 히스패닉계 단체들이 반(反) 트럼프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 클린턴 측이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

ABC 방송도 양당의 후보가 확정된 뒤 과거 투표 성향과 인구의 변화, 여론조사 추이를 분석해 클린턴의 본선 승리를 예측했다. 방송은 클린턴이 선거인단 538명 중 262명을 확보하고 트럼프는 191명을 얻을 것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85명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트럼프가 바짝 치고 올라온 최근의 여론조사는 신뢰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NYT]는 역대 대선에서 시기별로 치러진 여론조사의 적중률을 따져보니 선거 100일 전까지의 조사는 최종 결과와 상당히 달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008년 대선을 예로 들었다. D-167일 시점에서 미트 롬니 당시 공화당 후보가 오바마 대통령과 여론조사 동률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 선거 결과 오바마 대통령은 332 대 206으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트럼프와 클린턴이 막상막하인 현재의 여론조사는 전망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예측불허라는 의견도 많다. 1라운드가 반전의 연속이었는데, 본선에서 반전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는 것이다. CNN은 “이번 대선은 트럼프라는 기존 판도를 획기적으로 뒤집는 후보가 출연해, ‘민주당 성향주(州)’, ‘공화당 성향주’가 상대방으로 넘어가는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았다.

특히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미시간·펜실베니아·오하이오로 이어지는 ‘러스트 벨트(rust belt)’다. 한때 잘나갔지만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지금은 쇠락한 중서부 및 북동부의 공업지역이다. 이중 미시간과 펜실베니아에서 민주당은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여섯 번의 대선에서 모두 이겼다. 오하이오에선 네 번을 이겼다.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으로 꼽힌다.

그러나 경제 불평등과 일자리 감소 등 경제 상황이 유권자의 분노와 정치 개혁의 열망을 불지핀 이번 대선에선 다르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을 내세우며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이 지역의 백인 노동자층의 표가 어디로 갈지 가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플로리다도 히스패닉 유권자가 많아 클린턴에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여론조사 결과 경합지역으로 분류됐다. CNN은 이 4개 주 중 트럼프가 몇 개나 석권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승자독식제가 적용되는 본선에선 전체 선거인단의 과반수인 270명을 확보하는 후보가 승리한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후보와 기성 정치판을 흔든 아웃사이더 후보의 대결. 게임은 시작됐다.

-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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